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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이 우리 역사에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훈족이 누구냐는 연구가 서양에서조차 300여 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이며 둘째는 훈족을 흉노 중에서도 몽골계가 아니라 투르크계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투르크계와 몽골계는 유사한 면이 있으면서도 차이점이 많기 때문에 한국 학자들로서는 민족이 다른 투르크의 역사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고대 유럽 휩쓴 ‘훈족’은 한민족(2004.03.02), 사상 최강의 훈족(2004.04.19), 5세기 동양은 광개토태왕, 서양은 아틸라가 패자였다(2004.04.23) 참조).
〈서양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훈족의 원류〉
훈이 흉노에서 연유했다는 것은 1750년대에 프랑스의 드 기네(Joseph de Guignes, 1721∼1800)가 처음으로 제시하였지만 처음부터 정설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훈족이 누구냐는 것은 아시아 및 유럽 고대사의 이해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훈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유럽인들은 아전인수격으로 훈족을 해석했다.
훈족의 기원을 놓고 아시아 흉노계를 비롯해서 몽골계, 투르트-몽골 혼합계, 투르크-몽골-만족 혼합계, 피노 우그리아계, 게르만계, 카프카스(코카서스)계 등 매우 다양하게 논쟁을 벌였지만 훈족을 연구하기 시작한 초창기의 유럽 학자들은 훈족을 흉노가 아니라 유럽계 유목민 즉 서양인으로 설정했다.
유럽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유목민은 ‘스키타이’라 불리는 유목민들이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7세기부터 러시아 대평원의 패권을 장악했던 기마민족으로 앗시리아의 에사르하돈(Esarhaddon, 기원전 681∼669년 재위) 연대기에 처음 나타난다. 앗시리아인들은 그들을 아쉬쿠즈(Ashkux 또는 Ashkuzai), 페르시아인이나 인도인들은 사카(Saka)라고 불렀으며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Skythai 또는 Skythes)라고 불렀다. 그러나 스키타이들은 스스로를 스콜로텐(Skoloten) 혹은 슈크(Shk)라고 불렀으며 이란인 계통으로 추정된다(밀러는 남부 러시아의 스키타이 비문들을 분석하면서 지역에 따라 적게는 10퍼센트에서 많게는 60퍼센트까지, 다양한 이란적 요소가 발견된다고 발표했다).
훈족의 진격. 초창기 훈족을 연구한 학자들은 서유럽의 새로운 질서를 만든 훈족을 동양계로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므로 스키타이의 후예로 설명했다. |
이들은 전통적인 유목민답게 주위 민족들과 수많은 전쟁을 벌렸는데 학살과 약탈을 당연시했던 고대인들의 기준으로도 야만족이라고 비난받았다. 실제로 훈족과 칭기스칸의 몽골족이 공격적인데다가 적들에 대한 무자비한 행동으로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잔인함에 관한 한은 스키타이가 이들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한다.
스키타이족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현재 알려진 지식의 상당부분은 헤로도투스(Herodotus, 기원전 484?∼ 기원전 425?)와 로마의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on, 기원전 64∼ 기원후 21?)이 남긴 17권의 『지리서』의 증언에 의지한다. 헤로도투스는 『역사』에서 스키타이 전사들의 야만스런 풍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스키타이 전사는 최초로 죽인 적의 피를 마신다. 또한 전투에서 살해한 적병의 머리는 모두 잘라 앞으로 가져온다. 전사들은 그 목의 수에 따라 전리품을 나누어 받으며 머리가 없으면 분배를 받지 못한다. 1년에 1명의 적도 죽이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수치이며 부족회의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적의 목은 스키타이 전사의 무공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처리를 했다. 두개골의 눈썹 아랫부분을 톱으로 잘라내고 나머지 부분을 깨끗이 소제한 후 소의 생가죽을 입힌 다음, 안쪽에 금을 입히고 술잔으로 사용한다. 중요한 손님이 오면 이들 두개골을 보이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또한 머리의 양쪽 귀를 중심으로 둥글게 자른 다음 머리를 흔들어 두개골에서 두피(頭皮)를 떼어 낸다. 소의 늑골을 사용해서 가죽에서 살점을 떼어 내고 손으로 주물러 부드럽게 하면 손수건이 된다. 손수건을 말 고삐줄에 매달아 과시하는데 현대인이 볼 때 엽기적인 행동이지만, 스키타이 인들에게는 손수건을 많이 갖고 있는 자가 가장 훌륭한 용사로 간주되었다. 심지어는 머리 가죽을 여러 장 이어 맞추어 외투, 어깨망토, 방석 등을 만들었다. 이런 물건을 직접 사용해 본 헤로도투스는 살가죽이 희고 광택이 난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스키타이가 유럽 문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야만성 때문에 현재의 유럽이 존속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스키타이가 아니었다면 동방에 있는 더 큰 공포, 즉 중앙아시아로부터 주기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유목민들로부터 유럽을 구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여 그들의 야만성이 동방의 아시아인들로부터 서방을 지켜주는 방파제 구실을 했으므로 유럽의 학자들은 훈족을 스키타이의 후예나 그들의 방계로 간주했다.
