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문화재’라고 불렀던 것들이 이제는 ‘국가유산’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과 함께 ‘문화재청’을 ‘국가유산청’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국가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나누고 있다.
무더운 여름을 맞아 국가유산청 산하 국가유산진흥원에서 여름나기 행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다과상, 작품,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전통 맛, 멋, 흥을 선사한다고 한다고 해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지속되는 7월에 모처럼 우리의 전통문화에 심취해 보며 더위를 잊고자 나섰다.
우리 전통의 맛은 ‘한국의집’에서
먼저, 우리 전통의 맛이다. 우리 전통의 맛이라고 하면 한식(韓食)이 떠오른다. 충무로역 인근에 ‘한국의집’은 전통 한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한국의집’은 1957년 한국을 방문하는 국내외 귀빈을 맞이하던 한국의 영빈관(Korea House)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1년 ‘한국의집’을 재개관했고, 현재 국가유산진흥원에서 수탁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집’은 전통문화 복합공간으로 내외국인 누구든 이용할 수 있으며 현재 한식과 다과상을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나는 특히, 1인 다과상이 무척 궁금했다. ‘조선왕실의궤’ 때문이다.
‘조선왕실의궤’는 조선 시대 왕실이나 국가에서 주요 행사나 잔치가 있을 때 그 행사에 동원된 인원, 행사 내용, 사용된 재물, 행렬의 배치, 의식과 절차 등의 제반 내용을 정리한 기록물이다. 조선 시대 정조 임금이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베풀었던 장면을 찬찬히 살펴보던 내게 1인 다과상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집’에선 다과상을 ‘고호재’라고 부르고 있다. 고호재는 ‘옛것을 좋아하는 이들의 집’이란 뜻으로 ‘한국의집’에서 선보이는 프리미엄 궁중다과 상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마다 다른 1인 다과상 상차림이 있다. 제철 재료로 빚은 전통 병과로 차려진다. 체험객은 전통 한옥인 한국의집에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1인 다과상과 계절별로 제공되는 단품 음식(여름의 빙수, 겨울의 죽 등)을 맛볼 수 있다.
주말 오전에 부모님을 모시고‘한국의집’을 방문했다. 예약 시간에 맞춰 입장하기 전 내부를 둘러봤다. ‘한국의집’은 본채와 별채, 전정과 중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곳이 중정일 것이다. 너른 마당이 있는 중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를 따라 가보니 연못이 있다. 연못 안에 잉어가 노닐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소화당으로 입장했다. 소화당은 높낮이 차가 있어서 누각이 있는 상단과 하단이 있다. 상단은 방석이 마련된 좌식 공간이고, 하단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1인 다과상이 나오기 전 공연이 열렸다. 우아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무용수가 등장해서 한국무용을 보여준다. 우리의 전통 가락인 국악에 맞춰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공연이 끝나자 직원이 자리마다 인원수에 맞춰서 1인 다과상을 들고 온다. 여름 다과상에는 어떤 음식이 있을까? 앉은 자리를 기준으로 콩고물 도라지 정과, 산딸기 정과, 호두강정, 떡카롱, 삼색 원소병, 생맥산, 송화 다식, 콜라비 정과, 매작과가 차려져 있다. 상차림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보기만 해도 예쁘고 정갈하다. 한눈에 봐도 무척 정성을 들여 만든 다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차림을 눈으로만 담아둘 수 없다. 소화당에 모인 손님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하나씩 눈으로 음미한 뒤 입으로 즐기다 보니 금방 다과상이 깨끗이 비워진다. 음료로 제공된 생맥산은 한 번의 보충이 가능하다. 생맥산은 인삼, 맥문동, 오미자를 1:2:1의 비율로 섞어 만든다. 여름철 식물성 보양 음료라고 하니 자꾸만 마시게 된다. 조선 왕실에서 여름철 음료로 자주 마셨다고 한다. 효종 4년 승정원일기에 “생맥산은 여름에 차로 마시는데, 음용 횟수에 구애받지 않고 자주 마신다”라고 적혀 있다.
