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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 예방 도구로서의 스포츠클럽 임호연 더브릿지컨설팅 팀장 영화 조커는 광대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결국은 살인과 폭력 시위를 일으키는 악당 조커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서로 조커라는 악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 사람은 원래 그렇게 될 사람이었다., 또는 사회나 여러 환경이 그 사람을 결국 조커라는 악당으로 만든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어떤 사회현상, 특히 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 사회문제와 관련하여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 하나가 원인이 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형태의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 일어난 무차별 흉기 난동과 같이 과거에는 흔치 않았던 범죄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생겼다. 당연히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강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 문제해결 방법이 아니다. 이 문제들은 하나의 특정할 수 있는 원인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완벽한 약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범죄라는 병에 대한 법적 처벌이 약이라고 한다면, 이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약이 아니라 운동으로 평상시에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병이 더 심각해져 우리 사회를 해치고 더 많은 약이 필요하기 전에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최근 발생하는 사회문제의 원인 중 하나를 소속감의 부재로 보고 스포츠의 가치, 그중에서도 스포츠클럽의 특성을 활용하여 앞으로 발생할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려 한다. 이미 스포츠를 통해 건강해진 국가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는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하지만 스포츠를 활용하여 앞으로 발생할 사회문제를 예방함으로써 만들 수 있는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조금이라도 스포츠가 가지는 가치를 느끼고, 이것이 사회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문제의 주요 발생원인: 소속감의 부재 사회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사회적 고립이다. 최근 발생한 잔혹한 범죄 피의자 대부분이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다는 점이 밝혀졌다(머니투데이, 2023.08.23.). 이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다른 사람과 교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결국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등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측면이 있다. 갈수록 발달하는 소셜미디어(Social Media) 속 세상과의 격차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상대적 박탈감도 이와 같은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에는 대가족이 많아 가족구성원 내에서 소속감을 느끼거나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기를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가 핵가족을 넘어 1자녀, 심지어는 위의 그림 1과 같이 1인 가구가 이미 사회의 다수(2022년 기준, 34.5%)가 된 현상황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어떤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을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른 개인의 소속감 부재라고 한다면 분명 어딘가는 이런 소속감을 느끼게 해줄 곳이 필요한 것이다. 스포츠의 가치와 스포츠클럽의 활용가능성스포츠의 가치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스포츠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알아야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스포츠는 도구로서 매우 훌륭한 가치를 가진다. 전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 사무총장 코피 아난(Kofi Annan)은 2004년 연설에서 스포츠는 보편적인 언어이다. 스포츠는 출신, 배경, 종교 혹은 경제적 위치와 관계없이 그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시 여러 메가스포츠이벤트 개최를 통해 온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그보다 작은 단위에서도 각종 스포츠활동 참여를 사회활동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렇듯 스포츠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속감의 부재로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예방할 도구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스포츠가 가진 가치를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모여 스포츠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2022년 6월 16일부터 시행된 「스포츠 클럽법」은 기존에 자율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다양한 스포츠활동 조직들을 스포츠클럽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모으고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 및 지원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향후 스포츠클럽이 중심이 되는 대한민국 스포츠생태계를 구축할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제도적 기반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스포츠클럽을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체육활동 조직들과 스포츠클럽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스포츠클럽의 특성: 개방성과 소속감 생활체육 동호회와 스포츠클럽 과거 우리나라에서 단체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활체육 동호회(이하 동호회)라는 조직에서 활동해왔다. 그러나 동호회는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가 뚜렷하게 존재한다. 그중 가장 큰 한계는 바로 폐쇄성이다. 대부분의 동호회는 같은 종목을 비슷한 수준으로 하는 지인들의 모임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해당 종목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가 이미 자리를 잡은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동호회에 지인이 없는 상황에서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동호회와 스포츠클럽이 다른 특성 중 하나는 바로 개방성이다. 스포츠클럽에서는 회원의 운동 수준이나 지인이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스포츠클럽의 운영 규정상 누구든지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제한 없이 스포츠클럽에 가입할 수 있고, 일정 수준의 회비만 내면 원하는 스포츠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스포츠활동 참여의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만으로도 스포츠클럽은 기존의 동호회가 가진 폐쇄성을 극복하고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체육센터와 스포츠클럽동호회 외에도 시민들에게 스포츠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로 체육센터(예: 국민체육센터 등)가 있다. 체육센터에서는 많은 시민이 일정 금액을 내고 강습을 받거나 여러 종목의 스포츠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폐쇄성을 가지고 있는 동호회와는 달리 일정 수준의 금액을 지불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체육센터가 동호회보다 개방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체육센터에 등록하여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체육센터는 단순히 돈을 지불하고 본인이 희망하는 스포츠활동을 하는 장소 이상의 소속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물론 일부 회원은 함께 운동하는 그룹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며 활동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해당 그룹에 대한 소속감이지 체육센터에 대한 소속감이라고 볼 수 없다. 반면 스포츠클럽에서는 체육센터에서 느끼기 어려운 소속감을 구조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기존 공공스포츠 클럽 사업에서부터 현재 등록-지정스포츠클럽에서까지 가장 강조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회원 중심 의사결정 구조이다. 공공스포츠클럽은 비영리 법인으로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회원 대표로 구성된 총회이다. 따라서 스포츠클럽의 주인이 회원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다. 또한 스포츠클럽 운영 프로그램에 반드시 회원들의 커뮤니티 강화를 위한 활동을 하도록 요구해왔다. 이는 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주인의식 강화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체육센터와 스포츠클럽은 회원들의 클럽에 대한 소속감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스포츠클럽의 특성은 일반 체육센터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소속감을 높이는 데 더 나은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문제 예방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스포츠클럽 활용방안 다수의 소규모 스포츠클럽 육성최근 「스포츠클럽법」이 시행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지난 10년 동안 운영한 공공스포츠 클럽 사업이 등록-지정스포츠클럽 제도로 전환되는 시점이 되었다. 그러나 기존 공공스포츠클럽은 229개나 되는 시·군·구에 스포츠클럽을 설립하기 위해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다 보니, 각 지역마다 하나의 대규모 스포츠클럽을 설립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대규모 스포츠클럽은 아무리 크더라도 지리적·인구적 한계에 의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지역에서 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스포츠클럽법」 시대에서의 스포츠클럽은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 특히 스포츠클럽을 통해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스포츠클럽이 사회에 가질 수 있는 파급력을 크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스포츠클럽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대규모 스포츠클럽을 운영하는 것도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비효율적인 면이 있기에 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많은 수의 소규모 스포츠클럽을 만들어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체육단체와의 시너지 창출많은 스포츠클럽을 만들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체육 관련 사업들을 관리·수행하는 지역체육 단체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스포츠클럽은 「스포츠클럽법」 제6조(스포츠클럽의 등록)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면, 같은 법 제8조(체육단체 가입 의제)에 의해 자동으로 체육단체(지방체육회와 경기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다. 지금은 전국에 348개(2023년 4월 기준) 정도의 등록스포츠클럽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앞으로 등록스포츠클럽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면, 이를 관리 및 지원해야 하는 체육단체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방체육회는 스포츠클럽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사업 또는 교육을 제공해야 하고, 경기단체는 종목별 대회와 리그를 운영하며 스포츠클럽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어쩌면 현재 체육단체에 스포츠클럽이 때로는 지역 내 유사한 스포츠서비스 제공자로 견제의 대상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때로는 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관련 업무를 지원해야 하는 귀찮은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긴 호흡으로 앞으로 스포츠클럽이 만들어 갈 우리나라의 스포츠생태계를 바라보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체육단체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19~2020년 두 차례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을 통해 지방체육회는 자체적으로 회장을 선출하며, 독립된 법인으로의 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체육회는 전체 예산 중 70% 이상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지역 내 체육활동 진흥을 위해 긍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어떤 지방체육회에 등록된 스포츠클럽의 회원 수가 수천, 수만 명에 달한다면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방체육회를 위한 지원에 대한 당위성이 생길 것이고 결국은 지방체육회와 스포츠클럽 모두가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에도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소속감을 높일 수 있는 스포츠클럽이라는 조직이 활성화된다면, 이를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사회문제를 예방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스포츠클럽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사회적 고립 또는 소속감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는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거라고 예상된다. 