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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주를 가로지르는 아프로 퓨처리즘의 원점

[장르의 개척자들] 선 라(Sun Ra)

2024.06.29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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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라(Sun Ra)’는 대체로 재즈 분야에서 언급되고 분류되어 왔지만 사실 편리하게 특정 장르로 구분할만한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그는 모달 재즈부터 프리 재즈, 사이키델릭, 스피리추얼 재즈, 그리고 빅 밴드 앙상블까지 재즈 안에서 가능한 모든 것들을 포괄해냈고 심지어는 재즈의 바운더리를 넘어서기도 했다. 음악 외적으로는 시와 철학, 고고학, 그리고 천문학 등을 아우르고 있었다. 

토성으로부터 지구에 온 태양신, 초현실적 우주 사운드의 창조자, 그리고 아프로 퓨처리즘의 개념을 확립시켜낸 선 라는 생존해 있던 1993년까지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가면서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가 지구를 떠나 우주로 돌아갔다 표현했다.

이집트의 태양신을 따라 스스로를 ‘선 라(Sun Ra)’라고 지칭한 이 위대한 선구자는 복잡한 페르소나와 신화를 개발했다. 심지어 퍼포먼스 시에도 고대 이집트와 우주 시대에 영감 받은 정교하고 미래적인 의상을 착용했다. 

선 라의 음악은 지구를 넘어 새로운 우주 그리고 미래 시제로 사람들을 이끌어낼만한 원동력을 선사했다. 

역사상 가장 특이한 재즈 아티스트였던 선 라는 약 40여년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양의 음악을 녹음했고 이는 너무 방대했기 때문에 일일이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공연장에서 녹음한 것들을 다음 공연장에서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그가 진행했던 공연 횟수만큼의 레코드가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오히려 생전보다 더 많은 음반들이 사후에 발매됐는데, 팬들은 파도 파도 끊임없이 발굴되는 선 라의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행복해했다. 

이는 마치 미지의 우주 공간안에 별처럼 존재하는 라이브러리를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기쁨에 다름 아니었다. 20세기에 가장 다작을 녹음한 예술가로 알려져 있는 그는 미래의 음악을 위한 모든 길을 열었고 지금도 열고 있는 중이다. 

1990년 무대에서 공연 중인 선 라(사진=getty images korea)
1990년 무대에서 공연 중인 선 라(사진=getty images korea)

그가 정말로 태양신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선 라는 자신이 만들어낸 하나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연기했다. 

1937년 무렵 갑자기 밝고 강렬한 빛에 쌓여 일시적으로 토성에 텔레포트했다고 밝혔는데 UFO에 의한 납치 사건이 널리 전파되기 이전에, 그러니까 인류가 외계인을 의식하기 약 20년 전에 그는 이미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선 라는 이후 수많은 기믹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그 토대를 구축했던 셈이다. 그는 최초의 기믹/컨셉 아티스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본인 스스로가 컨셉이 아니라 자신을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실제 이름 또한 ‘선 라’로 개명하면서 여권에도 그렇게 등록했는데, ‘라’ 이외의 이름은 모두 자신과 상관없다며 자신의 본래의 신원을 계속 부정했다. 재즈 음반사 임펄스의 계약서 내용 중에는 “지구 내에서만 계약을 한정한다”는 항목을 추가하기도 했다. 

‘허먼 풀 블라운트’라는 이름으로 1914년 태어난 선 라는 앨라배마에서 성장했는데 그의 초창기 시절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개인적인 사항들은 대부분 사후 수년에 걸쳐 공개된 것들이었다. 선 라는 1940년대 시카고 재즈 씬에 처음 출몰했고 이후 뉴욕과 필라델피아,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거점을 옮겼다. 