화려한 스키타이 무덤. 스키타이 인들의 영토에서는 금이 풍부하여 황금 술잔을 사용하였고 은제나 청동제는 술잔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
유럽학자들의 이러한 예단에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훈족이 서진하는 과정에서 맞부닥친 민족으로 유명한 사르마타이족(Sarmatians)이 있었는데 이들은 스키타이를 격파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키타이를 이은 사르마타이족은 훈족의 주류가 아니라 훈족에 예속된 유목부족 중에 하나에 불과했다.
훈족이 서방으로 진격하는 동안에 많은 민족들이 훈족의 영향 하에 들어갔다. 훈족의 지배 하에 들어간 민족 중에는 사르마타이족뿐만 아니라 게르만족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는 스키리족(Skirians), 게피다이족(Gepids), 콰디족(Quadi), 헤룰리족(Heruli) 등이 특히 유명한데 그 중 스키리족은 한때 남부 러시아에 살던 민족으로 훈족의 주력 세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차츰 흉노와 훈에 대한 사료가 축적되고 유물들이 곳곳에서 발굴되면서 훈족이 흉노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자 유럽인들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훈족이 유럽인이 아니라면 아시아계통의 야만족에게 유럽이 정복당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훈족이 흉노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자료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리스 학자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3?∼기원후 23?)는 훈의 위치를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동쪽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역사학자 플리니우스(Plinius, 125년 사망)는 훈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흉노와 같다.
1세기 후반의 지리학자 오로시우스(Orosius)나 2세기 중엽의 지리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Polemais)가 작성한 지도에 훈의 거주지역으로 표시된 지점들이 중국의 자료에 보이는 흉노의 지역과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다.
더욱이 355년∼365년 카스피 해와 아랄 해 사이에 존재하던 알란(Alan)이 외적에 의해 침공당했을 때, 중국의 위서(魏書)에는 흉노에 의한 침공사실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당시 라틴학자 마르셀리누스(Marcellinus)는 침공의 주인공을 훈족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동서의 자료가 흉노와 훈으로 묘사한 또 다른 예는 북위(北魏)의 고종(高宗, 452∼465)에게 보내진 소그드어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북한(北漢)을 세운 유연이 평양(平陽)에서 황제를 칭하고, 그 아들 유총이 서진(西晉, 266∼316)의 수도 낙양을 함락하는 과정에서 포로로 잡힌 소그드 상인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낙양을 공략한 흉노를 훈족으로 묘사하고 있다.
〈훈족이 투르크 계라면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아〉
외형적으로 볼 때 유럽인과 한국인을 포함한 몽골계는 확연히 구별된다. 동양계인 몽골로이드와 유럽인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형태학적 차이로 눈 부위를 지적하는데 몽골로이드는 코뼈가 낮은 데 비해 유럽인의 코뼈는 현저히 융기되어 있다. 또 유럽인의 윗 턱 부분은 그다지 돌출해 있지 않은데 비해 몽골로이드 윗턱은 치아와 더불어 돌출해 있다.
그런데 훈족이 유럽계 서양 유목민이 아니고 흉노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유럽 학자들은 훈족이 서양인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절묘한 대안을 내놓았다. 훈족이 흉노이기는 하지만 몽골-투르크계 중에서 투르크계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 학자들은 투르크족을 몽골로이드 계통에서 분리하여 백인 계통으로 분류한다. 즉 그들은 흰색 피부, 짙게 빛나는 눈동자, 둥근 얼굴, 강건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단두(短頭, Brachycephaly) 백인종으로, 4대 백인종 그룹 중 유로피드 투라니드(Europid Turanid)계통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훈족이 흉노계 투르크계라면 몽골계 흉노가 서양을 지배했다는 문제점을 피해갈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투르크인은 한자로는 돌궐(突厥)로 표기되며 서융(西戎)에 속한다. 6세기 중엽에는 몽골계 유목민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토문카간(土門可汗)이 초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10세기 초반에 몽골 초원과 북부 중국에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반면, 중앙 아시아와 중동지역 이슬람 세계 내에서 패권을 장악하며 11세기경부터 아랍 계열의 칼리프를 무력화하고 술탄의 명칭을 계승하였다. 투르크는 오스만 조에서 전성기를 맞아 1493년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대제국으로 부상하였다. 이는 현재 터키 공화국의 모태가 되었다.
