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영역
'삼국유사'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최초로 사리가 전달된 것은 신라 진흥왕 10년(549년)으로 ‘양나라에서 사신으로 입학승 각덕과 함께 파견하면서 부처의 사리를 전하자 왕은 백관으로 하여금 흥륜사 앞길에 나아가 맞이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에는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법사가 당나라의 오대산 태화지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불정골( 부처님의 정골 뼈)와 치아사리 등 백 개와 부처님이 입었던 가사 한 벌을 가져왔다고 한다. 자장법사는 사리를 황룡사 탑과 태화사 탑, 그리고 통도사 불단에 나누어 봉안했다.
현재는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 등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데, 진신사리는 불상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를 봉안한 사찰에서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이 가운데 양산의 통도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불보(佛寶) 사찰로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대웅전 뒤편에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 두고 있다. 율사(律師)의 상징인 자장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탑 속에 안치하지 않고 계단이라 이름 붙인 부도와도 같은 장소에 모신 점도 큰 의미가 있다.
![]() |
양산 통도사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으므로 불상이 없다. |
조선왕조 초기에도 사리 신앙은 왕실을 중심으로 매우 성행했는데 태조 이성계는 1393년 4월에 정릉의 흥천사에 사리각(舍利閣)을 건설하고 7일 기도를 올렸는데 이때 사리 4과가 분신(分身, 몸을 나누어서 화현하는 것)하여, 불당을 유동에 건립하고 사리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1398년에는 명나라 태조가 사리를 구하기 위해 황엄을 사신으로 보내자 왕은 각 도감사에 명하여 사리를 구하도록 명했는데 충청도에서 45과, 경상도에서 164과, 전라도에서 155과, 강원도에서 90과를 모으는 등 모두 800과를 도금한 금은합 속에 넣어 보냈다고 한다.
특히 세조 때에는 사리에 관한 여러 기록이 전한다. 개성 연복사의 승려가 사리라고 진상한 함을 열어 보니 좁쌀이었다는 기록도 있고 세조 10년(1464)에는 삼각산 장의사에서 사리가 분신하므로 백관이 서한을 올려 경하했더니 이날 오색구름이 나타났다고 한다. 세조는 원각사를 세우고 사리를 봉안했으며 양평의 용문사를 중창하고 사리탑을 세웠으며 양주에는 수종사를 창건하고 사리탑을 세웠다. 세조가 세운 사리탑은 수십 개에 이른다.
우리나라 역대의 고승 가운데는 구산 스님의 53과를 필두로 1966년에 송광사에서 열반한 효봉 스님 34과, 자운 스님 19과, 탄허 스님 13과, 학명 스님 10과, 청담 스님 8과, 혜운 스님 20과, 금담 스님 4과, 성철 스님의 스승인 동산 스님과 용성 스님이 각 2과의 사리를 남겼다. 2003년에도 정대스님으로부터 120과의 사리가 나왔고 좌탈입망(좌선한 채로 열반에 드는 것) 상태로 입적한 서옹 스님은 4과가 나왔다.
반면에 지난 1982년에 입적한 경봉 스님을 비롯, 만공스님 등은 사리를 남기지 않았으며, 은허 스님은 법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있지 사리에 구현된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입적 후에 사리 수습을 못하게 했다. 2004년 11월에 입적한 조계종 원로 석주(昔珠, 봉은사 조실) 스님의 다비식에서도 스님의 뜻에 따라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다.
<사리의 기원>
불교에서는 왜 사리를 중시하게 됐을까. 그러한 의문은 사리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면 쉽게 풀린다.
