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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의 발명 (혹은) 록스타의 발명

[장르의 개척자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2023.10.31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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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를 설명하는 데에 가장 실용적인 표현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리고 혁신적인 기타리스트 정도가 있을 것이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라이브 앨범과 사후 발매작을 제외한 총 세 장의 정규 앨범만으로 그는 전통적인 전기 기타, 그리고 여러 음악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기존의 문화적 양식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60년대 미국 반문화의 사운드트랙을 제공하면서 지배 계급과 엘리트 계급을 비웃었으며, 결국에는 성인(聖人)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긴 역사를 지닌 기타라는 악기를 불과 몇 년 만에 혼돈과 스릴이 넘치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냈고 이러한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1967년 영국 한 클럽서 공연하던 지미 헨드릭스 (사진=저작권자(c) CAMERA PRESS/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967년 영국 한 클럽서 공연하던 지미 헨드릭스 (사진=저작권자(c) CAMERA PRESS/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942년 시애틀에서 태어난 지미 헨드릭스는 그 시대의 사운드를 정의한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1970년 9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세기의 기타 영웅이 사망하면서 세상은 너무도 순식간에 전설을 잃었다. 

2010년대에도 꾸준히 그의 미공개 라이브 음원들이 발표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람들이 얼마나 생전 그가 남긴 단 한조각이라도 어떻게 든 붙잡고 싶어하는 지에 대한 열망 비슷한 것이 느껴지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너무도 짧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영향력 있는 경력을 쌓아 올린 지미 헨드릭스는 전기 기타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오른손 잡이 스트라토캐스터를 거꾸로 뒤집어 왼손방향으로 연주했던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피드백 노이즈와 천둥 소리 같은 퍼즈 사운드를 벽처럼 쌓아올린 M사 앰프 캐비닛 앞에서 사정없이 퍼부어 댔다. 

다양한 이펙터들을 실험했고 직접 제작까지 참여하기도 했으며, 디스토션과 거대한 볼륨을 통해 혁신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로저 메이어와 제작한 옥타비아,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애호되는 퍼즈 페이스, ‘Voodoo Child’의 인트로에 등장하는 와 페달 등 당시 그 누구보다도 직접적으로 자신의 사운드를 통제하고 조각해내려 했다.

물론 다른 동시대 뮤지션들 또한 보다 공격적인 기타 톤을 연구하기는 했지만 지미 헨드릭스는 그야말로 앰프를 한계까지 밀어붙여내면서 아무도 가본 적 없는 행복한 혼돈의 상태에 도달하려 했다. 

블루스와 훵크, 포크, 사이키델릭의 독특한 혼합을 이뤄냈고, 이는 편의상 록이라 축약되곤 했다. 

무엇보다 그가 완성한 다양한 기타 테크닉은 여러 세대에 걸쳐 모방되었고, 단순한 손가락 기교를 넘어 코드 운용과 사운드 메이킹의 측면에 있어서도 현대 팝 음악은 지미 헨드릭스에게 무한한 빚을 지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헤비 메탈이 되는 음악의 청사진을 최초로 개발한 이 또한 지미 헨드릭스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독특한 퍼포먼스 또한 그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과거 리틀 리차드의 뒤에서 연주하며 본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빠른 시일 내에 터득할 수 있었다. 

그는 기타를 부수고, 기타에 불을 붙이고, 이빨과 혀를 이용해 기타를 연주했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이런 차력 쇼는 연주 바깥의 일이었는데, 그는 연주자로서, 그리고 쇼맨으로서 각각의 본분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지미 헨드릭스가 데뷔하기 이전에는 누구도 지미 헨드릭스 같은 기타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특히 미국에서는 당시 이 거대한 소리를 청중들이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결국 영국이 먼저 지미 헨드릭스의 진가를 알아봤고 영국에서의 성공 이후 오히려 미국으로 금의환향하게 됐다. 그가 사망하게 되는 장소 또한 영국 런던의 어느 호텔이었다.

지미 헨드릭스가 영국에 도달하기 이전 에릭 클랩튼은 기타의 신으로 여겨졌다. 무엇보다 에릭 클랩튼은 코드를 거의 연주하지 않는 엄격한 리드 기타리스트로 유명했다. 

