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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알비니는 유독 특별한 위치에 놓여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는 노이즈 록/매스 록 밴드를 했으며 프로듀서로서는 얼터너티브, 그리고 인디 록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의 밴드활동보다는 약 1000여장의 앨범을 작업한 사운드 엔지니어로써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기본에 충실하되 급진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프로덕션, 변명하지 않는 반골 기질, 신랄한 유머감각 정도로 그의 캐릭터를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알비니와 여타 프로듀서들과의 차이점 중 하나는 그가 ‘프로듀서’라는 호칭을 혐오했다는 사실이다. 대신 ‘녹음 엔지니어’라는 호칭을 선호했다.
프로듀서의 경우 통제권을 쥐고 밴드의 음악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녹음 엔지니어의 역할은 음악가의 사운드를 작업하는 데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축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티브 알비니는 자신이 작업한 음반들로부터 로얄티를 받지 않으며 작업 시에도 저렴한 정액 요금을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다른 예술가의 작품으로 무한정 돈을 버는 것이 비윤리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너바나와 작업한 앨범의 로얄티를 받지 않으면서 수백만 달러를 포기한 셈이었다.
스티브 알비니는 푸 파이터스 같이 현재 가장 큰 밴드부터 지금은 해체한 스크리밍 피메일스 같이 비교적 덜 알려진 밴드까지 누구와도 함께 일했고 자신이 일한 시간만큼 정해진 돈만 가져갔다.
스티브 알비니는 수십년간 거대 음반사의 횡포와 미국 음악산업 전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이어 나갔다.
특히 젊은 밴드가 경력 초기에 착취적인 계약에 유인되는 사례를 경계했고 대형 음반사의 경영진들의 약탈적 관행을 비난했다.
팝 음악에 대한 혐오감 또한 자주 표현했는데 보통의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들이 보컬의 볼륨을 높이면서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들에 반대되는 일을 하려했다.
스튜디오 레코딩의 교과서로 여겨지는 밴드 스틸리 댄을 싫어한다는 의사표현을 공공연하게 했는데, 그만큼 멀끔하고 기계처럼 정형화된 소리를 피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오늘날의 소비자 중심 사회에서 뮤지션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도전적이며 반체제적 사고 방식을 지닌 펑크 록이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늘 강조해왔다.
캘리포니아에서 1962년도에 태어나 몬태나에서 성장한 스티브 알비니는 십대 시절 라몬즈를 듣고 본인과 친구들의 불경함과 멍청함, 그리고 일종의 광기를 대표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음악에 빠졌다.
그 무렵 다리를 심하게 다치면서 회복하는 동안 베이스 기타를 연습했고 이후 몇몇 밴드를 거쳤다.
노스웨스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시카고로 이주한 스티브 알비니는 시카고의 DIY 펑크에 빠져 있었고 이후 저널리즘 학위를 받았다.
독립 잡지 <포스트 익스포저>에 글을 기고했으며 폭력적인 리프와 드럼 머신을 트레이드마크로 한 포스트 펑크 밴드 빅 블랙을 결성했다.
빅 블랙의 마지막 공연에서 당시 쓰던 악기들을 모두 부쉈고, 이후 매스록 밴드 셸락을 결성했는데 이는 그의 경력 끝까지 이어진다.
셸락의 경우 페스티벌 공연을 의도적으로 피했는데 관련 없는 아티스트들과의 소란스럽고 상업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서였다. 큐레이팅이 중심이 되는 ‘올 투모로스 파티’ 페스티벌의 경우에만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프로듀서로서는 픽시즈의 세기의 걸작 <Surfer Rosa>를 녹음하면서 주목받았으며, 이후 픽시즈의 베이스연주자 킴 딜의 밴드 브리더스의 <Pod>를 녹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두 앨범을 좋아했던 커트 코베인에 의해 당시 <Nevermind>로 세상의 중심에 있었던 너바나가 자신들의 다음 앨범 <In Utero>의 녹음을 스티브 알비니에게 맡긴다.
