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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침공 위협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당나라는 내부적 안정을 회복하면서 곧바로 주변의 동돌궐과 서돌궐, 토번, 고창국(지금의 중국 신강성 돈황에 있던 나라) 등을 차례로 복속시켰다. 642년까지 당에 굴복하지 않은 나라는 고구려뿐이었다.
이 때 당나라를 세계 최강의 부국으로 만드는데 기초를 쌓았다는 태종 이세민이 등장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강대했던 시기 중의 하나가 바로 당 태종의 집권기였다. 그가 집권한 시기를 ‘정관의 치(貞觀之治)’라 할 정도로 영화로운 시대이므로 중국인들은 그를 모택동이 이끈 ‘문화혁명’에서 진시황제를 복권시키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았다.
고구려를 제외하고 변방을 모두 제압했다고 생각한 당의 태종은 곧바로 고구려 정복에 착수했다. 물론 당태종은 서두르지 않았다. 수나라와의 혈투에서 승리한 저력 있는 고구려이므로 치밀한 준비가 없이는 고구려를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태종의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당은 고구려를 점령할 수 없었다. 그의 아들 고종도 고구려와의 전투에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의 사전에 패전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과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연개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배출한 걸출한 인물인 연개소문에 대해 3회에 걸쳐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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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당의 전쟁 상황도, 연개소문 지휘하의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전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후 아들들의 내분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
<고구려 정복을 위한 당태종의 집념>
전쟁이 일어나기 4년 전인 641년 태종은 직방낭중 진대덕(陳大德)을 고구려에 사신으로 보낸다. 직방낭중은 6부(部) 가운데 병부(兵部)에 속하며, 지도를 관리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그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진대덕은 지경으로 들어와서 이르는 성읍마다 관수(官守)들에게 비단을 후하게 주면서 “나는 우아하고 산수를 좋아하니 이곳에 좋은 곳이 있으면 나는 구경만 하겠다”하니 관수들이 기뻐하며 이를 인도하니 온갖 곳을 유람하여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로 인하여 자세한 부분까지 모두 알 수 있었고 또 한인(漢人)으로서 수나라에 종군하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자를 보면 그 친족들의 존망을 말하여 주니 사람마다 눈물을 흘렸다. (중략) 진대덕은 사신으로 온 것을 인연으로 우리나라의 허실을 엿보았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였다.’
진대덕은 고구려의 도로, 지세, 산세 등을 파악하는 염탐자로 현대로 따지면 간첩이었다. 그것은 『한원』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보고서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신성-남소성 70리, 평양성-국내성 670리, 평양성-오골성 700리, 안시성-은성 100리, 평양성-압록수 450리’
이와 같이 고구려에 대한 철저한 자료를 수집한 태종은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찾는다. 우선 당나라와 신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핑계 삼아 상리(商里) 현장(玄獎)을 사신으로 보내 신라를 괴롭히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고구려를 협박했다. 당의 이런 협박에 연개소문은 굴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신라와 간극이 벌어진 지는 벌써 오래다. 지난번 수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신라는 그 틈을 타 우리 땅 500리를 빼앗아 그 성읍을 모두 차지했으니 그 땅을 돌려주지 않으면 싸움은 그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보고를 받고 태종은 다시 644년에 장엄(蔣儼)을 보내 협박했지만 연개소문은 이를 일축하고 그를 토굴에 가둔다. 이로서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요동은 원래 중국 땅인데 수나라가 네 번이나 군사를 일으켰으나 취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 동정(東征)함은 중국을 위해 자제(子弟)의 원수를 갚고 고구려를 위하여 군부의 치욕(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한 것)을 씻으려 할 뿐이다. 또 사방이 크게 평정되었는데 오직 고구려만 평정되지 않았으니 내가 더 늙기 전에 이를 취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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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공성용 신무기 당차, 당나라에서 사용한 최첨단 무기로 성벽이나 성문을 공격할 때 사용했다. |
위의 내용을 보면 당태종의 명분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을 응징하고 백성을 구원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고구려와 수나라와의 전쟁 때 전사한 백성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며 셋째는 사방이 크게 평정되었는데 오직 고구려만 평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당태종이 수나라가 고구려에 패배한 이유를 면밀히 검토하여 다음과 같이 고구려를 공격할 작전을 세웠다고 적었다. 영류왕 시해부분은 뒤에 다시 설명한다.
첫째, 수양제의 패인은 정병(精兵)을 가리지 않고 오합지졸까지 동원하여 군사는 비록 400만에 달했다고 하나 실제로 전투에 참가할 장병은 수십만에도 못 미쳤다. 그러므로 태종은 10년 동안 철저하게 훈련시켜 양성한 군사 중에서 20만 명을 차출했다.
둘째, 수나라는 고구려의 변경부터 잠식해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대군으로 평양에 침투했지만 보급선이 끊어지고 후원군이 없었다. 당군은 평양으로 곧바로 침입하지 않고 먼저 요동에 있는 각 고을을 먼저 점령한다.
