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지난 2020년 아이의 대입 합격자 발표가 난 뒤 해외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미루었던 여행이다. 파리에서의 일정을 잡다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전시된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이 생각났다.
직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4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열리는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특히, 1973년 ‘동양의 보물’ 전시에서 소개한 이후 50년 만에 대중에 공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직지는 1886년 조·프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를 지낸 콜랭 드 플랑시가 구매한 것이다. 이후 1911년 앙리 베베르라는 사람이 재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그가 사망한 뒤 유언에 따라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보내졌고 수장고에 보관됐다.
독일 마인츠 출생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1455년경 발행한 ‘42행 성경’ 금속활자 인쇄본보다 78년이나 앞서 제작된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프랑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직지를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방문했다. 도서관 곳곳에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갤러리 입구에 전시 안내 책자가 비치되어 있었는데 거기 ‘KOR 한국어’라고 표시된 책자가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 여행 온 대학생이 친구에게 책자를 펼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인쇄술은 7세기 초 아시아에서 처음 등장하였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는 대한민국의 금속활자이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문장을 읽으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직지의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줄여서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라고 부른다. 하권(1377년)은 고려 후기 선승 백운 경한(1298~1374) 스님이 집필한 책을 금속활자로 인쇄한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구텐베르크 성서(1455년)보다 78년 앞선 고려 공민왕 21년(1377년)에 한국 충청북도 청주 흥덕사에서 상·하 2권으로 간행됐으나, 현재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 1책(38장)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직지는 그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2001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 가운데 해당 국가에 있지 않은데도 선정된 유일한 예이다. 그만큼 세계적인 기록유산으로서 직지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머나먼 이국땅 그것도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는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갤러리에서 만났던 두 대학생도 그랬다. 그들은 전시관의 직지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유지연(23), 김수연(23) 학생은 “유럽에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를 통해 우리의 직지가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마침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다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곳 갤러리에 들렀어요”라고 말한다.
유지연 학생은 “구텐베르크를 주제로 한 전시에 소개되는 거라서 아쉬워요. 예상했던 것보다 전시 규모 면에선 협소했지만, 우리의 금속활자본이 세계 최초라는 것을 인정해주고 있어서 그 점에선 아주 뿌듯해요”라고 말한다. 김수연 학생은 “프랑스 파리로 여행 오는 한국 관광객들이 많은데요. 그분들을 대상으로 직지 특별전 같은 것을 기획하거나 아니면 프랑스에서 직지를 빌려와 국내에서 특별전을 열어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지난 2021년 문화유산채널에서 직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2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영화 ‘직지, 활자의 시간여행(https://youtu.be/SWdNlYlajIk)’을 제작했다. 주프랑스한국문화원(http://www.coree-culture.org/)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의 우수성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알리고, 불교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넓힐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직지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문화원에서 직지 프랑스어본 출간 기념 강연회, 다큐멘터리 영화 ‘직지, 활자의 시간여행’ 상영회를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그게 나에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우리 가족, 내가 만나본 두 대학생 모두 직지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우리의 문화유산이 널리 알려지길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우리의 직지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프랑스 현지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