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 누리집 로고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콘텐츠 영역

술 한 잔이 보약 한 잔 ‘구기자술’

허시명 술 평론가·막걸리학교 교장

2011.06.03 허시명 술 평론가·막걸리학교 교장
글자크기 설정
인쇄 목록
1
 
술은 백가지 약 중에서 으뜸(百藥之長)이라고 한다. 술꾼이 술 마실 핑계로 만든 말은 아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다양한 술이 등장하고, 술에 대한 긍정적인 점도 기술해놓았다. 한 구절을 인용해보면 “주로 약 기운을 운행시키고 온갖 사기(邪氣)와 나쁘고 독한 기운을 없애며, 혈맥을 통하게 하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며, 피부를 윤기 있게 한다. 우울함을 없애며, 화나게 하고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껏 이야기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술은 만병(萬病)의 근원이라는 말도 있다. 백약지장을 압도하는 말이다. 만병 앞에 백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동의보감>에는 “오랫동안 마시면 정신이 상하고 수명이 줄어든다. 사람이 마시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지니 그것은 술에 독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찬반, 좋고나쁨이 교차할 때 우리는 중용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 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지나침이 문제다. 적당함과 지나침은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니 놓아두고, 여기에서는 한국의 전통주 중에서 대표적인 약술인 구기자 술 맛을 가늠해보자.

구기자주에 얽힌 재미난 얘기가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에 나와 있다. 옛날 하서에 길을 가던 사신이 16~17세 가량의 여인이 백발의 80~90세 되어보이는 늙은이를 매질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연유를 물으니 젊은 여인이 늙은이를 가리키며 ‘이 아이는 내 셋째 자식인데 약을 먹을 줄을 몰라서 나보다 먼저 머리가 희어졌고’라고 하였다. 여인의 나이를 물었더니 395세라 하였다. 이에 사신이 말에서 내려 그 여인에게 절한 다음 그 약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여인은 구기자주 만드는 법을 그르쳐 주었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 법대로 만들어 먹었더니 300년을 살았다고 한다.

<동의보감> 잡병편에는 구기자주 빚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구기자 5되를 청주 2말에 7일 동안 담갔다가 꺼내어 찌꺼기를 제거하고 마신다. 처음에는 3홉으로 시작하고, 뒤에는 주량대로 마신다.”고 했다.

구기자
붉은 구기자 열매
 
구기자주를 빚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술을 빚을 때 구기자 달인 물로 빚든지, 술에 구기자를 넣어 침출시켜 빚든지 하는 방법이다. 다만 구기자의 어느 부위를 쓰며, 얼마나 넣으며, 다른 약재와 어떻게 섞어서 쓰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구기자술로, 충남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에서 빚어지는 청양 둔송 구기주를 꼽을 수 있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이다. 청양과 구기주 앞에 붙은 둔송(屯松)이라는 말은 청양읍내의 원각사 정문 스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언덕 둔(屯)자에 소나무 송(松)자인데, 스님은 “크게 되라고 지어준 이름이니까 더는 자세히 알려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구기주를 빚는 임영순 씨는 1996년에 농림부로부터 전통술 명인 지정을 받았고, 2000년에 충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녀가 술을 빚게 된 것은 순전히 시집 와서 생긴 일이다.

구기자술
임영순 명인이 빚은 붉은 구기주
 
그녀는 21살에 시집왔다. 청양 지방으로 갈래를 친 하동 정씨 종가집이었다. 일도 많았지만, 20대에 혼자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혹심했다. 새벽 3시에 눈 뜨면 혹시나 다시 잠 들까봐 아궁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물을 데우고 밥할 준비를 했다. 시어머니는 조금만 몸이 아파도 아들을 곁에 두고 자야 했다. 아들을 뺏어간 며느리가 미웠던가보다. 그래서 그녀는 시어머니가 잠들기 전까지는 남편과 한마디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도란도란 남편과 얘기하는 것을 들키게 되면 이튿날 시어머니 심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술은 붉은 빛이 돌 정도로 진했다. 약재 냄새가 강하고, 새큼하고 달작지근했다. 전혀 감미를 하지 않은, 구기자와 약재로 우러낸 맛이었다. 며느리가 약재향이 강해서 젊은 사람 취향에 맞지 않다고 약재를 줄이면, 임씨는 며느리 몰래 약재를 한주먹씩 더 집어넣는다고 한다. 임 씨는 누룩과 멥쌀로 밑술을 담근다. 4일이 지난 뒤에 찹쌀 고두밥과 누룩을 넣어 덧술을 한다.


허시명은?

허시명은 대한민국 1호 술평론가이자, 술 기행가, 막걸리 감별사다. 현재 ‘막걸리학교’ 교장이자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문화부 전통가양주실태조사사업 책임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주품평회 심사위원, 국세청 주류질인증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전다음기사 영역

하단 배너 영역

지금 이 뉴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