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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결정적 전투들] ⑨ 백마고지전투
한국군 단독작전 눈부신 전과 세계가 주목
백마고지 기슭의 아군 진지 풍경. 자료사진 |
■ 전투 배경
백마고지 전투가 발생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중반에 접어들어서도 비교적 쉽게 타결될 것으로 예상했던 포로 협상이 그 타결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하게 되자, 공산군이 군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벌인 전투였다. 백마고지 전투가 발생하기 전 쌍방은 모든 전선에 걸쳐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대규모의 전면공세를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는 휴전 회담장에서 서로 유리한 휴전조건을 쟁취하려는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쌍방은 모두 그 결과를 주시하며 군사력 증강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휴전 협상이 결렬되자 공산 측은 휴전협상에서 얻지 못한 것을 전투에서 얻으려는 듯 유엔군이 장악한 전선의 주요 고지들에 대한 공격을 일제히 재개했다. 이때 적은 비교적 전선이 안정된 서부와 동부지역보다는 중부지역의 연천~철원 북방의 역곡천 일대에서 유리한 지형 확보를 위한 일련의 고지쟁탈전을 전개했다. 그 가운데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바로 국군 9사단과 중공군이 395고지 일대를 놓고 혈전을 벌였던 백마고지 전투였다.
그러면 중공군은 왜 백마고지를 노렸을까. 그것은 백마고지가 갖는 전략적 이점 때문이었다. 잘 알다시피 백마고지는 행정구역상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의 야산으로 철원읍 서북방 12㎞ 지점의 효성산(596고지) 남쪽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해발 395m의 고지였다.
하지만 6·25전쟁 전까지 이 일대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1951년 휴전협상이 시작될 때쯤부터 이 일대에서 군사적 접촉이 계속되면서 관심을 모으게 됐다. 즉, 이 지역은 철원~평강~김화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 중 하나인 철원의 서남쪽 견부(肩部)를 구성하는 요충지였다. 따라서 만약 적이 이곳을 점령하면 철원평야가 적의 감제하에 놓이게 될 뿐만 아니라 중부지역에 배치된 아군의 병참선인 3번 도로를 비롯한 많은 보급로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질 당시 국군 9사단은 미 9군단에 배속돼 있었다. 사단장은 춘천대첩, 동락리전투, 신녕전투 후 압록강 초산에 1착으로 도착해 청성 6사단의 신화를 낳게 한 김종오 장군이었다. 그는 1952년 5월 3일부로 9사단의 8대 사단장으로 부임해 백마고지 전투를 통해 다시 한번 국군 역사에 영원히 남길 ‘백마 9사단’의 신화를 남긴 명장 중의 명장이었다.
백마고지 전투 이전 9사단의 상황은 이러했다. 미 9군단 좌익의 9사단은 이 전투가 벌어지기 1년 전인 1951년 10월 17일부터 철원지역의 주저항선에 투입돼 좌로는 백마고지, 우로는 중강리까지 11㎞의 철원평야를 방어하고 있었다. 사단정면의 적은 중공군 38군 예하 114사단의 340연대와 324연대였으며, 중공군 113사단이 좌 인접 미2사단 정면에, 중공군 112사단이 38군 예비로서 수정덕산 부근에 배치돼 있었다. 이들은 왜식장총, 다발총, 기관단총, 중기관총, 무반동총, 박격포 등으로 장비되고 보급ㆍ훈련 등도 양호한 것으로 판단됐다.
사단의 주저항선은 대부분 철원평야를 가로지르는 개활지였으며 다만 좌단의 395고지 부근만 구릉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적이 효성산(619고지)을 비롯한 유리한 고지들을 장악해 사단 방어지역을 감제하고 있었으므로 전반적으로 아군은 방어에 취약했다. 특히 주저항선 5㎞ 전방에 위치한 봉래호는 작전지역의 역곡천을 범람시킬 수 있어 작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사단장 김종오 소장은 9월 22일부로 좌측에 30연대, 우측에 29연대를 배치하고, 28연대를 예비로 확보했다. 또 배속받은 51연대는 대대단위로 운용하면서 주저항선을 방어케 했다. 백마고지 방어를 담당한 30연대는 395고지에 1대대를, 중마산 일대에 2대대, 역곡천 남안에 예비 3대대를 각각 배치했다.
사단은 적이 백마고지를 탈취해 철원평야를 제압하는 동시에 차기대공세를 위한 발판을 구축하며 철원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을 통제함으로써 중부전선에서 전략적 이점을 확보해 아군을 크게 위협할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방어태세를 강화했다.