‘훈족’이란 용어는 원래의 훈족으로 불린 지배집단에 의해 지휘된 모든 부족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훈족 속에 상당수의 투르크계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수긍이 가는 일이다. 또한 훈족이 서방으로 서천하면서 조우하는 민족을 정복하면서 많은 민족들이 훈족의 휘하에 들어갔다. 451년 살롱대전투가 벌어졌을 때 훈족의 주력부대는 훈족을 포함하여 훈족에 의해 정복당한 알란족과 동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족 등 무려 45개 민족에 달하였다. 훈족에 유럽 계통으로 볼 수 있는 민족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중국의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사마천은 흉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신체는 작지만 땅땅한 편이고, 머리는 아주 크고 둥글며, 안면은 넓고 광대뼈가 튀어 나왔고, 콧구멍이 넓으며 콧수염이 아주 텁수룩하고 아울러 콧수염은 많지만 뺨에 난 뻣뻣한 털로 된 수염을 제외하고는 턱수염이 없다.
긴 귀에 구멍을 뚫어 둥근 모양의 귀고리를 달고 있다. 그들의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겨우 정수리에 있는 머리털만 남긴다. 눈썹은 짙고 눈동자는 불타듯이 강렬하며 눈은 찢어진 모양이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겉옷은 양쪽이 터져 있으며 그것을 묶은 허리띠의 끝을 앞으로 늘어뜨린다. 추위 때문에 소매는 손목에서 단단하게 묶는다. 짧은 털로 된 망토로 어깨를 덮고 털모자로 머리를 가린다. 신은 가죽으로 만들었고 넓은 바지에 허리띠를 단단하게 묶는다. 허리띠에는 활집을 왼쪽 넓적다리 앞으로 기울여 맨다. 화살통 역시 허리띠에 매되 등 뒤에 걸치고 활시위는 오른쪽을 향하도록 한다.’
광대뼈가 튀어 나왔고, 눈동자가 불타듯이 강렬하고 눈이 찢어진 모양이라는 것은 동양인의 모습이다. 사마천의 흉노에 대한 설명은 외양만 놓고 볼 때 대부분의 한국인을 설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와 다른 기록도 있다. 후월(後越)의 태자(太子) 손진(孫珍, 흉노)이 한(漢) 사람의 시중(侍中)인 최약(崔約)에게 안질(眼疾)의 치료법을 질문했을 때, 평소에 손진을 경멸하던 최약은 익중칙유(溺中則愈)라 답했다. 손진이 “눈을 어떻게 물에다 잠기게 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최약은 “당신의 눈은 움푹 들어가서 바로 물에 잠길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손진이 화가 나서 최약 부자(父子)를 주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흉노로 불린 손진은 눈이 들어가고 코가 높았다는 것을 뜻하므로 중국인과도 구별되고 몽골인과도 외모가 구별된다. 흉노를 묘사하면서 사마천은 동양인, 최약은 서양인의 모습으로 적었는데 흉노가 수많은 부족들로 구성되었다고 추정한다면 흉노의 모습이 완연히 다른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광대한 영토를 영유하고 있는 흉노 제국 안에서 사마천이 설명한 동양인과 최약이 설명한 서방계 모습의 민족이 함께 공존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료를 보더라도 흉노에 동양계와 서양계가 혼재되어 있으므로 훈족이 어느계인지를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럽인들은 재빠르게 훈족은 투르크계라며 다음과 같은 증거를 제시했다.
우선 프랑스의 �y리오는 중국어로 표현된 몇 가지 단어를 복원할 경우 이들 대다수는 투르크적이고 특히 그들의 정치적인 지배집단이 투르크에 속한다고 발표했다(국역판 {사기}에도 흉노족이 오늘날 핀란드와 헝가리 민족의 선조로서 원래 유럽 인종에 가까운 편이라고 적었다).
더불어 훈족의 왕가가 투르크계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도 중요한 증거로 제시했다. 아틸라의 아버지 문주크는 구슬(Boncuk)이나 깃발(Bayrak)이라는 뜻이며 아틸라의 아들인 덴기지크(Dengizik)의 어원도 투르크어 계통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유프라테스 강 중류 시리아-이라크의 접경 지대에서 발굴된 3세기 중엽의 비문에서 훈족의 이름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의 이름도 투르크 식이었다.
몽골의 노인 울라(Noin Ula) 고분군 제25호에서 출토된 흉노의 인물 자수화도 투르크 계열로 추정하는 증거로 제시되었다. 이 인물 자수화에서는 주인공이 검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빗고 있는데 이마가 넓으며 눈이 크고 짙은 콧수염을 갖고 있다. 특이한 것은 안구는 검은색 실로, 동공은 남색 실로 수놓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몽골족은 동공이 검고 턱수염이 없으며 눈이 작은 반면에 투르크족은 동공이 남색이고 턱수염이 많으며 눈이 큰 것이 특징이므로 자수화의 인물은 투르크 계열이라는 주장이었다.