정작 스티브 알비니는 <Nevermind>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픽시즈와의 작업에 대해서는 “코걸이에 걸려 끌려 다니기를 더 열망하는 네 마리의 소”라고 빈정댔던 것으로 유명했다.
스티브 알비니는 너바나가 소속되어 있는 거대 음반사의 경영진들을 멀리하기 위해 일부러 고립된 스튜디오를 선택했고 녹음은 6일만에 완료됐다.
예상대로 스티브 알비니 특유의 거친 결과물을 들은 음반사 측은 당연히 불만족스러워 했고 결국 몇몇 곡의 경우 R.E.M.을 작업했던 스캇 릿에 의해 새로 믹스됐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너바나의 <In Utero>가 스티브 알비니를 전설로 만들어 줬지만 당시에는 그에 대한 입소문이 이상하게 나면서 음반사들이 스티브 알비니를 기피했고 예정된 작업마저 취소되는 등 일자리를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자신만의 스튜디오의 필요성을 깨달은 스티브 알비니는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의 앨범을 작업한 돈으로, 이제는 시카고의 명소가 된 일렉트리컬 오디오 스튜디오를 1997년도에 설립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작업시간에 대해서만 비용을 청구하고 친구나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무료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스티브 알비니는 큰 밴드이건 작은 밴드이건 간에 하루 일당으로 750달러를 받는데, 세계적 수준의 스튜디오에서 일급 엔지니어인 그가 하루 작업하는 데에 750달러의 금액을 받는 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최근까지 스튜디오에 전화를 걸면 스티브 알비니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스티브 알비니는 특정한 스타일에 집착하지 않았고 그저 일정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
PJ 하비의 <Rid of Me>처럼 원초적이고 높은 에너지의 프로덕션이 주로 많았지만 니나 나스타샤, 조안나 뉴섬, 로우 등의 인디 포크 작품들, 모과이, 슬린트 등의 포스트록, 그리고 크랭키 소속의 실험적인 음악들 또한 두루 작업해냈다.
작업 시에는 음악에 대한 의견을 내지 않으려 굉장히 노력했으며, 한발 물러나 자신의 일만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이 좋고 나쁘고는 그가 해야 할 부분이 아니었다. 무엇을 연주하든 단지 종소리처럼 명확하게 들리게끔 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까다로운 성격답게 아날로그 작업을 지지하고 디지털 녹음을 비난했지만 의외로 음원의 디지털 공유나 스트리밍의 경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다는 지점 때문에 지지했다.
스스로가 평생에 걸쳐 터득해 온 레코딩 노하우나 팁, 사용하는 장비 등을 세간에 널리 공유하는 편이기도 했다.
스티브 알비니는 나이가 들면서 온화해지지는 않았지만 적대적인 습관들을 점차 버려갔다. 그럼에도 항상 그를 지탱해 온 견고한 원칙 같은 것들은 굳건히 지켜냈다. 음악 작업 이외에도 의외로 포커 플레이어로써 대회에서 수백명을 이기면서 몇 차례 우승하기도 했다.
2024년 5월 7일, 불현듯 스티브 알비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61세라는 짧다면 짧은 생애였다.
최근까지 꾸준히 얼굴을 내밀었으며, 사망소식이 전해진지 일주일 후에는 자신의 밴드 셸락의 10년 만의 새 앨범 <To All Trains>이 발매될 예정이었다.
당연히 앨범 발매 투어 또한 계획되어 있었다. 생전의 그는 자주 돌발적인 언행을 해왔는데 결국 의도치 않게 자신의 죽음마저도 너무도 갑작스러워 몹시나 당황스럽다.
스티브 알비니의 중요성은 그의 명성보다 크다. 시카고가, 더 나아가 미국이 인디 록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브 알비니의 공이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음반에 기록된 음악과 문화 그 자체가 자신들이 작업한 아티스트들보다 오래 지속되기를 원했다. 그는 밴드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음악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자신의 음악작업에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지만 스스로가 특정 산업에 속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던 스티브 알비니의 뒤에는 그럼에도 무수한 추종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나는 평생 목표 없이 살아왔으며, 그것은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코 불안하거나 불만스러운 상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뭔가를 성취하지 못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아직 성취해야 할 게 남아있다고 느껴본 적도 없다.