사리(舍利)는 본래 ‘신체’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Sarira’에서 유래했는데, 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여 사리라(舍利羅)라고 하였다가 줄여서 사리라 부르는 것이다. 사리라는 본래 ‘몸’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복수형으로 되면 신골, 유골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리는 본래 몸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인체를 화장하고 난 뒤에 남겨진 뼈 전체 또는 가루가 된 뼛조각까지 폭넓게 포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리는 단순히 죽은 자의 몸을 가리키거나 또는 그 뼈를 부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처를 향한 믿음이 충만한 불자들은 사리의 의미를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강우방의 글을 인용한다.
![]() |
해인사 성철스님 사리탑, 성철스님의 유해에서 수많은 사리가 쏟아져 나와 200과를 훨씬 넘어서게 되자 그 수효를 헤아리기를 포기했다. |
‘석가모니는 약 40년간 거리에서 가르침을 전하고 여든 살에 인도 북동부의 쿠쉬나가라에서 생애를 마쳤다. 석가모니의 시신은 이웃 부족인 말라족이 인도 장례 풍습에 따라 화장하였고 화장 후에 얻은 유골로 탑을 세우려 했다. 석가모니의 화장 소식은 이웃 부족들에게 전해져 여덟 개의 부족이 석가모니의 유골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석가모니의 유골은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졌고 각 부족이 각각 탑을 세웠는데 이를 근본팔탑(根本八塔)이라 한다. 그런데 유골의 분배가 끝난 후 석가모니의 열반 소식을 들은 모라족이 석가모니의 화장터에 남아 있는 재를 가져가 유골 대신 넣은 재탑(灰塔)을 세웠고 각 부족에게 원만하게 석가모니의 유골을 분배한 드로나라는 바라문은 석가모니의 유골을 담았던 병(또는 항아리)을 가져가 유골 대신 병을 넣은 병탑을 세웠다.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기원전 273〜232)은 석가모니의 무덤 여덟 기를 발굴하고 그 안에 있던 석가모니의 유골을 나누어 통일 왕조 영토 곳곳에 무려 8만4천 기의 탑을 세웠다. 이후 탑(스투파)은 석가모니의 유골 즉 사리를 봉안하는 구조물에서 나아가 석가모니의 실재로 인식되었다. 즉 아소카왕의 8만4천 탑 건립에서 진정한 분사리의 원리가 확립됐다.
(중략) 사리는 탑을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며 사리 봉안은 탑의 존재 이유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많은 승려들이 앞 다투어 사리를 구하기 위해 인도로 간 이유이다.’
이런 전통에 연유하여 사리를 숭배하고 공양하는 사리신앙, 즉 탑 신앙이 생겨났으며 부처의 진신사리를 보는 것은 부처를 친견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자리 잡는다. 처음에는 부처의 사리만을 봉안했으나 나중에 불경과 고승의 사리를 모신 불탑도 세워지게 되었다. 사리는 단순히 몸 또는 뼈를 의미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매우 소중하게 모시게 된 이유라고 박경준은 설명했다.
부처의 사리를 진신사리, 불경을 법(法)사리, 고승의 사리를 승사리로 구분하는데 이 중에서 승사리를 모신 탑은 부도(浮屠)라 하여 일반 불탑과 다른 형태로 제작한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4세기 후반이지만 부도가 만들어진 것은 신라 하대인 9세기부터이다. 사리는 다비전의 전신사리(全身舍利)와 다비 후의 쇄신사리(碎身舍利)로 구분되는데, 다비 후 나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은 쇄신사리를 뜻한다. 사리는 크기도 다양하지만 색깔도 황금색, 검은색, 붉은색, 흰색 등이 뒤섞여 영롱한 빛깔을 띤다.
마곡사의 철환 스님은 사리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들었다. 사리는 불에 타지 않으며 부서지지도 않고 물 속에 넣었을 때 가라않지도 않은 채 중간에 떠 있다는 것이다.
사리의 수습 절차는 다비(茶毘)의 마지막 의식에 해당한다. 다비란 불교계의 장례법으로 정착한 화장의 팔리어 원어가 ‘자피타(jhapita)’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이다.