노인 울라 인물자수화. 노인 울라 제25호에서 출토된 흉노의 인물 자수화로 흉노가 투르크 계열이라는 증거로 제시되었지만 흉노를 투르크인이라 단정하는 것은 다른 자료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
이에 대해서는 몽골의 고고학자 책 도이길소영은 주인공의 동공을 남색으로 수놓은 것은 검은 안구와 구별하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눈빛이 예리하고 위엄이 있게 보이기 위한 일종의 미술기법이고, 몽골인의 콧수염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르는 사람도 있으므로 동공의 남색이나 콧수염의 유무로 몽골인 여부를 가리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지만 유럽인들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1955∼1957년에 섬서성 장안현 예서향 객성장(客省庄) 양주고분군에서 발견된 흉노 고분의 동제 부조(浮彫)도 훈족이 투르크계라는 근거로 인용했다. 이 부조에서는 콧대가 높고 가랑이가 긴 바지를 입은 장발의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씨름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투르크인들은 눈이 깊고 코가 높으며 장발인데 반해 몽골인들은 코가 낮고 단발이므로 외형적인 특징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인 흉노가 투르크 족에 속한다는 것이다.
〈돌궐계와 몽골계는 장례방식이 다르다〉
웰스의 『세계문화사』. 웰스는 훈족을 서방세계가 그 전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역동적이며 유능한 황색민족, 즉 유목 몽골계로 보았다. |
우선 훈족이 유럽에 등장할 초창기부터 수세기 이내에 편찬된 유럽의 역사학자들의 사료에 나타나는 훈족의 모습은 투르크계가 아니라 몽골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조시모스는 훈족을 일컬어 ‘형태 없는 돌덩이인 얼굴을 가졌다'면서 ‘피부색이 어둡고, 눈 대신 어두운 구멍이 두 개 나 있고 코는 납작하고, 뺨에 상처가 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눈 대신 어두운 구멍이 두 개 있고(눈이 작다는 뜻) 코가 납작하다’는 것은 동양인의 얼굴을 표현한 것임에 틀림없다.
클레르몽의 주교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도 이교도인 훈족에 대해 특히 심한 거부감을 보이면서 그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들은 혐오감을 준다. 이들은 낮은(모양이 없고 평평하게 자란) 코, 튀어나온 광대뼈, 얼굴에 있는 두 개의 눈은 눈꺼풀이 조그맣게 열려 있어 광선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이지만 그들의 꿰뚫어보는 눈은 훨씬 더 먼 곳을 볼 수 있다.’
아폴리나리스가 설명한 훈족도 서양인의 얼굴이 아니라 동양인의 얼굴이 틀림없다.
유럽인들의 언어학에 의한 주장도 반론이 제기되었다. 일본의 시라토리 쿠라키치를 비롯한 동양계 학자들은 흉노의 언어적인 연구에 의하면 유럽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흉노는 투르크 계열이 아니라 몽골로 구분해야 한다고 단언해서 발표했다.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으로 유명한 웰스(Herbet George Wells, 1866∼1946)도 그의 저서 『웰스의 세계문화사』에서 훈족을 서방세계가 그 전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역동적이며 유능한 황색민족 즉 유목 몽골계로 보았다.
유럽인들이 훈족을 투르크족으로 예단하게 된 이유는 동로마 황제가 훈의 지도자들에게 ‘투르크 왕자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현재는 투르크가 특정 민족의 이름으로 굳어졌지만 고대 알타이어에서 ‘투르크(Turk)’는 ‘강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했던 사람은 훈족이 투르크계라고 주장한 프랑스의 �y리오였다.
아틸라의 장례식. 아틸라의 시신은 투르크의 풍습처럼 화장하지 않고 판노니아의 티스자 강 근교에 매장되었다. 아틸라의 묘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아 알렉산더 대왕, 칭기스칸의 묘와 함께 고고학자들이 가장 발굴하고 싶어하는 무덤이다. |
그러나 훈족이 투르크계가 아니라 몽골계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빙하는 자료 중에 하나는 두 민족간의 장례 방법이 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흉노의 몽골계는 염을 한 뒤 입관하여 땅에 매장하는데 반하여 돌궐 등 투르크계는 화장한다. 그러므로 훈족의 서방 이동 경로에서 흉노의 무덤들이 발굴되는데 이들이 투르크계라면 인골이 발견될 수 없는데도 일괄적으로 무덤 속에서 인골들이 발견됨을 볼 때 훈족은 몽골계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아틸라의 장례식에도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매장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아틸라가 몽골계임을 반증한다.