셋째, 수나라는 진군 중에 자기가 먹을 양식을 장병이 각자 지참하고 추후에 수군(水軍)이 식량을 공급하기로 했으나 수군이 고구려군에게 패배하여 식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당 군은 소ㆍ말ㆍ양 등을 각 장병에게 분배하여 말로 이동하고 양식도 직접 지고 가지 않고 소로 운반하게 했다. 또한 전쟁터에 도착해서 수군이 공급하는 식량에 의존하지 않고 소ㆍ말ㆍ양 등의 고기로 이를 충당한다.
넷째 수양제는 오로지 수나라 군대로만 작전에 임했으나 당나라는 신라와 공수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남방을 교란시키게 했다.
이와 같이 고구려와의 전투에 대비하여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태종은 정예군 6만 명을 유주에 집결시키고 세 갈래 길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총사령관인 이세적이 선발대 6만 명을 이끌었고 당 태종의 친정군 20만이 뒤를 따랐다. 또한 장량(張亮)이 수군 4만3천 명을 500척의 배로 이끌었다. 스스로 천하의 중심이라고 했던 당나라와 불과 30년 전 수나라를 멸망시킨 고구려가 결국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전쟁은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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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내부 모습, 안시성 산허리는 대부분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있으며 제법 큰 마을이 있다. 멀리 산성이 보인다. |
당시 당이 택한 전략은 수륙양면작전으로 수나라의 실패를 거울삼았으므로 매우 효율적으로 진군했다. 물론 이세적이 고구려의 보루라고 볼 수 있는 신성(新城) 공격에 실패했지만 육군은 개모성을 장악했다. 개모성 전투에서 고구려는 인구 2만 호와 양곡 10만 석을 잃었다. 장량은 요동반도의 끝 해안 절벽에 위치한 요충지 비사성도 함락시켰다.
북쪽과 남쪽의 중요한 요새를 점령하여 기선을 잡은 당군은 비로소 요동방어망의 중심이며 정문이라 볼 수 있는 요동성으로 진격했다. 이때 당군이 고구려로부터 탈취한 군량미는 원정군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고질적인 식량문제를 확보할 수 있었고 태종휘하의 군대도 요하에 도착하여 사기를 높였다.
고구려도 당군의 공격이 예사롭지 않음을 파악하고 곧바로 신성의 병력 4만을 요동성으로 급파했다. 마침 신성의 구원군이 요동에 도착했을 때 당군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이세적의 주력은 도착하지 않았고 당태종의 군대도 요하에서 발목이 잡혀 있었다.
기회를 포착한 고구려군은 당군을 공격하여 패퇴시켰다. 그러나 당의 장군인 도종은 도주하다가 고구려 군에 허점이 생기자 수천 기를 거느리고 고구려 군을 기습하였다. 이때 마침 이세적군의 주력이 도착하여 고구려군은 대패하고 신성의 지원군은 요동성에 합류하지 못하고 패주했다.
당군은 곧바로 수양제가 100만 명을 동원하고도 점령하지 못했던 요동성을 공격했다. 이 공격에 당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거대한 투석기를 동원했다. 수양제가 고구려군을 침공할 때 사용한 공성구가 효과를 보지 못한 경험을 살려 당군은 강력한 포차를 제작했다. 이 신형 포차는 300근 짜리 돌을 무려 300보(450미터)나 보낼 수 있었다. 고구려가 자랑하는 맥궁의 사격거리가 240보나 되지만 당군의 피해는 전혀 없이 고구려군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동성은 원군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요동군 자체로만 12일간이나 버텼지만 결국 요동성은 함락됐고 포로가 된 병사만 1만, 민간인 포로가 4만, 탈취당한 군량미가 50만 석이나 되었다.
다음 공격 목표는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백암성이었다. 백암성은 강으로 둘러싸여 삼면이 절벽이고 출입구는 서남쪽뿐이므로 수비에 절대적인 이점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암성은 쉽게 함락되었다. 성주 손벌음이 당군과 내통하여 항복했기 때문이다. 당태종은 항복한 손벌음을 계속하여 백암성주로 인정하는 등 선무정책을 베풀면서 항전의지를 불태우는 고구려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데 치중했다.
다음 목표는 당연히 고구려의 요충지 건안성(建安城)이다. 그런데 건안성 공격을 앞두고 당나라의 진열에서 이견이 생긴다. 건안성이나 오골성이 중요하지만 안시성을 점령하지 않으면 배후로부터 공격을 받아 당나라의 군량미 수송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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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 이세민,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제 중에 한 명인 당태종은 고구려 정복에 실패하자 고구려 정복을 포기하라고 유언했다. |
안시성은 원래 고구려가 요동을 정복한 404년에 쌓은 산성으로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도 3년이나 당군과 맞서 항쟁한 곳이다. 그만큼 안시성은 우리 민족에게 널리 알려진 전승지이지만 놀랍게도 그 구체적인 위치조차 근래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가 한눈에 보이는 중국의 국경도시 단동은 예로부터 중국에 들어가는 관문으로 한국전쟁 때 파괴된 압록강 철교가 아직도 남아있다. 단동을 지나면 지금도 고려문이라는 지역이 있고 그 문을 지나면 천혜의 요새인 봉황성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봉황성을 안시성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연암 박지원이 사료를 근거로 하여 봉황성이 안시성이 아니라고 밝혔다.