다비에 의한 장례법이 인도 불교 이래 불교적 전통이 된 요인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추정한다. 첫째 아열대성 기후라는 인도의 기후적 특성 때문에 시신의 부패를 막는데 다비가 적격이며 둘째 부처님의 장례를 다비했으므로 셋째로 부처님의 사상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다비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비에는 땅‧불‧물‧바람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육신을 다시 원류로 보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
2004년11월 석주스님 다비식, 석주 스님의 뜻에 따라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다(사진 석동빈). |
신라 하대인 9세기는 당나라부터 선종(禪宗)이 들어온 때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을 중심으로 선풍(禪風)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들은 선문을 대표하는 조사(祖師)의 설법이나 교훈을 어록으로 남기고 입적한 뒤엔 장골처(藏骨處)에 조형물을 남겨 추앙했다. 이것이 부도였다. 부도는 다른 석조물과는 달리 탑비(塔碑)가 반드시 별도로 갖춰져 있기 때문에 주인공의 생애와 행적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문화상을 알 수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 가장 오래된 부도는 통일신라시대의 흥법사 염거화상탑(844년)이며 이외에 대안사 적인선사조륜청접탑(861년), 쌍봉사 철감선사탑(868년) 등이 유명하다.
1998년 11월 성철 스님의 입적 5주기를 맞아 완성된 사리탑은 높이 3.5미터이며 탑 주위는 지름 24미터의 원형 참배대를 설치했다. 성철 스님의 뜻에 따라 조각하지 않고 높이하지 않고, 복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단 위에 두개의 반구(半球)와 한 개의 구를 포개 놓았다. 이에 대해 성철 스님 평소의 뜻과는 달리 사리탑을 너무 거창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리석을 정밀하게 다룰 수 없어 일본 기술을 빌려온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부처님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리가 나온 성철 스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이와 같은 사리탑도 오히려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다. 사실 성철 스님이 입적한 후 사리를 보기 위해 하루 2만 명 이상의 참배객이 몇 시간씩 기다렸던 사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사리를 어디에 모실까?>
엄밀한 의미에서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전하고 영구적으로 보관하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탑의 어느 부분에 사리를 봉안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 단원은 강우방의 글을 인용했다.
인도의 스투파는 안다 내부까지 이어진 야슈티(찰주) 아래에 석가모니의 사리가 봉안된다. 중국에서는 목탑의 경우 심주(心柱) 아래에 봉안되는데 지표 아래에서 3미터 가량 깊이에 거대한 심초석을 두고 그 위에 심주를 세우므로 모두 탑의 지하에 봉안하는 지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엔 목탑·석탑·전탑의 사리 봉안 위치가 모두 다르며 매우 다양하다.
목탑의 경우 심주 아래에 사리를 봉안하는데 심주 바로 밑에 석함(石函)을 두고 그 아래에 사리를 안치하는 방식, 백제의 제석사지 목탑터의 경우처럼 심초석은 지표로 올라오고 그 위에 심주를 세우는 방식이며 마지막으로 심주가 2층 탑신부터 올려져 있는 예로 쌍봉사대웅전이 유일한 예이다.
석탑의 경우에는 사리의 봉안 장소에 일정한 규칙이 없는 듯 보일 정도로 석탑의 여러 군데에서 사리함이 발견되는데 큰 틀에서의 규칙은 있다. 초기 석탑인 경우 목탑 관습에 따라 찰주가 끝나는 3층 탑신에 사리를 안치했으며 그 후 시대가 흐르면서 2층 지붕돌과 탑신돌을 거쳐 1층 탑신으로 사리 봉안의 위치가 정착된 것으로 추정한다. 예외적으로 석탑임에도 불구하고 김천 갈항사지 삼층석탑과 울산 청송사지 삼층석탑의 경우에는 기단에 사리를 안치했고 익산왕궁리오층석탑처럼 기단과 탑신부에 사리를 나누어 안치한 경우도 있다.