그러므로 사회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또 다양한 측면에서 노력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스포츠클럽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겠지만, 이런 노력이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 번 강조하였듯 스포츠나 스포츠클럽을 도구로 활용하여 사회문제 예방을 위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스포츠활동이나 스포츠클럽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 기반은 이제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단순한 건강 증진의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문제 예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포츠를 도구로 활용하는 노력을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42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2023.09.22 임호연 더브릿지컨설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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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역사의 쓸모 이종성 한양대학교 교수 필자는 스포츠 문화사가 전공이다 보니 과연 스포츠 역사와 그 관련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많다. 기본적으로 스포츠 역사는 스포츠가 발전해 온 과정을 파악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수업할 때나 학생들과 토론할 때 가끔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과거의 스포츠 역사가 현재와 미래의 스포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스포츠 역사가 적어도 현재의 스포츠문화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직 스포츠 역사의 쓰임새가 어디에 있는지 정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스포츠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스포츠 활성화 정책과 미국 대학스포츠의 이면 최근 10여 년간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현안이자 고민거리는 학원스포츠 문제였다. 학원스포츠 현장에서는 각종 비리와 인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더욱이 대한민국 스포츠를 이끌어 나갈 선수들의 육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중에는 대학스포츠의 활성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때 높은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대학스포츠가 이제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후 대학스포츠 발전 방안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며, 자연스레 대학스포츠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미국 대학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미국 대학스포츠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식을 어떻게 한국에서 수용할 수 있을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과거의 미국 대학스포츠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어떤 부수적인 제도가 필요했는지에 대한 부분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대학스포츠의 발전을 주도하며, 대학스포츠 중 가장 큰 수입을 올리고 있는 아메리칸 풋볼(American Football)의 사례는 스포츠정책 수립에 있어 왜 스포츠 역사가 하나의 나침반이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아메리칸 풋볼이 미국 대학생들의 축제가 되기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학교 간의 경쟁심 때문이었다. 단순히 스포츠 명문교가 되기 위한 경쟁이 아닌 미국을 대표하는 명문교로 발돋움하기 위한 경쟁이었다. 이 경쟁은 현재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이 몰려있는 미국의 아이비리그(lvy League)에서 시작되었다.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의 아메리칸 풋볼팀이 1885년부터 1899년까지 46연승을 기록하며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고 1914년에는 7만 5,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을 짓자, 라이벌이었던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이에 하버드대학교는 유명 감독을 영입해야 했다. 당시 대학교 아메리칸 풋볼팀의 감독 연봉은 7000달러였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교수보다 무려 30%나 높은 연봉이었다. 학내에서 논란이 될 만한 일이었지만 아메리칸 풋볼팀 감독의 연봉이 높아야 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당연했다. 기껏해야 하버드 최고 권위의 교수가 진행하는 수업의 수강생은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하버드대학교의 아메리칸 풋볼팀은 3만 8000명이 들어차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예일대학교나 하버드대학교와 같은 반열에 오르고 싶었던 중부의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도 당대 최고의 아메리칸 풋볼팀의 감독을 선임해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아메리칸 풋볼을 통한 경쟁은 미국 전역의 대학으로 확산됐다. 아메리칸 풋볼은 미국 대학이 고등교육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무대가 된 셈이었다. 미국 대학의 아메리칸 풋볼은 이후 폭발적 성장을 했고 그들이 거둬들인 수입은 웬만한 프로스포츠 리그와 어깨를 겨룰만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아메리칸 풋볼로 얻은 많은 수입은 대학 내 비인기 스포츠팀의 운영비로 충당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미국 대학 내에서 일종의 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미국의 대학 아메리칸 풋볼은 내셔널풋볼리그(NFL: National Football League)과의 신사협정을 통해 지금도 대학 최고의 스포츠로 군림할 수 있었다. 대학 아메리칸 풋볼팀에 적어도 3년을 활약한 선수만이 프로 무대에 진출할 수 있다는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대학과 프로스포츠 리그 간의 상생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컸다. NFL에 진출한 선수들이 경기에서 소개될 때면 늘 그들의 출신 대학이 전광판이나 TV 자막을 통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이 이를 통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이러한 미국 대학 아메리칸 풋볼과 NFL과의 상생은 대학스포츠와 프로스포츠가 과거와는 달리 단절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하지만 미국 대학스포츠의 장점을 한국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제도를 가져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메리칸 풋볼의 경우처럼 어떻게 미국 대학스포츠가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시대적 맥락과 함께 이해해야 한국적 변용이 가능하다. 새로운 스포츠정책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전문가들이 만드는 제도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문화가 그 제도에 호응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부카츠(部活)의 빛과 그림자 완벽한 제도는 사실상 이 세상에 없다. 오직 완벽에 가깝게 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제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스포츠 제도는 성공의 역사라기보다는 실패와 개선의 역사라고 보는 게 타당할 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학생선수와 운동하는 학생 만들기라는 면에서 한 번쯤은 살펴봐야 할 사례는 일본의 부카츠(部活, 특별활동) 제도다. 부카츠는 일본의 중·고등학생들이 지식편중 교육에서 벗어나 건전한 교과 외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1968년에 시작되었다. 부카츠에는 미술, 음악, 영화, 문학 등 다양한 활동이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각종 스포츠 특별활동부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신체활동과 공부를 균형 있게 하는 문무양도(文武兩道)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부카츠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였다. 하지만 초반의 부카츠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치열한 입시경쟁이 이뤄지고 있던 일본의 진학 명문교들이 부카츠를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공부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특별활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본 정부는 1972년 부카츠를 의무화시켰다. 이때부터 일본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일주일에 1시간씩 모든 학생들이 부카츠에 참여해야 했다. 이후 부카츠는 점차 일본 중·고등학교 학창생활의 일부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스포츠 특별활동부에도 일반학생들이 많이 가입하다 보니 교육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일본 고등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야구부 감독도 현직 교사가 맡는 비율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야구부 감독을 현직 교사가 겸직하다 보니 고용안정성이 확보되어 과거에 비해 감독 관련 비리가 줄어드는 영향도 발생했다. 무엇보다 각종 스포츠 특별활동부에서 일반학생과 운동특기생들이 서로 어울리게 됐다는 점은 중요했다. 운동특기생들은 일반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학업과 학교생활에 대해 도움을 받고, 반대로 일반학생들은 스포츠에 대해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됐다. 이 와중에 운동특기생들은 스포츠선수로서가 아니라 일반사회인으로 진로를 모색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부카츠 중에서도 스포츠활동은 과열됐다. 부카츠의 결과가 대학입학을 위한 내신성적에 반영됐기 때문이었다. 경기결과에 목을 매게 되는 과열현상 때문에 일본 정부는 2002년 부카츠를 다시 자발적 선택과목으로 전환시켜야 했다. 부카츠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그 문제는 부카츠를 담당하는 일반교사들이 근무수당을 받지 못하는 폐단이었다. 더욱이 선택과목이 됐음에도 여전히 부카츠를 원하는 많은 학생들을 지도해야 했던 일반교사들의 초과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과로사 문제까지 생겨났다. 2010년대 일본의 사회 문제가 된 이른바 블랙 부카츠 현상이었다. 블랙 부카츠의 폐해가 만연한 가운데에서도 부카츠의 순기능은 엘리트스포츠에서 발휘됐다. 2016 리우 올림픽의 400m 계주에서 일본 육상 남자대표팀이 은메달을 획득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이 4명의 계주선수들 중에는 학교에서 부카츠를 통해 육상에 입문했던 선수 2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했던 부카츠가 엘리트선수층 확대에 도움이 됐다는 증거였다. 일본은 육상뿐만 아니라 수영, 레슬링 등에서 학교에서의 부카츠를 통해 발굴한 선수들을 스포츠클럽에 참여하도록 하여 국제대회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토털 사커(Total Soccer) 유망주 확보라는 측면에서 네덜란드 축구는 하나의 모범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네덜란드 인구는 17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월드컵 3회 준우승, UF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UEFA European Championship) 1회 우승 등을 기록한 대표적인 축구 강소국(强小國)이다. 네덜란드의 축구 신화는 1970년대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를 앞세운 토털 사커 혁명과 함께 시작됐다. 토털 사커는 공격과 수비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적으로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의 전천후 능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전술적 유연성은 모든 선수가 창의적인 전진 패스를 통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네덜란드 축구에서 진짜 배워야 할 부분은 또 다른 의미의 토털 사커다. 네덜란드는 사실상 모든 국민이 클럽에서 축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 이미 1978년 네덜란드왕립축구협회(KNVB: Koninklijke Nederlandse Voetbalbond)에 등록된 선수는 100만 명을 돌파했고 이 중 약 20만 명이 유소년선수였다. 이는 당시 네덜란드 전체 인구에 약 7%가 클럽 소속으로 축구를 즐겼으며, 유소년선수의 수도 전체 인구에 약 1.4%에 달했다는 의미다. 현재 네덜란드왕립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120만 명이며, 그중 유소년선수의 수는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네덜란드 어린아이들에겐 어느 클럽을 응원하는가보다 어느 클럽에서 뛰고 있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는 농담 섞인 얘기도 회자된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실제로 유소년 축구클럽에서 땀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클럽에서 축구를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축구장이었다. 