근래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안시성은 산의 기복에 따라 산 능성을 둥글게 이어 쌓은 판축(版築)의 토성으로 여러 개의 산을 환형(環形)으로 묶은 고로봉 산성이다. 학자들에 따라 약간의 이견은 있으나 대체로 요령성 해성시 영성자촌에 있는 토성으로 추정된다.
안시성은 높고 험한 산위에 있지 않은데다가 성내 넓이는 동서 1킬로미터, 남북 0.5킬로미터에 총길이 4킬로미터 내외의 작은 성이다. 그러나 산은 비록 높지 않지만 북쪽으로는 해성하(태자하 지류), 서쪽으로는 팔리하를 해자로 한 절벽이 있어 산성으로서의 이점을 갖고 있다.
현재 성안에는 농경지와 마을이 있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두 군데의 성문 자리가 있으며 대부분 산허리는 복숭아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있다. 안시성의 정확한 위치는 북위 40도 45분 32.6초, 동경 122도 47분 31초이며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금지하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원래 안시성은 북으로 백암성, 서쪽으로 건안성이 지켜주는 요충으로 평양성으로 향하는 통로를 지키는 고구려의 간성인데다가 이 지방의 철광을 지켜주는 보루였다. 지금도 이지역의 철과 해성 부근의 마그네슘 생산은 중국을 대표한다. 바로 수와 당이 고구려와 피나는 쟁탈전을 전개한 이유이다. 안시성 대첩과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안시성대첩과 연개소문」, 국정브리핑, 2004.5.15)에 약간 설명하였지만 이를 보완하여 설명한다.
당태종은 백암성과 건안성을 함락한 여세를 몰아 안시성에 대한 총공격을 명하고 수항막(受降幕)을 설치하여 성 함락 후의 기념식까지 준비했다. 이때 동원된 당의 무기는 포차와 당차(撞車)였고 고구려 측도 포노(砲弩, 쇠뇌로 여러 개의 화살이 동시에 발사되는데 마차에 의탁하여 이동이 가능하며 주(周)이래 한(漢)대에 크게 활용되었음)와 포차를 동원했는데 학자들은 고구려와 중국의 무기는 비슷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안시성의 혈전은 6월부터 9월까지 3개월여에 걸쳐 치열한 대접전으로 진행됐지만 성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성주인 양만춘의 전략에 의해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지형이 험하고 군졸이 용감했다’는 『신당서』의 기록을 볼 때 안시성 싸움의 승리는 안시성의 천혜적인 지형과 군졸들의 사기가 중요 요인인 것 같다. 이적(李勣)이 당태종에게 “성이 함락되면 남자들을 모두 죽이자”고 한 사실도 이 전투의 치열함을 말해 준다.
당군이 안시성 공격을 결정했을 때 안시성 안에는 주민을 비롯한 고구려인 10여만 명이 공격에 대비하여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의 전투는 고구려에 매우 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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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ㆍ당의 공격에 맞선 고구려군. |
연개소문은 안시성을 지원하기 위해 북부욕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이 이끄는 15만 명의 고구려 지원병을 급파했다. 지원병 안에는 최소 5천 명 이상 되는 말갈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욕살은 여러 성을 관장하는 광역 행정망의 책임자로 임용한 박사는 고구려의 광역행정망은 동서남북의 방위명을 딴 5부였으므로 이 중 남부와 북부의 병력이 총 동원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고연수가 첫 전투에서 대패하고 휘하 장병 3만 6천명을 거느리고 당태종에게 항복했다. 당태종은 고구려의 지휘관 3500명은 당나라로 압송하고 고구려의 용병이던 말갈병 3300명은 생매장했다.
여기서 당태종은 매우 놀라운 결정을 내린다. 당태종이 항복한 나머지 고구려 병사를 모두 석방했다는 것이다. 고구려와의 전투에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부분에서 황 원갑은 안시성 결전을 앞두고 포로가 된 고구려 군을 풀어주었다는 『당서』의 기록은 전적으로 허구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연수의 항복에 따르지 않은 고구려 군이 온전히 남아서 연개소문의 지휘에 따라 끈질긴 유격전으로 당군의 보급선과 진격로를 차단하는 등 적 공격에 앞장섰을 것으로 추리했다.
고연수가 당태종에게 항복했는데도 그를 따르지 않는 병사가 많이 있자 이를 숨기기 위해 당태종이 마치 방면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고연수의 패배로 인한 고구려의 손실은 엄청나 당 군이 노획한 말이 3만 필, 소 5만 두, 명광개 5천 개, 기타 장비가 5천 점이었다.
고연수의 패배는 또한 고구려의 다른 성주에게 큰 충격을 주어 석황성, 은성 등이 점령당했으며 인근 주민들이 모두 도망 가 수 백리 사이의 인가가 모두 비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것이야말로 고구려의 유명한 청야 작전의 일환으로 모든 사람들이 철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여하튼 당나라와 고구려의 운명은 안시성으로 좁혀졌다. 당나라는 100만 명이나 되는 대군이고 안시성에는 고작 10여 만 명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안시성은 항복은 커녕 당태종과의 결전에 대비하여 항전태세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때가 7월이다.