목표라는 것은 꽤나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고 불만족스러워 할 것이며, 그 특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 목적은 사라지고 존재의 지침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항상 모든 것을 과정으로 보려고 노력해왔다. 나는 지속 가능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공평한 방식으로 일을 하고 싶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 나에게 성공이란 내일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카고 선타임스와의 인터뷰 중)
☞ 추천 음반
◆ Godspeed You! Black Emperor - Yanqui U.X.O. (2002 / Constellation)
이 업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밴드와 프로듀서가 충돌해 만들어낸 결과물. 밴드 특유의 분노로 뒤덮인 시네마틱한 사운드가 끊임없이 폭발을 멈추지 않는다.
스티브 알비니와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 모두 알루미늄 넥으로 된 기타를 사용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앨범 커버 뒷면에 4대 대형 음반사의 수익이 어떻게 다국적 무기 제조 업체들에게로 유입되는지를 나타내는 다이어그램을 보노라면 이 협업은 필연적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바이닐 레코드 버전이 몇 분 더 긴데 두 버전 모두 구매해 비교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 On the Pulse >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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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뉴스 외국인력 수급 ‘업종별’로 전환…수요 맞춤형으로 통합 관리 정부가 외국인력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업종별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을 소관 부처 중심으로 실시하고 비전문인력 중심의 통합적 총량관리 체계도 구축한다. 또 중첩되는 외국인력과 관련된 정책 심의기구는 일원화하고 자격기준과 평가, 제재 등 민간 도입 방식을 제도화한다. 정부는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한 제41차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외국인력의 합리적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생산가능인구 지속 감소에 따라 급증하는 산업현장의 외국인력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관계부처 합동으로 외국인력 통합관리 추진TF를 구성, 현장 전문가 의견청취 및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개선방안을 논의해 왔다. 이번 개선 방안은 외국인력의 안정적인 수급과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수요자 중심·통합적 관리·공공 책임 강화를 기본방향으로 하고 비전문인력·전문인력·유학생·지방인력 분야 42개 추진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정부는 먼저, 외국인력 수급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수요자 맞춤형 인력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업종별 중장기 수급 전망을 소관 부처 중심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외국인력의 확대는 업종별 체계적인 수급분석보다는 비자별 단기수요에 대응해 업종별 부처 인력정책과의 연계가 미흡했다. 이에 업종별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을 소관 부처별로 실시하고 수요자 중심의 부처별 체계적 인력정책과 연계하는 등 부처의 역할을 강화한다. 또한 노동시장의 외국인력 수요 변화에 종합적·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비전문인력 중심의 통합적 총량관리 체계를 구축한다. 앞으로 부처별로 관리하던 비전문인력 비자별 도입규모 총량이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통합적으로 조정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 관련 유사 정책 간 연계·조정과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선 외국인 관련 정책 심의기구(위원회)를 일원화한다. 외국인정책위원회 및 외국인력정책위원회,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는 정책 대상 및 내용이 일부 중첩되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정책의 연계 및 총괄·조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관련 법령을 개정해 외국인정책위원회 등 3개 위원회를 외국인정책 및 외국인력정책, 다문화가족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가칭)외국인·다문화정책위원회로 일원화한다. 