1974 서독월드컵 결승전에서 네덜란드를 제압했던 서독의 주장 프란츠 베켄바워(Franz Beckenbauer)는 훗날 헬리콥터를 타고 네덜란드 상공을 지나면서 네덜란드가 왜 축구 강국이 되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프란츠 베켄바워는 서독에 비해 작은 국토를 가진 네덜란드에 엄청나게 많은 축구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네덜란드왕립축구협회와 축구클럽들이 축구장 건설에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7000개가 넘는 축구장이 있다. 네덜란드의 축구클럽은 기량이나 신체적 조건이 뛰어난 선수의 경우 그들의 연령대를 뛰어넘는 높은 연령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도록 하고 있다. 네덜란드를 대표할 만한 축구 유망주를 일찌감치 걸러내 집중훈련을 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클럽은 유소년축구클럽에서 축구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선수들에 대한 배려도 한다. 축구선수가 아니더라도 다른 직업을 선택하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그 예다. 이는 유소년 시절까지 축구선수였지만 네덜란드 사회 각 분야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인재가 많은 이유다. 스포츠정책의 참고서 미국 대학스포츠의 발전과정, 일본 부카츠의 빛과 그림자, 네덜란드가 추구한 진정한 의미의 토털 사커는 그 자체로도 대한민국 스포츠정책 수립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들이 어떻게 대중의 문화가 되어 해당 국가의 스포츠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해 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스포츠정책 관련 기관들이 어떻게 시대 흐름에 맞게 제도를 바꾸고, 가급적 많은 이해관계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 장치를 마련했는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스포츠정책의 성공은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제도를 통해 형성된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쉽게 말해 일상적으로 대중들이 경험하고 실행하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스포츠 제도가 문화로 발전하는 과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는 스포츠 역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던 과거 스포츠의 모습을 복원하는 스포츠 역사가 스포츠정책 등 관련 분야와 협력해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에 기여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41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2023.09.20 이종성 한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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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의 의미: 연대·기여·지원의 결의에서 찾을 수 있다 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아세안(ASEAN) 관련 정상회담에 참석한 후 9일에는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인도로 이동했다. 그리고 10일 G20 정상회의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의 일정을 소화했다. 아세안 관련 정상회담 기간 아세안+3(한·일·중), 한-아세안 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이 연쇄적으로 개최되었다. 인도에서도 윤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와 같이 G20 정상회의 참여국 중 몇 개 나라의 정상과 약식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올해 윤 대통령이 G20에 참여한 의미는 작년 첫 참석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작년에는 취임 첫해인 만큼 윤 대통령은 G20 협력 사항에 대한 신정부의 참여 의사를 확인시켜 주는 기회로 활용했다.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 수호에 동참할 의사를 명확히 전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올해 회의에서 그의 발언문에는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 정립 노력에 적극 가담할 의사와 의지를 일관되게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기여와 지원을 약속하는, 보다 적극적인 참여 의욕을 전했다. 가령, 안보·인도·재건 분야를 망라한 포괄적 지원 프로그램의 이행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내년에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무상 개발 협력과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3억 불 지원을 통해 국제사회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하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의 확립을 위한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지난 6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디지털 질서 규범 제정을 위한 국제기구의 설립 제안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이달 말 한국이 디지털 권리장전 발표 계획을 설명하고, 한국이 디지털 질서 규범 제정에 적극 참여할 결의를 내비쳤다. 이를 계기로 그는 또한 한국이 디지털 향유권을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 천명할 것을 약속했다. 이를 선도적으로 견인하기 위해 그는 한국이 더 나아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쟁점 해결을 위한 국가 차원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할 포부도 밝혔다. 그러면서 G20이 새로운 디지털 규범 정립과 AI에 대한 국제 거버넌스 마련을 위한 국제사회와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할 의지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국제전시장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세션3 하나의 미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G20 정상회의 개최 전날인 9일 윤 대통령은 약식 회담을 연쇄적으로 가졌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튀르키예, 코모로, 방글라데시 등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다자차원에서 믹타(MIKTA, 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튀르키예·호주 등이 참여하는 중견국 다자협의체) 정상회동을 개최했다. 이튿날 독일, 이탈리아, 모리셔스 총리들과 약식 회담을 가졌고, 인도 총리와는 정상회담을 가졌다. 독일, 이탈리아, 튀르키예 정상과는 방산과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구하는 초석을 다지는 데 일치된 인식 도출에 성공했다. 특히 반도체 생태계와 공급망 협력, 그리고 방산과 우주 항공 분야 등에서 협력 필요성과 관련하여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고무적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윤 대통령은 독일이 반도체 인력 양성과 기업 유치를 원하는 것에 협조할 의사를 또한 전했다.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인도양 아프리카 연안국 모리셔스 정상과의 회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우선 아르헨티나의 말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한국과 신재생에너지 및핵심 광물 공급망 분야에서 협력 잠재력을 강조하며 미래산업 협력의 증진 의사를 밝혔다. 특히 리튬 채굴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배터리를 공동 생산하는 의욕도 보였다. 이에 윤 대통령은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호응하면서 수소·재생에너지 활용 방안 마련을 위한 양국의 긴밀한 소통을 약속했다. 이로써 우리의 리튬 대안 시장을 위한 남미에서의 첫발을 내디딘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결실이 있었던 회담이었다. 내년 상반기에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앞두고 윤 대통령은 나이지리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참석을 초청했다. 그러면서 나이지리아가 한-아프리카 교역에서 13%를 차지하는 한-나이지리아의 무역 규모에 걸맞게, 한국과 아프리카의 가교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모리셔스 총리와도 해양자원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청색경제(blue economy)에서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 모리셔스 대통령의 참석을 초청했다. 인도-태평양 전략 관점에서 핵심 협력 대상국인 모리셔스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래지향적인 협력 관계의 기반을 구축한 점에 찬사를 보낼 수 있겠다. 인도와의 정상회담에서는 신산업 분야와 국방·방산 분야에서의 협력을 발전하는 데 합의를 도출했다. 특히 우주산업 분야에서의 인도와의 협력 강화가 합의된 점은 우주산업의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 중인 우리 정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이런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한국과 인도가 가치를 공유한 사실이었기에윤 정부의 외교 기조의 실효성을 입증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G20 정상회의의 최대 성과는 우리의 주고 받는(give and take) 접근방식으로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말로만 하는 글로벌 중추국가가 아닌 실질적인 연대·기여·지원으로 서로 윈-윈하는 협력 구상이 그 실효를 발휘한 결과였다. 다시 말해 상대국에 협력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요구에 곁들여서 연대·기여·지원을 제안하는 접근 전략이 설득력을 보였다. 이제 이를 토대로 실질적인 이행과 실천으로 우리 국익과 국력을 더욱 증진하는 데 집중해야겠다. 2023.09.15 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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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도시’를 방문한 유대인 소년 멘델스존 작센지방의 주요 도시 라이프찌히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비텐베르크는 인구 약 4만 7000명 정도의 소도시이다. 이 작은 도시의 현재 공식명칭은 루터슈타트-비텐베르크(Lutherstadt-Wittenberg), 즉 루터의 도시-비텐베르크이다. 비텐베르크 시내 안에 들어서면 이곳이 유럽을 강타한 종교개혁의 진원지라는 사실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조용하고 평화스럽다.비텐베르크 시청사 앞 광장 마르크트플라츠.비텐베르크의 심장부는 시청사 앞 광장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 시장광장)이다. 이 광장 중심에는 마르틴 루터의 동상이 시청사 건물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고 광장 한쪽에는 그의 동료 종교개혁가 멜란히톤의 동상도 보인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로 두 개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 즉, 동쪽으로는 루터하우스가 있는 길 콜레기엔슈트라세(Collegienstrasse), 서쪽으로는 비텐베르크 성城으로 연결되는 길 슐로스슈트라세(Schlossstrasse)가 도심의 주축을 이룬다.광장 서쪽 멀리 슐로스슈트라세가 끝나는 곳에는 루터가 이따금씩 설교했던 비텐베르크 성城 부속 교회의 원통형 첨탑이 시선을 끈다. 원통형 첨탑 상부에는 큼지막한 글씨 Eine feste Burg ist unser Gott가 마치 자신감에 찬 홍보문구처럼 둘려있는데 다름 아닌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이다. 이 제목의 찬송가는 프로테스탄트를 상징하는 곡으로 우리나라 개신교 찬송가의 585장이다. 가사는 루터가 1527~1529년에 쓴 것이고, 곡도 그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루터를 보호했던 작센의 선제후 프리트리히 현공의 궁정이었던 비텐베르크 성城은 19세기에 병영으로 사용되면서 성의 원래 특성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이 성에 부속된 교회는 루터가 살던 시대의 모습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교회 안에는 루터와 멜린히톤의 묘소가 안치되어 있다.비텐베르크 성 부속 교회. 원통첨탑에 독일어 문구 내 주는 강한 성이 보인다.로마교황청의 면죄부 판매행위를 비판적으로 봐왔던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바로 이 교회의 북쪽 출입문에 95개조 논제를 게시했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던 교회의 폐단을 비판하고 항의하는 대자보였다. 루터의 행동은 당시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권위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과가 되었으며 앞으로 본격적으로 다가올 종교개혁이라는 격동의 시대의 서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루터가 95개조 논제를 게시한지 13년이 지난 1530년, 황제 카를 5세는 남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국회의를 소집하여 각 교파가 자신들의 교리를 설명하는 문건을 제출하라고 했다. 이에 루터를 대신하여 멜란히톤이 아우크스부르크에 가서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담은 아우크스부르크의 신조를 제출했다. 이때 프로테스탄트 제후들이 힘차게 불렀던 찬송가가 바로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이다.루터가 95개조 논제를 게시했던 목재문 자리에는 현재 95개조 논제로 장식된 청동문이 역사적인 순간을 증언하고 있다. 이 청동문 상부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오른쪽에는 멜란히톤이 아우크스부르크의 신조를 두 손에 쥐고 있다.95개조 논제로 장식된 청동문.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를 멘델스존(1809-1847)이 처음 방문한 것은 11살 때였다. 