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방학을 앞두고 상담 예약이 잡혔다. 그런데 상담 하는 날, 학부모에게서 문자가 왔다. 언니와 동생이 있는데 하교 시간이라 함께 가도 되느냐는 거였다. 나는 흔쾌히 함께 오라고 했고, 학부모는 세 자매를 데리고 왔다. 둘째의 상담이었는데, 정신 없이 상담을 하는 와중에 눈에 띈 건, 아이들이 모두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아이들 안경 값만 해도 부담이시겠다며 걱정을 하니 최근에 다자녀 혜택이 생겨서 좀 나아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떤 지원인지 찾아보니 인천광역시교육청에서 지원하고 있는 교육복지 정책이었다. 다자녀 가구를 대상으로 학습 준비에 필요한 비용을 제로페이 모바일상품권으로 지급하는 이 다자녀 학습준비비의 지원 대상은 출산·입양으로 자녀 3명 이상을 양육하는 인천 초·중·고 가정의 자녀 중 셋째 이후 학생이며 12월 29일까지 학습준비비 신청이 가능하다.
제로페이 포인트로 2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는데 의류, 도서, 문구는 물론 안경과 학습용 전자기기 등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숙박형 체험학습비도 지원하는데 수학여행은 초·중학교 15만 원, 고등학교 28만 원, 숙박형 수련활동은 초·중·고 모두 10만 원 내로 지원받을 수 있다고.
세 딸의 엄마는 이번 여름방학에 첫 기차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다자녀 혜택으로 어른은 30% 할인을 받고, 아이들은 어린이·유아 할인으로 첫째와 둘째는 50%, 막내는 75% 할인을 받아 여수로 기차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사실 자녀가 많을수록 자차를 이용하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하고 경제적으로는 이익이지만 아이들이 KTX를 타보고 싶다고 졸라 이번에 다자녀 혜택을 이용해 큰맘 먹고 계획을 세웠단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27일 ‘난임·다둥이 맞춤형 지원대책’을 발표하면서 쌍둥이, 세쌍둥이 구분 없이 모두 140만 원만 지급됐던 다둥이 임신·출산 진료비 바우처를 태아당 100만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쌍둥이는 200만 원, 세쌍둥이는 300만 원으로 바우처 금액이 늘어난다. 다둥이 임산부의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 또한 기존 10일에서 15일로 더 늘리고, 산후조리 도우미는 세쌍둥이 이상 가정에도 최대 2명에서 신생아 수에 맞춰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개별소비세법과 소득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는 자녀 3명 이상 다자녀 가구가 자동차를 구입할 때 개별소비세를 300만 원까지 면제해주고 있다.
서울시 역시 지난 5월 다자녀 가구 기준을 자녀 3명 이상에서 2명 이상으로 낮추는 내용이 담긴 저출산 대책을 발표해 두 자녀 가정도 각종 공공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서울대공원 등 13개 공공시설을 무료 혹은 반값에 이용할 수 있고, ‘다둥이 행복카드’ 발급 기준을 만 13세 이하에서 만 18세 이하로 완화해 중·고등학생의 자녀까지 학원, 서점, 대중교통 요금 등의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친정 엄마는 늘 내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둘이 만났으면 둘은 낳아야지, 하나만 낳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래서 외동을 둔 나의 경우엔 다자녀 혜택은 일절 없다. 그러나 내 주변의 많은 두 자녀를 둔 이들도 속속 다자녀 혜택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은 이제는 모두가 인지할 정도다. 그리고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이 경제적 부담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는 나도 사교육비 부담이 큰데 자녀를 둘, 셋 키우는 가정은 사교육비 부담이 얼마나 막중할까 싶다. 그런데 어디 이뿐이랴! 한창 크는 아이들 먹성은 정말 깜짝 놀랄 정도니 그저 입고 먹고 자는 아주 기본적인 것을 충족시키는 것도 어쩌면 힘에 부칠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런 정책으로는 저출산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정작 다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확대되는 정책이 나올 때마다 반가워한다. 당장 아이들의 학원비, 안경 구입비, 교재비에 여행까지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갈 수 있으니 어느 누가 마다할까! 지금 다자녀를 키우는 가정에 소소한 기쁨이라도, 작은 숨통이라도 틔울 수 있는 정책이 반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