고구려의 지원군을 섬멸한 당 태종은 항복하지 않으면 이적의 조언대로 성 안의 남자를 모조리 구덩이에 생매장하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장병들에게 성을 함락하면 약탈을 허용하겠다고 사기를 북돋았다. 그러나 고구려는 이들의 심리전에 굴하지 않고 성벽에 올라가 북을 울리며 고함을 지르고 당 태종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문제는 기후였다. 중국으로서는 1개월 내에 안시성을 반드시 함락시켜야 했다. 당태종의 원래 목표인 평양을 겨울 전에 함락시키려면 안시성을 1개월 내에 함락시켜야만 평양을 공격할 시간을 2〜3개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군의 작전은 안시성의 고구려 군이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안시성을 도우려고 출동한 지원군이 패퇴했지만 2〜3개월만 버티면 당군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고구려 군이 당군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고 접전을 피하면서 고구려 특유의 지구전으로 대처하자 당 태종은 난공불락의 안시성을 함락하기 위해 방안을 짜낸다. 안시성 동남쪽에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하여 무려 60일 만에 거대한 토산을 완성했다(이 당시 당나라군이 쌓았다는 토산은 근래 위성사진으로도 확인되었다). 이 토산은 성벽보다 높았고 정상부에만 수백 명이 주둔할 수 있는 규모였다. 더구나 고구려의 성벽과의 거리는 수 장(1장은 3미터)에 불과했다.
대형 전쟁에는 항상 돌발사고가 생겨 승패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는 말처럼 이번에도 극적인 사건이 생긴다. 당군이 토산을 통해 안시성을 공격하기 직전에 토산이 안시성 쪽으로 무너지면서 고구려 성벽 일부도 무너져 토산과 성이 저절로 연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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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룡천 산성 정상, 일반적으로 안시성으로 추정하는 영성자산성이 매우 협소하다는 것 등을 근거로 안시성이 해룡천 산성이라는 주장도 있다(김일경 사진). |
이것이 고구려 측에겐 기회였다. 원래 토산이 안시성과 연결되었으므로 당군에 유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재빨리 성벽 밖으로 나와 이를 점령하고 나무를 쌓아 불을 지르니 당군은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이때의 토산의 수비 책임자인 부복애는 마침 자리에 없었는데 추후에 토산을 지키지 못한 죄목으로 참수되었다. 태종은 패전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부복애의 잘린 목을 군사들에게 돌렸다.
당군은 최종적으로 3일에 걸쳐 안시성을 맹공격했으나 안시성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당 군은 더 이상 안시성을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퇴각한다.
당군이 곧바로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기후가 고구려를 도왔기 때문이다. 예년에 비해 추위가 일찍 찾아와 풀이 마르고 물이 얼어 병마가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당시의 기록은 다소 연극의 한 장면과 같다. 당태종이 퇴각할 때 안시성주인 양만춘이 성에 올라 절을 하자 황제가 안시성을 굳게 지킨 것을 가상히 여겨 비단 100필을 보냈다고 『삼국사기』에도 적혀있다.
그러나 단재 신채호는 만주 토착민 사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기술했다.
‘당 태종이 철군을 명하자 안시성주 양만춘이 성문을 열고 나와 공격하는 바람에 당군이 큰 혼란에 빠져 인마가 서로 밟혔는데, 그 와중에 당 태종의 말이 진흙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급기야 왼쪽 눈에 화살을 맞고 사로잡힐 위기에 몰렸다. 당의 장수 설인귀(薛仁貴)가 달려와 그를 구출했다’’
안시성주 양만춘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하맹춘이란 사람이 지은 『여동서록』에서 안시성주는 양만춘이라고 기록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하맹춘은 명나라 때 사람이라 시대가 매우 떨어진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안시성 전투가 중국에서 워낙 유명한 사건이므로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다가 하맹춘이 구전에서 채집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꼬리를 무는 안시성 위치>
지금까지의 설명은 안시성을 영성자산성으로 비정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학계 일각에서는 아직도 영성자산성이 안시성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영성자산성이 안시성이 아니라는 데는 여러 근거가 있다. 첫째, 산성의 지형이 험하지 않고 산도 높지 않으며 토성이어서 견고하지 않다. 성벽이 좁은 데는 너비가 2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당나라의 포차ㆍ충차의 경우 2미터 정도의 흙덩어리는 얼마든지 뚫을 수 있는데 이런 토성에서는 당나라 100만 대군의 공격을 3개월이나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지적이다.
둘째는 영성자산성의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성내는 주로 좁은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평탄한 곳이 적어 10만 명의 군사가 주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기록에 의하면 산성 동남쪽에 인공 토산이 있다는데 그 토산은 너비가 20미터도 채 안되고 산등성 중간이 바로 동쪽 성벽의 토대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공위성이 촬영했다는 영성자산성의 토산 흔적도 확실한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성벽의 경우 인공 토산이 아니라 동쪽 성벽이 허물어진 흙더미로 추정하기도 한다.
중국의 일부 학자들도 영성자산성이 안시성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학자 김 일경은 만주 대석교 인근의 해룡천산성이 안시성이라고 주장했다.
해룡천산성은 산성을 견고하게 쌓은 것은 물론 둘레의 길이가 3000여 미터나 된다. 산성 안은 넓고 수원이 풍부하며 성 안에서 전형적인 고구려의 붉은 색 무늬기와가 많이 발견되었다. 안시성은 적정을 파악하는 곳으로 특별히 중요성이 있는데 성 북쪽의 해룡천 주봉과 그 가운데의 산등성이가 점장대 역할을 했으며 성내에도 두 곳에 점장대가 설치돼 있다.
