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공연 시간에 맞춰 서둘러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국립극장 입구에 ‘국립극장 이용 안내’가 있었다. ‘국립극장이 장애인등 편의법 제15조에 따라 주 출입구 접근로 완화 적용을 받은 건물입니다’라는 내용이다. 무장애(배리어 프리, Barrier-free)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첫인상이 좋다.
공연이 열리는 해오름극장 입구에 다다르니 바닥에 점형블록이 눈에 띈다. 출입문 옆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도가 있다. 시각장애인 김주혁 씨는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넓은마을’에서 이번 공연 소식을 접했다. 음악을 즐겨 듣는 그는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이곳에 왔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층에 있는 고객지원센터에 문의하니 직원이 달려와서 입장권 수령부터 자리까지 안내해줬다. 그는 외출할 적에 장애인활동지원사가 동행해 특별한 불편은 느끼지 못하고 있단다. 지팡이를 두드리면서 걷는 그를 보면서 오늘의 공연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무장애 공연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어떤 게 있는지 둘러봤다. 곳곳에 직원들이 배치되어서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보이면 얼른 달려와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어보고 있다. 계단 이외에 건물 양쪽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이용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입구마다 점형블록이 있어서 시각장애인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매표소 창구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키낮이 창구가 있었다. 멀리서 식별할 수 있도록 휠체어 표시가 보인다. 그리고 매표소 창구의 직원이 말하면 글자로 변환해서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커다란 패드가 비치되어 있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니 내 음성을 인식해서 바로 문자가 떴다.
공연장으로 입장하는 게이트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들어가기엔 좁았다. 그래서 별도로 휠체어를 탄 사람을 위한 전용 게이트가 있다. 안내 직원은 각자 어깨에 작은 가방을 둘러메고 있었다. 직원이 그 안에 있는 메모지를 보여줬다. 공연장을 방문한 관객이 흔히 할 수 있는 질문이 큼지막한 글자로 적혀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맨 뒷줄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 지정석이 있다. 의자를 치워 놓아서 휠체어가 그 자리에 들어가면 된다. 굳이 휠체어에서 의자로 몸을 옮기지 않아도 된다.
프로그램북은 점자로도 표시되어 있어서 시각장애인 김주혁 씨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객석에 앉아서 오늘의 공연 프로그램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오늘 공연은 프로그램북이 점자로 되어 있어서 음악 감상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국내의 크고 작은 공연마다 프로그램북을 제작한다. 하지만 점자화된 프로그램북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주 소수에 불과한 시각장애인 관객까지 고려해서 점자로 된 프로그램북을 제작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작은 배려가 모여야만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공연장에서 공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무장애 공연을 추진했던 국립극장 측의 배려가 있어서 오늘따라 공연장에서 장애인 관객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오늘의 공연은 지난해 국립극장 ‘동행,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의 하나로 기획된 ‘함께, 봄’ 두 번째다. ‘함께, 봄’은 음악가를 꿈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무대에 오르고, 따뜻한 ‘봄’을 느끼며, 장벽 없이 ‘함께 보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연주를 맡은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는 국립극장의 ‘동행,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에 부합하는 연주 단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외계층 청소년 5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행을 맡은 문지애 아나운서가 무대에 등장해 연주할 프로그램을 설명하면 전문 수어통역사가 실시간으로 통역해서 알려주었다. 무대 양쪽의 대형스크린에도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를 제외한 객석의 조명은 꺼지고 어두워진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조명을 그대로 둔 채 연주를 시작했다. 그동안 숱하게 공연을 관람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굳이 어둡게 해서 공연하고 있었던 이유가 궁금할 정도였다. 물론 관객이 무대의 공연에 집중하는 몰입도는 상승할 수도 있겠지만, 어두워서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뷰티플마인드 단원들은 이원숙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서 연주를 이어갔다.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을 무대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오케스트라의 화음에 심취해 갔다. 단원들이 연주에 몰입하면서 악기와 혼연일체가 되자 나를 비롯한 관객들도 연주에 몰입되었다. 그래서일까? 한 곡씩 연주가 끝날 때마다 숨죽여 공연을 지켜보던 객석에서 커다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휘자와 단원들 모두가 연주에 만족하는 듯 환한 표정으로 관객들의 박수에 화답했다.
공연이 끝난 뒤 아쉬운 듯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의 반응을 들어보기로 했다. 초등학생 윤솔 양은 부모님을 따라 공연을 관람하러 왔다. 그동안 흔히 봤던 공연관 다를 텐데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물어봤다. “장애인 연주자의 공연을 본 적이 없어서 어떨지 궁금했어요. 친구들에게도 장애인 연주자의 공연을 보러 가라고 추천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작년에 청와대 춘추관에서 개최한 장애인 예술특별전을 관람했던 적이 있다. 이번에는 국립극장에서 개최한 장애인 예술특별공연을 관람했다. 국립극장에서 기획한 ‘함께, 봄’과 같이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어우러지는 공연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국립극장에서 뷰티플마인드의 공연을 관람하고 나니 조만간 그런 날이 다가올 거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