당시 그는 베를린에서 터(C. F. Zelter)로부터 작곡을 배우고 있었는데 괴테와 친분이 두터웠던 터는 어린 제자 멘델스존을 데리고 괴테가 살던 바이마르로 향하던 중에 비텐베르크에 하루 들렀던 것이다. 멘델스존은 이 교회에 있는 유서 깊은 오르간을 연주해 보고는 매우 기뻐했다.그 후 1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1830년 베를린에서 6월 25일로 예정된 아우크스부르크 신조 300주년기념 행사용으로 멘델스존은 종교개혁이란 제목의 새로운 교향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그는 그해 1월에 일찌감치 작곡을 끝내고 몇 달 동안 여행 갈 계획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작곡에 손을 놓고 있다가 비로소 5월에야 끝냈다. 하지만 예정보다 늦게 완성되는 바람에 이 곡은 기념행사에서 연주되지 못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반유대인 정서 때문에 그의 곡이 배제되었을 것이라고 한다.시청사 앞 마르틴 루터의 동상.멘델스존은 1809년 함부르크에서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삶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유대 전통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에게 할례도 하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멘델스존이 2살 때 베를린으로 이주했고, 멘델스존은 그곳에서 7세 때 프로테스탄트 식으로 세례를 받았다. 게다가 멘델스존은 28세 때 프로테스탄트 교회 목사의 딸과 결혼했다.교향곡 5번 종교개혁은 이처럼 유대인이지만 프로테스탄트였던 그가 21세에 쓴 작품이다.이 교향곡은 1악장 드레스덴 아멘이라고 하는 세 번 아멘 선율로 조용히 시작하여 마지막 4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주하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로 웅장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멘델스존은 베를린에서 이 교향곡을 쓸 때 프로테스탄트의 성지(聖地) 비텐베르크에서 보냈던 시간을 틀림없이 떠올려보았으리라. 비록 짧은 일정이었긴 하지만.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2023.09.15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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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라흐마니노프 서정적인 선율로, 때론 강렬한 리듬으로 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음악은 드라마틱한 매력을 품고 있다.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라흐마니노프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의 우상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전세계 클래식음악 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꼽힌다. 1873년 러시아의 노브고로드 주 지방귀족출신 아버지와 고위군인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다. 4세부터 피아노를 배웠던 라흐마니노프는 10대에 자신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할 정도로 연주실력과 작곡능력이 비범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수석으로 마친 그에게는 음악가로서의 밝은 미래가 외견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우울감이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금하는 사촌간의 결혼, 부모님의 이혼과 경제적 파산, 그리고 형제의 죽음 등이 그를 점점 우울하게 만든 것이다. 그의 음악 속 아름다운 멜로디들은 이런 그의 우울증을 극복하며 나온 인고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종종 영화 속 OST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는데,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가진 깊은 서정성과 스토리라인이 영화음악과 잘 맞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라흐마니노프의 어떤 음악들이 영화에 삽입되어 쓰였을까. 지난 4월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서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거장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와 코러스 단원들이 오페라 알레코를 공연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안나 카레리나(1997) 소설 안나 카레리나(Anna Karenina)는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톨스토이의 3대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명작들이 그렇듯 시대마다 영화로 새롭게 각색되어 나오는 안나 카레리나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주인공 역할로 출연하였다. 무성영화시대부터 스타였던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를 비롯하여 비비안 리(Vivien Leigh), 80년대 청춘스타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 최근의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까지 안나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을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 중 소피마르소 주인공의 1997년작은 배우이자 감독인 버나드 로즈(Bernard Rose)가 메가폰을 잡고 원작에 충실하고자 한 작품이다. 베토벤과 파가니니등 음악가들을 소재로 작품을 만든 경력이 있는 로즈감독은 영화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음악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작품의 사운드트랙은 톨스토이와 동향인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사용하였으며, 영화전반에 흐르고 있는 주제사운드는 작품의 비극적 성향을 보여주듯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6번 비창을 테마로 하고 있다. 하지만 스토리 중간의 복선들과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들로 채워졌는데, 그 중 엘레지(Elegie) Op.3 No.1은 주인공 안나의 비극적 미래를 암시하는 부분에 주로 쓰여졌다. 피아노를 위한 환상 소품집, Op.3(Morceaux de fantaisie, Op.3)의 첫 번째 곡인 엘레지는 슬프고 애절한 노래라는 뜻의 비가 悲歌로 불리고 있다. 환상 소품곡집은 전체 5곡으로 이루어졌으며 라흐마니노프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이듬해인 1892년 그의 나이 19살에 발표되었다. 그의 출세작이기도 한 환상 소품곡집의 1번 엘레지는 왼손 아르페지오와 함께 서글프고 우수에 찬 오른손 멜로디로 시작되며 발전부에서는 격정적으로 감정이 요동치지만 결국 슬픈 테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마치 곡의 구성이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안나의 운명과도 같아 보인다. 영화 속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은 이외에도 피아노 트리오 Elegiaque No. 1을 비롯하여 Piano Sonata No. 2 과 Prelude in F Sharp Minor, Op. 23 등들 여러 곡이 OST로 삽입되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는 전세계 영미권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문학작품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선배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안나 카레리나를 읽고 톨스토이는 예술의 신이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사실 인류의 유산과도 같은 장대한 소설인 안나 카레리나를 2시간 남짓의 영화로 압축한다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독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통해 영상으로만 담을 수 없었던 부분을 채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2016)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이 감독과 각색, 주연을 맡은 영화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A Tale of Love and Darkness)는 히브리 문학의 대가이자 문학교수인 아모스 오즈(Amos Oz)의 동명 자전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작가가 어린 시절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 등을 자전적으로 그리고 있다. 유대인은 모계사회로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자식도 유대인이 될 수 있다. 어린 시절 작가의 기억 속 어머니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원작 소설처럼 영상으로도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영화의 OST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오페라 알레코(Aleko)의 Women's Dance가 삽입되었는데 주인공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에 흐르고 있다. 많은 대중들이 라흐마니노프를 쇼팽처럼 피아노 음악에 국한된 연주자겸 작곡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4편의 오페라를 포함 5곡의 교향곡, 관현악 모음곡, 합창곡과 가곡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한 음악가이다. 오페라 알레코(Aleko)는 라흐마니노프의 첫 번째 오페라 작품으로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 중이던 19살 나이에 작곡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교내콩쿨에서 1등 하였으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후 차이코프스키는 이 작품의 볼쇼이 극장 공연을 주선해 주기도 하였다. 대문호 푸쉬킨(Aleksandr Pushkin)의 운문 서사시 집시들을 각색하여 작곡된 오페라 알레코는 아름다운 단막극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극 중 등장하는 음악 Women's Dance는 뒤이어 나오는 강열한 리듬의 Men's Dance와는 다른 오묘하면서도 신비롭고 매혹적인 멜로디가 특징적이다. 영화의 OST에는 좋은 음질의 레코딩이 실려있지만 실제 영화상에는 오래된 전축에서 나오는 올드레코딩 음질로 처리되었다. 극 중 작가의 어머니 역을 연기한 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아우라가 오페라 알레코의 Women's Dance와 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 샤인(1997)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3번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제프리 러쉬(Geoffrey Rush) 주연의 97년 개봉작 영화 샤인(Shine)이다. 아카데미 7개부분에 노미네이트 되고 주인공 제프리 러쉬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이 작품은 1997년 이후 2017년과 2020년 재개봉을 할 정도로 인기와 긴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정신질환을 앓은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David Helfgott)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스토리와 영상전반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들은 영화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켜주고 있다. 1997년 10월에 내한한 영화 샤인의 실제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이 서울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피아니스트의 일화를 다룬 영화답게 리스트와 슈만, 쇼팽 등 여러 피아노 소품들이 헬프콧의 연주로 OST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곡은 단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이라 할 수 있다. 이 곡 역시 헬프갓의 연주로 영화에 사용되었으며 이 작품의 대중적 인기에는 영화 샤인의 흥행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도 볼 수도 있다. 1909년 36살의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3번을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가족별장인 러시아 이바노프카(Ivanovka)에서 작곡하였다. 완성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초연은 뉴욕에서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 공연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에의 의해 연주되었다. 이 곡은 친분이 두터웠던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에게 헌정되었으나, 손이 작았던 호프만은 한 손으로 여러 음들을 지배해야 하는 이 작품은 자신과는 맞지 않는 곡이라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사실 협주곡3번의 스페셜리스트는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는 25세 미국데뷰를 앞두고 라흐마니노프와 만났다. 호로비츠의 연주를 들은 라흐마니노프는 내 작품은 이렇게 연주되길 항상 꿈꿔왔다고 극찬하며 자신의 작품 편집권들을 호로비츠에게 넘겼다고 한다. 이후 호로비츠는 미국 데뷰 25주년과 50주년, 카네기홀 연주 등 중요한 연주회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하였다. 그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음반을 총 6개남기고 떠났는데 모두 명반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헬프콧은 국내공연을 포함하여 여전히 활발한 연주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영화 샤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라흐마니노프 3번은 불멸의 곡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 곡을 연주할 수는 없네! ◆ 히어애프터(2010) 죽음은 과연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살아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사후세계, 그 세계를 연결해주는 남자(조지)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여자(마리). 