정부는 이와 함께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민간 업체의 관리감독을 강화해 불합리한 송출비 부담 및 이탈을 예방하는 등 공공의 책임성을 강화한다. 민간 알선업체에 대한 자격기준을 마련하고 전문기관을 통한 평가·제재를 실시하는 등 민간 도입방식을 제도화하고 공공형 계절근로도 확대한다. 이 밖에도 인센티브 제공과 비자요건 완화 등 제도 개선을 통해 첨단·전문인력을 적극 유치하고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숙련기능인력를 육성한다. 산업현장에서 숙련근로자의 수요가 지속 증가함에 따라 비전문인력(E-9, E-10)의 숙련기능인력(E-7-4)으로 전환규모를 늘리고 전환요건 완화 등 제도개선을 추진한다. 아울러 한국어 및 한국문화에 적응한 졸업 유학생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취업허용 분야 및 구직·연수 기회도 확대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하되, 우리 국민이 기피하는 빈일자리에 대해서는 성실한 외국인 근로자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외국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관리체계를 마련하게 됐다”고 전했다. 외국인력 관리방안. (인포그래픽=국무조정실) 문의 : 국무조정실 고용식품의약정책관실(044-200-2373), 법무부 체류관리과(044-2110-4087),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044-202-7145), 농림축산식품부 농업경영정책과(044-201-1721), 해양수산부 소득복지과(044-200-5471)·선원정책과(044-204-7440), 중소벤처기업부 인력정책과(044-204-7450),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과(02-2100-6372)
- 카드뉴스 일가정양립 지원제도가 이렇게 달라집니다! 일가정양립 지원제도가 이렇게 달라집니다! 일가정 양립의 확산으로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요! ① 육아휴직 임신 중이거나 8세(또는 초등 2년) 이하의 자녀를 둔 근로자가 자녀의 양육을 위해 휴직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Ⅴ 사용기간 확대 부모 각각 1년 → 부모 각각 1년 6개월로 확대(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사용 시) Ⅴ 분활횟수 확대 3번에 나눠 사용 (분할 2회) → 4번에 나눠 사용 (분할 3회) ② 육아휴직급여 육아휴직을 사용한 근로자가 소정의 수급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육아휴직 기간에 대하여 급여를 지원합니다. Ⅴ 급여 상한액 인상 육아휴직기간 월 150만원 상한 (통상임금 80%)지원 → 첫 3개월 250만원 (통상임금 100%) + 4~6개월 200만원(통상임금 100%) + 이후 160만원 (통상임금 80%) Ⅴ 사후지급금 폐지 급여의 25%를 휴직 종료 후 6개월 이상 근로시 지급 → 휴직기간 중 급여 전액 지급 *’25년 시행(잠정) ③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만 8세(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여 근무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Ⅴ 기간 확대 최대 2년 *1년 + 육아휴직 미사용기간 1년 → 최대 3년 *1년 + (육아휴직미사용기간1년x2) Ⅴ 연령 확대 8세(초등학교 2학년) 이하 → 12세(초등학교 6학년) 이하 Ⅴ 정부지원 확대 주 5시간에 대해 통상임금 100% 지원 *나머지 단축분 : 통상임금 80% → 주 10시간에 대해 통상임금 100% 지원*나머지 단축분 : 통상임금 80% ④ 배우자 출산휴가 배우자가 출산한 경우 사용 가능한 휴가입니다. Ⅴ 사용기간 확대 : 10일 → 20일 Ⅴ 분할횟수 확대 : 2번에 나눠 사용(분할 1회) → 4번에 나눠 사용 (분할 3회) Ⅴ 정부지원 확대 : 중소기업 근로자 5일 → 중소기업 근로자 20일 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임신기에 1일 2시간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Ⅴ 사용시기 확대 임신 12주 이내, 36주 이후에 신청 가능 → 임신 12주 이내, 32주 이후에 가능 *고위험질환 등 의사진단 있는 경우는 전기간 Ⅴ 연차 산정 연차 산정 시 단축 근로시간 미포함 → 단축 근로시간도 포함 ⑥ 난임치료 휴가 난임치료를 받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휴가입니다. Ⅴ 기간 확대 : 연간 3일(1일 유급) → 연간 6일 (2일 유급) Ⅴ 정부지원 확대 : 정부 지원 없음 → 중소기업 근로자 2일 ⑦ 육아휴직 대체인력지원금 신설 출산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 사용시 대체인력을 활용한 우선지원대상기업 사업주를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Ⅴ 지원 대상 출산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 육아휴직 대체인력지원금 신설 Ⅴ 지원금액 확대 월 80만원 → 월 120만원 Ⅴ 지원범위 확대 대체인력을 