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완화되면 팍팍한 삶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고금리, 고물가 등 불황의 터널은 아직도 깊다. 이런 상황에서 기름 특화거리를 만들어 불황을 이겨내는 전통시장이 있다.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백년기름특화거리다.
설날을 앞두고 모란시장 기름골목을 찾았다. 모란시장은 1960년대부터 형성된 시장이다. 매달 4, 9일로 끝나는 날에 5일장이 선다. 수도권 3대 5일장 중의 하나다. 모란시장에 가보니 5일장이 서는 날이라 그런지 인산인해다.
시장 옆에 공영주차장이 있다. 주차 불편이 없으니 수도권에서도 많이 찾아온다. 그리고 기름골목 가게마다 통일된 가판대를 보니 깔끔하고 디자인도 돋보인다. 그래서 젊은 주부들도 많이 찾는 시장이 됐다.
모란시장 안쪽에 자리한 기름골목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설날, 추석 등 명절이면 기름 선물세트를 사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
코로나19 불황을 이겨내고 성남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 손님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기름으로 특화된 거리를 만든 것이다. 지난해 12월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대한민국 제1호 백년기름특화거리’로 지정받았다.
기름골목 30여 상점 중 15개 상점이 백년가게(30년 이상, 10개)·백년소공인(15년 이상, 5개)으로 선정됐다.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공식 인증받은 점포다. 골목길 한가운데 중기부가 지정한 대한민국 제1호 백년기름특화거리 명판도 있다. 전통시장에 백년가게 10곳이 모인 곳은 흔치 않다.
기름골목은 대를 이어 장사하는 가게가 많다. 그 중 아버지에게 가게를 물려받은 곳을 찾았다. 1대 함대옥 사장은 올해로 28년째 기름을 팔고 있다. 나이 들어 힘에 부칠 때 아들이 가게를 본격적으로 물려받을 예정이라 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좋은 기름을 짜는 방법을 직접 배우고 익혔다. 이제는 아버지 없이도 혼자 가게를 꾸려나갈 만큼 성장했다고 한다.
함대옥 사장은 “모란시장 기름골목에서 30여 년간 황무지를 개척하는 마음으로 장사를 해왔습니다. 이제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이 많아 자리를 잡은 느낌입니다. 이제 2년 정도만 더 장사하면 다른 가게처럼 백년가게로 선정될 겁니다. 아들에게 백년가게를 물려주어 100년 동안 손님에게 사랑받는 가게로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란시장 기름골목은 원산지 표시제를 철저히 지킨다. 국내산, 중국산으로 구분이 된다. 국내산이 중국산에 비해 가격이 2~3배 비싸지만, 고소한 풍미가 깊어 국내산이 많이 팔린다고 한다. 특히 설날, 추석 등 명절에 국내산 기름 선물세트가 인기다.
아내는 친척들에게 줄 선물로 기름 선물을 구매했다. 선물세트는 1만 원대에서 3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서민 선물용으로 딱이다. 기름은 어느 가정이든 환영받을 선물이다. 알뜰한 아내는 온누리상품권을 미리 준비해 10% 할인받아 샀다.
기름골목 상점들은 온누리상품권과 지역화폐 모두 환영한다. 가게마다 환영 안내판도 붙어 있다. 설날을 앞두고 중기부에서는 1월 31일까지 온누리상품권 특별 할인판매를 한다. 할인판매 기간 동안 충전식 카드형 상품권과 모바일 상품권 할인율을 기존 5%에서 10%로 확대한다. 1인당 월 구매 한도 역시 지류는 기존 5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카드 및 모바일은 7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상향된다.
이제 전통시장에 갈 때 온누리상품권은 필수다. 10% 할인에 전통시장 고유의 에누리와 정까지 담을 수 있으니 짭짤한 이득이다. 지류 상품권뿐만 아니라 모바일 온누리상품권 결제도 가능해 젊은 주부들도 많이 찾고 있다. 참 좋은 변화다.
기름골목 안에 카페 같은 공간이 있는데, 이름이 로스팅 랩(기름연구소)이다. 이곳은 뭐 하는 곳일까? 상인은 물론 손님들이 쉬어갈 수 있는 카페 같은 공간이다. 손님들이 참기름, 들기름 짜기 등을 체험할 수도 있다. 전통시장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라고 한다.
모란종합시장상인회 이경례 매니저는 “로스팅 랩은 기름골목 상인들의 교육 및 소통 공간입니다. 또한 기름을 짜거나 사러 오시는 손님들이 차 한 잔 하면서 쉴 수 있는 곳입니다. 2월부터는 한 달에 한 번 가족 단위로 고소한 참기름을 생산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모란시장 기름골목에 가보니 활력이 넘쳤다. 코로나19와 불황을 이겨낸 상인들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이런 미소를 되찾기 위해 상인들이 얼마나 노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해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전통시장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란시장 기름골목이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