이 무렵 전 전선에 걸쳐 적의 공세징후가 있어 정찰과 경계를 강화하던 10월 3일에 중공군 군관 1명이 귀순해, “중공군 114사단이 10월 4일과 6일 사이에 백마고지에 대한 공격을 할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에 사단은 백마고지 방어병력을 2개 대대규모로 증강하고, 사단예비로 하여금 즉각 역습할 수 있도록 하고, 정찰활동을 더욱 강화했다.
1951년 하반기부터 1953년 7월 휴전 때까지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을 가로지르는 선상에서 주요 고지군을 놓고 끝없는 혈전이 벌어졌다. 백마고지 전투는 이 같은 고지 쟁탈전 시기에 국군이 대승을 거둔 대표적 사례다. 그림은 베티고지전투를 주제로 1980년대에 그려진 호국 기록화(작품 일부)다. |
■ 전투 경과
중공군은 1952년 10월 6일 아침 마침내 공격을 개시했다. 적은 국군 9사단 정면에 포격한 데 이어 봉래호 둑을 파괴해 역곡천을 범람시켰다. 이어 적 114사단이 저녁 7시 15분 30연대가 방어하고 있던 백마고지 일대를 공격했다. 연대는 이날 밤 적과 3차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적을 격퇴했으나 다음날 밤 적이 2개 대대로 백마고지를 공격하자, 30연대는 고지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2시간 후 아군 28연대가 이를 역습으로 탈환했다.
10월 8일 새벽 적은 다시 공격했다. 이날 적은 전날까지의 공격이 여의치 못하자 1개 연대를 추가로 투입했다. 이에 국군 28연대는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짙은 안개로 포병과 항공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아침 8시 10분 어쩔 수 없이 주봉이 적에게 피탈됐다. 사단은 오후 5시 28연대 3대대를 투입해 밤 11시 5분 다시 주봉을 탈환했다.
그러나 5차에 걸친 공방전에서 28연대와 30연대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사단은 적 포로의 진술을 기초로 적의 공격이 당분간 계속되리라 판단하고, 29연대를 백마고지에 투입하기 위해 사단예비로 확보했다. 9일 밤 자정이 지나면서 적의 파상공격으로 고지 주봉과 그 우측 능선 일부를 다시 빼앗겼다. 이에 사단은 날이 밝자 적이 점령한 고지에 1만7700발의 포탄과 항공폭격을 실시한 후 29연대로 하여금 역습하게 해 이를 탈환했다.
적은 10일 새벽 다시 공격함으로써 피아간에는 수류탄 투척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에 국군 29연대 1대대는 일시 9부 능선으로 철수한 후, 2대대의 증원을 받아 다시 정상을 탈환했으나, 10월 11일 밤 고지는 다시 적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12일 아침 30연대가 29연대를 초월 공격해 이를 탈환했으나, 적의 반격을 받고 다시 빼앗겼다. 이에 28연대가 10월 15일까지 밀고 밀리는 육탄전을 벌여 고지를 탈환했다. 뒤이어 29연대가 이 기세를 몰아 395고지 북쪽 낙타능선상의 전초진지를 탈환함으로써 적을 완전히 물리쳤다. 이로써 약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거의 궤멸상태에 이른 중공군 38군은 드디어 전선에서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국군 9사단은 10월 6일부터 중공군 38군의 공격을 받아 연 10여 일간 24회나 주인이 바뀌는 대혈전을 수행한 끝에 마침내 백마고지를 확보하게 됐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38군은 총 9개 연대 중 7개 연대를 투입해 그중 1만여 명의 피해를 입은 반면, 9사단은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3416명의 피해만 입었을 뿐이다.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 이승만 대통령과 백마고지 전투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에서 국군의 전투능력과 투지를 유감없이 발휘한 결전방어의 대표적인 전투로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치열했다. 9사단이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국군은 계속해 철원평야를 아군의 통제하에 둘 수 있었다. 또 중부지역의 작전을 위해 필수적인 주요 도로를 확보함으로써 중부지역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한국군 지휘관의 전투지휘 능력과 한국군 부대의 전투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9사단은 백마고지 전투 중 적시적절한 예비대 투입과 부대교대로 부대원들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목표탈취를 위한 투지를 견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포병 및 항공화력을 지원받았다.
결국 이러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9사단은 철의 삼각지를 지배하기 위한 적의 전략적 기도를 꺾고 끝내 고지를 확보했다. 이 전투로 국군 9사단은 철의 삼각지대의 좌변 일각인 철원지역을 계속 장악하게 됐으며, 중공군 38군은 그들의 23군과 교대한 후 후방으로 물러났다.
