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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지나요? 섬세한 청년들이 만든 3천 원 김치찌개 먹어보니…

2024.08.02 정책기자단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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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보가 내린 날. 빗속을 뚫고 대학로를 걸었다. 김치찌개를 먹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대학로에서 가장 맛있는 밥집이라고 했다. 요즘 물가에 3천 원, 밥은 리필 가능하고 콩나물 반찬까지 나온다. 더욱이 직접 구운 누룽지도 맛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혹할 텐데 더 좋은 건, 깔끔한 식당에서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곳이 어디냐고? 대학로에 위치한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이다. 

대학로에 위치한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대학로에 위치한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2017년 12월 오픈한 청년밥상문간은 전국에 4곳, 청년밥상문간 슬로우 점은 1곳 있다. 청년밥상문간의 시작은 고시원에서 굶주려 생을 마친 한 청년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는 청년들에게 기회와 희망을 주기 위해 3천 원 김치찌개를 판매, 지역주민과 청년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대학로에 처음 문을 연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은 매니저 전원을 경계선 지능 청년들로 고용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장애(IQ 70이하)는 아니지만, 평균지능보다 약간 낮은 경계구간 지능(IQ 71~84)을 가진 이를 말한다. 얼마 전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오픈 100일을 맞아 한덕수 국무총리가 방문, 청년들과 부모님을 격려한 바 있다. 

테이블마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는 법이 적혀 있다. 가격에 놀라 영수증을 들고 왔다.
테이블마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는 법이 적혀 있다. 가격에 놀라 영수증을 들고 왔다.  

이곳에 들어오면 키오스크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할 수 있다. 좀 더 배불리 먹고 싶으면 고기나 라면 같은 사리도 추가할 수 있다. 가장 비싼 고기 사리가 2천 원. 다른 사리는 천 원씩이다. 밥은 여러 번 먹어도 되지만 중요한 건, 셀프다. 주방에서 끓여나오는 김치찌개를 받아 각자 테이블에 설치된 인덕션에서 좀 더 끓여 먹는다. 

세찬 빗소리가 멈추자 김치찌개의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입을 맛보니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확-감돈다. 찌개 속 고기는 여느 김치찌개보다 훨씬 많다. 그 정성만큼 맛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깔끔하다. 필자가 먹는 동안, 옆에서 서빙 하던 매니저들은 세심하게 테이블을 열심히 닦았다. 이렇게 깨끗하고 정결할 수 있을까 싶다. 마무리는 먹은 사람이 쟁반에 담아 퇴식구에 가져다 놓자. 이 가격에 이런 여유롭고 풍족한 느낌을 준 청년들의 수고를 생각하니 미안할 정도다.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은 한 경계선 지능인 부모님께서 제안하셨다고 해요.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에게 뭔가를 할 기회를 달라고요. 청년밥상문간을 새로 오픈하면서 동대문 복지관에 있는 청년들에게 의사를 물어 시작하게 된 거예요. ”

오픈 전 깔끔하게 정리된 식당내부.
오픈 전 깔끔하게 정리된 식당내부.

이지혜 점장은 이곳이 탄생한 계기를 들려줬다. 이에 참여를 희망한 경계선 지능인은 정릉점에서 3개월간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현재 이곳에는 남녀 5명 씩 10명이 3인 1조로 오전 오후 나눠 일하고 있다. 21살에서 32살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청년들과 처음 만났을 때 크게 다른가 싶었어요. 물론 깊이 이야기하다 보면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청년마다 차이도 있거든요 ”

밥과 반찬은 남기지 않을 만큼 스스로 먹도록 돼 있다.
밥과 반찬은 남기지 않을 만큼 스스로 먹도록 돼 있다.

사실 슬로우점이라고 해서 다른 지점과 큰 차이는 없다. 다른 지점이 2인 1조로 일을 한다면 이곳은 3인 1조로 홀과 주방에서 일한달까. 슬로우라고 해서 꽤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음식 나오는 것도 큰 차이가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 온 사람들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청년들에게 좀 더 천천히 이야기해주길 바라는 점에서 슬로우라 붙인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직접 구운 누룽지까지 맛볼 수 있다.
직접 구운 누룽지까지 맛볼 수 있다.

“저는 이 친구들이 느리다기보단 섬세하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일을 할 때 집중도와 완성도가 굉장히 높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이들이 ‘점장님, 오늘도 많은 걸 알려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하는데 구구절절 진심으로 들리더라고요. ”

그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힘든 상황에서 이곳에 오게 됐는데 그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받았다고. 일일이 왜 고마운지를 말하는 청년들을 보며 고맙다는 말의 진정성을 깨달았단다. 사회에서 못 느꼈던 행복을 여기서 이들과 함께  하면서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에 붙어 있는 응원 메시지들.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에 붙어 있는 응원 메시지들.

“손님들 반응이요? 이곳을 알고 오시는 경우가 많죠. 설령 몰랐다고 해도 앞에 부착된 취지 글을 읽어보고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눈을 바라보고 천천히 말씀해 주시거나 경청해 주시죠. 우리 사회가 좀 빠르고 신속하잖아요. 이곳은 그런 게 이상한 거예요. 느린 분위기에 손님들 모두 좀 느긋해지시는 거 같아요. ”

물론 불쾌한 손님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분명 퇴식구가 있고 정리해 달라고 말했지만, 모른 척 나가더란다. 더욱이 비슷한 또래였다. 다시 왔을 때도 똑같이 행동하길래 이 점장은 강경하게 말했다. 그러자 태도가 달라졌단다. 그는 앞으로 그런 손님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맛있게 먹은 그릇은 잊지말고 퇴식구에 넣자.
맛있게 먹은 그릇은 잊지말고 퇴식구에 넣자.

