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십수 년 동안 방송작가로 살았다. 사람들은 방송작가라고 하면 앉아서 글만 쓰는 줄 알지만 사실 글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시청자들이 혹할 만한 아이템을 찾는 것이다. 눈길 끄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 답사도 많이 했지만 아이템과 출연자를 찾아 인터넷 카페 등을 헤매곤 했다. 제보를 받기 위해 내가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을 찾고 있으니 연락을 달라는 글과 함께 내 개인 연락처를 남겼었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이상한 전화가 오기도 했다. 누구누구 작가냐면서 개인적인 하소연을 한다거나 심지어는 물건을 팔거나, 무작정 자신을 방송에 출연시켜달라는 이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아이템을 찾아 인터넷 카페 가입도 수시로 했지만 해당 아이템이 끝나면 내가 쓴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등 내 개인정보 관리도 열심히 해야 했다.
그런데 초등학생 아이의 요청에 의해 가끔 학급 밴드나 단체 채팅방을 들여다보면 근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학급 밴드의 경우, 해당 학년이 지나면 관리자였던 선생님은 탈퇴하고 아이들끼리 남아 대화를 주고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때 아이들 가운데 욕설을 올린다든가 댓글로 한 학생을 창피 주는 일을 심심찮게 목격하곤 한다. 또 카카오톡 프로필에도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 욕을 하는 사진을 올린 친구가 있어 화들짝 놀란 적도 있다.
일부 어른들도 자신의 신상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과 사진을 SNS에 올리는데 아직 그 여파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때그때 자신을 노출하곤 한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온라인 활동을 한다. 이렇게 하나둘 올린 게시물들은 개인의 신상이나 사진들을 그대로 노출한 채 온라인에 남아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올린 게시물은 직접 삭제할 수 있지만 커뮤니티를 이미 탈퇴했거나, 계정 정보 또는 게시물 삭제 비밀번호 등을 잊어버렸다면 해당 게시물이 온라인에 남아 떠돌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는 지난 4월 24일부터 ‘아동·청소년 디지털 잊힐권리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삭제를 희망하는 게시물의 주소와 함께 본인이 올린 게시물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하면 정부가 해당 사업자에게 사람들이 더 이상 그 게시물을 볼 수 없도록 접근 배제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정보를 포함한 게시물이란 어떤 것일까? 바로 이름이나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나 사진 등 특정한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한 게시물을 말한다. 만약 만 24세 이하의 청소년 가운데 삭제하고 싶은 게시물이 있다면 게시물의 주소(URL)와 자신의 게시물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함께 첨부해 개인정보 포털(https://www.privacy.go.kr)에 신청하면 된다.
잊힐권리와 함께 어른들도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셰어런팅’이다. 셰어런팅이란 공유(share)와 육아(parenting)의 합성어로 자녀의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행위를 말한다. 너무 귀엽고 예뻐서 올리는 우리 아이 사진이지만 정작 아이가 원하느냐는 것이다. 이미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자녀가 동의하지 않는 사진을 올릴 경우, 벌금 등 처분을 내리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도, 그리고 어른들도 내가 무심코 올리는 사진이나 글 속에서 혹시 개인정보가 들어있지는 않은지 점검, 또 점검해 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 이제는 잊힐권리는 물론 스스로 신중하게 게시물을 올리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