지인의 소개로 독서 모임 회원들과 이곳을 찾은 김예원 씨 일행의 소감도 들을 수 있었다. 김예원 씨는 “전통 다과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평소 흔하게 먹을 수 없는 전통 다과를 맛볼 수 있었어요. 1인 다과상에 차려진 모든 다과가 다 맛났어요. 그중에 콩고물 도라지 정과, 생맥산이 입안에서 자꾸만 맴돌 것 같아요. 콩고물 도라지 정과는 도라지 특유의 씁쓸한 맛이 나지 않으면서 엄청 쫀득한 식감이 좋았어요. 생맥산은 인삼, 맥문동, 오미자가 섞이면서 차에서 여러 가지 맛이 개별적으로 느껴졌어요”라고 말한다. 사계절의 다과상을 다 먹어보고 싶다는 예원 씨는 가을에 지인들과 다시 방문하겠다고 했다.
우리 전통의 멋은‘KHmall’에서
둘째, 우리 전통의 멋이다. 국가유산을 소재로 국가무형유산 보유자가 직접 만든 다양한 상품이 있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는 연극, 음악, 무용, 공예 기술 등 국가무형유산에 지정된 기술의 소지자로서 인정받은 사람이다. 국가가 인정한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니 그 솜씨는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으로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한국의집, 인천국제공항에 위치한 문화상품관 ‘사랑’을 비롯한 9곳의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 ‘KHmall’(https://www.khmall.or.kr )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전통문화상품의 기획은 물론, 공예 분야 무형문화재 전승자와 협업을 통해 전승공예품의 판로 확대를 돕고 있다.
‘한국의집’ 취선관 1층에 있는 문화상품관 ‘사랑’을 방문했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가 만든 다양한 상품이 전시되어 있다. 주방/생활, 문구/사무, 어린이, 패션잡화 등 일상에서 쓰임새가 많은 상품에 우리의 전통이 덧입혀졌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물품이어서 정성이 깃들여 있다. 그중 전통문양 파우치를 구입했다. 우리의 전통문양 속에는 부귀, 장수, 건강과 같은 뭇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부적이 따로 있을까? 전통문양 파우치야말로 내가 휴대하는 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전통의 멋을 해외에도 알리기 위해서 작년 4월에 한국문화재재단은 글로벌 온라인 쇼핑사이트 ‘KCHF store(https://kchfstore.or.kr )’를 신규 개설했다. 이 쇼핑몰은 전통문화상품 특화 쇼핑몰로, 한국문화재재단이 직접 개발한 문화상품과 국가무형문화재 작품, 신진작가의 공예품 등을 만날 수 있다. KCHF Store를 통해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호주 등의 국가에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전통의 흥은 ‘민속극장 풍류’에서
셋째, 우리 전통의 흥이다. 우리의 전통 음악을 언급할 때면 ‘흥’과 ‘신명’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흥’은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을, ‘신명‘은 저절로 일어나는 흥겨운 기분과 멋을 뜻한다. 후덥지근한 여름에 한바탕 흥겹고 신명 나는 놀이판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마침 그런 놀이판이 마련되어 있다.‘민속극장 풍류’에서다.
선정릉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민속극장 풍류’가 있다. ‘민속극장 풍류’는 국가무형유산 전수교육관이기도 하다. 7월 중에 이곳에서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의 공연이 열리고 있다. 7월 14일은 이호연 명창의 ‘경기민요’ 공연을 관람했다. 이호연 명창은 작년에 국가무형유산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바 있다. 이번 공연은 2024 국가무형유산 공개행사 지원사업의 하나로 열리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이호연 명창의 경기민요 공연 ‘숨-경기소리를 好演 호연하다’ 공연에 앞서 이호연 명창을 만나봤다.
이호연 명창에게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자 “정확히 경기민요 중 ‘경기12잡가’로 인정받았어요. ‘경기12잡가’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방에서 부르던 잡가를 가리킵니다”라고 말했다. 경기12잡가를 12잡가, 긴잡가 또는 ‘좌창(座唱)’이라고도 한다. 경기12잡가에는 본래 8잡가와 잡잡가로 구분되어 있던 것을 12잡가로 묶었다. 8잡가에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집장가’, ‘소춘향가’, ‘선유가’, ‘형장가’, ‘방물가’ 등이 있다. 잡잡가는 ‘달거리’, ‘장기타령’, ‘방아타령’, ‘출인가’ 등이 있다.
