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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는 대한민국 원년(1919년)에 정부가 공포한 군사조직법에 의거하여 중화민국 장개석(蔣介石) 원수의 특별 허락으로 중화민국 영토 내에서 광복군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22년(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함을 자에 선언한다.” 김구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겸 한국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이 1940년 9월 15일 발표한 ‘한국광복군 선언문’은 1920년대부터 임시정부가 이어온 만주·연해주 일대 독립군 조직 규합 노력이 한 단계 발전한 일대 사건이었다. 80년이 지난 지금, 광복군은 우리 군의 뿌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복군, 우리 군 역사·전통 지켜
임정은 1920년 3월 30일 제7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군사에 관한 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비롯해 독립전쟁을 전개할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1930년대 들어서는 중국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내 한인특별반 설치 추진, 한국특무대독립군 설치 등이 이어졌다.
임정은 1939년부터 광복군 창설을 본격 추진했다. 그해 11월 11일 발표한 ‘독립운동방략’에는 향후 3년간 기본 무장군 10만 명을 편성해 독립전쟁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듬해 5월에는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장 김구 명의로 ‘한국광복군편련계획대강’을 중국 측에 전달했다. 대강에는 광복군의 임무와 편제, 모집방법, 동북방면 내 한인 무장세력 편입안 등이 담겼다.
1940년 8월 4일, 임시정부는 힌국광복군총사령부를 조직하고 9월 15일 ‘한국광복군선언문’을 통해 “중화민국과 합작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해 연합군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17일 충칭시 가릉빈관에서는 한국광복군 성립전례가 열렸다. 총사령관은 지청천, 참모장은 이범석이 맡았다.
주목할 것은 광복군이 대한제국군부터 시작된 우리 군의 맥(脈)을 이었음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보고서’에는 ‘정미년(1907년) 8월 1일 국방군(대한제국군) 해산의 날이 곧 광복군이 창립된 날이라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통해 광복군은 대한제국군-의병-독립군으로 이어진 대일 독립전쟁의 명맥을 잇고, 광복 후 국군 창설 전까지 우리 군의 역사와 전통을 지켰다는 상징성을 부여받는다.
국내 진입작전, 일본 패망으로 불발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이틀 후 대일 선전포고문을 발표했다.
광복군은 인도-버마전선과 중국에서 연합군과 연합작전을 수행했다. 인도-버마전선에 파견된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는 1945년 7월 일본군이 패퇴할 때까지 2년여 동안 영국군과 공동으로 대일항전을 전개했다.
중국에서는 미 전략첩보국(OSS)과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이라는 이름의 국내 진입작전을 추진했다. OSS 특수훈련을 받은 광복군 대원들을 국내에 침투시켜 적 후방공작을 전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1945년 5월부터 3개월 과정의 OSS 훈련이 실시됐고, 8월 4일 1기생 훈련을 마쳤다. 같은 달 7일에는 김구 주석과 OSS 책임자인 도노번(William B. Donovan) 소장이 만나 한미 간에 대일항전을 위한 군사합작 개시를 선언했다. 그러나 10일 일본의 항복 소식이 전해지며 국내진입작전은 시행되지 못했다.
훗날 역사가들은 작전이 성사됐을 경우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당시 전력을 감안할 때, 광복군은 연합군 일원으로 참전해 대일전쟁을 전개하고 전후 연합국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준비했지만 결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김구 주석은 실제 일본의 항복 후 “수년 동안 준비한 참전준비가 모두 헛일이 되고 말았다”며 탄식을 내뱉었다.
통: 광복군 정신·법통
우리 군은 창군 초기부터 정통성과 뿌리를 광복군에 둬야 한다는 인식 아래 계급체계를 정하고 인물들을 등용했다. 광복군의 정신·법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해지는 중이다.
이범석 등 광복군 출신 요직 등용
광복 직후 국민 대다수는 국군의 모체를 광복군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 당시 입대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국군 형성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같은 인식은 1946년 1월 15일 조선경비대 출범 당시 광복군이 아직 합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경비대 계급과 명칭을 대한제국군·광복군 체계를 혼용해 사용했던 점에서 드러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되면서 광복군 참모장 출신 이범석이 초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국방부 차관 또한 광복군 출신 최용덕이 맡았다. 광복군 출신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조선경비사관학교(그해 9월 5일 육군사관학교로 개칭)에 대거 입교하며 국군에 참여한다.
또한 광복군 출신들은 임관과 함께 중요 보직에 기용됐다. 광복군 참모장 출신으로 정부수립 직후 귀국해 육군 준장으로 특별 임관한 김홍일 7대 육사 교장이 대표적이다. 육사 교장에는 이준식·안춘생 등 광복군 출신들이 연이어 보직됐다. 이렇게 광복군의 정통성은 국군에 계승됐다.
육사, 광복군 출신에 명예 졸업증서 수여
정부와 우리 군의 광복군 역사 계승 노력은 최근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2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국방부·국가보훈처 핵심의제 토의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도 육군사관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시키고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기반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독립군·광복군 관련 역사를 우리 군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연구에 나섰다.
