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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의 초석을 다진, 모든 ‘어둠의 자식들’의 아버지

[장르의 개척자들]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2023.11.17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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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사바스’가 이후 수십년 동안 음악 산업, 정확히는 메탈과 밴드 씬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파멸을 알리는 기타와 묵직한 베이스, 경고하듯 휘몰아치는 거친 드럼, 그리고 위협적인 비명의 목소리는 밴드 고유의 스타일에서 장르로 규격화 됐다. 

이들이 전하는 공포와 파괴, 그리고 폭력이라는 주제는 유독 큰 소리로 뿜어져 나올 때에 제대로 투영됐고 메시지 또한 명확하게 전달됐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광기의 소리를 쌓아 올려갔다.

블랙 사바스는 헤비메탈의 선구자로 자주 인용되곤 한다. 물론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블루 치어 같은 팀이 비슷한 시기 존재했지만 블랙 사바스 만큼 헤비메탈을 굳건하게 만든 밴드는 없다. 

정작 레드 제플린과 블랙 사바스 당사자들은 ‘헤비메탈’이라 불리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후에 주다스 프리스트의 경우 앞의 밴드들이 모욕이라 여겼던 ‘헤비메탈’이라는 명칭을 자랑스럽게 자신들을 소개하는 데에 사용했다. 

2013년 11월 26일 덴마크 코펜하겐의 포룸 아레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블랙 사바스가 공연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 Photo/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3년 11월 26일 덴마크 코펜하겐의 포룸 아레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블랙 사바스가 공연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 Photo/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블랙 사바스는 헤비메탈 사운드를 개척하는 데에 이어 록 장르의 전환을 일으켰다. 

둠, 스토너, 슬러지 메탈의 원류를 찾아 올라가보면 결국 끝에는 블랙 사바스가 있었다. 단순히 빠르고 화려하게 질주하는 것만이 메탈이 아니라는 사실을 블랙 사바스는 새삼 증명해 왔다. 

밴드의 메인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자인 토이 아이오미, 베이스 연주자이자 메인 작사가인 기저 버틀러, 재즈에 정통한 드러머 빌 워드, 그리고 후에 솔로로 독립해 별개의 아이콘이 되는 보컬 오지 오스본을 중심으로 1968년 버밍엄에서 블랙 사바스가 탄생했다. 

영국의 산업 도시 버밍엄의 거친 노동자 계급 환경은 밴드의 사운드와 미학을 형성하는 데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밴드의 초기 음악은 블루스와 그들을 둘러싼 산업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버밍엄 등지의 공장과 제철소는 밴드 음악의 밑바탕이 되는 무겁고 불길한 느낌을 은연 중에 제공했다. 

비슷한 시기 주다스 프리스트 또한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들은 ‘버밍엄 사운드’라 인식될만한 스타일의 토대를 마련한다. 

밝고 경쾌한 5,60년대 팝 음악, 로큰롤, 그리고 포크가 지배했던 시기 블랙 사바스는 불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강조한 헤비한 사운드, 그리고 우울한 가사를 바탕으로 다른 밴드들과 차별화를 뒀다. 

그러니까 공장 지대의 암울함, 도피에 대한 열망이 초기 블랙 사바스의 음악에 스며들어 있었다. 주변 환경의 가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한편 청중에게는 메탈 사운드 특유의 카타르시스적 해방감을 제공했다. 

토니 아이오미는 거대한 전차가 강철의 방어막을 장착하고 달려오는 것만 같은 무겁고 파괴력 있는 기타 리프를 만들고 연주했다. 

17세의 아이오미는 판금 공장에서 일하다가 산업재해로 오른손 중지와 약지 끝부분을 잃었다. 

왼손잡이였던 지라 연주하는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꿔볼까 했지만 결국 잘려 나간 손가락들 끝에 플라스틱 골무를 끼우고는 원래의 왼손 방향으로 연주했다. 

그가 사고로 절망하고 있었을 당시 공장의 감독은 그에게 유명한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를 들려줬다. 

화재로 인한 부상으로 두 손가락으로만 연주했던 장고 라인하르트의 음반을 들은 이후 토니 아이오미는 충격을 받고 다시 연주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완성한 단순하면서도 파괴적인 리프는 메탈리카의 제임스 햇필드부터 라몬스의 조니 라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영향을 미쳤다.

종교와 신비주의, 죽음과 종말, 허무주의, 전쟁 등의 가사를 작성했던 베이스 연주자 기저 버틀러는 정작 엄격한 아일랜드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했다. 

수년에 걸쳐 정신 건강으로 고생해온 기저 버틀러는 자신이 느끼는 바를 가사로 풀어냈는데, 그는 블랙 사바스가 없었다면 아마 자살했을 지도 모른다 고백하기도 했다. 블랙 사바스의 곡들 또한 그의 가사와 연주가 없었다면 그 생명력을 잃었을 것이다.

블랙 사바스는 남들이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다루는 한편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한 굉음의 사운드를 동시에 포착해냈다. 

금기시되는 주제, 그리고 새로운 녹음기술의 탐구에 이르기까지 등장 당시 이들은 그야말로 가장 새로운 밴드였다. 