그리고 사고로 죽은 형과 대화하고 싶은 런던의 소년(마커스). 각자 떨어져 살던 이 셋은 결국 영화 마지막에 서로 만나게 된다. 영화 히어애프터(Hereafter)는 내세란 뜻으로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감독의 2010년 작품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Adagio Sostenuto의 멜로디가 영화 속 죽은 쌍둥이 형과 대화하고 싶은 소년 마커스의 테마로 쓰였다. 마커스가 형의 유골을 받아 들던 장면, 어머니와 강제로 떨어지던 장면, 그리고 조지와 만나 형의 얘기를 들을 때 이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른다. 사실 음악은 너무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영화 속에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한 마음이 멜로디와 중첩되어 마치 레퀴엠 처럼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은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곡 중 하나이다. 특히 2악장의 멜로디는 유명 팝송 All By Myself에 차용되기도 하였다. 1899~1901년 사이에 작곡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은 고전적 형식인 전체 3악장 구조로서 그가 교향곡 1번의 쓰라린 실패 이후 다시 재기와 성공을 가져다 준 의미 있는 작품이다. 멀리 종소리가 가깝게 들려오는 1악장의 도입부분을 지나 강렬하고 운명적인 오케스트라의 현 파트 멜로디는 단숨에 청중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슬럼프를 겪을 시절에 치료를 도와준 니콜라이 달(Nikolai Dahl)박사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였다. ☞ 추천음반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주토피아, 슈렉2 등 위에 언급한 영화 외 수많은 작품에 쓰였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녹음한 훌륭한 연주자들도 정말 많지만 주로 동향인 러시아 출신음악가들의 연주를 추천한다. 환상 소품집 Morceaux de fantaisie Op. 3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의 연주가 서정적이다. 미샤 마이스키 (Mischa Maisky)가 녹음한 첼로편곡도 아름답다. 협주곡 2번과3번은 호로비츠의 연주를 포함하여 개인적으로 가브릴로프(Andrei Gavrilov)의 다이나믹하며 호방한 연주음반을 선호한다. 브론프만(yefim Bronfman)과 볼로도스(Arcadi Volodos)의 연주도 손에 꼽힌다. 오페라 알레코는 예테보리 오케스트라(Gothenburg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를 권한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2023.09.14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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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시설의 디자인 적용이 가져올 변화 장원용 강원대학교 연구원 스포츠의 일상화와 스포츠시설최근 들어 우리 사회 어디서든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의 건강 유지와 체력 향상을 목표로 체육관, 운동장, 체력단련장 등에서 운동하거나 스트레스 해소와 즐거움을 위해 다양한 스포츠경기를 관람한다. 더불어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기 위해 강습을 받고, 스포츠용품을 구입하며, 직접 경험한 스포츠를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공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 참여는 대중화된 스포츠의 현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은 일상 속에서 스포츠를 참여할 때 시설, 용품(장비), 지도자, 프로그램, 규칙, 기술 등 다양한 요소를 접한다. 이 중에서도 스포츠시설은 스포츠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체력단련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단련장, 테니스를 치기 위해서는 테니스장, 야구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야구장이 필요한 것처럼 스포츠시설은 스포츠를 위한 기반이 되는 적절한 장소와 공간을 제공하며 스포츠 참여자들이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스포츠시설은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에 의해 체육활동에 지속적으로 이용되는 시설과 그 부대시설로 정의되며, 설치와 운영주체에 따라 공공체육시설과 민간체육시설로 구분된다. 공공체육시설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통해 건립 및 운영되는 시설로 전문체육시설, 생활체육시설 및 직장체육시설이 포함된다. 반면 민간체육시설은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한 시설이다. 스포츠가 우리 일상에 점차 녹아들면서 스포츠 참여와 관람을 위한 스포츠시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인 61.2%가 주 1회 30분 이상 생활체육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생활체육시설의 필요성과 요구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여 국민체육센터, 개방형 다목적체육관, 운동장, 농어촌복합체육시설 등 다양한 공공체육시설을 지역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주지 근처에 적극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민간체육시설도 체력단련장, 수영장, 골프연습장, 테니스장 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관련 시설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참여 스포츠시설 못지않게 관람 스포츠시설도 지방자치단체와 프로스포츠 구단이 주체가 되어 관중들에게 최적의 관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후화된 경기장 환경 개선 및 새로운 경기장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이렇듯 스포츠 참여가 활성화되고 대중화됨에 따라 스포츠시설의 지속적인 공급과 환경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스포츠시설이 운동 수행 및 경기관람 등 시설이용자들의 실제 시설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기대와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건립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용자 관점에서의 시설 건립방안을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스포츠시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디자인 개념의 적용이 필요하다. 스포츠시설 디자인의 필요성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다루어지지만, 그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은 다양한 사물이나 시스템, 공간, 서비스 등의 구성과 형태를 만들고 계획한 산출물이라는 명사적 의미와 기능과 미학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사물, 공간, 서비스 등의 구성과 형태를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동사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활용되는 분야에 따라 의미가 각기 다르게 사용되므로 통일된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의미를 지니고 활용되는 디자인의 개념을 스포츠시설에 적용할 경우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며, 이러한 변화가 이용자들에게 어떠한 가치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산업 현장에서 디자인 개념을 스포츠시설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현재까지는 다소 생소한 방식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직까지 스포츠산업 현장과 학계에서 스포츠시설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아, 디자인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스포츠시설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 인테리어, 공간 및 도시계획 등의 분야에서는 디자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공간과 시설의 기능성, 효율성, 미적 아름다움 및 안전성을 높여 이용의 편리함과 만족스러운 환경을 이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포츠시설은 스포츠를 직접 경험하고 참여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따라서 운동 수행이나 경기관람과 같은 특정 목적을 갖고 시설을 이용할 경우, 최상의 경험과 편의를 제공하여 만족스러운 시설이용 경험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건축, 인테리어, 공간 및 도시계획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적용되어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는 디자인 개념을 활용하여 이용자 중심의 스포츠시설을 기대해봐야 한다. 스포츠시설 디자인의 적용방안 스포츠시설은 일반 건축물과는 다르게 해당 스포츠종목의 특성을 고려하여 최적의 스포츠 경험을 위한 설계를 바탕으로 건축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반건물과 유사한 설계와 건축방식으로 스포츠시설이 지어진다. 이에 따라 참여형 스포츠시설에서는 운동공간 부족, 운동공간 활용도 미흡, 이동통로 및 샤워실과 탈의실 비좁음 등의 여러 문제가 발생하며, 관람형 스포츠시설에서는 경기장의 비좁은 관중석, 관중석 간 이동의 어려움, 편의시설과 관중석 간의 복잡한 이동 동선 등으로 인해 시설이용의 불편함과 만족도 저하를 초래한다. 이로 인해 시설의 리모델링이나 환경 개선 작업에 대한 요구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스포츠시설이 지닌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고 예방하며, 최적의 시설이용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스포츠시설 디자인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구체적인 적용 방법을 탐색하기 위해 기존의 국내·외 사례들과 학술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여 스포츠시설 디자인의 적용 방향성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스포츠시설의 충분한 활용을 위한 공간의 기능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특정 스포츠종목에 적합한 공간 요구사항(면적, 규격, 형태, 장비 등)을 세심하게 확인하여 공간을 알맞게 구성하고, 필요한 장비와 시설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시설 내 공간 간의 상호 연결성을 고려하여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고 혼잡도를 줄여 시설이용자들의 원활한 이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이용자의 안전을 고려한 시설디자인을 해야 한다. 스포츠시설은 강도 높은 물리적 활동이 자주 발생하므로, 건물의 하부 구조는 시설에 가해지는 충격과 하중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더불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 환기가 가능하고 공기 순환이 원활한 구조로 시설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며, 안전사고나 혼잡한 상황에서 신속한 이동과 대피를 위한 통로 및 대피 경로를 고려한 설계도 시설 건축에 반영되어야 한다. 셋째, 스포츠시설의 독특한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내부와 외관의 디자인에 미적 요소를 강조하며,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시설 구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스포츠시설의 심미적 가치와 조화성의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스포츠시설 디자인의 적용이 가져올 변화 첫째, 공간 기능성 향상이라는 스포츠시설 디자인의 적용 방향은 적절한 공간 배치와 활용, 그리고 효율적인 이동 동선 설계를 통해 스포츠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스포츠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개선을 통해 시설이용자들은 최적화된 공간에서 불편함 없이 스포츠를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제안된 안전성 중심의 디자인 적용은 시설 외관 및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요소를 최소화하여 사고와 부상을 방지하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또한, 스포츠시설이 적합하고 견고한 형태로 설계 및 구축됨으로써 시설의 내구성 향상에 기여할 뿐 아니라 장기적인 보수 및 관리 비용 절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것이다. 세 번째로 제안된 스포츠시설의 외관 및 내부공간의 인테리어와 조명 디자인을 통한 심미성 강화는 이용자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스포츠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스포츠시설의 재방문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스포츠시설이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디자인될 경우, 지역사회에 우호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지역 랜드마크로서의 역할 수행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본문 초반에 언급했듯이 스포츠시설의 디자인 적용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며, 그러한 변화가 이용자들에게 어떤 중요한 가치와 혜택을 제공하는지를 탐색해야 한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스포츠시설 디자인의 적극적인 적용은 이용자 중심의 최적화된 스포츠 환경을 통해 높은 이용만족도를 제공할 수 있는 스포츠시설 건립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적용과 변화를 통해 스포츠시설은 국내 스포츠의 대중화와 활성화를 더욱 촉진하며, 동시에 스포츠산업의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도 가능케 할 것이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40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2023.09.13 장원용 강원대학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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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정상외교, 규범과 원칙에 기초한 외교기조의 본격화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참석한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는 ▲한중일 3국이 각각 개별적으로 아세안 10개국과 개최하는 아세안+1 정상회의 ▲아세안과 한중일 3국 모두 참여하는 아세안+3 정상회의, 그리고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을 포함한 미국, 인도, 러시아 등 역외 8개국 등 총 18개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는 역내 주요국이 모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회의 기간 내내 다수의 양자 정상회담도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됨으로써 인태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다자외교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작년 11월 프놈펜에 이어서 두 번째로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여한 윤 대통령은 사흘 회기 동안 한-아세안, 아세안+3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아세안 주요 국가들과도 양자회담을 개최하였다. 