지표에 설치되는 목탑 심초석의 경우나 탑 안에 사리가 안치되는 석탑은 모두 돌 자체에 사각 혹은 원형의 사리공을 파고 그 내부에 사리를 봉안했다. 목탑의 심초석에 판 사리공은 모두 사각이고 석탑도 초기 석탑은 사각으로 파여졌으나 9세기 이후의 석탑은 원형이다.
![]() |
인체 속의 결석, 사리를 인체 속의 결석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사리는 결석이 아니라는 견해가 유력하다(사진 전세일). |
전탑의 경우 안동 임하사 전탑 터에서는 특이하게 심초에 사리를 안치했지만 대부분의 전탑은 별도의 석함을 제작하여 그 안에 사리와 공양물을 넣은 후 다시 그 함을 벽돌로 된 사각의 공간 안에 넣었다. 특이한 것은 벽돌로 탑을 쌓으면서 마련된 사각의 공간 안에 그대로 사리와 공양물들을 넣어도 되는데, 굳이 석함을 만들어 그 내부에 사리를 넣었다는 점이다.
이는 처음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할 때 ‘돌-동-은-금-수정’의 순서대로 넣어 봉안했던 전통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목탑의 심초석과 석탑의 사리공은 외함(外函)의 기능을 겸하고 있으며, 전탑에서 석함을 따로 만들어 넣은 것은 이러한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사리의 정체>
사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현재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자료가 많지 않으므로 모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사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조 이성계가 어느 날 대신들에게 사리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하고 묻자 하륜이 대답했다.
“정신을 수련하면 정기가 생기고 정기가 쌓이면 사리가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다의 조개에도 보주가 있고 뱀에게도 명월주가 있으니 조개와 뱀이 무슨 도가 있어 그런 구슬이 생기겠습니까?”
당시 불교를 배척하는 국시를 의식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태조는 신덕왕후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여 왕후의 원찰인 흥천사에 불사리를 모시고 명복을 빌었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조개의 몸 안에 모래알, 알, 기생충 같은 것이 들어가면, 진주층과 같은 물질인 진주질(眞珠質)로 이것을 둘러싼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을 천연 진주라고 한다. 진주가 생기는 상세한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으나 진주질을 분비하는 외투막의 세포가 들어온 물질을 싸서 펄삭(Pearl sac)이라는 자루 모양의 조직을 만들어 둘레에 진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 생기는 사리를 진주가 생기는 것과 유사하다는 해석은 수많은 사리가 한 사람의 몸에서 생기는 것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면에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리를 몸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담석이나 결석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부분 유기물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생명현상과 관여하는 물질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 유기물질은 다비식과 같은 고온의 불길에서는 모두 연소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불길 속에서도 남을 수 있는 것은 무기물로 이루어진 뼈와 약간의 칼슘 성분으로 구성된 오색영롱한 사리뿐이다.
연세대학교의 이무상 교수는 사리 자체를 분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칼슘을 많이 포함한 신장의 결석이나 담석이 사리가 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리 몸에서 가장 흔한 무기물이 칼슘이고 이 칼슘이 고열 속에서 다른 유기물질과 결합하여 어떤 화학변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뼈를 제외하고 우리 몸에 생길 수 있는 무기물로는 콩팥의 결석이나 간이나 쓸개, 기관지에 생기는 담석 등이 대표적이다. 콩팥 결석이나 담석은 모두 칼슘을 포함하며 나이가 많아질수록 잘 생기며 사실 돌 자체는 우리가 밥 먹고 사는 동안 계속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병률이 30%, 증상이 있는 유병률이 8%나 되기 때문에 매우 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57호), 신라시대 부도 중 조각과 디자인이 화려한 최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
의학계에서는 정좌한 채 몇 년씩 움직이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들은 영양상태도 좋지 않고 신진대사가 원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석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도 15년간을 앉아서 잠을 잤기 때문에 유래 없이 사리가 많이 나왔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전세일 박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몸 안에 생기는 결석(돌멩이)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몸 안에서 돌멩이(結石)가 생긴다. 모래알도 생기고 자갈, 조약돌도 생기고 주먹만한 돌덩어리도 생긴다. 가장 흔히 생기는 장기가 담낭(쓸개)과 콩팥이다. 콩팥에서 방광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요로라고 한다. 이 요로에 모래알이나 자갈돌이 생겨 있는 것을 요로결석이라 부른다. 요로결석은 비뇨기과에서 발병 빈도가 높은 중요한 질환으로 전체 환자의 12%나 된다.