한마디로 말해 백마고지 전투는 우리 국군이 단독으로 수행한 6·25 전쟁사에서 몇 안 되는 ‘지상전의 꽃’이라고 부를 만한 매우 값어치 있는 전투였다. 이 전투를 통해 우리 국군의 명예는 크게 올라갔고, 이에 따라 국군 장병들의 사기도 크게 고양됐다. 이 전투는 매일 신문지상에 보도돼 이승만 대통령과 유엔군, 그리고 온 국민의 관심거리가 됐다. 따라서 이 전투는 하나의 작전 차원을 넘어서 빼앗느냐 또는 빼앗기느냐 하는 쌍방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명예를 건 싸움으로 변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 전투에 유례없이 두 차례나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13일 오후 미 8군사령관 밴플리트 대장과 함께 사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귀관들이 막강한 미군 사단들 못지않게 용감하게 승리해 주고, 국위를 선양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용기를 얻어 국정을 보살피고 있다”고 격려했다. 또 이 대통령은 전투가 끝난 직후 부슬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사단을 다시 방문해, “대단히 수고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때 함께 따라 온 밴플리트 장군도 “9사단이 이렇게 잘 싸워줄 줄은 몰랐다”며 “마이 디비전(My Division)”이라고 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방문은 9사단의 장병들에게 절대 져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다지게 했고, 그 결과 9사단은 백마고지 전투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 백마고지 3군신-난공불락 기관총진지 폭파 후 산화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초인의 힘을 발휘하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전투영웅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늘날까지 귀감으로 전해지고 있는 백마고지 3군신(軍神)의 활약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0월 12일, 아군은 빼앗긴 백마고지 정상을 되찾기 위해 공격을 재개했다. 이 임무는 30연대 1대대에 주어졌다. 그러나 공격 중 1대대는 9부능선에 설치된 적 기관총진지에서 뿜어대는 화력에 피해만 입을 뿐 공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적 기관총진지는 아군 공격정면의 길목에 있는 것으로 포병이나 공군 화력으로는 제압할 수 없는 곳에 설치된 난공불락의 진지였다. 이때 부하들의 많은 희생을 보다 못한 1대대 3중대 1소대장 강봉우 소위는 오귀봉 하사와 안영권 하사 등과 함께 수류탄을 뽑아 들고 적진에 뛰어들어 기관총진지를 폭파하고 자신들도 현지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로써 진로를 타개한 1중대 장병들은 일제히 돌격을 실시해 이날 오후 1시20분을 기해 백마고지 정상을 탈환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상의 탈환을 마지막으로 적은 다시 395 상봉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됐고, 이날 수훈을 세운 세 사람은 ‘백마고지 3군신’으로 추앙돼 청사에 길이 남을 호국의 별이 됐다. 또한 내외신의 종군기자들은 이 전투를 ‘백마산의 태극기’라는 표제로 보도해 세계의 주목을 받게 했다.
백마고지 전투 중 피아간에 엄청난 양의 포탄이 백마고지에 떨어졌다. 중공군이 5만5000발, 아군이 21만9954발의 포탄을 발사함으로써 총 27만4954발이라는 막대한 양의 포격이 이 작은 고지에 집중됐다. 유엔군의 항공기도 754회나 출격해 폭격을 가함으로써 고지 정상에는 풀 한 포기 남지 않았다. 극심한 폭격과 포격으로 고지의 수목이 모두 없어져 하얗게 된 민둥산의 모습이 마치 백마(白馬)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후부터 395고지 일대를 백마고지라 부르고, 이후 9사단을 백마부대라고 부르게 됐다.
■ 김영선 장군이 말하는 백마고지전투-후송 거부한 부상병들 진지에 남아 악전고투
백마고지 전투 당시 9사단 30연대 1대대장으로 전투에 참전했던 김영선(육사 7기ㆍ예비역 중장) 당시 소령은 1970년대 초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 전투 경험담을 상세하게 증언했었다. 김영선 장군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백마고지 전투의 실상을 살펴 본다.
개천절이자 추석이 겹친 10월 3일 나는 대대 지휘소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연대 작전주임으로부터 긴급 연락이 있어 작전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날 6중대 정면으로 귀순한 중공 114사단 340연대 2대대 7중대 소속 군관인 곡중교의 진술 내용을 들었다.
그것은 중공 38군장의 직접 명령에 의해 다음날인 10월 4일에 적이 대대적으로 백마고지를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또 적은 이 공격에 앞서 평강 부근의 봉래호 수문을 열어 백마고지 동남쪽으로 흐르는 역곡천을 범람케 해 고지를 고립시킨 다음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술에 따라 긴급 작전회의가 열렸으며 이에 대한 대책이 숙의됐다. 이 결과 연대장 임익순 대령은 우선 백마고지가 고립될 때에 대비해 일주일 이상을 지탱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하고 보급품이 집적돼야 한다는 판단 아래 3대대를 백마고지로 증원토록 조치했다.