아울러 중국 리창 총리를 비롯해, 캐나다, 방글라데시 총리와도 양자회담을 개최하였고, 그 이외에도 다수의 정상들과도 회의 사이의 막간을 이용한 간단한 조우를 통해서 외교적 보폭을 확대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아세안 정상외교의 의미는 ▲규범과 원칙에 기반한 글로벌 중추 외교의 본격화 ▲한-아세안 연대구상의 이행 구체방안 제시를 통한 아세안과 포괄 협력 기반 구축, 그리고 ▲적극적 세일즈 외교를 통한 아세안과의 경제협력 확대, 안정적 공급망 구축 및 신시장 확보 등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번 윤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외교에서 관찰되는 가장 큰 특징은 현 정부의 외교독트린이라 할 수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기조가 대(對) 아세안 정책뿐만 아니라 지역외교 및 글로벌 다자외교 현장에서 대통령의 구체적 외교언어와 행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윤 정부가 제시한 인태전략의 핵심은 한국의 국익이 인태지역 및 글로벌 차원의 규범 기반 질서의 유지 및 강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규범 기반 국제질서의 확립을 위해서 한국은 자유, 인권, 국제법과 규범에 근거하여 지역적 역할과 관여를 확대하고 국제적 지위에 상응하는 글로벌 책임과 기여를 다 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아세안 정상외교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에 따른 한반도 안보 위협의 증가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정면 위반이자 국제 비확산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특히 북한의 핵 개발이 역내 질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등 중국의 국익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보리 이사국인 중국의 책임 있는 건설적 역할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한 최근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포함한 군사협력을 도모하는 러시아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과 공조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과 아세안 당사국 간 최근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남중국해 상황에 대해서도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달 개최된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도 확인된 이러한 글로벌 중추외교 기조는 이번 아세안 정상외교 무대를 계기로 아세안 및 인태지역 차원에서 보다 구체적인 외교정책으로 현실화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JCC)에서 열린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둘째, 이번 아세안 정상외교를 계기로 우리 정부의 새로운아세안 정책인 한-아세안 연대구상의 이행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점도 매우 의미 있는 대목이다. 한-아세안 연대구상은 그동안 아세안을 단순한 경제파트너로만 보던 협소한 시각을 넘어서 무역, 투자 및 개발협력뿐만 아니라 해양안보, 비전통 안보, 방산 및 국방협력 등의 분야를 포괄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인식하고, 협력의 폭과 범위를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아세안에 특화된 맞춤형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 이번 회의에서는 2024년 한-아세안 관계를 포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데 양측이 합의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인태전략과 아세안의 인태전략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과의 시너지를 거두기 위한 특별성명을 도출하기도 했으며, 메콩협력기금 및 한-아세안 협력기금의 확충을 통한 한-아세안 협력의 기반을 강화했다. 셋째, 우리 정상의 활발한 세일즈 외교를 통해 역동적이고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아세안 주요국들과의 경제협력을 디지털, 핵심 광물, 전기차, 배터리, 방산 등의 분야로 확대함으로써 아세안에서의 신시장 확충과 연대 강화를 모색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필리핀과의 FTA 타결을 통해서는 자동차 분야 등 필리핀 내수시장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보다 안정적인 제조업 공급망 구축을 위해 아세안 주요국에 우리 주력인 전기차, 배터리 등의 생산거점을 분산 구축하도록 지원하고자 했다. 현 디지털 분야에서 아세안과의 협력 강화를 위한 디지털 혁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신성장 동력 분야에서 아세안 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와는 올해 수교 50주년을 맞아 단독 행사로서 정상회담 및 양국 주요 경제인들이 참여한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등을 개최하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디지털경제 분야를 망라하는 산업 협력, ▲지식재산 보호 ▲전기차 생태계 ▲할랄식품 분야 등에 관한 MOU 체결하는 등 양국 간 경제협력을 대폭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요컨대 이번 윤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외교는 ▲인태전략 기조에 기초한 외교정책 본격화 ▲한-아세안 연대구상의 구체적 이행 개시▲신시장 확충을 위한 아세안과의 경제협력 기반 확대라는 중요한 외교적·경제적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2023.09.12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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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는가, 주단을 깔아놓은 내 마음 70, 80년대의 청춘은 워크맨과 마이마이를 끼고 살았다. 디지털 음원이란 게 없던 시절, 소니 워크맨과 삼성전자의 마이마이는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최고의 호사품이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은 노래들. 그중에 이 노래가 있었다. 아마도 짝사랑에 잠 못 이루던 때였으리라. 최근에 개봉한 한국 영화 밀수에서 이 노래를 조우했다. 영화에는 그 시대에 유행했던 최헌, 이은하, 나미, 김추자 등의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소환됐는데, 이 노래가 깔리는 순간 가슴이 쿵탁거렸다. 이렇게 단아하고 시적인 노래 제목이 어디 또 있을까. 사랑을 갈망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을 내 마음에 주단을 깔았다고 고급하게 표현하다니. 이 노래의 작사·작곡가인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은 정태춘에 버금가는 대중가요계의 시인이라 칭할 만하다. 1978년 발매된 산울림의 제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첫 번째 노래로 실렸고 나 어떡해도 있다. (이미지=네이버지식백과) 소월은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진달래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떠나시라며, 나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이별의 체념과 극복을 노래했지만 이 노래는 반대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아놓았으니 사뿐히 밟으며 와 달라고 구애한다. 같은 사뿐히이지만 진달래꽃은 떠나는 뒷모습이고 주단은 영접이다.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레드카펫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댈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놓은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주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반복)(1978년, 작사·작곡 김창완, 노래 산울림) 주단을 깔고 촛불을 켰다. 그대는 향그러운 꽃길을 걸어 내게 온다. 나는 순간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는다. 마치 결혼식에서 신부를 맞는 풍경 같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 순간 나의 모든 말이 노래요, 시다. 주단을 깔아놓은 내 마음을 그대는 아는가, 라고 노래는 반복한다. 어쩌면 그대는 영원히 오지 않는 마음속 연인이요,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랑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노래는 꿈일 수도 있다. 그 환상을 더욱 빛나게 하고 슬프게 하는 건 화려한 옷감 주단이다. 요즘 세대는 비단은 알아도 주단은 모른다. 주단은 얽을 주(綢), 비단 단(緞)으로 품질이 아주 좋은 비단(緋緞, 실크)을 말한다. 혀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발음의 이 낱말은 언젠가 사전에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60~80년대 서울 도심에는 주단과 최고급 한복을 파는 주단 거리가 있었다. 종로2가 대로변이다. 조선왕조 때 비단, 명주, 무명, 모시, 종이, 생선 등 6종류의 귀한 독과점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있던 육의전(六矣廛)이 그 자리에 있었다. 부잣집 마나님들이 주로 들락거렸던 종로주단, 신라주단, 홍실주단, 백합주단 등 20여 주단 가게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 자리엔 롯데리아, 맥도날드, 스타벅스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음료 가게들이 들어섰다. 고운 자수의 오묘한 색상. 손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부드러운 감촉. 몸을 휘감는 실루엣. 역사적으로 비단은 최고의 경애(敬愛)였다. 세상 아름다운 것들에는 비단이란 접두어가 들어간다. 비단구두, 비단치마, 비단잉어, 비단모래, 비단벌레까지. 비단은 최고의 공물이자 예물이었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길은 실크로드였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 전 백일기도를 올렸던 남해 보광산에 비단을 두르진 못하고 대신 비단산(錦山)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신라 김유신의 딸 문희는 언니 보희의 꿈을 비단 한 필을 주고 산 후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왕비가 되었다. 김지하 시인도 님 앞에 비단을 깔았다. 시인은 가랑잎 한 잎, 개미 한 마리가 와도 다 님이라면서 손님 오시거든/마루 끝에서 문간까지/마음에 능라비단도/널찍이 펼치소서(시, 님)라고 했다. 노래를 듣는다. 대중가요 사상 이렇게 긴 전주는 없을 거다. 몽환적이고 중독성 있는 베이스 기타의 리프(riff, 짧은 소절을 반복하는 것)와 중간중간 매혹적인 김창완의 연주가 3분여간 이어진 후에야 보컬이 나온다. 이 노래는 1978년 발매된 산울림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이다. 사운드의 완성도와 시적인 가사가 높은 평가를 받아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에서 1집과 함께 5, 6위에 랭크됐다. 10위 안에 앨범을 두 개 이상 올린 뮤지션은 산울림이 유일하다. 한국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노래다. 수많은 후배 가수가 리메이크했다. 2021년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무명가수전에 나와 우승한 30호 가수 이승윤이 자기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부른 영상은 무려 1000만 조회를 넘어섰다. 40년 세월을 초월한 노래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김창완이 위대한 싱어송라이터이자 가수이자 록 밴드 리더이자 심야 라디오 음악프로 DJ였다는 걸 잘 모른다. 어수룩한 옆집 아저씨, 또는 사이코패스 같은 개성 있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중늙은이 조연 배우로 안다. 나이 70을 코앞에 둔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에 몇 되지 않는 천재 아티스트이자 한국 록의 전설이다. 1977년 김창완이 거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노래한 3형제 가족밴드(동생 김창훈, 막내 김창익) 산울림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파격에 가까운 독창적 작법은 외국 음악 카피를 하던 당시 음악계에 한국적 헤비메탈의 씨앗을 뿌렸다. 산울림은 어떤 음악에도 영향받지 않았으나 한국의 거의 모든 로커들에게 영향을 줬다. 산울림의 록은 장르를 초월한다. 포크록, 프로그레시브록, 하드록, 펑크록, 사이키델릭록 등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록 음악뿐이 아니다. 산울림은 개구장이나 산할아버지 같은 동요 앨범을 여럿 내기도 했다. 2008년 드럼을 담당하던 막내 김창익이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면서 산울림의 긴 전설은 막을 내린다. 지금은 새 멤버들로 구성된 김창완밴드로 가끔 무대에 선다. 젊은 시절의 산울림 3형제. 왼쪽부터 맏형 김창완, 둘째 김창훈, 막내 김창익. 김창완은 보컬과 기타를, 김창훈은 베이스를, 김창익은 드럼을 맡았다. 막내 김창익이 2008년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산울림은 해체됐다. (사진=위키백과) 1997년 13집까지 낸 산울림의 대표곡은 셀 수 없다. 