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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민권자 사촌동생의 해병대 복무기

[국군의 날 특집] 공부도 늦추고 늦깎이 입대… “분명 얻는 것 있다”

2016.10.01 정책기자 진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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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 시민권자였으면 군대 안간다. 왜 굳이 가려고.” 미국 대학생활 동안 만난 한국 유학생들은 하나같이 말렸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해병대 입대를 결심한 사촌동생(염지호)에게 무모한 결정이란 시선이 쏟아졌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의 국적포기자는 25,362명으로 올해 들어 크게 늘어났으며, 국적포기 병역대상자는 4,220명으로 추정된다는 뉴스가 얼마 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 국적자이기에 병역 의무를 마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한국 남성과 그 가족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뉴스였다. 국군의 날을 맞아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이지만 스물다섯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해병대에 입대했던 사촌동생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고모의 유학시절 동안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자인 동생은 고모가 미국생활을 마쳤을 때 국내로 들어와 학창시절은 한국에서 보냈다. 아주대에 입학한 그 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버스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에 티타늄을 넣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던 계획은 조금 더 늦춰졌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자인 염지호 씨는 스물다섯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군복무의 의무를 다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자인 필자의 사촌동생 염지호 씨. 스물다섯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군복무의 의무를 다했다.

홀로 미국으로 떠난 그는 일과 공부를 병행해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해서도 마찬가지로 일과 공부를 함께 했고, 그렇게 미국에서 스스로 터전을 다져가며 시간은 흘러갔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한국국적을 포기하면 병역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었다. 미국의 경제상황도 좋지만은 않은 터라 학자금 대출도 갚고 취업의 부담을 덜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졸업하고 사회진출을 서두르는 것이 유리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군대를 가야한다 생각했지만 녹록지 않은 미국 생활동안 고민은 깊어졌다. 군입대라는 큰 고민을 안고 한국에 잠시 귀국했다. 어머니를 비롯해 여러 지인들의 인생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들으며 군대를 가야겠단 결심을 굳혔다.

한 달 남짓의 시간동안 미국 생활을 급히 정리하고 귀국하자마자 해병대에 입대했다. 군대 가는 동생에게 제대로 맛있는 식사 한 번 사줄 수 없는 짧은 시간이었다. 훈련소 시절 말미에는 폐렴에 걸려 국군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 차량정비병 보직으로 김포에 자대배치를 받고 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모두들 그렇듯 자대배치 전 겁을 먹긴 했지만 자대 생활은 괜찮았다. 재미도 있었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좋았다. 공개적으로 수송관님에게 유일하게 인정을 받은 부대원이 됐다. 차량정비기능사 자격증도 땄다.”며 부대생활을 회상했다.

부대에선 최대 5살 어린 동기, 선임들과 생활했다. 나이차에 처음 놀랐던 부대원들은 유학하다 와서 입대가 늦어졌단 얘기에 영어 해봐.”라는 호기심 어린 요청들을 으레 해대곤 했다. 친해지고 나서 그가 시민권자인 걸 안 부대원들은 처음엔 놀랐고, 두 번째로 멋있다.”는 말들을 건넸다.

2012년부터 지난 7월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 또는 이탈한 병역대상자는 1만7천229명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 염지호(왼쪽) 씨는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당당하게 이중국적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2012년부터 지난 7월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 또는 이탈한 병역대상자는 1만7천229명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 염지호(왼쪽) 씨는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남아라면 모두들 언제 군대를 갈까를 고민하지만 나는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렇기에 특별히 멋있다는 평을 들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해병대는 무조건 기수제이므로 선임들을 존중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고 나이는 군 생활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대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SNS로 서로 연락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으로 유학 온 선임은 뉴욕까지 가서 만나기도 했다. 한국에 귀국했을 때 함께 뭉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하자마자 미국의 학교 복학 문제로 3주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휴식이나 여행 한 번 못하고 쉴 틈 없이 오롯이 군복무만을 위한 2년을 보낸 채 다시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그동안 미뤄뒀던 공부와 굳어진 혀를 원상태로 만들기 위한 바쁜 나날이 시작됐다. 미국 친구들은 그의 군복무를 신기하고 놀랍게 생각했다. 취업박람회 때 한 제철회사의 스카우터가 그의 군복무 이력을 보고 바로 인터뷰 기회를 준 일화도 있었다.

청춘 한가운데 2년의 군 생활은 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그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소중한 인연들이 남았다. 새로운 것을 할 때 이전에는 꺼려지는 것이 많았는데 이제는 해보자는 마음가짐이 더 크다. 군대에서의 습관이 남아서 좀 더 부지런해졌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군복무 이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를 졸업한 염지호 씨는 현재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군복무 이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를 졸업한 염지호 씨는 현재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군복무 기간을 거치고 난 후 소중한 인연들을 비롯해 인내심, 삶의 태도, 인격적인 부분 등 얻은 것이 많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과 같은 입장의 사람들에게 이런 얘길 전했다. “입대 결정에 고민이 크겠지만 군대에 갔다오면 분명 얻는 것들이 있다. 조직생활도 배우고 인격적으로도 성장하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돼 줄 것이다.”라고.

군 생활 동안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지나고 나니 좋은 경험으로만 기억된다고 말하는 그였지만 ‘편지가 큰 힘이 된다며 꼭 편지 보내달라’는 동생의 옛 편지를 발견하고 나서 그의 지난 고됨을 새삼스레 짐작했다.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굳이 어려운 길로 들어서는 것은 무모한 결정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대부분 20대 청춘들의 의무 앞에 자신은 남다른 결정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가로젓지만 병역기피자 뉴스가 전해지는 요즘 그의 용기 있는 실천에 가족으로서, 이 땅의 국민으로서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성실히 군복무를 마친, 군복무를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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