이리하여 3대대는 10중대가 담당했던 정면과 3중대 정면 일부를 담당하고 11중대를 낙타능선으로 추진시켜 전진진지를 확보해 만반의 방어태세를 갖췄고 충분한 보급품이 노무자에 의해 계속 추진됐다.
한편 나는 봉우리를 뺏기면 다른 봉우리를 지킬 수 있도록 각 중대가 봉우리 단위로 사주방어 진지를 편성했다.
둘째로 적의 포격에 대비해 교통호를 한 길 이상의 깊이로 파 엄체호를 보강했다. 진지 전방의 철조망 3선을 7선으로 하며 지뢰를 조밀하게 매설하고 통신 와이어를 교통호 안에 전부 묻었다.
이와 같은 조치가 끝난 다음 나는 전 장병에게 “이제 우리는 죽어도 이 고지에서 죽고 살아도 여기에서 살아야 하다. 우리는 다 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싸워 이기자”라고 일장 훈시를 하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그런데 적의 공격예정일인 10월 4일에 막상 별다른 상황이 없자, 장병들은 다소 맥이 풀리는 듯했다.
10월 6일 오후 7시쯤에 이르러 드디어 적의 공격이 시작됐다. 최초에는 제3대대 정면으로 공세를 집중하더니 밤 8시쯤에는 3중대 정면으로 확대해 갔다. 밤 10시40분쯤에는 적의 포격으로 통신이 두절돼 각 중대의 전황을 파악할 수 없어 직접 각 중대에 나가 보았더니 포격으로 무전기가 파손되거나 안테나가 절단돼 통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2시쯤 적의 세 번째 공격이 시작됐는데 이때 적의 포격이 어찌나 심하던지 교통호가 전부 무너지고 흙먼지로 발목이 묻혔으며 진지 부근에는 피아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부상병들은 한결같이 후송을 거부하고 사력을 다해 끝까지 진지를 고수하는 눈물겨운 정경이 벌어졌다.
7일 오전 6시쯤 적은 드디어 퇴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대대는 적 1000여 명을 사살하고 10명을 포로로 했으며 각종 소총 202정과 다발총 49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고 서전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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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뉴스 “수출이 처음? 소상공인·중소기업 FTA 활용과 해외시장 개척 무료로 도와드립니다” 영세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활용해 수출에 나설 수 있도록 무료로 맞춤형 상담을 지원하고 있는 허제우 공익관세사. 사진 C영상미디어 서울본부세관 허제우 공익관세사 # 정밀기계 세척기를 수출하는 A업체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처음으로 헝가리 업체와 수출계약을 맺게 됐다. 하지만 수출 및 인증수출자 취득 경험이 없다보니 막막했다. 그러던 중 부산세관의 수출지원사업을 알게 됐고 공익관세사 제도를 알게 됐다. 최신 정밀기계의 원재료·완성품 품목분류 규정은 물론 인증수출자 취득을 위한 원산지확인서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공익관세사와 세관 직원들의 도움으로 관련 필요서류를 구비해 유럽 수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 조미김을 수출하는 H사는 다시마와 미역을 기반으로 하는 해조류 단백질 셰이크를 EU(독일·영국)에 수출하기 위해 마케팅을 진행 중이었으나 품목분류 및 신규인증 협정·품목 추가 등 용어나 절차가 어렵기만 했다. 결국 광주세관에서 운영 중인 공익관세사 제도를 통해 컨설팅을 신청했다. 공익관세사는 원산지결정기준·복합식품에 대한 주요 규제 내용(EU 복합식품 규정 등), 최근 통관이슈 등을 알려주고 수출 전 과정에 도움을 줬다. 공익관세사 제도는 관세청이 위촉한 민간 관세·통관 전문가인 관세사가 수출입 통관 전반에 대한 종합상담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우수한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고 싶어도 이와 관련해 전문가의 조력을 받기 어려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대상이다. 공익관세사 제도는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계기로 시작됐으며 관세청은 이를 통해 2024년 3월까지 10년간 3300여 개 기업에 무료 상담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세계 59개국과 21건의 FTA를 체결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FTA를 적극 활용해 수출에 나설 수 있도록 공익관세사 제도를 알리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관세청은 한국관세사회와 협력해 전국 세관 20곳에 47명의 공익관세사를 배치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23년부터 서울본부세관에서 공익관세사로 활동 중인 허제우 관세사(제우스관세사무소)를 만났다. 허 관세사는 전화나 이메일 상담은 물론 대면상담도 진행하고 필요한 경우 세관 직원과 함께 직접 기업을 찾아가 컨설팅을 한다. 본업은 본업대로 하면서 공익관세사 활동에도 열심인 그는 “공익 활동을 통해 보람도 느끼고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 관세청 공익관세사란? 관세사는 무역·통관 관련 숙달된 지식을 가진 전문가다. 관세청은 한국관세사회와 함께 현직에서 활동하는 관세사들을 공익관세사로 위촉해 공익을 목적으로 무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영세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수출입 업무에 관한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에 관세사로부터 꼭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FTA 활용과 해외통관애로 해소 등을 위해 공익관세사라는 제도가 생겼고 수출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있다. 