나 어떡해, 아니 벌써,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그대는 이미 나, 너의 의미,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찻잔, 청춘, 가지 마, 가지 마오 등 무수하다. 김창완은 재주가 다양하다. 70을 눈앞에 둔 지금도 여전히 음악, 연기, 방송, 글, 그림 등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그의 위대함은 실험적인 작곡뿐 아니라 한국 대중가요 가사의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문장을 깨뜨렸다는 점에서도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의 노랫말들은 중얼거리는 혼잣말이나 일상 속 대화 같다. 소재도 일상의 주변에서 찾는다. 한자가 많은 문어체보다 귀에 쏙 들어오는 우리말 구어체를 쓴다. 단어보다 한 문장으로 이뤄진, 예사롭지 않은 제목이 유독 많다. 가사는 서정적이고 때론 관조적이기도 하다. 바쁜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노래들이다. 2022년 3월 KBS 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김창완 편에 출연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부르는 김창완. (KBS 캡처) 베이스 기타를 쳤던 동생 김창훈도 노랫말에 애정이 크다. 유튜브 채널 산울림TV에 우리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올리는 선한 작업에 열심이다. 2~3일에 하나씩 500개가 넘는 시노래가 올라와 있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는 시가 나를 부르니 나는 시를 부릅니다라고 써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패션 디자이너가 옷감이 있어야 옷을 만들 수 있듯, 가수에게는 노래를 만드는 열망을 담을 좋은 글감이 필요하다. 시에서 그걸 찾았다고 말했다. 산울림의 노랫말 중 백미를 꼽아본다.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나에겐 커다란 의미/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의미, 아이유 리메이크)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어머니와 고등어)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오늘처럼 비가 내리면은/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저물도록 긴 비가 오는가/그대 떠나는 날에 잎이 지는가/과거는 내게로 돌아서 향기를 뿌리고 있네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꼭 그렇진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나무 사이 그녀 눈동자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찻잔)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빈 손짓에 슬퍼지면/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청춘) 산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나비같이 훨훨 날아서/살금살금 다가가서/구름모자 벗겨 오지/이놈하고 물벼락 내리시네/천둥처럼 고함을 치시네/너무 놀라 뒤로 자빠졌네 (산할아버지) 우리 같이 불러요/예쁜 노래 고운 노래 불러요/이마엔 땀방울 마음엔 꽃방울/나무에 오를래하늘에 오를래 (개구장이)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2023.09.07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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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기후변화에 상응하는 재난안전 패러다임 변화 절실 송창영 광주대 방재안전학과 교수 전 세계가 최근 극한 기후에 의한 재난으로 막대한 피해를 체감하고 있다. 기후재난은 기후패턴 변화, 극단적인 기상현상, 바다수온 상승 등의 여러 원인 등으로 한계를 넘어선 극한 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재난을 말한다. 이러한 극한의 기후재난은 꺼지지 않는 산불, 사막의 폭우, 국가적 가뭄, 재앙적 토네이도, 남·북극의 해빙 등 언어적 모순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키워드로 표현되고 있으나, 실제 존재하는 재난으로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현재 국가적으로 구축된 기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 재난관리 시스템은 극한 기후재난 대응에 한계에 봉착하였다. 재난양상의 변화속도는 초격차기술개발을 추월함에 따라, 기존의 재난관리체계는 생소한 경험에 혼란을 겪고 있다. 국내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전조현상이 나타나고 있던 기후재난은 팬데믹(Pandemic) 시국을 기점으로 격변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여름철 풍수해는 상습피해지역, 집중관리지역 등 한정된 예상지역이 아닌 전국 단위 피해 확산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2023년 현재까지 4회의 여름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수십명의 사망자와 수백억원 단위 재산피해를 발생시켰다. 산불은 2019년을 기점으로 매년 피해규모와 범위가 새롭게 경신되고 있다. 강원도는 최근 5년 동안 역대급 대형산불이 주기적으로 발생했으며,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은 2일 이상 진화하지 못한 대형산불을 경험했다. 또한 모두가 생소하고 참담했던 이태원 대규모 참사, 국민들의 금융 및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단절된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등 새롭게 발생한 신종재난은 모두에게 혼란을 발생시켰다. 이러한 기후재난 및 신종재난에 정부와 우리의 대응은 어떠한가. 여름철 풍수해의 아니하고 미비한 예방·대비는 반지하 주민들을 사망시켰고, 각 시·도 단위 대형산불 당시 협력체계 및 소통 미흡은 수천명의 보금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는아직까지 책임소재를 다투고 있으며, 카카오 금융 서비스 단절로 인한 경제적·정신적 피해자들은 카카오와의 법정공방에서 패소했다. 재난발생시 지휘권자 책임의식 및 공직자 윤리강령 등 공무원의 사명과 관련하여 결과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기후재난 및 신종재난의 피해가 정부의 재난관리체계와 공무원 책임의식 결여 문제로 일관하기는 어렵다.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 시설 및 설비 등 하드웨어가 굳건했다면, 기후재난은 발생했더라도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즉, 배수 및 우수 등 유수·저류 시설과 설비가 잘 구축되었다면, 반지하 침수 및 지하차도 침수로 인한 인명피해는 예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 하드웨어 성능은 기후재난 예방에 한계를 드러냈다. 지난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는 하드웨어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재난관리체계나 지휘체계 등의 소프트웨어 문제가 아닌, 미호강의 제방 수위를 넘어서는 강물의 범람으로 인근 궁평지하차도가 침수된 것이다. 이러한 하드웨어적 문제는 노후화 및 관리소홀의 원인도 다분하지만, 근원적으로 미래예측을 배제한 과거자료 기반의 성능확보가 원인이 될 수 있다. 제방, 배수, 우수, 유수 등 풍수해와 관련된 시설물의 설치시 과거 10년 또는 30년, 50년간의 최대 강수량 통계를 기반으로 용량 및 높이, 성능 등을 판단했다. 물론 과거 기록은 기본적인 기준 설정시 참고자료로 적절하게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기록 및 통계는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사항일 뿐, 절대값으로 적용되지 말아야 한다. 이미 기록갱신이 계속되는 한계 이상의 재난상황에서 한계 이내의 과거기록을 기준으로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모순적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과거기록을 기반으로 변화 추이를 고려하고, 현재의 동향분석과 시나리오 기반의 미래예측을 통해 최적화된 시설물을 설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제4차 재난 및 안전관리 기술개발 종합계획과 국가안전시스탬 개편 종합대책을 통해 새로운 위협의 미래재난 시나리오와 위험기상 예측 등의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연계사업으로 미래 대형재난 발생 시나리오 다양화와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피해예측 범위 확대사업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재난 및 안전사고 발생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재난관리체계 및 역할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지자체 재난안전관리 기능 및 역량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적인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아직 묘연하다. 따라서 지금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이고, 항구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먼저 첫 번째로, 인공지능(AI) 및 로봇, 시스템, 사물인터넷(IoT), 드론 등 첨단기술을 적극 활용한 재난관리체계 고도화가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의 초격차를 선도하는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적재적소에 적용한다면, 국민이 즉각 체감할 수 있는 재난안전 서비스의 질·양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두 번째, 현장대응기관의 협력·소통에 기반한 초기대응역량과 즉각 지원이 가능한 재난관리자원의 강화가 필요하다. 일선에서 초기에 재난 확산 방지 및 피해 최소화 임무를 수행하는 소방, 경찰(해경), 의료 등 현장대응기관의 보고 및 상황전파, 협력체계 강화는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다. 신속·정확한 보고와 상황전파를 위해 보고라인의 복선화를 도입하고, 긴급상황 공동대응을 위해 소방, 경찰, 의료 상황실의 정보협력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재난 발생시 피해저감 및 복구지원을 위해 광역단위 지역자원통합관리센터의 구축과 민간·공공·지자체 간의 재난관리자원 동원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세 번째, 지자체의 재난관리 기능과 역할 강화를 위해 민간이 협력하는 국민주도형 재난관리체계 정착이 필요하다. 지자체장의 참여도와 지자체 역량도 강화해야 하지만, 국민이 주도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육·훈련, 정책참여(포럼), 안전신문고, 캠페인, 안전문화 등 민간 재난관리체계가 확산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네 번째, 미래위험 예측 기반의 재난관리시설의 설치 및 보수보강 극대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최적화된 제도와 체계가 마련되고 완벽한 대응능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범람하는 강물과 하천, 무너지는 옹벽과 산사태 앞에서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쳇바퀴 돌 듯 무너지고 잠기면 시설물 보수·보강 보다 특별재난선포를 통해 보조금과 지원금으로 해결하는 현재실정은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하며, 후진국형 재난복구라 할 수 있다. 침수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남지역 빗물저장용 대심도 터널, 항구적 안전도시를 선포한 광주광역시 우수저류시설 설치사업 등과 같이 지금 보다 높은 강도의 기후재난에도 견딜 수 있는 시설물 구축과 기존 옹벽 및 둑, 우수, 유수, 저류시설의 보강이 재난을 예방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나열한 개선안의 실천과 한계를 넘어선 기후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민·관·공·산·학·연은 국내·외 선진재난기법과 첨단기술을 총망라한 새로운 패러다임 기반의 범정부 재난안전 중장기 마스터플랜(종합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제도와 정책의 중심에서 어떠한 외압없이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하는 항구적인 선진형 재난안전 목표를 수립하고, 공공기관은 정부정책에 협력하여 실효성 있는 전략을 실천해야 한다. 또한 민간은 재난안전의식 고양과 지자체 재난관리 강화를 위해 주도적인 참여와 활동을 지속해야 하며, 산·학·연은 정부 정책의 실현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적인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2023년 여름을 끝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극한재난을 경험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것을 잊었으며, 다가올 미래의 많은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극한의 감염병으로 국고의 혈세와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극한의 산불에 태백산맥의 중앙부 산림을 잃었으며, 극한의 폭우로 취약계층의 목숨과 재산을 잃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참담한 사고를 겪는 것에 적응하지 말아야 한다. 경험하고 오열했다면, 이겨내기 위해 봉기하고, 노력해야 한다. 혹자는 기후위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생태계적으로 적응하는 것은 적절하나, 기후위기는 적응이 아닌 대응해야 하는 대상이다. 왜 기후위기에 따른 극한재난에 적응해야 하는가. 우리가 추진해야 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는 기후재난과 신종재난에 대응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 후대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지형학적 특성과 도시화의 특성으로 재난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나라다. 이런 재난이 다발하는 나라의 특성에 정보기술(IT)을 융복합해 세계적인 재난안전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재난안전 선진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아울러 그 고도화된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2023.09.06 송창영 광주대 방재안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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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스포츠 영양 하민성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스포츠 영양학은 인간의 영양 섭취와 관련된 지식을 식생활이나 의료에 적용하여 건강 유지와 증진, 회복을 도모하는 기초 영양학의 원칙을 기반으로 운동 및 스포츠분야와 결합하여 단독 또는 복합적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이다. 