폭넓고 절충적이며 또한 전위적인 음악들부터 스윙과 비밥, 프리 재즈와 퓨전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재즈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말할 수 있었다. 솔로 피아노 작업부터 두왑과 R&B, 그리고 30인조 이상의 빅밴드까지 그가 탐구해온 분야는 좀처럼 하나의 틀로 규정지을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연주자들로 구성된 자신의 백업 앙상블 ‘알케스트라(‘방주’의 의미인 ‘아크’와 ‘오케스트라’의 합성어)’를 이끌었고 이는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알케스트라는 총 20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전세계를 투어하고 있으며 여전히 앨범 또한 발표하고 있다. 

1990년 무렵 뇌졸중을 겪었지만 계속 곡을 만들고 알케스트라를 이끌었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자 공연과 투어가 불가능해지면서 알케스트라의 색소폰 주자 존 길모어에게 리더 자리를 임명했다. 

존 길모어 또한 1995년 사망했고 이후 마샬 알렌에게로 계승된 것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1958년에 알케스트라에 가입한 마샬 알렌은 올해로 정확하게 만 100세가 됐다. 

1992년 후반 자신의 지구 고향인 앨라배마 버밍햄으로 돌아온 선 라는 자신의 누나의 보호 아래 요양하며 지냈다. 뇌졸중을 시작으로 울혈성 심부전, 호흡부전, 순환계 문제 및 기타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던 그는 1993년 5월 30일 병원에서 사망한다. 

선 라가 사망한지 30년이 넘었음에도 현 세대에도 여전히 그의 음악이 애청되고 또한 발견되고 있는데 이만큼 폭넓고 컬트적인 인기를 유지하는 재즈 뮤지션도 드물지 않나 싶다. 

재즈 씬은 물론 플라잉 로터스와 매드립, 심지어는 선 라의 ‘Nuclear War’를 EP로까지 제작한 요 라 텡고, 선 라의 ‘Rocket Number 9’을 차용한 레이디 가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의외의 지점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선 라가 지구를 계몽시키기 위해 왔다고는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비웃거나 혹은 무시했다.

심지어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흑인이었던 그에게 어떤 멸시의 분위기마저 있었음에도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사고를 이어 나갔으며 스스로의 아이디어에 두려움이 없었다. 

과학과 고고학, 흑인의 민간전승, 오컬트 등을 난해하게 자신의 음악에 접목시킨 선 라의 세계관은 종종 철학으로 묘사됐지만 스스로는 그 용어를 거부하고 이를 ‘방정식’이라 칭했다. 

철학은 추상적인 추론에 기반을 두는 반면 자신은 논리와 실용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완성해나간 소리의 여정은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 등 지구 상의 개념을 초월한 어떤 불가사의한 조화를 이끌어냈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믿음은 그가 지구를 떠나는 날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지구는 음악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지구는 일정한 리듬, 소리, 선율로 움직인다. 음악이 멈추면 지구도 멈추고 지구상에 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 - 선 라

☞ 추천 음반

◆ Cosmic Tones For Mental Therapy (1967 / Saturn, Evidence)

7명의 타악기 연주자가 참여한 생생하고 혼란스러운 타악기 잼 레코드. 거칠고 미래 지향적인 구성에 마샬 알렌의 아름다운 오보에가 분위기를 보다 복합적으로 만들어낸다.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하는 무언가가 자유롭게 표현된 앨범은 이후 세대로 이어지는 사이키델리아, 그리고 조지 클린턴의 훵크의 맥락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다. 

◆ Space Is the Place (1974)

물론 동명의 음반도 존재하지만 선 라의 어떤 정신을 담은 영화 작품이기도 하다. 

<제7의 봉인>과 <엘 토포>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블랙스플로테이션 버전의 이 영화는 5, 60년대 SF의 미학에 대한 오마주를 바탕으로 구성한 폭발력 있는 비주얼 덕분에 선 라의 가상 우주 진화론을 간접 체험하게끔 유도한다. 

이것을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느냐, 혹은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처럼 페이크 다큐로 받아들이느냐는 순전히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있지만 어찌됐건 흥미로운 결과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 On the Pulse >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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