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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을 결심하기까지

2024.08.28 정책기자단 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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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아픈 거 말고, 빈혈 있는 거 알고 있어요? 당분간 철분제도 먹어야겠어요.”

고등학생 시절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 선생님께 뜻밖에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당분간 매일 액상 철분제 신세를 지게 되었다. 끝 맛이 조금 쇠맛이 나는 철분제는 그다지 좋은 맛은 아니었다. 한 자릿수에 머물던 헤모글로빈 수치가 확실히 정상 범위에 안착하고서야 선생님은 고기 챙겨 먹으라는 조언과 함께 치료를 끝냈다.

야외에서 격하게 노는 아이로 자라지는 않았기에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살을 꿰매거나 뼈가 부러진 적이 없었다. 높은 정글짐은 바라보기만 했고 친구가 그네에서 뛰어내려 완벽한 착지를 자랑하면 따라 하기보다는 그저 열심히 박수를 쳤다. 그렇기에 내가 수혈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인생에서 나도 누군가의 피가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기증 신청을 진행한 헌혈의 집 강남역센터.
기증 신청을 진행한 헌혈의 집 강남역센터.

20대 내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하던 내 헤모글로빈 수치가 올해 들어 유독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올해 1월 6일, 혹시나 해서 3년 만에 찾아간 헌혈의 집에서 13g/dL이 넘는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헤모글로빈 수치 말고도 저체중, 특정 지역 방문, 수술, 일부 약물 복용 여부 등의 결격 사유를 모두 통과한 귀한 시기였다. 조금 들뜬 기분으로 전혈 헌혈을 준비하는 내 눈에 마침 조혈모세포 기증 홍보물이 들어왔다.

“아! 이번에 헌혈하면서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도 같이 할게요.”

담당 선생님께서는 기쁜 기색으로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신 후, 기증 신청서를 건넸다. 신상정보와 연락처를 적어 제출하고 헌혈용 의자에 앉자 간호사께서 다가와 바늘을 꽂았다. 혈액 검사에 필요한 샘플 외에 HLA(조직적합성항원) 검사를 위한 혈액 5ml 정도를 추가로 채혈했던 것 뿐, 기존 헌혈에 비해서 별 어려울 것 없이 기증 신청이 완료되었다.

헌혈 직후 잠시 대기하는 기자의 모습.
헌혈 직후 잠시 대기하는 모습.

아무것도 모른 채로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작년 여름에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워낙 가까운 사람이 등록을 고민한다고 하니 혹시 부작용은 없는지, 기증 방법이 힘들지는 않은지 앞서서 알아봤었다. 등록 과정부터 실제 기증 단계까지 간 사람의 후기를 듣고 내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안전하다’였다. 그렇게 나도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고통과 후유증이었다. 어릴 때 본 미디어에서 골수 기증은 무섭고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부분 마취 없이 말초혈 조혈모세포로 기증하기 때문에 큰 통증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혹시 골수 기증을 한다고 해도 전신마취를 한단다. 많은 분들도 같은 걱정을 하는지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간호사 선생님께서 별로 안 아프다는 설명을 추가로 해주셨다. 알고는 있었지만 검색 결과로 본 것이 아니라 육성으로 들으니 조금 더 안심이 되었다.

만약 기증이 필요한 일치자가 나타나면 준비를 위해 2~3일 정도 입원하게 된다. 실제 기증 시간은 4~5시간 정도 소요되고 감기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곧 회복된다고도 했다. 직장인이라면 입원 기간 동안 휴가를 내야 하기에 장기 등 이식에 대한 법률 제32조 제2항이 존재한다. 공무원은 병가 처리,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는 유급휴가로 처리하도록 한 조항이다. 퇴원 후에는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2~3주 지나면 원상 회복된다는 부분에서는 헌혈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증 과정에 대한 안내 문자를 받았다.
기증 과정에 대한 안내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5월 2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품질보증팀에서 전산등록을 진행하겠다는 문자가 왔다. 전산등록과 검사가 완료된 이후에 등록 취소를 하면 재신청이 불가하니 혹시 기증을 원하지 않으면 금일 5시까지 연락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흔들리기는 했지만 올해 나온 아이돌 노래 가사말에 “여잔 배짱이지”랬다.

7월 22일. 문자가 한 통 더 왔다. 기증희망 신청이 5월 9일자로 전산등록완료되었으니 등록증과 안내 책자를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7월 말. 오랜만에 우편함에 내 앞으로 온 봉투가 있었다. 열어보니 안내받았던 구성품 외에 소정의 기념품도 함께 들어있었다. 시기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 스마트폰 충전용 케이블이었다.

안내 책자와 기념품, 등록증이 담긴 우편물.
안내 책자와 기념품, 등록증이 담긴 우편물.

조혈모세포 기증은 혈액암 환자에게 새 삶을 줄 수 있지만, 혈액형이 일치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나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나야만 실제 기증이 가능하다. 비혈연 관계의 경우 확률은 2만 분의 1. 안전하게 기증이 가능한 나이는 55세 미만인데, 그 나이가 되도록 기증자를 단 한 명도 찾지 못할 확률이 훨씬 크다고 한다. 

그러나 더 희귀한 확률로 당첨되는 로또 1등도 상상하는 것이 사람 아닌가. 읽었던 후기 중에 1년 이내에 실제 기증까지 이어진 케이스가 있어서일까, 만약에 진짜 일치자가 나타나는 경우의 수가 헌혈을 하고 있는 내 머릿속에 좌르륵 펼쳐졌다. 일단 가족을 안심시키고, 휴가를 내고……. 첫 한 달은 기증 관련 생각만 하면 비장해졌다.

대한적십자사 헌혈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올해의 헌혈 내역을 조회하였다.
대한적십자사 헌혈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올해의 헌혈 내역을 조회하였다.

나는 비교적 얇은 혈관을 가졌기에 헌혈을 위한 굵은 주삿바늘은 꽂는 것도 어렵고, 애써 꽂아도 갑자기 피가 안 나오기 일쑤다. 다행히 피가 안 나오는다는 경고음만 울리면 간호사 선생님들이 쏜살같이 달려오셨다. 덕분에 올해 3번의 헌혈을 더 성공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날 동안 일치자에 대한 연락은 오지 않았다. 혹시나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의 한줄기 빛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나는 의료인이나 히어로가 아니지만 이런 나에게도 한 사람을 구할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요새는 크게 고통스럽지도 않다면 굳이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 조혈모세포 기증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후기도 결정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안내 책자 마지막 페이지에 기증희망 등록증이 붙어 있다.
안내 책자 마지막 페이지에 기증희망 등록증이 붙어 있다.

다만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일치자가 나타나 기증이 결정된 이후에 등록을 취소하는 것은 간곡하게 말리고 싶다. 개인의 사정과 변심에 따라 기증희망 등록 취소는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기증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취소하거나 덜컥 겁이 나 연락을 피하면 자신의 모든 조혈모세포를 제거하고 기다리던 환자는 어떻게 될까. 누군가를 살리려던 일이 되려 죽이는 일이 되지 않도록 신중했으면 좋겠다.

◆ 조혈모세포 기증 관련해서 더 알고 싶다면?

https://www.bloodinfo.net/knrcbs/cm/cntnts/cntntsView.do?mi=1127&cntntsId=1015



정책기자단 정지영 사진
정책기자단|정지영hobby_yogi@naver.com
국민의 시각에서 직접 체험해보는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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