또한 말도 몽골계는 매장하지만 투르크계는 시신과 함께 화장한다. 이것은 훈족의 지배집단이 투르크계가 아니라 몽골계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고 볼 수 있다. 몽골에서는 대칸의 장례시 금령마(金靈馬)라는 화려한 장식의 말을 순장한다. 특히 노욘산의 흉노 고분에서 수달피 수의(흑초피(黑貂皮))가 발견되자 흉노는 몽골계가 주류임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수달피 수의는 흉노를 비롯한 몽골계 북방민족의 전통적인 장례 습속이다.
이종호(과학저술가)
저서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세계를 속인 거짓말>, <영화에서 만난 불가능의 과학>,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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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뉴스 소득 수준 관계없이 누구나 최대 30일 ‘돌봄’ 이용 가능 올해부터 질병, 부상 등으로 급히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면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긴급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에 희망자는 주민등록상 주소지의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서비스를 신청하면 신속하게 이용 자격 확인을 거쳐 최대 30일(72시간)의 방문 돌봄, 가사·이동 등을 지원한다. 다만 서비스 이용비는 소득 수준에 따라 본인 부담이 차등 부과되는데, 본인부담 부과 비율은 지역별로 상이하며 이용시간과 횟수, 본인부담 비율에 따라 서비스 가격이 결정된다. 보건복지부는 기존의 공적 돌봄 서비스로 채울 수 없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더욱 촘촘한 돌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올해부터 이같은 내용의 긴급돌봄 지원사업을 새롭게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1차 사회서비스 기본계획(2024-2028)을 수립하고 국민 누구나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누리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3대 분야의 9개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다양한 서비스 확충을 위해 비정형적·긴급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긴급돌봄 서비스로 달라지는 모습 그동안 가사·간병 방문지원, 노인장기요양 등의 서비스는 신청 후 대상자 결정까지 한 달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고 결정 이후부터 중장기 지원하고 있어 서비스가 급히 필요한 상황에서는 이용하기 어려웠다. 특히 일시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빠른 일상으로의 복귀를 지원하기 위한 서비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질병, 부상, 갑작스러운 주돌봄자의 부재로 혼자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움에도 돌볼 수 있는 다른 가족이 없거나 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 긴급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돌봄 필요성, 긴급성과 보충성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요건을 갖춘 경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서비스는 최대 30일 이내 범위에서 희망하는 시간을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용자와 제공기관이 수립한 서비스 제공계획에 따라 요양보호사 등의 전문 인력이 이용자의 집을 방문해 재가 돌봄, 가사 지원, 이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복지부는 이같은 긴급돌봄 지원사업을 공모를 통해 선정한 14개 시·도의 122개 시·군·구에서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올해 사업 추진을 통해 현장의 서비스 수요와 지역의 제공 역량 등을 확인하며 사업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거주지의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병원 내 퇴원지원실 및 시군구(희망복지지원단, 노인의료요양통합돌봄팀 등) 추천서, 퇴원확인서 등으로 필요성이 확인되는 경우, 별도 현장 확인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서류만으로 확인이 어려운 경우 읍면동, 제공기관 등의 현장 확인을 거쳐 서비스를 지원한다. 각 지역은 제공기관 지정 및 제공인력 확보 등의 절차를 거쳐 상반기 중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지자체와 함께 시·도 사회서비스원이 광역지원기관으로 사업을 지원하고,우수한 역량을 보유한 민간 서비스 제공기관과 종합재가센터 등이 서비스 제공에 참여한다. 밤샘 긴급돌봄을 제공하는 서울 양천구의 한 어린이집에 운영을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현준 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새롭게 추진하는 긴급돌봄 지원사업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돌봄 공백으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고, 국민의 돌봄부담 경감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사업의 원활한 추진과 사회서비스 기본계획의 차질 없는 이행으로 국민의 작은 어려움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따뜻한 정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서비스의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사회서비스원 대표번호(1522-0365), 복지부(129)와 지자체별 콜센터 등에 문의하면 된다. 문의 :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 사회서비스사업과(044-202-3229)