1970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매하고 불과 4개월만에 녹음해 같은 해 발매한 두 번째 앨범 <Paranoid>는 밴드를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 

앨범은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불신과 당시로는 드물게 정신 건강, 약물 남용 같은 문제를 다뤄내면서 시대를 앞서갔다. 그러니까 이들은 밥 딜런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문제들을 가사에 반영했다. 

그리고 당시 사회를 괴롭혔던 문제에 관해 느낀 감정과 공포를 음악을 통해 쏟아냈다. <Paranoid>는 기독교 단체들에게 비난 받았고 어느 간호사를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괴담이 돌기도 했지만 UK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의심할 여지없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갔다.

‘Iron Man’ 같은 곡은 고립과 외로움에 관한 문제를 다뤘는데, 가사를 썼던 기저 버틀러는 그 당시 마블 코믹스의 <아이언 맨>을 읽은 적이 없었다 밝혔다. 

후에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 <아이언맨>에서는 이들의 동명의 곡, 그리고 티셔츠까지 등장한다. 

<Paranoid> 이듬 해에 발표한 <Master of Reality>의 경우 미국에서는 사전 주문만으로 이미 골드 레코드를 달성했다. 

아마겟돈 직전의 사운드를 담은 <Master of Reality>를 두고 스매싱 펌킨스의 빌리 코건은 90년대 ‘그런지’ 무브먼트가 가능하게끔 만든 앨범이라 칭송했다. 

처음으로 밴드 스스로가 직접 프로듀스했던 <Vol. 4>, 예스의 릭 웨이크먼까지 끌어들인 <Sabbath Bloody Sabbath> 등 이들은 발매하는 모든 앨범들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헤비 메탈의 살아있는 전설 오지 오스본(오른쪽)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자신의 새 앨범 <스크림(Scream)>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오스본이 속했던 밴드 블랙 사바스의 문신을 새길 정도로 오스본의 팬인 음악가 커트 쿠드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 Photo/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헤비 메탈의 살아있는 전설 오지 오스본(오른쪽)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자신의 새 앨범 <스크림(Scream)>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오스본이 속했던 밴드 블랙 사바스의 문신을 새길 정도로 오스본의 팬인 음악가 커트 쿠드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 Photo/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알려진 대로 <Never Say Die!> 이후 오지 오스본이 탈퇴하면서 밴드는 로니 제임스 디오를 새 보컬로 맞이했다. 이후 수차례 멤버 교체가 있었고 1995년 내한했을 당시엔 오리지널 멤버가 토니 아이오미 밖에 없었다. 

이후 다시 디오가 팀에 들어오고 기저 버틀러, 빌 워드까지 복귀하면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2006년 무렵에는 밴드 이름을 디오가 가입하고 처음 냈던 앨범 제목이기도 한 ‘헤븐 앤 헬’로 바꾼다. 

어둡고 거칠었던 오지 오스본 시대, 그리고 멜로딕한 디오 시대 둘 다 각자의 매력이 있었고 이들 둘은 전혀 다른 밴드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디오가 2010년 암으로 사망하고 2011년에 오지 오스본이 다시 밴드로 복귀하면서 블랙 사바스의 오리지널 라인업이 다시금 완성된다. 그렇게 모인 이후 2013년 발매한 <13>은 이들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됐다.

블랙 사바스는 새로운 사운드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 장르의 의미를 정의했고 뒤 따르는 밴드들을 위한 길을 열었다. 

블랙 사바스가 구축해낸 어두운 주제와 관련한 깊은 사운드적 연구의 결과는 후에 모터헤드, 아이언 메이든, 더 나아가서는 스토너 밴드 슬립과 ‘War Pig’를 커버하기도 했던 플레이밍 립스까지 그 유산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가고 있다. 

2017년에는 <The End>라는 타이틀의 마지막 투어를 통해 팬들과의 작별을 고했다. 다행히 현재도 원년 멤버들은 모두 살아 있지만 이 마지막 투어는 블랙 사바스라는 위대한 밴드, 그리고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계속해서 새로운 세대의 헤비니스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꾸준히 언급되어지고 또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마치 이들이 노래하는 흑마술처럼.

☞ 추천 음반

◆ Technical Ecstasy(1976 / Vertigo)

사실 이 시기는 블랙 사바스에게 있어서는 좀 애매했을 때였다. 펑크 록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고 이들의 매니저는 함께 전담하는 밴드였던 ELO에 집중하고 있었다. 

토니 아이오미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퀸이나 포리너 같은 음악을 하려 했는데, 이들이 자신들에게 영향 받은 밴드들과 비슷한 음악을 하려 했기에 몇몇 극렬 블랙 사바스 팬들은 이 앨범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빌 워드가 작곡한 ‘It’s Alright’은 마치 폴 매카트니처럼 들리고 ‘Rock’ n’ Roll Doctor’는 키스처럼 들리며 ‘She’s Gone’ 같은 스트링이 아름다운 발라드 또한 존재하는데, 자신의 시대를 잃어가는 밴드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하는 지에 대한 연구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라 하겠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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