어떻게 공익관세사가 됐나? 미디어를 통해 ‘찾아가는 법률 서비스’, ‘마을세무사 제도’ 등 다른 전문가들이 공익 목적으로 활동하는 걸 접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런 활동을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서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대가 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건 어떤 기분이고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관세청에도 공익관세사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2023년부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관세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공익관세사 업무를 병행하는 게 힘들겠다. 처음에는 내 일을 하면서 공익관세사 상담 업무를 하려니 시간도 부족하고 힘도 들었다. 그러나 공익관세사로 만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만나는 고객들과 굉장히 달랐다. 무역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고 첫 수출에 막막함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움이 절실하고 그런 만큼 효과도 컸다. 내가 해준 것보다 넘치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생생한 에너지를 얻었다. 게다가 A부터 Z까지 서류와 절차 등을 정리하다 보면 내 지식도 정리되는 느낌이다. 힘든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 상담 건수는 얼마나 되나? 전국 세관 기준 2023년 한 해에만 300건 정도의 상담을 했다. 그중 절반인 약 150건의 상담을 서울세관에서 지원했다. 상담 비율은 유선상담이 60%, 대면상담이 40% 정도다. 어떤 상담을 주로 하나? 국내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던 중소기업이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상담을 하는 사례가 가장 많다. FTA 활용 경험이 없는 기업의 경우 상대국 현지 바이어의 원산지증명서 요청을 받고 당황할 수 있다. 이때 공익관세사가 원산지증명서 발급부터 품목분류까지 자세한 컨설팅을 통해 FTA 혜택을 받아 수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의 수출기업도 통관에 문제가 생겨서 해결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가장 많은 상담 사례는? 통관 관련 문의가 가장 많다. 상대국 수입에는 어떤 요건 및 제약이 있는지, 통관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부터 시작해 해외 위탁가공무역 수출입 거래 및 제3자 무역까지 다양하다. 또 수출 시 가격 경쟁력이 중요하다 보니 FTA 협정 관세 실익 분석부터 관련 서류작성 방법까지 실무자가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기초정보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나 성과가 있다면? 2023년 콘텐츠 거래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와의 상담이 기억난다. 인기 콘텐츠의 상품(굿즈)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회사였다. 무역업과는 거리가 먼 업종이라 담당자가 관련 지식이 전혀 없었다. 알고 보니 FTA 특혜세율 적용이 가능한데도 관세를 부과하고 처리를 했더라. 컨설팅 후 사후적용으로 이미 납부한 관세 일부를 환급받을 수 있었다. 큰 도움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기업들이 FTA 활용 및 수출입통관과 관련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수출기업의 FTA 활용을 위해선 먼저 상대국의 협정 발효 여부를 확인하고 수출물품의 원산지 기준, 상대국 세율 등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수출물품의 ‘HS CODE(Harmonized System·무역상품을 분류하기 위해 이름 및 숫자로 표기하는 국제표준체계)’를 정확하게 확인해 원산지 결정기준을 충족할 경우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하고 관련 서류를 보관해야 한다. 수출신고를 하기 전에 스스로 품목을 분류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기업의 경우 관세청 품목분류 사전심사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 중소상공인에게 품목분류 사전심사 제도가 큰 도움이 되겠다. 이 제도는 수출하려는 물품의 품목번호를 특정하기 곤란한 경우 관세평가분류원에 심사를 의뢰해 법적인 효력이 있는 품목분류의 결정을 받는 것을 말한다. 체약상대국과 품목분류 해석이 달라 어려움을 겪었거나 이런 문제를 미리 방지하려는 수출기업은 더 많은 FTA 활용 혜택을 누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지원사업도 있나? 원산지 사후검증에 따른 추징 등 불이익이 우려된다면 관세청 원산지 검증 대응 지원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우리 수출기업이 수출 상대국의 원산지 검증에 선제적으로 대비해 FTA를 안정적으로 활용하고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공익관세사로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도 많겠다. 