- 한컷 [오늘의 맞춤정책] 산재 신청, 이제는 휴대폰으로 간편하게 하세요! 모바일 앱 정부 24를 통해 신속하고 편리하게 산재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 모바일 산재 신청, 왜 필요할까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산재 신청 건수와 산재 신청 소요 기간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요. 모바일 산재 신청이 활성화되면, 정보통신기기 사용에 익숙한 청년 근로자를 중심으로 산재 신청 신속성도 향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산재 신청 / 신청 소요기간 현황 - 2021: 168,927 / 67.6 - 2022: : 181,792 / 73.7 - 2023: 196,206 / 77.3 ■ 원클릭(One-Click) 산재 신청 대행 신청 방법은? 산재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공단과 의료기관 방문없이 산재 신청을 모바일로 간편하게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정부24」 PC 웹과 모바일 앱에서 모두 신청 가능 「정부24」 앱에 신설된 원클릭(One-Click) 산재신청 대행 요청을 검색하여 신청서를 작성 ■ 신청은 어디서 할 수 있나요? 정부24또는근로복지공단토탈서비스에서 공동 인증서또는간편 인증로그인후신청 가능하며,자세한 내용은 해당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 여행 아름다운 자연부터 감성 있는 예술이 가득한 파주 여행 주말 아이와 가볼 만한 파주 여행지 자연을 벗 삼아 걷기 좋은, 마장호수 출렁다리 마을 전체가 예술로 가득한, 헤이리 예술마을 낭만적인 노을을 만날 수 있는, 헤이리 무장애 노을 숲길 아픈 역사를 품고 평화를 되새기는, 임진각 평화누리 우리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주말 나들이로 가기 좋은 파주! 파주는 아름다운 자연부터 감성 있는 예술까지 아이와 함께 가보기 좋은 관광지가 많은데요.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로 가기 좋은 파주 여행 코스를 소개해 드립니다. 추천 코스DAY 1 : 마장호수 - 헤이리 예술마을 - 헤이리 무장애 노을 숲길DAY 2 : 임진각 평화누리 -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마장호수 출렁다리 - 위치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기산로 313- 운영시간 : [출렁다리, 전망대] 3~10월 매일 09:00~18:00 * 월별 이용시간 상이- 이용요금 : 무료- 문의 : 031-950-1941 (파주시청 문화관광과)- 주차 : 공영 주차장 이용 마장호수 출렁다리는 호수와 산을 끼고 있는 파주시의 관광 명소입니다. 주차장에서 나와 완만한 산길을 걸어 올라오면 출렁다리 입구와 전망대가 보입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아름다운 물빛을 이루는 마장호수와 울창한 숲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요.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호수 위에 조성된 출렁다리를 건널 수 있는데요. 출렁다리 중간 부분에는 강화 유리가 설치되어 있어 더욱 짜릿한 경험을 느끼기 좋습니다. 또 출렁다리의 양쪽 입구에는 포토존이 있어 주변의 호수와 산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도 찍어남길 수 있어요. 전망대 쪽에서 출발해 출렁다리를 건너면 호수 주변으로 약 3.6km의 수변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완만한 길을 이루고 있어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에도 좋아요. 호수와 숲을 감상하며 천천히 거닐기 좋은 이곳으로 주말 나들이를 떠나보세요. 헤이리 예술마을 -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0-21- 운영시간 :·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 : 월~수, 금~일요일 11:00~21:00 ※ 매주 목요일 휴무· 한길 책박물관 : 수~일요일 11:00~18:00 ※ 매주 월, 화요일 휴무·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 월~금요일 11:00~18:00 / 토~일요일 11:00~18:30 ※ 〈범진용 개인전 : 걷는 식물〉 전시기간 : 2024.4.12.(금)~2024.7.14.(일)- 이용요금 :·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 : 성인 1만 5000원 / 초·중고생 1만 2000원· 한길 책박물관 : 대인 1만 2000원 / 소인 1만원·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 1인 3000원 (카페 이용 시 무료)- 문의 :- 031-957-3369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 031-949-9786 (한길 책박물관)- 031-942-4401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주차 : 공영 주차장 이용 헤이리 예술마을은 다양한 분야의 예슬인이 만든 창작 공간이 모여 만들어진 곳입니다. 공방, 갤러리, 박물관, 카페 등 볼거리가 많아 주말 나들이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요.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는 1970년대부터 약 40여 년간 라디오 DJ로 활약한 아나운서 출신 황인용 님이 수집한 빈티지 오디오와 LP, CD 컬렉션을 기반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사색을 즐기기 좋은 곳입니다. 총 3층으로 이루어진 공간 중 1층에서는 의자에 앉아 황인용 님이 직접 엄선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요. 더욱 알차게 즐기는 방법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오거나 입구에 비치된 책을 읽으면 더욱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3층은 미술 작품 전시 공간으로 다양한 작가들의 그림,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길 책박물관은 인문학 출판사인 한길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지하부터 3층까지 다양한 주제의 전시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지하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책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전시를 볼 수 있어요. 특히 고흐의 방을 실물처럼 재현해 두고 있어 더욱 흥미로운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2층과 3층에서는 앤디 워홀의 전시가 진행되는데요. 앤디 워홀의 그림이 담긴 잡지, 동화책들과 팝아트 등을 통해 다채로운 색감을 활용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은 시기별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입니다. 1층에는 카페와 아트샵이 있으며 2층과 3층에서 전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데요. 현재는 범진용 작가의 지난 4년의 흔적을 담은 '걷는 식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헤이리 무장애 노을 숲길 -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585- 운영시간 : 연중무휴- 문의 : 031-940-5383 (파주시청 공원과)- 주차 : 공영 주차장 이용 헤이리 무장애 노을 숲길은 헤이리 예술마을 7번 게이트에서 시작됩니다. 게이트부터약 0.7km의 완만한 나무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이용하기 좋은데요. 약 20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어 아이와 함께 방문하더라도 쉽게 오를 수 있어요. 