직접 고용한 경우만 지원 → 대체인력을 파견근로자로 사용하여도 지원 ⑧ 동료근로자 지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업무를 분담한 동료근로자에 대한 지원 제도입니다. ▲ 육아기 단축업무 분담 지원금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근로자의 업무를 분담한 동료근로자에게 금전적 지원을 한 중소 기업 사업주에게 월 20만원 지원 ⑨ 간접노무비 및 세제 지원 ▲ 간접노무비 지원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30일 이상 허용한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장려금 월 30만원 지원 *(육아휴직 특례 지원) 만 12개월 이내 자녀대상 3개월 이상 연속 휴직 부여 시 첫 3개월간 월 200만원 지원 ▲ 세제 지원육아휴직 사용 후 복귀자 1인당 소득세(법인세)감면(중소 1,300만원, 중견 900만원 지원)
- 건강 나트륨·당류 줄인 가정 간편식 활용 요리 ⑦ ‘두부샐러드 메밀김밥’ 나트륨·당류 줄인 가정 간편식 활용 요리 두부샐러드 메밀김밥 자료=식품의약품안전처
- 사진 금융·통신 취약계층 재기지원 방안 시행 간담회 개최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 중앙 서민금융통합센터에 방문해 통신 채무조정 상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 중앙 서민금융통합센터에 방문해 통신 채무조정 상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 중앙 서민금융통합센터에 방문해 통신 채무조정 상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 중앙 서민금융통합센터에 방문해 통신 채무조정 상담 현장을 둘러본 후, 센터 상담직원들을 통해 그간 통신 채무조정에 대한 수요 및 신복위 방문자들의 애로와 통신채무조정 시행에 대한 기대효과 등에 대해 청취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 중앙 서민금융통합센터에 방문해 통신 채무조정 상담 현장을 둘러본 후, 간담회를 통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 중앙 서민금융통합센터에 방문해 통신 채무조정 상담 현장을 둘러본 후, 간담회를 통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 중앙 서민금융통합센터에 방문해 통신 채무조정 상담 현장을 둘러본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청와대 사랑채 한 바퀴, 서촌의 역사를 만나요 우리의 전통 가옥인 한옥에는 사랑채가 있었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주로 거처하면서 외부의 손님들을 접대하는 생활공간이었다. 현대 가옥으로 따지면 응접실이 사랑채에 해당할 것이다. 국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한 청와대에도 사랑채가 있다. 청와대 사랑채는 청와대를 드나드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청와대 사랑채는 누구에게나 열린 안식처로 만남과 소통의 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청와대 사랑채가 재개관하면서 누구에게나 열린 안식처로 만남과 소통의 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과거 청와대가 개방되기 전 청와대를 방문하려면 거쳐 가는 곳이 청와대 사랑채였다. 재작년 봄 청와대가 개방된 이후로 청와대 사랑채를 방문할 일이 없었다. 지난 6월 14일 한동안 굳게 문이 닫혀 있었던 청와대 사랑채가 개방되었다. 6월 30일까지 청와대 사랑채 재개관을 알리는 2024 청와대 사랑채 웰컴 위크를 개최하고 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촌과 서촌이 있다. 북촌은 북촌한옥마을 하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만큼 내외국인이 방문하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서촌에도 드문드문 한옥이 많지만, 비교적 내외국인에게 덜 알려져 있다. 서촌 골목길을 걷다 보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아담한 한옥 사이에 작은 갤러리, 공방, 카페가 있어서 이리저리 살피느라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지는 곳이다. 2024 청와대 사랑채 웰컴 위크의 행사로 트래블마스터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청와대 웰컴 위크의 행사로 트래블마스터 도슨트 프로그램을운영하고 있다. 역사, 음식, 음악, 예술, 사진 5개를 주제로 한 특별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주제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청와대 사랑채가 있는 서촌을 배경으로 한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서촌을 알아갈 기회가 될 것 같다. 지난 주말,역사를 주제로 한 투어에 참가했다. 청와대 사랑채 앞마당에서 열린 플리마켓에서 청년이 제작한 수공예제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청와대 사랑채에 도착하니 앞마당에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청년이 손수 제작한 제품을 내다 팔고 있었다. 