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전 세계에 한국이 널리 알려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세계적 위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특히 한국 문화는 더 그랬다. 유럽에서 K-팝은 소수의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서브컬처였고 문화 분야에서는 이전부터 꾸준히 영화제에서 상을 타던 영화감독과 영화만이 한국의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2015년 프랑스 남부 도시 몽펠리에에서 꼬레디시(Corée d’ici : 여기에 한국이 있다)가 시작되었다. 꼬레디시는 공연, 전시, 문학, 영화, 한식 등 한국의 문화예술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며 한국의 문화예술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벌써 9회째를 맞이하는 꼬레디시의 공연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고 하여 한국문화의집을 찾았다. 매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축제를 어떻게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비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함께 한국과 해외 문화예술인의 쌍방향 협업을 지원하는 ‘2023 코리아라운드 컬처’ 사업에 있었다.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 문화예술인과 협업하고 싶어 하는 해외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해외 문화예술인이 국내 문화예술인과 협업하며 국내에서 활동할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예술인이 다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쌍방향 국제문화 협업 사업을 첫 추진하였고 이에 프랑스를 포함한 9개국이 선정되었다.
한국문화의집에서 열린 공연 ‘소리의 빛깔’은 프랑스적 음악 감성과 한국 정서의 음악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어질 수 있을지, 또 그 둘이 만나 어떤 새로운 음악을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작된 한-프 예술가들의 협업 프로젝트이다.
먼저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첼로와 비브라폰을 연주한 프랑스 예술가들의 음악이 연주되었고, 그 위에 태평소와 피리, 거문고, 각종 국악 타악기가 더해진 한국 예술가들의 음악이 덧입혀졌다. 이후 전자음악, 영상, 한 번씩은 들어봤을 익숙한 동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철학적 가사가 담긴 국악 공연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마지막에 다시 한-프 예술가의 공동 공연으로 75분이 넘는 열정적인 무대가 막을 내렸다.
이번 공연을 위해 한-프 예술가들은 수개월 동안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교류했다고 한다. 이번뿐만 아니라 이미 꼬레디시 페스티벌에서 한-프 예술가들은 밀도 있는 공동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 결실이 코리아라운드 컬처 사업을 통해 맺어져 한국 관객에게까지 전해졌고, 올 11월에 열리는 제9회 꼬레디시 페스티벌에서 프랑스 현지 관객들을 만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무대를 바라보면서 그들은 어떻게 소통했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는지, 중간에 통역가가 있었을지, 아니면 만국 공통어 보디랭귀지가 섞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수단을 사용했든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들 사이에 흐르는 음악에는 언어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 공연을 마주한 관객에게도 언어의 장벽은 필요가 없었다. 여기에 바로 문화예술의 힘이 있다.
코리아라운드 컬처를 통해 한국은 이제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지원을 주도하고, 전 세계에서 협업하고 싶어 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국경을 초월하는 문화예술의 힘으로 앞으로 보다 풍성한 K-컬처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보다 단단한 문화예술 기반이 만들어지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