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로 불리는 일본. 예전부터 지금의 한일 관계를 돌이켜보면 늘 ‘여리박빙’ 그 자체였다. 관계를 개선하기 전 선제적으로 살펴봐야 할 해묵은 과제, 현안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일 관계는 서로의 큰 입장차만 확인한 채 오랫동안 현상유지된 것이 사실이다.
사실 한일 관계 개선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것만 딱 해결하면 종결되는 것이 아닌, 어디선가 불현듯 피어오르는 역사적인 앙금이 아주 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대로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나는 요즘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꿈틀대고 있는 한일 관계를 지켜보면서 쌍방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 수용과 교류에서 유의미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려움이 많았던 두 나라 사이에서 문화 콘텐츠는 민간외교 사절단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2000년대 초, 일본에서는 드라마 ‘겨울연가’ 열풍이 불어 엄청난 파급효과를 발생시켰다. 드라마 주요 촬영장소인 남이섬은 일본 관광객들이 필수로 찾는 최고의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외국, 특히 한국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NHK에서 방영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야말로 한류열풍의 오리지널, 원조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올해 초 영화관에서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3월 초에 선보인 ‘스즈메의 문단속’이란 애니메이션 영화가 대표적이다.
‘슬램덩크’는 1990년대 중후반에 TV로 방영되던, 한창 인기가 있었던 농구 만화다. 이 애니메이션이 영화로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에 개봉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관람객 평점은 9.27점(네이버 기준). 영화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평점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누적 관객수는 무려 448만 명에 이른다.
나 또한 이 영화를 봤는데,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선수들의 디테일한 움직임과 묘사를 아주 수준 높게 옮겨왔다. 뿐만 아니라, 우리 팀보다 훨씬 강한 팀을 상대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 최근 여러 매체에서 많이 회자되는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를 시원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날씨의 아이’, ‘너의 이름은’ 등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다. 누적 관객수는 459만 명. 이미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관객 수를 돌파하여 우리나라 일본 영화 역대 최고의 흥행을 누리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 만화영화 열풍에 대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일본과 한국에서 2번 관람하는 등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민서준(가명) 씨는 “갈등과 재미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이슈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마냥 좋은 관계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나라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문화적으로 많은 교류를 해왔다. ‘나는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긴다’처럼 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따라가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젊은 층에서부터 형성되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한편, K-콘텐츠의 약진 또한 두드러진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과 ‘더글로리’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K-콘텐츠의 힘을 알렸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일본의 장기휴일인 ‘골든위크’를 앞두고 4월 30일까지 도쿄, 히로시마, 후쿠오카, 나고야, 오사카 5개 도시에서 ‘K-관광 로드쇼’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온라인여행사 ‘트립어드바이저’에 따르면 ‘일본인이 올봄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에 서울이 1위로 꼽혔다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를 향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일본 주요 도시에서의 마케팅은 물론, 일본의 MZ세대에게 사랑받는 K-스타일, K-미식, K-콘텐츠 관련 코스와 더불어 ‘겨울연가’의 원조 팬인 중장년층을 위한 ‘겨울연가 추억 재구성’ 마케팅도 연중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한편 4월 14일, 일본에서 열린 한일 관광장관 면담은 4년 만에 개최됐다고 한다. 모쪼록 이번 면담과 로드쇼가 양국 관광교류 촉진에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위, 아래 두 단락 참조=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한일 쌍방이 서로 윈윈하는 문화 콘텐츠에서 나름의 답과 길을 찾는다면 지금보다는 부드럽게 교류 활성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