카페 문화상점(https://cafe.naver.com/pandamarket)에 뜬 공지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는 홍미리내(아뜰리에 리내) 씨는 영국에 유학하면서 수제품에 눈을 뜨게 되었단다. 우리나라완 달리 영국은 손으로 만드는 수제품 거래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 낮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나가는 비였어요. 청와대를 방문한 분들이 이곳에 많이 오고 계세요. 공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고객을 직접 만나기 어려워요. 이렇게 플리마켓이 열리면 고객을 만나서 제품을 설명하고 또 고객의 반응도 살필 수 있어서 좋아요. 고객과의 접점이 되는 기회라서 가능한 이런 행사에 참여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청와대 사랑채 2층 옥외의 그늘막에 앉아서 멀리 청와대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청와대 사랑채 1층은 트래블 라이브러리 및 라운지가 조성되어 있다. 실내에서 청와대 사랑채 안마당 쪽으로 난 통유리창을 통해서 멀리 청와대까지 바라볼 수 있다.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읽는 분들이 여럿 눈에 띈다. 트래블 라운지라는 공간에 걸맞게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트래블마스터 도슨트 프로그램은 내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우리말과 영어로 해설했다. 설재우 여행작가(스몰데이즈 대표)가 투어 해설사로 나섰다. 내외국인 관광객 20여 명이 참여했다. 외국인도 참여하는 만큼 영어통역 해설사도 동행했다. 청와대 사랑채에 집결해서 보안여관, 통의동 백송, 통인동 이상의 집, 이상범 가옥, 통인시장, 박노수 미술관, 윤동주 하숙집터, 인왕산 수성동 계곡에 이르기까지 서촌 골목길을 구석구석 누비는 도보여행이었다. 설재우 여행작가는 청와대 권역은 우리나라의 역사, 정치, 문화, 예술 면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입니다. 경복궁, 청와대가 있는 곳이어서 역사, 정치적인 면에서의 중요성은 물론이거니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작가, 예술가 등이 거주했던 곳입니다라고 말한다. 서촌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또 서촌로컬투어를 10년째 진행하고 있는 그의 말에 서촌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첫 방문지, 통의동 보안여관은 일제강점기 이중섭, 윤동주 등이 머물렀던 하숙집 같은 공간이다. 지금은 갤러리, 공방으로 운영 중이다. 첫 번째 방문지는 통의동 보안여관이다.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에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보안여관은 하숙집 역할을 했다. 이중섭, 윤동주 등이 이곳에 머물렀다. 지금 갤러리, 공방으로 운영 중이다. 전시공간인 실내 벽면의 거칠고 훼손된 모습에서 빈티지한 감성이 느껴진다. 서촌 골목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나는 풍경이다. 통의동 마을마당에서 길거리 공연이 열리고 있다. 통의동 백송터로 이동하면서 통의동 마을마당을 지나갔다. 마당 한가운데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라이브로 들려주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밝고 편안해 보인다. 이런 게 서촌이 지닌 매력이라는 설재우 여행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한 지붕 세 가족이 살고 있을 법한 3층 주택 앞에서 아주 오래된 초인종과 마주했다. 층별 가구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주인의 배려가 엿보였다. 통의동 백송터에는 태풍으로 줄기가 잘려나간 백송 주위에 새로운 소나무가 싹을 틔워서 자라고 있다. 두 번째 방문지는 통의동 백송터이다.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던 백송은 약 16m에 이를 만큼 거대했다. 1990년 7월 17일 태풍에 쓰러져 줄기가 부러졌다. 제헌절에 나무가 쓰러진 것을 두고 많은 국민이 놀랐고, 공신제를 지내기도 했다. 백송이 죽은 자리에서 떨어진 솔방울이 싹을 틔워서 주위에 새로이 소나무 3그루가 자라고 있다. 백송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백송을 잘라내지 않은 채 지금껏 보존하고 있다. 인왕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서촌 지역을 관통해서 청계천에 이르고 있다. 그 물줄기를 덮고 지금의 도로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물줄기를 닮아 있는 골목길도 반듯하지 않고 구불구불하다. 과거 물길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지명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상의 집에서 이상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뛰어놀던 감성과 추억이 그의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다음 방문지는 이상의 집이다.