반대로 좋은 기억으로 남는 손님도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 손님이 육수를 더 달라고 요청한 걸 청년들이 잊어버렸어요. 손님이 주방에 오셔서 저한테 따지려고 하시는데 전 청년에게 전달받은 게 없으니 청년을 불러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손님이 야단을 치는 줄 알았는지 얼른 ‘제가 말을 잘못했나봐요. 제 실수 같아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점장은 청년들에게 실수를 알려주지만 주로 칭찬을 한단다. 대답을 크게 잘했다고 한마디씩 해주면 좋아한다고. 청년들은 일한다는 자부심이 참 강하단다. 그렇지만 경제에 관해 개념이 적어 사기도 많이 당했다고. 

“일과가 끝나고 아이들과 카페에 가서 이야기도 많이 들어줘요. 또 저희가 8월 5일~10일까지 전 지점 휴가인데 그때 청년들은 금융 교육 등을 받을 예정이고요. ”

앞으로 이곳은 어떻게 될까. 그는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제도 등이 생기면서 이곳도 전국적으로 늘어날 거 같다고 했다. 또 전국 5곳의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포함)에서 이곳이 지난달 매출 3위를 했단다. 6월 한 달, 2천여 명이 넘는 손님이 이곳에서 맛있게 먹은 셈이다.

손님들이 취지를 알고 후원박스에 조금씩 응원을 넣어주기도 한다.
손님들이 취지를 알고 후원박스에 조금씩 응원을 넣어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하니까 운영이 쉽진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김치는 후원받고 있는데 나머지는 구매해야 하거든요.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여기서 드시는 분들이 많고 이들을 응원하고 조금씩 기부함에 넣어주시기도 해요” 

직접 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조재범 홀매니저는 일하기 전에는 온종일 집에만 있었는데 요즘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밖을 다닌다고 했다. 

조재범 홀매니저가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재범 홀매니저가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지각하면 어쩌지, 손님이 어떤 요청을 할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주방보다 홀에서 일하는 게 더 재밌어요. 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하는 활기찬 모습을 보면 좋아요. ”

조재범 홀매니저는 이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일한다는 뿌듯함이 즐겁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흐뭇해한다고. 아직은 좀 더 이곳에서 일하고 싶고 더 많이 배우고 싶다고 답했다. 

“저는 일해서 돈을 버는 게 뿌듯해요. 월급이요? 부모님께 밥을 사드리고 제 작품을 만드는 데도 사용했어요”

옆에 있던 김 모 매니저도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이전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학창시절을 떠올리니 체육 시간에 많이 빼먹어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만화를 공부한 그는 현재 일러스트 작품을 자신의 SNS에 틈틈이 올리고 있다. 

“앞으로 이런 곳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

대학로에 위치한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누구나 와서 착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대학로에 위치한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누구나 와서 착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임예찬 매니저는 이곳에 오기 전 다양한 일을 해봤다. 공장에서도 일하고 각종 아르바이트나 회사에서 인턴생활도 했다. 여러 곳에서 일했지만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에 오기 전에는 좀 긴장됐다고. 

“사람들이 경계선 지능인에 관해 잘 모르거든요. 장애가 아닌데 장애로 생각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일반인으로 보는 것도 아니라서 좀 아쉬워요. 경계선 지능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생겨나면 좋겠어요” 

그는 경계선지능인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비경계선지능인들과도 함께 일해봤지만, 이곳에서 일할 때가 마음이 편하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지난달에는 운전면허를 땄고 제빵에 취미를 붙이고 있다.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에서 진심이 가득 담긴 김치찌개를 먹었다.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에서 진심이 가득 담긴 김치찌개를 먹었다.

앞으로 경계선지능인의 어려움이 줄어들지 않을까.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지적장애가 아니라 지원대상에서 소외돼 왔다. 정부는 경계선지능인 삶의 실태와 정책 수요를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올 하반기 ‘경계선지능인 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다. 처음으로 진행되는 이 조사를 통해 생애주기에 따른 지원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교육부 및 관계부처는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정부 최초 종합대책으로 ‘경계선지능인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경계선지능인 조기발견 체계구축,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기관 간 협력체계 구축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얼마 전 100일을 맞은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벽 한쪽에는 지점에 관련한 취지글이 붙어 있다.
얼마 전 100일을 맞은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벽 한쪽에는 지점의 취지가 담긴 글이 붙어 있다.

경계선지능인은 우리나라 국민의 약 13.6%로 추정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이들의 섬세한 마음을 느껴낄수 있을까. 날씨 궂은날 진심이 담긴 김치찌개를 먹으니 모든 피로가 사라질 만큼 힘이 솟는다. 좀 더 많은 곳에서 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들으며 김치찌개를 먹을 날을 그려본다. 




정책기자단 김윤경 사진
정책기자단|김윤경otterkim@gmail.com
한 걸음 더 걷고, 두 번 더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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