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지인이 들고 있는 손수건을 본 적이 있다. 파란 바탕에 규칙적인 모형이 그려있었다. 뭔가 형용할 수 없이 신비해 보였다.
“손수건이 참 멋진데요.” “예쁘죠? 발달장애인 작품이래요. 저도 선물 받았는데, 마음에 쏙 들어요.”
지인은 손수건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판에 박힌 그림이 아니었다. 독특한 색감도 좋았다. 추상적이지만, 오히려 기분이 맑아졌다. 내가 미처 못 본 섬세한 세계를 알려주는 듯했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월 28일 장애예술인 생산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가 시행된다고 밝혔다. 앞서 장애예술인의 열악한 문화예술 활동기반을 개선하기 위해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장애예술인 지원법)을 개정했다. 또 개정법의 시행에 따라 국가와 지자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장애예술인 창작물 3% 우선구매 제도를 의무화했다. 우선구매 제도 시행은 장애예술인이 자립적으로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직업으로 예술가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를 더한다.
이에 KCDF갤러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는 장애예술인 공예품 판매 전용공간을 마련했다. 13명 장애예술인이 만든 30여 점의 도예와 금속, 섬유 공예품 등을 만날 수 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인사동 KCDF갤러리를 찾았다. 장애인의 날을 전후한 1주일 간은 장애인 주간으로 다채로운 행사들이 펼쳐진다. ‘공예정원’이라고 쓰인 문으로 들어서자, 장애예술인 전용공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공예품을 유심히 보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공예품에 저렇게 매료되었을까. 나도 곧 공예품들을 보기 시작했다. 3개의 진열대에는 단청과 한글 노트북 파우치, 디퓨저 등이 있었다.
백자에 금 스트로크를 입힌 달항아리는 무척 특이해 보였다. 연봉 매듭으로 만든 브로치는 색이 고와 옷에 달아보고 싶었다.
돌아오며 또 다른 전시 소식을 들었다. 장애인의 날을 전후해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발달장애인 디자이너 전시였다. 17명의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야생화를 그렸다.
누군가는 야생화를 잡초로 인식한다. 다른 누군가는 야생화가 생물과 토양에 주는 이점을 본다. 우리는 어떻게 보게 될까.
‘Blooming Together ; 함께 피우리’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전시는 야생화와 발달장애인의 접점을 찾는다. 전시는 야생화와 발달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으리라고 소개한다.
전시장에는 야생화를 그린 그림과 컵, 작품 전 그린 스케치들이 전시돼 있었다. 파일 속 스케치를 한 장씩 넘기면서 봤다. 꽃과 줄기를 따로 그린 그림은 꽤 섬세하게 보였다. 같은 꽃이 저마다 다르게 피어난 작품들이 참 기발했다. 어떤 야생화 작품은 꽃을 모티브로 했다는 명품보다 더 근사하게 보인다.
우선구매 제도 시행에 대한 현장의 기대는 크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비장애예술인과 장애예술인 모두 우선구매 제도가 장애예술 활성화에 기여하고 예술계의 다양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난 장애예술인 작품을 통해 비장애인들이 몰랐던 세상을 함께 보고 싶다. 무엇보다 창작물이 작품에서 끝나지 않고, 장애예술인이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활짝 펼쳐지길 소망한다.
장애인 주간, 장애예술인 작품들을 접했다. 이젠 장애예술인 지원법을 통해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장애예술인과 만날 수 있게 돼 반갑다. 여전히 내 눈엔 그 옛날 파란 손수건의 색감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