성에서 서쪽으로 약 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초소(보루성)가 있는데 현지 사람들이 그곳을 ‘고려성’으로 부르는 것도 심증을 굳혀 준다는 것이다. 아직 이 부분은 학계에서 정설로 확정되지 않았는데 근래에 인공위성 촬영으로 영성자산성에 무너진 토산이 발견되자 영성자산성이 안시성이라는 과거의 설이 보다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안시성을 방문했을 때도 10여 만 명이 거주하기에는 다소 작은 감을 받았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안시성(영성자산성)에서 당나라와 혈투를 벌였던 고구려 군은 10만 명이 아니라 다소 적은 인원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계속)
이종호(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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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뉴스
내수 중견기업 40곳, 수출기업 탈바꿈…맞춤형 지원 강화 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중견기업 수출기업 전환 지원단 첫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올해 발굴한 40개 내수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맞춤형 글로벌 진출방안을 논의했다. 첫회의에는 법무부, 관세청, KOTRA,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수출 지원기관 및 중견기업들이 참여했다. 산업부는 지난 2월, 2028년까지 수출 중견기업 200개 사 신규 확충을 목표로 18개 수출 지원기관과 함께 중견기업 수출기업 전환 지원단을 출범하고 수출 확대 의지가 있는 내수 중견기업을 발굴해 컨설팅, 판로·물류, 금융, 기술·인증 등 수출 전 과정에 대해 맞춤형으로 지원해 왔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 발굴한 내수 중견기업 27개 사를 대상으로 ▲수출 지원기관 매칭(중견련), ▲바이어 발굴 및 마케팅(KOTRA), ▲물류비 할인(DHL, FedEx), ▲수출금융(무보, 우리은행 등), ▲관세·인증 등 컨설팅(관세청, 해외인증지원단 등), ▲내수 중견 맞춤형 지원시책 강화(법무부, 수은 등)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전년 대비 수출이 1.7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KBI코스모링크) 되고, 말레이시아 현지 국립대학 병원과 14억 원 규모의 양해각서(MOU) 체결(제일약품) 등 가시적인 수출 성과도 창출되고 있다. 부산항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적재된 컨텐이너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하반기에 내수 중견기업 13개 사를 추가로 발굴하는 한편, 수출 지원기관을 신용보증기금을 추가해 18개로 늘린다. 아울러, 무역협회 수출실무교육, 물류 컨설팅 지원 등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해 내수 중견기업 대상 맞춤형 수출지원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제경희 산업부 중견기업정책관은 “우리 수출이 상반기 전년 대비 9.0% 증가하며 올해 역대 최대실적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하고 “국내시장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보유한 중견기업은 수출 잠재력이 매우 높은 기업군인 만큼 역대 최대 수출실적 달성을 위해 하반기에도 민관이 원팀으로 중견기업의 세계시장 도전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의: 산업통상자원부 중견기업정책관 중견기업정책과(044-203-4361, 4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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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이번 주말 어디 가지?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정원’ 8곳을 추천합니다. 무더운 여름방학, 알차게 보내기② 2024 대한민국 정원여행 지도를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힐링하는 시간 보내세요! ■대한민국 1호 국가 정원 ‘순천만 국가 정원’ ∨어린이 동물원 ∨정원클럽파티, 정원관람차 야간투어(7,8월) ∨순천만 역에서 정원까지 편히 오가는 스카이큐브 · 입장료: 10,000원 · 위치: 전남 순천시 국가정원1호길47 ■도심 속 최대 규모 철새 도래지를 품은 ‘태화강 국가 정원’ ∨365일 운행하는 무장애 전기 관람차 ∨대나무가 가득한 어린이 놀이터 ∨뛰놀기 좋은 너른 잔디밭과 야외공연장 · 입장료: 무료 · 위치: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강국가정원길 154 ■연꽃이 만개한 신비로운 공간 ‘세미원’ ∨수생식물, 초본식물, 목본식물 등 270여 종 보유 ∨2만 6천 평 부지의 넓은 정원 ∨손수건 염색, 연꽃 부채 만들기 체험 · 입장료: 5,000원 · 위치: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친환경 정원 ‘거창 창포원’ ∨연꽃, 수련, 수국이 둘러싸인 곳 ∨하천 곳곳에서 서식하는 동물 ∨웰니스 아로마 치유 프로그램 · 입장료: 무료 · 위치: 경남 거창군 남상면 창포원길 21-1 ■울창한 대나무와 피톤치드로 가득한 ‘죽녹원’ ∨울창한 대숲 ∨8가지 주제로 구성된 죽녹원 8길 ∨죽녹원 한옥펜션 · 입장료: 3,000원 · 위치: 전남 담양군 담양읍죽녹원로 119 ■수려한 경관을 간직한 화개산이 품은 ‘화개 정원’ ∨5색 테마로 조성된 정원 ∨스탬프 투어, 방탈출 등 이벤트 ∨화개산 모노레일 · 입장료: 5,000원 · 위치: 인천 강화군교동동로 471번길 6-60 ■자연이 살아 있는 ‘줄포만 노을빛 정원’ ∨20여 종의 자생화와 염생식물 ∨정원 내 람사르 습지 보유 ∨수상 레저 체험장, 갯벌 생태관 · 입장료: 무료 ·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줄포면 생태공원로 38 ■부산의 첫 번째 지방 정원 ‘부산 낙동강 정원’ ∨야생·철새·사람·공유 등 4가지 주제로 운영 ∨철새 도래지인 낙동강 물길 ∨샛길 생태문화 탐방로 · 입장료: 무료 · 위치: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 29-61번지 일원(삼락둔치) ‘대한민국 정원여행 지도’에서 취향에 쏙 맞는 나만의 힐링정원을 찾아보세요! ‘대한민국 정원여행 지도’ ①각 지역 관광안내소 혹은 ②산림청 누리집→산림보호→수목원·정원→정원자료실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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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복잡한 도시에서 로그아웃, 별캉스 떠나기 좋은 영양 경북 영양군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지만, 그만큼 비밀스럽고도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은하수가 흐르는 하늘, 반딧불이 가득한 숲, 맑고 시원한 계곡까지, 영양의 청정 자연을 누리는 별캉스를 떠나보자. ★추천 코스★ 영양반딧불이천문대, 영양자작나무숲, 영양풍력발전단지, 발효공방1991 영양반딧불이천문대 첨성대와 밤하늘 풍경. 영양군은 인공조명으로 인한 빛 공해가 매우 적은 도시다. 