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석좌교수)가 푸근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6월 23일 ‘중장년 청춘문화공간’ 서울센터에서는 최재천 교수의 특별강연 ‘중장년을 위한 인생공부’가 열렸다.
아침 7시 50분. 쏟아지는 잠을 떨치며 집을 나섰다. 지하철역부터 강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강의실 앞에서 간단한 설문을 작성하고 들어갔다. ‘이 시간에 설마?’ 했는데 설마였다! 뒷자리까지 빼곡했다. 강의실에는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중장년들이 모여 있었다. 앞에 앉은 여성은 작은 노트와 펜을 꺼냈다. 노트북을 여는 사람도 있었다. 생생한 자기계발서가 이곳 강의실에 펼쳐진 것만 같았다. 최 교수는 대학교 수업이 있어 강연 시간을 앞당겨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곳에는 사과를 받을 사람은 없었다. 모두 눈빛들이 반짝거렸다.
지난 1월 전국 17개 ‘중장년 내일센터’에 ‘중장년 청춘문화공간’을 조성했다. 프로그램 운영은 문화체육관광부, 공간 조성은 고용노동부가 맡았다. 강의실과 학습 공간, 동아리방, 문화카페 등을 기본 공간으로 구성했다. 5월 31일 부산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지역별 중장년 청춘문화공간을 개소하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인간은요. 처음부터 작심하고 고령화된 동물입니다. 자연계 모든 동식물 중에 번식이 끝나고도 버티는 동물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애당초 저는 ‘인생은 이모작’이라고 주장했었어요.”
그는 고령화 징조를 보였다는 호모 사피엔스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에서 노화가 질병으로 승인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현재 최대 인류 수명으로 잡는 120세가 무너지면 150세, 200세, 300세도 문제는 아닐 수 있다고도 했다. 그땐 중장년의 의미가 어떻게 될까.
“우린 첫 번째 삶에서 자녀를 치열하게 키우잖아요. 두 번째는 좀 고상하고 당당하게 내 인생을 살아야죠.”
불과 200~300년 전, 인류 평균수명은 40년이었다고 한다. 애도 많이 낳았지만, 다 키운 후 삶도 거의 남질 않았다. 그럼 지금은? 갈수록 두 번째 삶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은퇴하고도 30, 40년이 남잖아요. 그럼 조금이라도 일하며 경제생활을 해야죠. 요즘은 보통 몇 번씩 직장이 바뀌는데요. 20대 때 대학에서 배운 전공 하나로 70대를 넘겨서도 버틸 수 있겠어요? 불가능합니다.” 그의 강연 핵심은 교육이 20대에 끝나는 게 아니라, 직장을 옮길 때마다 달라져야 한다는 거다.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책에서 교육을 얻자는 결론이었다.
“수학책이 잘 팔리고 시집을 구매한다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평생교육이 되었고요, 창의적으로 여러 분야를 섭렵하는 분들이 훨씬 유리한 시대가 됐습니다. 독서로 길을 여세요.”
강연을 마치고 한 층을 내려와 중장년 청춘문화공간을 둘러봤다. 이곳은 카페, 상담 공간과 강의 공간이 3, 4층에 나뉘어 있다. 혈압기가 눈에 띄었고 그 옆에는 아침 시간을 책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희 센터는 40대 이상 중장년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요. 상담을 통해 재취업하는 재도약 프로그램 등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이에 따라 맞춤형 개인별 경력개발 서비스, 직업기초역량 증진프로그램, 사업주 지원 패키지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보근 담당자가 이번 달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말했다. 센터에서 주로 진행하는 생애경력설계 프로그램을 비롯한 여러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들었다.
“분위기가 다르죠? 고용센터는 실업급여 부분 등을 하고 있지만, 저희는 교육, 상담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여기는 카페처럼 자유롭게 공간을 이용하고 좀 더 편안하게 계실 수 있지요.” 고용센터와 차이점을 묻자, 그가 답했다. 확실히 창구가 많은 고용센터와는 달랐다. 리모델링하면서 중장년 이용자가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처음 방문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 온라인이나 전화로 예약을 하고 상담을 한 후, 이에 따른 적합한 서비스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특강을 듣거나 책을 이용하기 위해 자유롭게 와도 좋다. 이러한 강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 강연은 인문학을 중점으로 하나, 동기부여가 돼 창업까지 이어지도록 고려했다.
문득 친구가 떠올랐다. 얼마 전 아이를 다 키운 친구는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시작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산에서 뛰놀던 호랑이가 바다에서 수영하게 된 격이었다. 너무 의외라서 놀랍기도 했지만, 새 결심을 한 열정이 훨씬 부러웠다.
돌아오며 어느 행사장에서 들렸다. 시원한 음료수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일단 더위를 달래고 싶어 참여하겠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앱은 50대 이상부터라 입력이 안되시네요. 좀 더 지나서 오셔야겠어요.” 오늘따라 행사장에 놓인 음료수는 더 시원해 보였다. 그래도 기다리면 차례가 온다는 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난 갈증을 참으며 인생 2막을 찾아 서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