그 결과물로 2017년 12월 발간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광복군의 정통성 위에 건설된 대한민국과 국군은 항일독립투쟁의 총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건군 과정에서 국군은 대한제국군-의병-독립군-광복군으로 이어진 국군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그 바탕 위에 현대적 군맥의 계승자로서 건군정신과 국군이념을 새롭게 정립해 나갔다”고 밝혔다.
김영관 광복군동지회장을 비롯한 광복군 출신 인사들에 대한 예우도 다하는 중이다. 육군사관학교는 2018년 3월 6일 제74기 생도 졸업 및 임관식에 김 회장과 광복군 출신 이영수·오희옥 옹 등을 초청해 명예 졸업증서를 수여했다.
문 대통령은 임관식 축사에서 “독립군·광복군 대표 김영관 애국지사를 비롯한 광복군 생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육사 교정 내에 광복군의 지청천 총사령관, 이범석 참모장 등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우리 군이 독립군·광복군 역사를 계승하고 있음을 다시금 천명하고 있다. 최한영 기자
참고문헌: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발간)
최한영 기자 < < visionchy@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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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이 말하는 정책 종묘에서 만난 2만 여 개 레고 블록으로 만든 종묘제례 레고(LEGO) 좋아하시나요. 종묘(宗廟)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레고(LEGO)를 보았습니다. 종묘 향대청 지오실에 2만 여 개의 레고 블록으로 종묘 제례 모습을 생생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2만 여 개의 레고 블록으로 만든 종묘제례 모습 앞에서 콜린 진이라는 레고 아티스트가 직접 만든 레고 오향친제반차도라는 작품입니다. 궁능유적본부의 고증을 받아 레고 블록으로 왕과 왕세자, 제관들, 종묘제례악을 연행하는 악대와 무용수, 제례를 참관하는 문무관원 등 209명의 인물과 26종의 악기를 생생하게 구현했습니다. 레고로 만든 국악기의 모습 아이가 편종과 편경같은 복잡해 보이는 악기들을 인상 깊게 보더니 직접 레고를 조립해서 만들고 싶어 할 정도였습니다. 레고 작품 옆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전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조선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전통이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 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이 인정되어 2001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전승하는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며 숨은 노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류무형유산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주제로 하는 향대청 지오실 사람을 통해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해졌다는 것이 참 대단합니다. 매년 5월의 첫 번째 일요일에 종묘대제를 거행하면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니 챙겨 볼 만합니다. 특별 개방한 종묘 망묘루의 모습 국가유산청 출범을 맞아 5월 17일부터 6월 30일(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관람객들에게 내부를 특별 개방한 망묘루를 보았습니다. 망묘루는 종묘 관리를 담당한 관서인 종묘서(宗廟署)가 있던 건물입니다. 제례를 지내러 온 국왕이 이곳에서 선왕을 추모하며 남긴 글을 현판으로 만들어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망묘루에서 바라본 연못의 모습 망묘루 내부에서 바라본 풍경 직접 가보니 망묘루 건물 중 1칸이 누마루로 되어있습니다. 창밖으로 초록이 어우러진 연못과 종묘 전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종묘 정전 모형을 조립해 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었습니다. 종묘 정전의 가림막과 종묘에 관한 전시물 망묘루에 종묘를 가꾸고 관리하는 유산관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물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종묘서(宗廟署) 관원의 종묘제례에서 지켜야 할 것을 적은 현판의 내용이 기억납니다. 하나, 제기는 반드시 제사 전에 미리 세척하고 종묘서 관원이 세척을 감독하라라는 수칙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업무 매뉴얼을 작성한 관리자의 마음이 2024년에도 느껴졌습니다. 옆에는 현재 종묘의 유산관리자 4명의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도심 속에서 계절 변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종묘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습니다. 세계유산 종묘 종묘는 조선의 국가 사당입니다.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지요.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귀하고 정성스럽게 다룬다는 의미입니다. 종묘의 대표적인 건물 정전(正殿)이 공사 중으로 가림막이 설치되어 아쉬웠습니다. 국가유산 수리 현장 공개관람 안내(종묘 정전 보수정비 공사) 그 대신 사전신청을 통해 국가유산 수리 현장 공개관람에서 정전 보수정비 공사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정전 서북쪽에 영녕전(永寧殿)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지은 것으로,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신 곳입니다. 종묘에는 조선 시대의 27대 왕 중에 광해군, 연산군을 제외한 모든 왕이 모셔져 있습니다. 종묘 입구 조선 시대에 왕이 돌아가시면 궁궐에서 3년상을 치르고, 종묘로 신주를 옮겨 제사를 지냈습니다. 종묘에서 선대왕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떠올리며, 효(孝)와 예(禮)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한지혜 soulofaqua@naver.com
- 영상 [재외공관장 신임장 수여식] 12개국 재외공관장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윤석열 대통령 ☞ 대통령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