특히 아시아 최초의 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 속한 수비면 일대는 우리나라에서도 밤이 가장 어두운 지역으로 손꼽힌다. 관내 대표 시설은 영양반딧불이천문대. 진입로에도 가로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맨눈으로도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밤하늘을 볼 수 있다. 영양반딧불이천문대. 2005년 개관한 영양반딧불천문대는 우주의 탄생 및 태양계의 생성 과정과 태양계 행성에 관한 내용을 상설 전시하는 시설이다. 천체관측 시설을 통해 낮에는 태양의 흑점과 홍염을, 밤에는 행성과 달, 별똥별, 은하수 등을 관찰할 수 있는데, 때로는 지구를 공전하는 인공위성까지 포착되곤 한다. 천체관측실에 설치된 천체망원경. 1층 상설전시실. 완벽한 은하수 여행을 위한 한 가지 팁이 있다면, 달빛이 약할 때 별이 더 잘 보인다는 것이다. 달이 초승달이나 그믐달에 가까워지는 시기, 또는 달이 늦게 뜨거나 일찍 지는 시기에 맞춰 방문하면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의 축제를 만끽할 수 있다. 영양군 생태사업소 홈페이지에서 별빛 예보를 미리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6월 또는 8월 반딧불이가 출현하는 시기에 방문하면 깨끗한 밤하늘 아래 별처럼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행운도 기대할 수 있다. ※ 반딧불이천문대 - 주소 :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반딧불이로 129- 문의 : 054-680-5332- 홈페이지 : https://www.yyg.go.kr/np/observatory/facilities- 운영시간: 주간 13:00~18:00 / 야간 19:30~22:00 (운영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이용요금: 어른 4000원, 청소년 3000원 (체험 프로그램비 별도) 영양자작나무숲 영양자작나무숲. 영양의 맑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두 눈 가득 힐링을 만끽했다면, 푸른 숲에서 마음마저 정화할 차례다. 수비면 죽파리에 위치한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국유림 명품 숲, 영양자작나무숲으로 떠나 보자. 규모는 141.8ha. 인공 조성된 자작나무숲 중 가장 크다. 최근에는 지형이 완만하여 접근성이 좋은 일부 구간이 개방되어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영양자작나무숲 포토존. 죽파리 마을과 자작나무숲을 연결하는 4.7km 구간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지만, 영양군 측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다. 코끼리 열차처럼 생긴 셔틀버스는 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 파워트레인을 사용한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주중과 휴일에 운행하며, 운행 시간대가 구분되어 있으니 미리 확인할 것. 계곡이 흐르는 진입로.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진입로부터 걸어보자. 초록으로 가득한 숲과 폭신한 오솔길, 시원한 계곡 소리의 하모니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숲 내부 산책로는 1.49km 길이의 1코스, 1.52km 길이의 2코스 두 개로 나뉘는데, 어느 길을 선택하든 큰 차이는 없다. 두 길 모두 자작나무숲을 이리저리 누비다가 제2쉼터를 거쳐 전망대로 향하는 코스다. 전망대. 영양군이 운영하는 셔틀버스. 코스를 완주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작나무숲 자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수십 년의 역사를 품은 자작나무숲은 마치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새하얀 나무 기둥이 주변을 감싸는 풍경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와 그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주는 청량감도 마음껏 즐겨 보자. ※ 영양 자작나무숲 - 주소 :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자작나무길 96 (주차장 및 셔틀 탑승 장소)- 문의 : 054-680-6410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홈페이지 : https://tour.gb.go.kr/tip/storyView.do?idx=16381- 셔틀버스 이용 Tip· 주중: 09:30~16:00 (상·하행 1시간 간격 운행/매주 월요일 휴무)· 주말: 09:30~15:15 (상·하행 30분 간격 운행/중간 지점 하차 후 자작나무숲까지 도보로 30분 이동)· 안전 및 기상 여건에 따라 배차 간격이 달라지거나, 노선이 변경되거나 운행이 중단될 수 있음. 영양풍력발전단지 영양풍력발전단지의 노을 풍경. 힘차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영양군 맹동산 일대에는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동해와 서쪽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모여 풍력 발전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 풍력발전기 관리를 위해 마련된 임도를 따라 정상부에 오르면, 능선을 따라 설치된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능선이 펼쳐지는 풍경. 전망 좋은 곳에 마련된 정자. ※ 영양풍력발전단지 - 주소 :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요원리 산31-101 발효공방1991 영양군 대표 양조장인 발효공방1991. 깨끗한 자연, 맑은 물이 있는 곳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그 지역에서 빚어내는 술이다. 영양군에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이 있었다. 1926년 창업한 영양양조장은 한 세기 동안 지역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지만, 10년 전 아쉽게도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그러던 2022년, 영양군이 교촌에프앤비와 협업해 이 공간을 새로운 개념의 양조장으로 세웠다. 발효공방1991의 탄생이다. 막걸리 제조 공간. 발효공방1991에서는 양반들이 즐겨 먹었던 술 감향주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은하수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17세기 영양군 재령이씨 종가로 시집온 장계향 선생의 후손인 조귀분 명사가 전수한 비법으로 만들어진 전통주다. 물, 쌀, 누룩 외에 어떤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아 재료가 지닌 본연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막걸리로 만든 타르트와 스무디. 은하수 막걸리를 활용한 포토존. 은하수 막걸리는 발효공방1991 내 카페 소풍에서 구매 가능하다. 카페 소풍에서는 막걸리를 활용한 색다른 음료와 디저트도 맛볼 수 있는데, 막걸리를 첨가했음에도 제조 과정에서 알코올을 제거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막걸리 특유의 달콤함과 고소한 향이 느껴져 매력적이다. 카페 내부 공간. 세월의 흔적 느껴지는 기록물. 