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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진료받고 ‘땡~’…몸도 아픈데 억울하셨지요?

환자가 주인 ‘의료생협’ 등장…주치의 두고 필요한 만큼 진료받는다

2013.05.31 정책기자 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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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 한 대학병원 진료실 앞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나오는 시간을 초 단위로 쟀다. 첫 환자는 31초, 다음 환자부터는 각각 22초, 41초, 29초, 29초, 36초가 걸렸다. 평균 31초다. 환자들은 말로만 듣던 ‘30초 진료’를 받고 있었다.

현직 의사가 만든 의료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의 한 장면이다. 현직 대학병원 의사와 직원 등이 카메라 앞에 등장해 병원이 환자에게 불필요한 진료를 남발하거나 부당 청구를 하는 사례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장면도 담겨 있다. 병원에 대한 환자들의 불신이 커질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화면에 담겨있다. 환자와 병원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대안은 없는 걸까.

전주시 평화동에 위치한 무지개한의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환자가 주인이자, 환자와의 유대관계를 중시하는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이다. 겉모습은 동네 병원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의료생협’에 관한 안내문이었다. 조합원과 환자가 주인이라는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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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유대 관계를 중요시하는 전주 의료생협의 벽면에 부착된 ‘환자권리장전’

입구 벽면에 붙어있는 ‘환자권리장전’에는 환자의 알권리·자기결정권·개인 신상 보호받을 권리·배울권리·진료 받을 권리 등에 대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처럼 일반 병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안내문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병원과 의료 문제의 대안을 연구하던 청년한의사회 전북지부 연구모임에서 시작된 전주의료생협은 지난 2003년 의사·시민운동가·시의원 등 다양한 집단의 조합원 150명이 모여 설립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만든 병원이 무지개한의원이다. 환자의 기본권 보호와 지역민들의 공동체 구성, 생활습관 개선 등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 권리를 찾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고선미 전무는 “우리나라는 경제성장 속도에 비해 의료비 지출이 많은 나라”라며 “병원에 좋은 장비를 구축하면 환자 유치를 해야 한다. 마이너스 예산은 불필요한 과잉 처방구조로 이어진다. 내가 만약 병원의 주인이라면 30초 진료와 과잉진료비가 필요 없지 않을까? 그래서 시작된 것이 ‘의료생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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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의료생협이 설립한 무지개 한의원의 내부 모습.

그는 이어 “지역 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힘을 모아 우리 가족과 이웃의 건강,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협동조합”이라며 “전주 의료생협은 조합원들의 출자로 의료기관을 설립해 운영하며, 건강증진활동·건강소모임 등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주민자치공동체다.”고 덧붙였다.

이곳 조합원은 현재 780가구다. 1인당 출자금 5만 원 이상을 납부하면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데, 조합원은 물론 가족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조합원들이 출자한 돈은 1억9,000여만 원. 그렇다고 조합원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외래 환자들도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조합원에게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일부 진료에 대해 진료비 10%를 조합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의료생협이 일반 병원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 고 전무는 “환자가 주인인 병원이라는 점이다. 환자가 주인이기 때문에 과잉 진료를 할 필요가 없고,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만 권한다. 간혹 비싼 한약이 효과가 좋지 않냐고 묻는 환자를 오히려 만류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수익성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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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 된 의료 서비스에 회의감을 느낀 김길중 원장도 어렵사리 ‘전주 의료생협’에 합류했다.

이처럼 의료생협은 환자와 의료진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의료행위가 이뤄지고 있어 환자들과 조합원들의 만족감도 크다. 10년 넘게 전주 의료생협을 이용 중이라는 신금춘(50·여)씨는 “아파서 병원에 가도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약 처방만 해준다. 그런 불신들이 쌓이다보니 어느새 병원 가는 것이 두려워졌다.”며 “조합원이 되고난 뒤로는 이런 문제가 싹 사라졌다. 조합원으로서 병원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겨 멀더라도 꼭 의료생협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의료생협을 이용하면서 병원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 조합원도 많았다. 운동을 하다 다리를 삐끗한 자녀를 혼자 병원에 보냈다는 서병철(50) 씨는 “발목에 침을 맞으라고 혼자 병원에 보냈는데, 과잉 진찰로 진료비가 5만 원이 넘게 나왔다.”며 “동네 의원인데, 어린아이를 환자가 아닌 돈으로만 보는 것이 화가 났다.”며 당시의 경험을 털어놨다.

수소문 끝에 의료생협을 알게 됐다는 그는 “저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조목조목 따져 묻는 편인데, 지금껏 의료기관에서는 대기 환자들에 묻혀 물어볼 기회조차 없었다.”며 “이곳은 주치의처럼 개인 병력 관리도 해주고, 아플 때는 몇 시간이고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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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만들어가는 전주 의료생협의 조합원들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상업화된 의료서비스에 회의감을 느낀 김길중 원장도 어렵사리 ‘의료생협’에 합류했다. 김 원장은 “의료인 입장에서도 제대로 된 진료를 하고 싶은데, 과잉 경쟁의 병원구조상 상업적인 룰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상황으로 변질돼가고 있다.”며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이라면 자신만의 스타일과 고집으로 진두지휘할 수 있지만 조합원의 요구를 절충해야 한다는 점에서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고선미 전무는 “10년 넘게 운영 중이지만 여전히 ‘의료생협’을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이 더 많다.”며 “특히 초창기에는 적자를 면치 못해 문을 닫을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수익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의료생협의 본래 목적을 잃지 않기 위해 조합원들 스스로 홍보에 나서 지금껏 끌고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짝퉁’ 의료생협이 줄줄이 생겨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짝퉁’ 의료생협이란 현행 의료법상 의사 면허가 없는 일반 개인은 병원을 설립할 수 없지만 협동조합을 만들면 가능하기 때문에 오직 병원 설립 허가를 따내기 위해 만들어진 형식적인 협동조합을 말한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공익성과 설립요건을 강화한 ‘사회적 협동조합’의 개념을 도입했다. 보건복지부가 이 사업을 인가하게 되면서 유사 의료생협과 사무장 병원 등을 퇴출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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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의료 생협은 질병 예방과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에게 ‘찾아가는 돌봄서비스’와 조합원들의 건강을 지켜나가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진=전주 의료생협)

전주 의료생협은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에게 ‘찾아가는 돌봄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 또 건강증진운동 소모임을 결성해 만보계 보급, 만보일지, 금연운동, 7가지 생활습관 등 7주간의 건강한 생활 실천단은 물론 질병 예방 사업과 예방접종 등도 시행 중이다. 아울러 의료보험의 비급여 부문이 많은 치과를 향후 5년 이내에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2012년 12월 말 기준, 전국적으로 20개의 의료생협이 29개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인 안성 의료생협의 경우 지난 1994년 지역 주민과 주말 진료를 나갔던 기독학생회가 주체가 돼 설립된 뒤 현재는 조합원 4,832가구, 출자금 8억7,000만 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의료생협은 주민들이 힘을 모아 건강한 마을을 가꿔가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건강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책기자 박하나(직장인) ladyhana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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