숲길을 걸어올라 정상 전망대에 도착하면 임진강의 모습이 한눈에 담기는데요. 특히, 노을 숲길이라는 이름에 맞게 해 질 무렵에 간다면 임진각이 붉게 물든 낭만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주말 나들이를 즐긴 뒤 붉게 물든 임진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 보세요. 임진각 평화누리 - 위치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64- 운영시간 : 평화의 종, 망배당, 평화누리 공원 : 연중무휴 / 독개다리, 벙커전시관 : 3월~10월 매일 08:30~17:30- 이용요금 : 평화의 종, 망배당, 평화누리 공원 : 무료 / 독개다리+벙커전시관 : 대인 2500원 / 소인 1500원- 문의 : 031-953-4744 (임진각 관광안내소)-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임진각 평화누리는 바람의 언덕과 함께 남북 분단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조성된 곳입니다. 이곳에는 대규모 잔디광장, 체험 시설, 곤돌라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어 주말 나들이로 떠나기 좋은데요. 임진각 관광안내소를 지나면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평화의 종,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세워진 망배당 등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망배단과 평화의 종 사이에는 신의주까지 연결되어 있는 기찻길이 있는데요. 남과 북을 오갈 수 있는 선로였지만 전쟁으로 단절되며 마지막으로 운행되었던 기차를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철을 전쟁 물자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훼손시킨 당시의 흔적이 기차의 몸통에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 기차와 함께 전쟁 중 남과 북이 포로를 교환하는 통로였던 자유의 다리까지 보존되어 있어 아이와 함께 우리 민족의 아픈 흔적을 둘러보며 역사를 알아가기 좋습니다. 관광안내소 반대편으로는 남과 북의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조성된 공원이 있는데요. 이곳에는 약 3천 여개의 바람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한반도, 하트 등의 모습으로 설치해 남과 북의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염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언덕 꼭대기에는 핀 모양의 조형물이 있는데 평화누리공원의 대표 관람 포인트 중 하나로 예쁜 사진을 찍어 남기기 좋습니다. 아름답게 조성된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 피크닉도 즐기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보세요.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로 30- 운영시간 : 화~일요일 10:00~18:00 * 매주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 무료- 문의 : 031-580-5800, 1-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서는 우리 민족의 생활상과 아주 밀접한 각종 유물과 자료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관람객과 수장고의 거리를 좁혀 각종 유물들을 더욱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데요.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수장고를 볼 수 있습니다. 개방형 수장고라서 각각의 열린 수장고 내부로 들어가 보존된 유물을 관람할 수도 있어요. 수장고 내부에 있는 키오스크를 통해 유물들의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2층으로 올라오면 직접 체험하며 느낄 수 있는 민속 아카이브가 있는데요. 우리 생활과 관련된 사진과 영상을 관람할 수 있으며 비치된 태블릿 PC를 통해 사진을 등록하거나 헤드셋을 통해 과거의 축제나 장례식의 생생한 소리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방문한다면 직접 체험하며 쉽게 배울 수 있는 공간도 둘러보면 좋은데요. 미취학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어린이 체험실에서는 신체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관찰하며 소중한 유물과 자료를 탐구할 수 있어요. 보존과학실은 탐구 놀이 공간으로, 유물의 복원 과정을 보다 가까이에서 알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아이와 함께 직접 체험하며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이곳에서 의미 있는 주말을 보내보세요.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SNS 글, 사진: 글, 사진 : 트래블리더 16기 공성수, 김정혁, 김준혁, 박준영, 성다원, 오세이, 이우정, 이주현, 정민우, 최소영, 최한나, 홍세빈 * 위 정보는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사진 산업부 출입기자단 동행 실물경제 현장방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7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주)가온칩스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주)아티크론에 출입기자단과 함께 방문, AI 반도체 설계 과정과 시스템반도체 개발 현장 등을 둘러보고 있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7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주)가온칩스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주)아티크론에 출입기자단과 함께 방문, AI 반도체 설계 과정과 시스템반도체 개발 현장 등을 둘러보고 있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7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주)가온칩스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주)아티크론에 출입기자단과 함께 방문, 관계자로부터 회사 운영현황 및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7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주)가온칩스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주)아티크론에 출입기자단과 함께 방문, 관계자로부터 회사 운영현황 및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7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주)가온칩스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주)아티크론에 출입기자단과 함께 방문, 관계자로부터 회사 운영현황 및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7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주)가온칩스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주)아티크론에 출입기자단과 함께 방문, 관계자로부터 회사 운영현황 및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문화재, 이제는 ‘국가유산’으로 불러주세요! 