맛있는 디저트로 배를 채웠다면 카페 공간도 천천히 살펴보자. 누룩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은 오래된 천장과 벽면, 양조장 이름이 적힌 상자는 물론, 양조장의 역사를 기록한 전시는 영양양조장이 간직한 구수한 세월의 정취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 발효공방1991 카페 소풍 (영양군꽃차사회적협동조합) - 주소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군청길 49- 문의 : 054-682-0230- 운영시간: 10:00~21:00 (주문 마감 20:30/매주 월요일 휴무)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SNS 글, 사진 : 김정흠 여행작가 * 위 정보는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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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팜 민 찐 베트남 총리 면담 한덕수 국무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 총리실에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한덕수 국무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 총리실에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한덕수 국무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 총리실에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한덕수 국무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 총리실에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한덕수 국무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 총리실에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면담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한덕수 국무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 총리실에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면담하기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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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말하는 정책
나의 부모님은 자랑스러운 제복공무원입니다! 차를 끌고 집을 나설 때마다 집 앞 사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을 마주한다. 바로 집 앞에 롯데몰이 있어 경찰의 정리가 없다면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곳이기에 폭염 가운데서도, 비가 쏟아져도, 항상 같은 자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함을 넘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에서 알게 모르게 국민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앞서 말한 교통경찰부터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골든 타임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출동하는 경찰과 구조대원, 모두 피하는 불길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가는 소방대원과 관광객과 어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해양경찰까지. 국민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한 공무원들을 흔히 제복공무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제복공무원의 사전적 명칭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통상 소방관, 경찰관, 교도관 등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직종을 통칭한다. 제복공무원의 처우 개선에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소방청에서 조금 특별한 프로그램이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청소년 안전캠프가 진행된 강원도 태백의 365 세이프타운. 주차장 근처에서 행사 관련 홍보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복공무원 자녀 소방안전 캠프(이하 안전 캠프)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은 지난 7월 16일부터 18일까지 강원도 태백소방학교 및 365 세이프타운에서 진행됐다. 제복공무원 중 소방과 경찰, 해경 공무원의 자녀와 순직 자녀의 초등학교 고학년 약 500여 명이 참여했는데, 정책기자단 자격으로 캠프가 진행되는 현장에 직접 방문해봤다. 집에서부터 세 시간도 더 떨어진 강원도 태백, 수려한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365 세이프타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안전 체험관인 세이프타운은 다양한 재난 상황을 생동감 있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세이프타운의 가장 위쪽, 소방 안전 체험관에서 캠프의 주인공과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담당자는 안전 캠프가 올해 3년 차를맞이했다면서 제복공무원 자녀들의 안전 캠프로는 2년 차 캠프라고 소개했다. 처음 캠프를 기획할 때 제복공무원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존중에 대해 생각해보는 방향으로 캠프를 기획했는데 캠프를 진행하며 아이들과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더해 조금씩 더 나은 캠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 안전 체험관에서는 농연 체험과 완강기 체험이 진행됐다. 긴장한 모습으로 완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사회 안전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캠프지만, 제복공무원의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의 직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면서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가도록 준비했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농연 체험과 완강기 체험을 진행한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다음 프로그램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종합안전체험관에는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 관련 체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옆 건물인 종합안전체험관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 체험을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는데,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은 조를 나눠 산불과 설해, 풍수해는 물론지진과 대테러에 관련된 체험을 진행했다. 