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고 하면 흔히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거나 미술가, 무용가, 사진가, 소설가, 시인 등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긴 시간 동안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간간히 ‘작가 일’을 하고 있다. 작가는 사실 종류가 여럿이다. 소설이나 수필, 시 등을 쓰는 작가도 있고 드라마나 희곡을 집필하는 작가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중에 속하지 않는 ‘방송 작가’로 살아왔다. 지금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방송 작가’로 일한 것이다. 친구 중에는 연극판에서 조명감독을 하거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를 쓰는 이도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모두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세금을 떼는 일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어떤 사회적 보장도 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 것이다. 물론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이라 해도 일하는 상황은 천차만별이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2020년 12월 10일부터 고용보험과 실업급여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인 고용보험제도’가 시행되었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문, 출판 및 만화 분야에서 소득 또는 실적 증명 등을 통해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다면 실업급여나 출산급여 등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연령 및 소득 제한이 있으니 세세한 자격은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제아무리 예술 분야에서 일했다 하더라도 이 예술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나는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1년 예술활동증명을 받기 위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서류를 접수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인 나는 정회원을 입증하는 서류와 내가 쓴 원고 등을 보냈다. 쉽게 예술활동증명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접수 두 달 후쯤 서류를 보완해 재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뭐가 문젠가 싶어 담당자와 통화를 하니, 방송 끝난 후 제작진들의 이름이 올라가는 스크롤을 갈무리해서 보내라는 것이다. 나는 방송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유료 결제 후 방송사 로고와 내 이름이 나오는 장면을 캡처해 다시 보냈고 겨우 예술활동증명을 받을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예술인으로 일했는데, 내가 나임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즈음 코로나19로 사정이 어려워진 예술인을 지원하는 지자체가 많아지면서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예술활동증명을 받기 위해 여러 날을 고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러는 열심히 일했지만 재단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갖추지 못해 결국 포기한 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술활동증명이 좀 더 수월해졌다. 6월 30일부터 예술활동증명 절차를 간소화하는 ‘예술인 복지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이 공포·시행되기 때문이다.
예술활동증명 유효기간이 5년으로 통일되고 20년 이상 예술활동증명을 유지한 예술인의 경우엔 예술활동증명 재신청이 면제된다. 또한 코로나19 등 재난 기간의 경우 예술활동증명 유효기간이 연장되는데 예를 들어 2020년에 예술활동증명 유효기간이 남아있거나 시작한 예술인은 3년, 2021년 유효기간이 시작된 예술인은 2년, 2022년 유효기간이 시작된 예술인은 1년 등 최대 3년까지 연장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약 14만 명이 재신청 없이 예술활동증명 유효기간이 연장되면서 최근 20주 가까이 걸리는 예술활동증명 심사 처리가 향후 약 12주 정도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정부는 이밖에도 올 초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했다.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복지 안전망을 위해 예술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분양, 저금리 금융 서비스 등의 시행과 더불어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창작준비금 지원 대상을 2000명 늘려 2만3000명에게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또, 문화예술 분야 주요 공공기관 및 협회·단체 등과 민관 협의체를 통한 소통을 강화하고, 고용부, 복지부, 국토부 등 유관 부처 간 정책 협력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수많은 예술인들이 당당하게 권리를 인정받고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