현장 컨설팅을 잘 진행하려면 세관 직원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미리 자료를 검토하고 이슈 사항들을 확인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기업이 만족하고 일이 잘 마무리됐을 때 보람을 느낀다. 무엇보다 절박하고 절실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관계자를 현장에서 만나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충이나 어려운 점은 없나? 관세사란 직업은 기본적으로 수입물품 등의 관세 관련 법령을 검토해 적법하게 수출입신고 등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관세사란 직업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너무 많다. 더구나 공익관세사 제도는 더 모르다 보니 상담을 신청한 업체에 연락하면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익관세사 홍보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공익관세사로서 목표는? 관세사란 직업과 공익관세사 활동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관세청뿐 아니라 다른 유관기관,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필요한 기업에 도움을 주고 싶다. 강정미 기자 *인증수출자 제도 수출자에게 FTA 활용을 위해 필요한 원산지증명서의 발급절차를 간소화해주는 제도다. 미인증 기업은 원산지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수출신고필증 사본, 송품장, 원산지확인서 등의 증빙자료를 발급기관에 제출하고 원산지기준 충족 여부 심사를 거쳐야 한다. 반면 인증수출자는 증빙자료 제출 면제 및 2시간 이내 신속 발급과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특정 국가 간의 상호 무역증진을 위해 무역장벽을 완화하거나 철폐해 무역자유화를 실현하기 위한 협정의 한 형태다. 특정 기준을 충족했을 경우 역내 국가의 원산지에 대해 무관세 혹은 낮은 관세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등 FTA 체결국에만 관세혜택을 주는 당사국 간 협정이다. *원산지증명서 물품을 생산한 나라 또는 물품의 국적을 의미하는 원산지를 증명하는 문서다. 수출물품이 우리나라에서 재배·사육·제조·가공된 것임을 증명한다. 협정별 원산지결정기준을 충족하고 협정에서 정한 원산지증명서를 구비해야 FTA 세율 적용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바로가기
- 카드뉴스 [국민행동요령] 태풍·호우 이렇게 행동하세요! 전국 거센 장맛비, 호우 이렇게 행동하세요! 태풍·호우는 하천범람, 산사태, 해일 등으로 이어져 재산피해는 물론 인명피해를 유발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와 사전 대비가 필요합니다. 다음 행동요령을 참고하시고, TV·라디오·스마트폰 등에서 태풍 예보 시 대피 방법을 사전에 숙지하여 준비 부탁드립니다. ■ 태풍·호우 행동요령 · 침수도로 지하차도, 교량, 하천, 해안가 등 급류에 휩쓸릴 수 있는 지역은 접근 금지 · 비가 많이 오는 경우 산지 주변 접근 금지, 지정된 대피장소나 산지로부터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대피 · 비탈면, 옹벽, 축대 등 붕괴 위험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가지 않기 · 태풍, 호우특보 발표 시 용·배수로, 논둑, 물꼬 보러 가지 않기 · 추락/휩쓸림 사고 예방을 위해 하수도, 맨홀 근처 등 접근 금지 · 유리창, 건물 간판 등 낙하물이 떨어질 수 있는 장소를 피하고, 건물 안으로 이동 올여름, 행동요령을 숙지하여 큰 피해 없이 안전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국민재난안전포털
- 여행 찐빵 체험부터 루지까지…아이와 가볼 만한 횡성 여행 여름 가족 여행으로 가볼 만한 횡성 여행지 나만의 찐빵 만들기, 안흥모락모락 찐빵마을 아찔한 스릴 만점 드라이브, 횡성 루지체험장 화덕 밥 짓기와 화전 움막 체험, 고라데이마을 숲속에서 마시는 차 한 잔, 미술관 자작나무숲 강원도 횡성에는 안흥찐빵체험부터, 신나는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루지 등이 있어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 좋은데요. 올여름 가족 여행으로 가볼 만한 횡성 1박 2일 여행 코스를 소개해 드립니다. ★추천 코스★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 - 횡성 루지체험장 - 고라데이마을 캠핑 - 미술관 자작나무숲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은 횡성을 대표하는 특산물인 안흥찐빵을 주제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곳입니다.이곳에는 찐빵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찐빵관부터 안흥찐빵의 역사를 쉽게 알아가고 VR 체험을 할 수 있는 모락모락 라운지, 공방과 놀이기구가 있는 건강 놀이터로 구성되어 있는데요.마을 곳곳에는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의 마스코트인 팥군과 빵양 포토존이 있어 가족과 함께 추억을 찍어남길 수 있습니다.찐빵 만들기 체험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요.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팥을 넣고 다양한 색깔의 밀가루 반죽을 활용해 취향껏 꾸며주면 끝이에요. 