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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하고 기품 있는 ‘안동소주’

허시명 술 평론가 ⑨

2011.03.23 허시명 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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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 술 평론가
 술 취한 한국인의 절반은 소주 때문이다. 맥주와 막걸리는 도수가 약해서 어지간히 마셔서는 취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실제 한국인의 알코올 소비량의 절반 이상이 소주라서 그렇다. 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 술이 소주이니, 소주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무직원이나, 힘을 많이 쓰는 현장 일꾼이나 할 것 없이 즐기는 술이다.

그런데 소주가 다양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소주는 우선 제조 방법에 따라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구분된다. 수도권에서 많이 팔리는 술인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같은 소주는 희석식 소주다. 요사이는 아열대 지방에서 나는 타피오카를 많이 쓰는데 쌀, 고구마, 옥수수 따위의 곡물을 재료로 해 에틸알코올 95도가 넘는 순도 높은 주정을 우선 만든다. 그 다음에 물을 희석해 도수를 맞추고, 안 좋은 냄새를 제거하고 입맛 좋게 감미해 병에 담는다. 희석식소주는 도수가 높아도 가격이 저렴하고, 잘 정제돼 깔끔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 이 희석식 소주는 19세기에 영국에서 개발돼, 일본을 거쳐서 한반도에 들어온 술이다. 1919년 평양에 처음 기계식 양조장이 생기면서 시작되었으니, 조선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통 소주는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는 여러 차례 연속 증류하여 만들고, 증류식 소주는 한두 차례 증류하여 만든다. 희석식 소주는 굳이 좋은 재료를 쓸 필요가 없지만, 증류식 소주는 좋은 향과 맛을 얻기 위해 좋은 재료를 써야 좋은 술을 얻을 수 있다. 희석식 소주의 원료인 주정은 연료나 약품에도 사용되지만, 증류식 소주는 산업용으로 쓰이지 않고 대부분 기호식품인 술로 사용된다.

안동소주에 쓰일 누룩을 빻고 있다
안동소주에 쓰일 누룩을 빻고 있다.
그 증류식 소주를 대표할 만한 한국의 전통 소주가 안동소주다. 안동소주의 내력을 이해하면 우리 소주의 대한 기초 상식을 얻을 수 있다. 한반도에 소주가 처음 전래된 것은 고려시대 몽골 침략기 때였다. 말과 화살과 창이 병사들의 무기였다면, 북과 피리와 소주는 병사들을 고무시켰던 또 다른 무기였다. 한반도에서 소문난 소주는 몽골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개성소주, 제주소주, 안동소주, 또 진도홍주까지도 몽골의 영향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에 안동을 거쳐 갔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충렬왕은 여몽연합군을 위로하기 위해서 안동까지 행차하여 행궁에 머물기도 했다. 그런 여파로 소주가 안동에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추정하는데, 구체적인 문헌자료가 따로 있거나 하지는 않다. 실질적으로 안동 소주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와서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 유명한 소주로 제비원 소주가 있는데, 이 소주가 안동 소주의 명성을 높였다.

현재 안동에 안동소주 제조장이 5군데가 있는데,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옥화 안동소주,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명인으로 지정된 명인 안동소주, 안동소주의 대중화의 기치를 내건 일품 안동소주, 2008년에 생긴 명품 안동소주, 최근에 생긴 양반 안동소주가 있다. 그리고 대구의 금복주회사에서도 제비원소주와 안동소주를 내고 있다. 아주 다양한 소주가 안동소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소주고리 앞에 선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 조옥화 씨.
소주고리 앞에 선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 조옥화 씨.
물론 회사마다 그 제조법이 차이가 나는데, 그중에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옥화 안동소주를 살펴보면 이렇다. 조옥화 씨는 안동 음식을 잘 만드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1999년에 영국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을 때 생일상을 손수 차리기도 했다. 안동시 수상동에 위치한 제조장은 너른 마당을 거느린 반듯한 2층 건물이다. 이 건물의 1층에는 전시장과 체험장이 있고, 2층에 누룩방과 제조장이 있다. 고두밥을 찌고, 직접 만든 밀누룩을 빻아서 물과 함께 섞은 뒤에 술을 빚는다. 발효통에서 15일 정도 숙성시키면 노르짱하면서도 감칠맛나는 술이 된다. 증류하기 전 단계의 이 술을 전술이라고 부른데, 전술을 증류기에 넣고 가열하여 알코올 45도 술을 받아낸다.

안동소주는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정통적인 방식으로 빚은 소주다. 한국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소주다. 그 도수가 45도로 높아서, 꿀밤을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고들 한다. 그래서 안동에서는 아이들끼리 꿀밤을 때리면서 “안동소주 45도!”라고 외치기도 했다고 한다.

쌀과 밀누룩 재료의 향이 은근히 따라올라오는 게 증류식 소주인 안동소주의 특징이다. 도수가 높아 자극적이지만, 혀 끝에 단맛이 감돈다. 술을 입안에 머금고 있으면 혓바닥과 입천장이 소금에 절여진 듯 얼얼하다. 목 안으로 술을 떨어뜨리고 나면, 카아! 하고 속이 타고, 코끝이 찡해진다. 희석식 소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고 풍부한 향과 맛이 있다. 어떤 이는 안동 소주의 향이 방금 뿌린 향수처럼 강렬하다고 말한다. 술의 기질이 강하고 카랑카랑하다. 장수가 전장터에 나가기 직전 비장하게 들이키는 한잔 술 같다. 그래서 안동소주를 대하면, 서늘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안동이 훌륭한 선비들을 많이 낸 동네이지만, 안동 소주에서는 대륙을 달리는 무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안동소주 한 잔을 맛보면, 안동 사람들의 또 다른 기상과 우리 소주의 진면목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허시명은?

허시명은 대한민국 1호 술평론가이자, 술 기행가, 막걸리 감별사다. 현재 ‘막걸리학교’ 교장이자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문화부 전통가양주실태조사사업 책임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주품평회 심사위원, 국세청 주류질인증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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