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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삶과 죽음, 여주에서 마주하다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원주, 여주 탐방기

2017.09.13 정책기자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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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아지고 나들이 가기 좋은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다가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며 사색과 함께 붉은 단풍을 보기 좋은 시간인데요. 기차를 타고 인문학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을 만나러 저 또한 함께 떠났습니다. 그들의 인문학 여행에 함께 동행해보실까요?

원주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
원주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
 

국립중앙도서관은 조선일보, 코레일과 함께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프로그램으로 현장의 인문학, 쉬운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을 경험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강연과 탐방이 연계되어 인문학에 대한 좀 더 깊이있는 성찰의 기회를 가져볼 수 있도록 제공해주고 있지요.

지난 3월부터 매달 한번씩 다른 주제로 인문학여행을 떠나고 있는데요.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사전신청을 통해 선발된 참가자들은  전국의 인문학 현장을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을 통해 삶의 여유와 지적 탐구를 해보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필자가 함께 떠난 9월의 답사지는 원주와 여주였습니다. ‘조선왕실의 삶과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책과 강연, 현장 체험으로 느껴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박경리 문학공원에 있는 박경리 문학의 집.
박경리 문학공원에 있는 박경리 문학의 집.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달려간 첫 번째 장소는 원주의 박경리 문학공원입니다. 이곳에서는 박경리 작가가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로 옮겨 18년간 살면서 토지의 4권과 5권을 집필한 옛집과 박경리 문학의 집, 북까페, 홍이동산, 평사리마당 그리고 용두레벌 등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요.

박경리 작가의 친필 원고와 사진, 토지 이외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박경리 작가의 ‘토지’가 예능프로그램에서 다시 회자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는데요. ‘토지’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등장하는, 만 25년간 써서 완성한 소설로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여주 신륵사.
여주 신륵사.
 

‘인문열차,삶을 달리다’ 두 번째 장소는 여주의 신륵사였습니다. 신륵사는 영릉의 원찰로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남한강가에 위치한 절입니다.

강변에 위치한 신륵사는 지리적 경관이 아름다운데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신륵사를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로부터 신륵사와 관련된 역사이야기를 듣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로부터 신륵사와 관련된 역사이야기를 듣고 있다.
 

신륵사는 그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고려 우왕 때 신륵사 근처에서 용의 머리에 말의 몸을 한 신령스러운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에 나옹이 용마를 다스려 피해를 막았다는 설화가 전해지는데요. 그러한 연유로 신력의 신(神)과 제압의 륵(勒)을 따서 이름을 신륵사로 지었다고 합니다.

여주 신륵사.
여주 신륵사.
 

이후 나옹이 입적하면서 수많은 사리가 나오고, 예종 때 영릉의 원찰로 지정되면서 더욱 더 부흥하게 됩니다. 신륵사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절로 극락보전이 있으며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다층전탑으로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신륵사와 남한강을 감상하는 참가자들.
신륵사와 남한강을 감상하는 참가자들.


다층전탑의 뒷쪽으로는 아름다운 남한강이 흐르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탁 트인 강변의 아름다운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답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추억으로 남기는 모습이었어요.

여주 세종대왕 영릉.
여주 세종대왕 영릉.
 

신륵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조선의 4대 왕인 세종대왕과 소현왕후 심씨의 무덤인 영릉(英陵)과 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영릉(寧陵)이었습니다. 둘다 이름이 똑같이 영릉인데요. 한자로는 다른 글자가 씌여집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영릉은 합장릉입니다.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기도 한데요. 하나의 봉분이라 얼핏 보면 합장릉인지 구분이 안갈 수 있지만 봉분 앞에 두 개의 혼유석이 놓여져 합장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영릉은 조선전기의 왕릉 배치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데요. 병풍석을 세우지 않은 특징이 있습니다.  예종 때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천하의 명당이라 평가받으며 조선의 국운이 100년이나 더 연장되었다는 ‘영릉가백년’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여주 효종대왕 영릉.
여주 효종대왕 영릉.
 

세종대왕의 영릉에서 왕의 숲길을 따라 오솔길을 걸어가면 효종대왕의 영릉이 나옵니다. 효종대왕은 처음에는 구리시에 능을 조성했다가 문제가 생겨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는데요. 그후 효종대왕의 비인 인선왕후가 돌아가고 이곳 같은 언덕의 아래에 왕후의 무덤을 조성하여 조선왕릉 중 최초로 동원상하릉 형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위쪽에는 효정대왕의 능이, 아래쪽에는 인선왕후의 능이 위치하게 되었지요. 또한 세종대왕릉과 같이 병풍석이 세워지지 않은 능입니다. 이것은 세조의 유언에 따른 것이지요. 세종대왕의 영릉과는 또다른 느낌의 효종대왕의 동원상하릉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여주 명성황후 생가 유적지.
여주 명성황후 생가 유적지.
 

이번 인문학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명성황후의 생가유적지였습니다. 인현왕후의 친척인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민씨의 소개로 간택되어집니다.

그 당시 아버지를 이미 여의었고 외척세력이 없을 것이라 판단한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사저인 운현궁에서  혼례를 거행시켰지요.

이후 명성황후의 친러정책에 불만을 품은 일본의 우익청년들이 경복궁에 나타나 명성황후를 죽이게 되는데요. 일제의 역사왜곡으로 명성황후에 대한 곡해된 역사적 사실들이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여주군에서는 생가를 복원하게 되었고, 2006년 명성황후가 8세부터 왕비 간택 전까지 살았던 감고당을 이전해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참가자들이 명성황후 생가에서 신병주 교수의 역사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참가자들이 명성황후 생가에서 신병주 교수의 역사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명성황후 생가유적지에는 감고당, 민가마을, 명성황후 생가, 명성황후 기념관, 문예관 등이 조성되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는데요. 명성황후 생가는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명성황후는 16세에 왕비에 책봉된 이후 수많은 책들을 읽고 탁월한 식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왕조의 근대화 작업 및 외교적 노력, 업적 등을 이루었지요.

80여 명의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나는 인문학 탐방을 통해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인문학이 어우러져 더 풍성한 하루가 되었지요. 

인문열차에 관심이 있다면 올해 남은 두 번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http://www.nl.go.kr/tour/)를 통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은주 cremb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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