그러는 와중 등장한 지미 헨드릭스는 리듬과 리드를 동시에 연주하는 주법을 개척해 내면서 영국 기타리스트들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이 지난 2013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이 지난 2013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과거 리틀 리차드와 아이슬리 브라더스의 백업 기타리스트는 지미 헨드릭스였고 아무래도 흑인음악에서 기타는 리듬이 중요했기 때문에 충분히 리듬 파트에 단련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는 리듬과 리드 기타의 하이브리드를 완성했고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이후에는 결국 하나의 트렌드, 혹은 스타일로 굳어졌다. 

그러니까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Under The Bridge’, 그리고 펄 잼의 ‘Yellow Ledbetter’ 같은 곡에서 들을 수 있는 기타 리프들이 바로 헨드릭스의 유산과도 같은 하이브리드 스타일이다.

에릭 클랩튼은 지미 헨드릭스가 몬트레이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것을 본 이후 와 페달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며, 모두가 천재라 추앙했던 칼 같은 플레이의 제프 벡 경우 헨드릭스의 연주를 보고는 자신의 연주방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시 노련한 최정상의 기타리스트들이 지미 헨드릭스의 공연을 본 직후 집으로 돌아가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의 연주자로써의 가능성, 그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갔다.

지미 헨드릭스를 추앙하는 이들은 너무 많아서 축약이 불가능하다. 당장에는 스티비 레이 본 정도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지미 헨드릭스를 따라하느라 트레몰로 암을 왼손잡이 용으로 교체해 일부러 불편하게 쓰기까지도 했는데, 스티비 레이 본은 어린 시절부터 지미 헨드릭스의 걸작 <Are You Experienced>의 전곡을 연마했다.

존 메이어의 가장 큰 영향은 스티비 레이 본이었고 스티비 레이 본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이는 지미 헨드릭스였다. 존 메이어 또한 자신의 앨범에 지미 헨드릭스의 ‘Bold as Love’를 수록했다.

디안젤로는 지미 헨드릭스가 설립한 뉴욕의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에서 앨범 <Voodoo>를 작업하면서 지미 헨드릭스의 영혼을 봤다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앨범 역시 걸작이 됐다.

마릴린 맨슨 출신의 존 5는 어린 시절 지미 헨드릭스가 엄지 손가락을 운지하는 것을 보고는 그 연주 방식을 배웠고, 퀸의 브라이언 메이는 지미 헨드릭스의 공연을 직접 목격한 이후 기타리스트로서 정말 포기하고 싶게끔 만들었다는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 지미 헨드릭스를 보게 되면 중간은 없고 양 극단의 감정만이 존재했다. 기타 연주를 더 사랑하게 되거나 아님 아예 포기하고 싶어 지거나.

일부 매체에서는 나무 수급의 부족과 전자음악 및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기타 시장의 위기를 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뜯어보면 기타 시장은 여전히 성황을 이루고 있다. 

과거에 비해 새로운 기타 영웅이 출연하는 빈도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서 기타는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지미 헨드릭스는 기타라는 악기가 가장 멋있을 때 등장했던 영웅이며, 역으로 기타라는 악기를 가장 멋있는 물건으로 인식하게끔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이 창의적 천재 때문에 당시 너도 나도 기타를 구입했고 이는 시대를 넘어서도 계속됐다. 여전히 기타 샵들에는 지미 헨드릭스의 포스터가 하나쯤은 붙어 있다.

지미 헨드릭스는 흉내 낼 수 없는 시대를 창조했다. 짧은 음악 활동 기간으로 20세기 록 음악을 정의 내렸고 이후 세계의 판도를 뒤바꿔 놓았다. 

지미 헨드릭스가 20대라는 지나치게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이 분하다 생각될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 그리고 록 음악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너무나도 커서 애초에 그가 이 세상을 떠나본 적 조차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간혹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노스할리우드의 한 건물 벽에 있는 지미 헨드릭스의 벽화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노스할리우드의 한 건물 벽에 있는 지미 헨드릭스의 벽화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추천 음반

◆ Are You Experienced (1967 / Track)

국내 발매반 레코드판 속 해설지를 보면 한글로 “경험”이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다. 일생을 살면서 한번은 ‘경험’해봐야만 하는 작품.

◆ Stone Free: A Tribute to Jimi Hendrix (1993 / Reprise) 

 Power of Soul: A Tribute to Jimi Hendrix (2004 / Image Entertainment)

사실 지미 헨드릭스의 고전들은 다른 뮤지션들의 커버 버전을 듣는 게 또 유독 재미있는데, 이 트리뷰트 앨범들은 마치 지미 헨드릭스를 두고 누가 더 충성스러운 후계자인지를 가리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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