제목을 들어보니 방아타령 외에 생소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요와의 차이점을 묻자 이호연 명창은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불렀던 민요처럼 대중적이지 않아요. 경기12잡가는 전공자들이 많이 불렀어요. 가사가 길고 노래를 부르기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국가무형유산 예능보유자로 인정해주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이호연 명창은 국가무형유산 예능보유자로서 우리의 소리를 전승할 의무를 느낀다고 했다. 그는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공중파 방송마다 국악 프로그램이 편성되었어요. 일반인이 TV에서 우리의 전통 음악인 국악을 접할 수 있었답니다. 지금은 국악 프로그램을 찾기 힘들어요. 물론 국악을 즐기고자 일부러 공연장을 방문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도 국악을 알릴 필요가 있는데 그게 정말 아쉬워요. 전공자가 아니라도 지속해서 듣다 보면 귀에 익숙해져서 즐길 수도 있겠죠”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KBS1 ‘국악한마당’ 외에 국악 프로그램이 없다. 우리의 전통 음악을 보전하는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국악 프로그램을 편성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호연 명창은 “국립국악원이나 국립창극단 등 국가기관에 소속된 예술인은 정기적으로 공연할 무대가 있어요. 하지만 개인 혹은 단체에 소속된 예술인은 공연할 무대가 많지 않아요. 전통 음악을 하는 예술인을 위한 무대나 교육 등의 기회가 늘어나 그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흥과 신명을 표현한 우리의 전통 음악이 청년층들에게 외면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전통 음악이 활성화하길 바란다고 했다.
오늘 공연은 윤중강 음악평론가가 사회를 맡았다. 그가 공연할 곡을 소개하고 또 공연 중에 무대 뒤 배경에 곡해설이 나왔다. 이호연 명창과 경기민요 이수자와 전수자들이 펼치는 공연 프로그램은 다양했다. 그중 압권은 첫 곡으로 이호연 명창과 전수자들이 무대에 앉아서 ‘집장가’를 불렀다. 이때 이호연 명창이 장구를 치면서 장단을 맞췄다. 경기12잡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잡가는 소리꾼이 장구 장단 반주로만 노래한다. 이때 소리꾼이 직접 장단을 치기도 하고, 반주자를 따로 두기도 한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을 만나봤다. 조경아(가명) 씨는 퇴직한 뒤 민요를 배우고 있어서 본 공연 소식을 듣게 되었다. “60대 후반의 이호연 명창의 목소리가 청아하고 깊이가 있어서 노래를 듣는 내내 감탄했어요. 이호연 명창 외에 출연하신 분들이 우리의 소리를 지켜주고 계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곡해설이 있긴 했지만, 가사가 자막으로 나왔더라면 더 좋았겠단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경기12잡가를 들을 기회가 없었어요. 민요를 배우는 저로선 이런 공연이 널리 홍보되어 많은 국민이 우리의 전통을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한국의 전통 맛, 멋, 흥을 알리는 국가유산진흥원의 여름나기 프로그램 3가지 ‘▲1인 다과상 체험, ▲전통 문양 파우치 구입, ▲경기민요 공연 관람’을 이용해봤다. 문득 TV 광고에서 봤던 박동진 명창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번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좋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들도 우리의 전통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킨 K-컬처의 바탕엔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우리의 전통문화가 있다. 그러고 보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진흥원과 함께 본격적인 휴가철인 7월을 맞아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국가무형유산 공개행사’와 ‘전승자 주관 기획행사’를 개최 중이다. ‘국가무형유산 공개행사’는 무형유산의 대중화를 위해 전승자들이 자신의 기량을 공개하는 행사로, 7월에는 총 8개의 종목을 선보인다. ‘전승자 주관 기획행사’는 전승자가 자유롭게 기획하는 무형유산 공연과 전시로, 7월에는 총 28건이 준비되어 있다.
국가무형유산 공개행사와 전승자 주관 기획행사의 상세일정은 국가유산청 누리집(www.khs.go.kr )을 방문하거나, 국가유산진흥원(공개행사: ☎02-3011-2153, 기획행사: ☎02-3011-2156)으로 문의하면 일정, 장소 등을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