아이와 함께 직접 찐빵을 만들어 보며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이곳에서 횡성 여름 가족 여행을 즐겨보세요.※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안흥면 주천강로 1868- 문의 : 033-344-5990-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18:00 / 매주 월요일, 설·추석 당일 휴무- 이용요금 :· 찐빵 만들기 : 1인 1만원· 찐빵+쿠키 만들기 : 1인 1만 6000원· 찐빵+팥찜질팩 : 1인 1만 6000원· VR 체험 : 1인용 2000원 / 2인용 3000원-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만들기 프로그램은 사전 예약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횡성 루지체험장횡성 루지체험장은 길이 총 2.4km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루지 체험 시설입니다. 이곳은 오래 전 서울과 강릉을 이어주던 관동옛길인 국도 42호선이 교통의 발달로 폐쇄되고 난 후 재탄생한 곳인데요.루지를 타기 전 사이즈에 맞는 헬멧을 착용하고 전기 카트를 타고 상부 출발 지점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출발 지점에서 안전 교육을 받은 후에 즐겁게 루지를 탑승할 수 있어요.기존 도로와 숲, 자연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 싱그러운 여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또 트릭아트, 폭포 터널 등 테마 구간도 만들어져 있어 다채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여름 가족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곳에서 아찔한 스릴을 경험해 보세요.※ 횡성 루지체험장-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우천면 전재로 407- 문의 : 033-342-5503- 운영시간 :· (3월~7월 14일, 9월~11월) 매일09:30~17:30 (매표 마감 17:00)· (7월 15일~8월 31일) 매일 09:30~18:30 (매표 마감 18:00)*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및 동절기 전 기간(12월~2월) 휴무* 기상상황에 따라 운영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이용요금 :[3월~7월 18일, 9월~11월]· 월~금요일 : (1회권) 성인 1만 2000원 / 청소년 9600원, (2회권) 성인 2만 1000원 / 청소년 1만 6800원· 토~일요일 : (1회권) 성인 1만 5000원 / 청소년 1만 2000원, (2회권) 성인 2만 4000원 / 청소년 1만 9200원[7월 19일~8월 31일]· 토~일요일 : (1회권) 성인 1만 5000원 / 청소년 1만 2000원, (2회권) 성인 2만 4000원 / 청소년 1만 9200원* 횡성군 내에서 사용 가능한 횡성관광상품권(3000원 권)을 제공합니다.-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단독 탑승은 10세 이상, 신장 120cm 이상부터 가능합니다.- 신장 95cm 미만, 65세 이상 고령자는 탑승이 제한됩니다.고라데이마을 캠핑강원도 횡성에 있는 고라데이마을은 청정 자연과 함께 화전민의 문화가 잘 보존된 마을입니다. 이곳에서는 사계절 내내 화전을 테마로 다양한 산골 농촌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데요.펜션, 전통한옥, 오토캠핑장 등이 있어 숙박과 캠핑을 할 수 있으며 봉명 폭포 트래킹, 화덕 밥 짓기, 화전 움막 체험 등 30여 가지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가족과 함께 여름 여행으로 방문하기 좋습니다.대표 프로그램인 화덕 밥 짓기는 무쇠솥에 있는 쌀을 씻은 후 화덕에 불을 피워 밥을 짓는 체험인데요.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직접 부채질을 하며 밥이 완성해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어요.화전 움막 체험은 움막 안에 마른 나뭇가지를 넣어 모닥불을 피우고 감자를 구워 먹으며 화전민들의 삶을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쌓아보세요.※ 고라데이마을 캠핑-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청일면 봉명로 375-1- 문의 : 033-344-1004 (봉명고라데이영농조합법인)- 운영시간 :· 오토캠핑장 : 입실 14:00~22:00 / 퇴실 익일 11:00· 펜션 : 입실 15:00~20:00 / 퇴실 익일 11:00* 매너 시간 : 23:00~익일 08:00- 이용요금 :[숙박]· 오토캠핑장 5만원~9만원· 펜션 18만원~22만원[체험 프로그램]· 화덕 밥짓기 체험(4인 기준) : 1만 5000원· 화전 움막 체험 : 1인 7000원· 돌 목걸이 만들기 : 1인 7000원-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미술관 자작나무숲미술관 자작나무숲은 원종호 관장이 1991년 자작나무 1년생 묘목을 심고 가꾸어 울창한 숲을 이룬 곳입니다.이곳에는 다양한 분야의 작품과 관장이 직접 찍은 자작나무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과 여유롭게 차를 마실 수 있는 스튜디오 갤러리 겸 카페가 있는데요. 입장 시 받은 엽서를 커피 또는 차로 교환할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또 산장처럼 꾸며진 카페에는 50년 동안 수집해온 책과 카메라, 미술 소장품이 있어 레트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이외에도 조용히 사색하며 힐링하는 정원,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숲속 산책로가 있는데요. 