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작가 이상이 3살부터 20여 년간 머물렀던 집터이다. 이상이 어릴 적 이곳 골목길에서 뛰어놀던 감성과 추억이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골목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라파엘의 집은 대문과 담장이 없다. 서촌이 장애인 친화적인 동네라는 것을 보여준다. 라파엘의 집도 있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중증장애아동 시설이다. 그런데 라파엘의 집은 대문도 담장도 없다. 설재우 여행작가는 라파엘의 집이 개방된 모습이야말로 서촌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서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특수학교인 서울맹학교, 서울농학교가 있어서 장애인에 친화적인 동네다. 이곳에 라파엘의 집이 들어서는 것을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는 것에 감동해서 대문과 담장을 허물었다고 한다. 서촌의 오래된 가게에는 점자로 된 메뉴판도 있다. 이상범 기자는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의 집에서 이상범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 다음 이상범 가옥이다. 일제강점기 이상범은 동아일보 신문기자로 근무했다. 그런 그에게 큰 사건이 벌어졌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대회에서 마라톤 경기에 출전했던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시상대에 선 그의 가슴에 일장기가 붙여져 있었다. 다음날 보도된 신문에는 일장기가 지워져 있었다. 이상범 기자가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내보낸 것이다. 그 사건으로 그는 직장에서 해고되었고 화가가 되기로 했다. 해방 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위시한 많은 미국인이 이상범의 작품을 사들였다. 그래서 국내에서 그의 작품을 구경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상범의 집 담벼락에 그가 그린 벽화가 남아 있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몰랐던 과거에 민간인의 거주지였던 이 한옥의 담벼락이 일부 훼손된 채 남아 있다. 설재우 여행작가는 서촌에서 한 곳을 방문한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화가 이상범이 남긴 벽화의 일부가 그의 집 담벼락에 남아서 우리의 문화유산 인식의 변화를 일러주고 있다. 이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서촌의 맛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서촌 투어는 눈이 즐겁기도 하지만 입도 즐겁다. 서촌 곳곳에 맛집도 많았다. 그중의 한 곳이다. 통인스윗에 들러서 에그타르트와 음료를 마셨다. 겉바속촉(겉은 바싹, 속은 촉촉)의 대표 음식이라고 내세울 만하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통인시장에 가면 기름떡볶이에 얽힌 미담을 접할 수 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통인시장이다. 관이 주도해서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시장이 있는 반면에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시장도 있다. 전자가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이라고 하면 후자는 통인시장이다. 통인은 인왕산으로 통한다라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에 좌판을 놓고 물건을 팔면서 시장이 생겨났다. 통인시장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기름떡볶이가 있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월남한 할머니들이 떡 장사를 했고, 남은 떡을 기름에 볶아서 팔았던 게 기름떡볶이다. 서촌의 주민들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기름떡볶이를 사 먹었고 할머니들은 그 보답으로 기름떡볶이를 판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이제 기름떡볶이는 통인시장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 권세를 누렸던 친일파 가문의 저택이 사라지고, 두 개의 기둥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의 역사에는 영광의 역사도 있지만 치욕스러운 역사도 있다. 한때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지워내려고 애썼다.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서촌에 남은 치욕스러운 역사는 행인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그 흔적이 두 개의 기둥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였던 가문이 일제강점기 권세를 누리면서 당시 이곳에 프랑스 궁전 양식의 저택을 지었다. 