여느 때와 다름없던 출근길, 저 멀리서 우리 전통 가락이 흘러나왔다. 혹시 무슨 공연을 하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한 부스를 촬영하고 있었다. 정부기관을 나타는 고유 마크 옆에 써진 글자는 국가유산청. 처음 보는 정부기관 명칭에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춰 섰다. 서울역 2층 공항철도 방향에 자리 잡은 국가유산청 홍보존은 5월 10일부터 19일,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검색하니 국가유산청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문화재청의 새 이름이었다. 이번 국가유산청의 출범과 함께 문화재의 명칭도 국가유산으로 변경된다는 설명에 왜 굳이 명칭을 바꾸는지 의문이 들어 국가유산과 국가유산청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변화의 시작은 지난 2023년 5월 재정된 국가유산법이라고 한다. 해당 법을 바탕으로 관계 부처에서는 국가유산청으로의 전환을 천천히 준비해왔고, 지난 1월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며 5월 17일부터 본격적인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문화재라는 명칭을 국가유산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함과 동시에 문화재청의 조직 명칭은 국가유산청으로, 문화재청장의 호칭은 국가유산청장으로 바뀐다는 점이었다. 3D 입체 국가유산존에서 담당자가 홍보 부스를 방문한 내·외국인 관람객에게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용어가 바뀌게 된 것일까? 그 답은 바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고, 국제 사회의 흐름에 함께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익히 사용해 온 문화재라는 명칭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60년이 넘게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문화재법 자체가 일본의 법률을 원용해 만들어졌고, 문화재(文化財)라는 용어에서 느껴지듯 재화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개편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고 한다. 정부는 이번 국가유산청의 출범과 함께 과거 모호하게 구분되던 체계를 문화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 등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구분 체계를 사용해 관리의 효용성을 높이고 우리 국가유산을 보다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계승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역에서 마주한 국가유산청 부스에서도 미래 지향적이면서 첨단 과학이 접목된 부분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홍보 부스의 디스플레이에서는 Jump up! Digital K-Heritage라는 문구와 함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국가유산을 생동감 있게 시청할 수 있었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생생한 모형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더해 3D 입체 국가유산존에서는 담당자가 홍보부스를 방문한 내·외국인 관람객에게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VR 기기를 통해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을 생동감있게 돌아볼 수 있다. 특히 단순히 국가유산청에 대한 홍보를 넘어 방문객이 국가유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VR 기기를 통해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을 생동감있게 돌아볼 수 있도록 마련된 부스도 있어 방문객의 관심과 호응을 얻기도 했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즐겼던 콘텐츠는 태블릿을 활용한 디지털 국가유산 이야기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우리나라의 전통 자기에 원하는 무늬를 입혀 나만의 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우리 자기와 문양의 특징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프로그램 진행을 도와주던 담당자는 다양한 언어로 즐겁고 가볍게 우리 국가유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홍보 부스를 마련해 보았다라고 이야기하며 본격적으로 출범할국가유산청에 대한 많은 관심과 응원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태블릿을 활용한 디지털 국가유산 이야기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역 2층 공항철도 방향에 자리 잡은 국가유산청의 홍보존은 5월 10일부터 19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누구나 이용 가능하다고 한다. 참고로 방문객을 위한 설문조사 및 소소한 기념품이 제공되고 있으며, 또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고 하니 서울역을 지나게 된다면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한편 정부는 이번 국가유산청의 출범과 함께 몇가지 이벤트를 준비했다. 우선 국가유산청의 출범을 맞아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전국의 유료 관람 국가유산 76곳이 무료로 개방된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연계 행사도 함께 진행되는데, 4대 궁과 종묘, 국립고궁박물관, 그리고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궁중 음악·무용 및 미디어 아트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며 다양한 특별전도 개최될 예정이다. 5월 16일부터 6월 30일까지 조선왕릉 숲길 9곳도 한시 개방된다. 새롭게 바뀐 국가유산청 누리집. 이번 국가유산 체계 정립을 통해 국가유산의 과거, 그리고 미래 가치가 더 많은 국민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송현진 songsunn_00@naver.com
- 영상 [국가유산청 출범식] 보존을 넘어 발전과 확산까지, 새로운 국가유산 시대의 개막 ☞ 대통령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