동화 속에 한 장면 같은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문화와 자연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세요.※ 미술관 자작나무숲-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우천면 한우로두곡5길 186- 문의 : 033-342-6833- 운영시간 :· (4월 넷째 주~11월) 월, 금, 토, 일요일 10:00~18:00 (일몰 시)· (12월~4월 셋째 주) 월, 금, 토, 일요일 11:00~일몰 시* 매주 화, 수, 목요일 휴무- 이용요금 : 성인 2만원 / 3세~18세 1만원-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SNS 글, 사진 : 다님 8기 이관우 * 위 정보는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사진 산림청, 한국-독일 산림협력 50주년 기념 임업기술 현장토론회 남성현 산림청장이 3일 강원특별자치도 산림조합중앙회 강릉교육원을 방문해 시설물을 둘러보고 있다. ,남성현 산림청장이 3일 강원특별자치도 산림조합중앙회 강릉교육원에서 열린 ‘한국-독일 산림협력 50주년 기념 임업기술 현장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남성현 산림청장이 3일 강원특별자치도 산림조합중앙회 강릉교육원에서 열린 ‘한국-독일 산림협력 50주년 기념 임업기술 현장토론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뜨거운 여름, 무더위 쉼터에서 시원하게 보내요 아직 6월인데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를 경험하면서 이번 여름이 걱정되고, 최대한 외출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 뉴스에서도 때이른폭염, 빨리 찾아온 더위라는 키워드와 함께 이번 여름이 얼마나 더운지를 강조하는 기사들이 많이 보인다. 연이은 폭염에 대한 뉴스.(출처=KTV 대한뉴스) 그러던 중, 은평구립도서관을 방문했다가 동네마다 '무더위쉼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무더위쉼터는 더운 날씨, 폭염피해 예방을 위해 사람들이 방문하기 쉬운 위치에 운영하는 쉼터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데, 내가 살고 있는 은평구의 경우 지금껏 복지관이나 경로당 등에 국한됐던 무더위쉼터를 은평구립도서관, 롯데몰 은평점 등 판매시설 등까지 확대 지정해 총 206곳을 운영한다고 한다. 장을 보러 자주가는 nc 백화점도 무더위쉼터로 지정돼있었다. 매번 가는 곳인데도 무더위쉼터인지 몰랐는데, 내 주변에 총 206곳의 무더위쉼터가 있다니. 206곳 중 내가 아는 무더위쉼터는 몇 곳 없었다. 내 주변의 무더위쉼터를 좀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오다 발견한 국민재난안전포털의 쉼터검색 서비스!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 찾을 수 있는쉼터 검색 서비스.(출처=국민재난안전포털) 국민재난안전포털의 재난현황지역상황쉼터 카테고리를 들어가면 내 주변의 쉼터를 한번에 찾을 수 있다. 지역을 선택한 후, 이용구분과 시설유형/구분을 선택하면 된다. 이용구분에는 누구나 이용가능과 회원만 이용가능중 선택할 수 있고, 시설 유형/ 구분에서는 실내인지 야외인지, 또 실내라면 그 중에서도 노인회관, 복지회관, 보건소 등등 다양한 카테고리 중 무엇을 검색할지 선택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누구나 이용가능한 코너에서 실내시설을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출처=국민재난안전포털) 검색해보니 위치와 시설, 이용구분 정보 뿐 아니라 이용가능인원까지 기재되어있어 필요에 따라 가깝고 인원이 넉넉한 곳을 방문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해당 주소를 클릭하면 지도로도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더욱 간편했다. 지도 화면.(출처=국민재난안전포털) PC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모바일 앱 안전디딤돌의 시설정보무더위쉼터현재위치 또는 지역 선택 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니 본인에게 맞는편한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안전디딤돌 모바일 앱. 안전디딤돌 모바일 앱 쉼터 검색 서비스. 20대인 나도 더우면 힘이 빠지고, 어지러울 때가 많은데 더위에 취약한 어르신들은 무더위쉼터가 더욱 더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개하게 된 국민재난안전포털의 '쉼터' 검색 서비스가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검색해보니 은평구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구도 수십, 수백곳에 달하는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더위에 취약한 계층이 아니더라도 폭염에 대비해 미리 집 주변의 무더위 쉼터를 검색해보고 알아두는 것을 추천한다. 더불어, 무더위쉼터 중에서도 '누구나 이용가능'으로 지정된 곳은 말 그대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니 눈치 보지말고 마음편히 이용하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세아 new220723@naver.com
- 영상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민생경제, 피트스탑처럼 일사분란하고 빠르게 ☞ 대통령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