과거 스포츠 영양학은 주로 스포츠상황에서 더 높은 수행능력을 위한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이르러 생활체육의 활성화와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스포츠 영양학은 단순히 스포츠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식품 및 헬스케어 관련 제품의 수요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는 개인 및 집단의 건강관리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으며 영양 섭취 평가, 영양 요소 등은 질병 예방 및 관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스포츠 영양학은 현대사회의 건강과 웰빙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본 글에서는 스포츠 영양학의 국내·외 트렌드와 시장 동향에 대해 조망하며, 나아가 현대사회의 건강 개선에 공헌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 국내와 해외의 스포츠 영양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 국내와 해외의 스포츠 영양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는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난다. 국내에서는 스포츠 영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스포츠 영양과 관련하여 엘리트선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와 훈련에 관심이 더 크다. 많은 국민이 스포츠와 영양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이를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직 개인의 건강과 라이프스타일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이 충분히 보급되지 않은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스포츠 영양 교육과 정보 접근성에 대한 노력이 더 필요하며, 이를 통해 스포츠와 영양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해외에서는 생활체육 관련 정책과 제도가 국내에 비해 활성화되어 있어 일반인들도 스포츠와 영양에 대해 쉽게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스포츠시설의 확충과 도시 공간의 스포츠 활용 증대는 일상적인 스포츠활동을 장려하고 편의성을 제공하며, 스포츠이벤트 지원은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의 일반인들이 스포츠와 영양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교육 및 정보 제공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어 스스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다. 즉, 해외에서는 스포츠와 영양이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식을 강조하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더욱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국내와 해외의 스포츠 영양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를 파악하고, 국내에서도 스포츠와 영양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여 일반인들이 더욱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 국내와 해외의 스포츠 영양에 대한 연구 관점의 차이 스포츠 영양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 모두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연구 관점의 다양한 측면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현재 스포츠 영양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종목의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상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상에 따른 적절한 영양 섭취 패턴과 효과적인 식단 구성에 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건강한 삶을 유지하며 스포츠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영양 관련 필요지침을 인지하는 데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홍삼과 같은 천연 추출물이 단백질이나 비타민과 함께 건강보조식품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흥미로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천연 추출물은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어 스포츠상황이나 일상생활에서 운동과 함께 복합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건강식품으로써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러한 천연 추출물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주도적으로 천연 추출물을 활용한 운동보조식품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해외의 연구 동향을 파악하며 지식을 축적해야 한다. 국내에서 천연 추출물을 활용한 제품의 연구를 주도하여 새로운 보충물 개발 및 활용에 대한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국내 스포츠 영양 연구가 선도적 역할을 하여 다양한 천연 추출물이 스포츠상황뿐만 아니라 건강 증진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등 지식을 고도화할 기회를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해외 역시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특히 새롭게 주목할 만한 것은 경찰, 군인, 소방관과 같은 특수 직업군에 대한 연구들이다. 특수 직업군은 높은 신체적 요구와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맞는 영양 요구와 식단관리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해외의 연구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실정에 맞는 운동선수와 일반인, 특수 직업군까지 포괄적인 영양 지침을 개발과 함께 다양한 환경에서의 올바른 영양 섭취가 건강한 생활과 성과 향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다방면의 연구를 끊임없이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스포츠 영양 시장규모 2022년에 시장 조사 기관 Grand View Research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스포츠 영양 시장규모는 약 56조 원으로 추정되며, 다른 시장 조사 기관인 마켓인사이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그중 단백질 시장규모는 약 33조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의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2019년 2조 9,508억 원에서 2022년에는 4조 321억 원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단백질 시장은 2019년에는 3,364억 원이었던 것이 2022년에는 4,000억 원대로 규모가 더욱 확장되었으며, 비타민 시장 역시 2021년에는 7,716억 원이었던 것이 2022년에는 9.061억 원으로 시장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국내 소비자들의 건강 관심과 웰빙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성장하는 수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스포츠 영양분야에서도 꾸준한 성장이 이루어져 다양한 영양 보충제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고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국내 시장 동향은 건강과 스포츠 영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결과로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 스포츠 영양 관련 시장은 청년, 중장년, 운동선수 등 다양한 수요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수요층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매일유업의 셀렉스를 시작으로 일동후디스, hy, 빙그레 등과 같은 기업들이 후발주자로 등장하여 시장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23년까지 이 시장이 약 4,000억 원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밝은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국내 시장의 경쟁 속에서 단백질 식품은 여러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한 음료, 파우더, 시리얼, 젤리, 바 등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어 출시되고 있다. 이는 시장을 다각도로 확장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 건강기능식품(서플리먼트) 시장에서는 약 60%의 점유율을 가진 두 기업이 주도하고 있어 브랜드와 제품의 다양성에 제한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시장 내에서 브랜드 다양성을 촉진하고 제품 혁신을 통해 더욱 다양한 소비자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창의적이고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여 국내 스포츠 영양 시장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견인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해외 스포츠 영양 시장의 변화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18년 일본은 단백질 섭취 부족 현상을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자국민의 단백질 섭취량이 70.4g으로 1960년대(1960년 69.7g, 1965년 71.3g)와 유사한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2016년과 비교하여 2040년까지 3년 이상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목표를 설정함에 따라 65세 이상 고령자의 하루 단백질 섭취 목표량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정책 추진 이후, 주로 운동선수의 근육 강화용으로 강조되었던 단백질 보충제의 이미지가 최근에는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단백질 섭취를 도와주는 제품으로 인식이 변화하며 단백질 보충제의 소비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단백질 보충제의 다양한 용도와 장점을 내세워 단백질 섭취의 중요성을 깨닫는 소비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결과를 보였다. 일본의 사례는 해외 스포츠 영양 관련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욕구와 관심사에 맞춘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스포츠 영양분야에서의 다양한 변화와 추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4. 스포츠 영양의 발전을 위한 우리의 노력다이어트를 목표로 하는 사람, 근육량을 증가시키고 싶은 사람, 운동 기능 및 수행능력 향상을 원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목표와 필요에 따라 영양소 요구가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명 크리에이터의 광고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많은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노출되면서 정확한 영양정보에 기반한 선택이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에서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거나 제한된 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 또한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 영양과 관련하여 보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이와 관련된 공공 캠페인 및 자료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올바른 영양정보에 기반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신뢰도 높은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도 영양정보를 제공하고 홍보하는 데 있어 신뢰성과 과학적 근거를 강조하는 등 소비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개인 차원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스포츠 영양 관련 정보습득을 위한 노력을 바탕으로 올바른 영양 선택과 판단력을 향상시켜 건강하고 효과적인 영양 섭취에 관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무리하며지금까지 우리는 스포츠 영양학의 연구 및 시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트렌드에 발맞추어 스포츠 영양학분야도 연구 및 시장에서 발 빠른 변화를 가져올 필요가 있다. 스포츠 영양학의 경우 엘리트선수들의 기능 및 퍼포먼스 향상에 대해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일반인 및 다양한 대상을 바탕으로 건강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과 그에 따른 영양 섭취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분야의 다양성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분야에서의 발전과 더 나아가 관련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지기에 그 필요성은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올바른 영양 지침과 식단을 개발하고 지속적인 연구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스포츠 영양에 대한 관심이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지속가능한 결과를 얻는데 핵심임을 강조하며, 스포츠 영양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한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39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2023.09.05 하민성 서울시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