그 저택이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인왕산으로 가는 길에 박노수미술관, 윤동주 하숙집 터,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등이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인왕산 줄기를 따라 언덕길로 올라갔다. 그곳에 박노수미술관, 윤동주 하숙집 터와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 있다. 박노수미술관은 휴무를 제외하곤 이용할 수 있다. 윤동주 하숙집 터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인왕산을 넘어 통학하면서 이곳에서 하숙했다. 하늘에 가까운 인왕산을 오가면서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그 유명한 별 헤는 밤이라는 시가 탄생했다.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수성동 계곡을 그림으로 남겼다. 아파트가 있던 자리를 허물고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마지막 장소는 수성동 계곡이다. 그림 속 장면이 현실에 재현되었다.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수성동 계곡을 보면서 그렸던 곳이다. 수성동 계곡을 그렸으니 진경산수화다. 하지만 이곳은 오랫동안 건축물로 뒤덮여 있었다. 수성동 계곡에 세웠던 옥인시범아파트를 허물고 이곳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지척에 인왕산이 있고 그 아래 계곡이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옛 선조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랴. 서촌 골목길 곳곳에서 2024 청와대 사랑채 웰컴 위크가 열리는 것을 알리고 있다. 이번 도보여행에 참여한 외국인 호르헤(Jorge Pena) 씨는 콜롬비아 출신으로 한국에 거주한 지 10년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말로 의사소통하는 게 능숙했다. 그동안 광화문광장, 광장시장, 남산타워 등 서울의 명소를 방문한 적은 많았어요. 그런데 오늘처럼 골목길을 걸어 다닌 것은 처음입니다. 에그타르트도 맛나고 이상범의 집에 남아 있는 벽화가 인상적이었어요. 벽화를 보면서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어요라면서 소감을 밝혔다. 콜롬비아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지인들을 이끌고 서촌을 안내하겠다고 한다. 서울 시내 곳곳에 현대식 건물과 도로로 정비된 곳은 과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이곳은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사연이 남아 있다. 설재우 여행작가에게 서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다음에 설 작가가 이끌었던 서촌의 골목길을 걸어보련다. 아직 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서촌의 골목길 곳곳에 숨어 있을 것 같다. 청와대 사랑채에 들르면 청와대 권역에 관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청와대 사랑채 재개관을 계기로 청와대 권역 관광과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6월 14일부터 30일까지 2024 청와대 사랑채 웰컴 위크를 열고 있다. 이색적인 여행 프로그램부터 지역 상권과 함께하는 벼룩시장, 참여형 전시 등을 즐길 수 있으며 지역 상점과 연계한 할인권도 제공된다.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는 행사도 개최한다. 서촌, 북촌, 인사동 등 청와대 권역 내 30여 개 지역 브랜드 상점들과 함께 웰컴 쿠폰북 이벤트를 진행한다. 제휴 브랜드 상점과 1일 강좌 이용 시 할인 혜택 등을 제공한다. 과거 만남의 장소였던 분수대를 중심으로 청와대와 청와대 사랑채가 마주하고 있다. 사랑채 실내에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시 여행계획 테이블을 운영한다. 청와대 권역에 대한 여행 정보를 얻고 자신만의 여행 취향을 탐색하며 서로의 여행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사랑채를 비롯한 전시 방문을 누리소통망에서 인증하면 청와대 권역 여행 지도와 취향별 여행 탐구지(미션지), 사랑채 여권 노트 등이 들어있는 기념품(웰컴키트)을 제공한다. 청와대엔 청와대만 있는 게 아니다. 청와대 방문객을 환영하는 청와대 사랑채도 있다. 또 주변에 서촌, 북촌, 인사동도 있다. 청와대를 방문하는 길에 주변도 둘러보면 어떨까?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그곳의 매력과 가치를 발견할 것이다. 청와대 사랑채 :https://cwdsarangchae.kr/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윤혜숙 geowin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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