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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걱정 없이 살아보겠구나~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으로 갖게된 남북관계 기대감 ①

2018.06.14 정책기자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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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요일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십자가 위로 요란히 사이렌이 울렸다. “여기는 민방위본부입니다. 지금 서울, 인천, 경기지역에 공습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방송을 타고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훈련 상황입니다’라는 단어는 익숙했는데  그것이 ‘실제 상황’으로 바뀌니 공포 그 자체였다. 교회 마당으로 나온 사람들은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훈련상황이 아닌 실제상황이었다.(출처=국방부)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출처=국방부)


전 국민의 혼을 흔들어 놓았던 공습경보 방송은 북한의 전투기 조종사 이웅평 소위가 미그기를 몰고 남으로 귀순하는 과정에서 생긴 소동으로 곧 밝혀졌다.

충격과 공포의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지만 국민들의 놀란 가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6.25전쟁 이후 처음 있었던 공습경보 방송은 전쟁이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했다.

이웅평 귀순 관련 카드뉴스.(출처=국방부)
이웅평 귀순 관련 카드뉴스.(출처=국방부)
  

초등학교 시절부터 적의 공습에 대비한 훈련은 일상이었다. 매달 대피훈련을 했다. 민방공 대피훈련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우리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좁은 책상 밑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귀를 막고 얼굴을 두 다리 사이에 묻었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였는데 소용 없었다.

훈련 사이렌 소리는 왜 그렇게 크게 울리는지, 사이렌이 울리면 그것이 훈련인 것을 알면서도 머리가 지근지근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생님이 알려주는 전쟁이나 비상시 행동요령은 관심 밖이었다. 당장 전쟁이 일어나면 학교에 있어야 하나,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걱정만 계속 했다.

1971년 12월 10일, 해방 후 첫 민방위훈련 모습.(사진=e영상 역사관)
1971년 12월 10일, 해방 후 첫 민방위 훈련 모습.(사진=e영상 역사관)
 

초저녁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가 엄청난 굉음 소리에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대포를 쏘아대는 소리처럼 들렸다. 깜짝 놀라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엄마, 전쟁 난 거 아니야?” 울먹이며 묻자 엄마는 나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갔다.

엄마는 여의도에서 폭죽놀이 하는 소리였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먼 하늘에선 형형색색의 불꽃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6.25 때는 어땠냐?”고 훌쩍이며 물었다.

해방 후 첫 민방위훈련 모습.(사진=e영상 역사관)
해방 후 첫 민방위 훈련 모습.(사진=e영상 역사관)
 

자라오면서도 내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끔 전쟁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그건 꿈에서도 가능하지 않았다. 자면서도 전쟁 꿈을 꾸기 일쑤였다. 엄마 손을 놓쳐 엉엉 울면서 엄마를 찾아다니는데 무섭게 생긴 인민군이 총을 들이대며 위협했다.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애원하다가 잠에서 깨면 베개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곤 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가 죽은 이승복 어린이가 떠올라 소스라치게 무서웠다. 그런 날이면 멸공 포스터에, 한반도 지도와 함께 꽃으로 둘러 쌓인 대포를 그려 넣었다.

시민들이 신문에 난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유심히 보고 있다
시민들이 신문에 난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유심히 보고 있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로 70년 동안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작은 몸짓이나 말 한마디에도 나라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핵전쟁 위협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해외에 사는 친지들이 안부를 물어오면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전쟁에 대한 불안감은 내 모든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지난 12일 북미 정상이 세기의 악수를 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평화와 공존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이라고 언론들은 대서특필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다.

서울역에서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시민들.(출처=국민소통실)
서울역에서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시민들.(출처=정책브리핑)


이날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노력, 한반도의 지속 안정적 평화체제 구축 노력, 북한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약속, 전쟁포로 및 실종자들의 유해 송환 및 유해 수습 약속 등 4개항에 합의했다. 

정말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는 건지, 전쟁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될 지 아직은 얼떨떨하다. 그러나 이번 북미정상회담으로, 전쟁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내 어릴 적 꿈이 이뤄질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최은주 tkghl22@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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