소방안전캠프는 2박 3일동안 진행됐다. 아이들은 편안한 집을 떠나 텐트에서 지내며 서로 금세 가까워 진다고 한다. 그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체험관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학생들은 모든 프로그램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었다. 체험관을 나오며 해당 체험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하면서도 실제로 어려움이 닥친다면 배운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나누는 것을 보니 단순한 체험 이상으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순간이었는데 이미 누구보다 가까워 보였다. 담당자에게 소방청에서 주관하는 캠프에 어떻게 다른 제복공무원의 자녀까지 함께하게 되었냐고 묻자 소방 현장에서 활동하다 보면 단순히 소방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도 많다고 했다. 각자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때로는 자문하고, 때로는 협업하게 되는데, 타 기관에 대한 고마움과 앞으로의 유대 관계를 위해 경찰과 해양경찰의 자녀도 초대하게 됐고, 아이들이 잘 어울릴까 하는 걱정도 잠시, 친한 친구처럼 적극적으로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방호스를 잡고 직접 물을 쏴볼 수 있던 주수체험. 방화복을 입고 호스를 잡은 모습이사뭇 진지했다. 잠깐의 휴식을 가진 후 차를 타고 세이프타운의 반대편에 있는 태백 소방학교로 이동했다. 소방학교는 평상시 강원지역 신입 소방관의 교육과 직무 향상 교육을 진행하지만, 학생들의 캠프를 위해 특별히 개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물줄기를 따라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가장 처음 마주한 체험은 주수(Fire Stream) 체험이었다. 앞서 방문한 세이프타운의 프로그램에는 약간의 재미가 더해졌다면, 소방학교의 프로그램은 생동감 넘치는 현장의 경험과 같았다. 방화복과 헬멧을 착용한 채 교관의 지시에 따라 주수하는 학생들의 모습에는 웃음기보다 진지함이 가득했다. 주수 체험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서 우리 아빠는 진짜로 불 앞에 서야 될 거 아니야.라는 말이 들려왔다.학생들이 안전 캠프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반인인 나에게는 그저 경험하기 힘든 것을 경험해본다는 체험일 수 있지만,아이들에게는 각자의 부모님이 마주하는 현장을 떠올리는 순간이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방체험학교에서는 실전에서 쓰이는 다양한 장비로 생동감 넘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소방관들은 자리를 옮겨 다니며 학생들의 자세를 고쳐주곤 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던 주수 체험장을 뒤로한 채 소방학교의 나머지 체험장을 돌아봤다. 다음 프로그램을 위해 이동할 때는 노래도 부르고, 자유롭게 떠들다가도 수상 구조 체험에서 직접 로프를 던져보고, CPR과 응급처치를 직접 실습해보며, 드럼통 안에 불길을 향해 직접 소화기를 사용해보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체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의 진행을 돕는 소방관들 역시 자세 하나하나를 교정해주며 올바른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소방학교에서 진행됐던 생존수영. 여름철을 맞아 꼼꼼하게 생존수영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 후 자유 물놀이 시간이 주어졌다. 학생들이 가장 환하게 웃던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2박 3일 동안 모든 프로그램을 로테이션 형식으로 체험하게 된다고 했다. 앞서 방문했던 세이프타운과 태백 소방학교의 프로그램들을 한 번씩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담당자는 많은 아이가 참여한 만큼 바쁘게 진행되지만, 야간 프로그램 때 만큼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휴식을 취하며 친목을 다진다고 했다. 작년 제1회 제복공무원 캠프 때도 2박 3일간의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이 굉장히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 부모님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 캠프에 대한 기억이 좋아 자원해서 참여한 소방관들 역시 적지 않다며 아이들을 위한 안전 캠프지만, 도움을 주고 있는 소방관들 역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365 세이프타운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청소년 안전 캠프 관련 배너와 게시글을 확인할 수 있다.(출처=365세이프타운 홈페이지) 이날 진행된 제복공무원 자녀 대상 안전 캠프는 태백시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청소년 안전 캠프(7.16.~7.28.)의 1회차 캠프였다. 이하 2~4회차 캠프는 일반 국민의 자녀를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제복공무원 안전 캠프와 같은 환경, 소방관들의 지도아래 진행된다고 하니 안전 캠프에 관심 있는 국민이라면 추후 대한민국 청소년 안전 캠프를 기억해두면 좋겠다. 한편 정부와 국회에서는 제복공무원에 대한 존중 문화 확산과 처우 개선에 대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국회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제복공무원에 대한 다양한 지원 법안이 발의되어있고, 정부 역시 제복공무원의 근무 환경과 일상생활에서의 처우 개선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복공무원의 존중 문화와 처우 개선의 시작은 국민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 순간에도 일선에서 근무하는 제복공무원을 생각하며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자.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이정혁 jhlee43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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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체코 신규원전 사업” 다양한 분야의 경제협력으로 확대합니다! 7월 22일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은이반 얀차렉 주한 체코대사와 만나 신규 원전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협력해 나가자고 당부했습니다. 원전협력을 매개체로 체코와의 경제협력을포괄적, 전면적으로 확대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