(중략) 쓸개에 생기는 돌을 담석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콜레스테롤로 이뤄진 담석은 색깔이 노랗고 사이즈가 크며 가장 흔한 편이다. 칼슘이 주성분으로 이뤄진 담석은 검정색이 나타난다. 그리고 칼슘과 단백질이 섞여서 생긴 담석은 갈색을 띤다. 담석의 자극으로 염증이 생기는 것을 담낭염이라 하는데, 이런 경우는 오른쪽 가슴 밑과 바른쪽 어깨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담석으로 인한 통증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하다.
(중략) 이빨에 생기는 돌은 치석이라 한다. 음식을 섭취한 뒤에 치아에 부착되는 치태(dental plaque)와 침샘에서 분비되는 무기질이 합해져서 돌멩이가 생성된다. 침샘에 생기는 돌이 타석(唾石)이며, 귀밑샘, 턱밑샘, 혀밑샘 등에 생길 수 있다.
위장에서도 돌멩이가 생긴다. 이런 위석(胃石)은 이물질이 위내에서 지속적으로 응결되어 생성되는 것이다. 주로 우리가 삼킨 식물섬유, 모발(털), 약물, 면(솜), 플라스틱, 종이 부스러기 등에서 돌이 생겨난다.
통풍도 일종의 돌멩이이다. 요산이 축적돼 돌처럼 딱딱해지는데 가장 흔히 생기는 부위는 엄지발가락이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사리(舍利)도 역시 돌인데, 우리나라 성철 스님에게서는 130여개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리가 결석이라는 설명은 위에서도 지적되었지만 매우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리가 나온 스님은 모두 입적하기 전까지 결석으로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성철 스님의 경우 목 부위에서 나온 수많은 사리가 결석이라면 거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서울대학교의 서정돈 교수도 사리가 결석이라는 의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표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담석 또는 결석론도 사리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담석 등의 칼슘 성분은 뼈보다도 열에 약하기 때문에 이 가설에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시신을 단시간에 고열에서 처리하는 화장의 경우는 아주 큰 뼈를 제외하고는 모두 타버리지만, 그보다 긴 시간 동안 태우는 다비 의식의 경우 어떤 요인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비식의 경우도 사리가 보통 사람에게서 거의 나오지 않고 수행을 많이 한 스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다비 의식에 어떤 요인이 있다면 다비식을 치른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리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정액 축적설도 있지만 그것도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 정액 축적설은 성생활을 하지 않고 참선으로 평생을 수행한 스님을 화장할 때 사리가 나온다고 알려진 통설인데 여승이나 평범한 불자로부터 사리가 나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 |
송림사전탑유리배사리장치(보물 325호). 송림사 5층 전탑의 이층탑신에서 나온 것으로 금으로 된 기단 위에 녹색의 투명 유리잔을 두고 금으로 만든 지붕을 씌운 전각의 모양을 하고 있다(국립경주박물관). |
사리의 양이 법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사리의 양과 수행의 정도를 결부시키는 것은 사리가 한량없는 육바라밀의 공덕에서 생기며 매우 얻기 어렵고 으뜸인 복전이라고 설한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사리공양에 의한 공덕의 유무 문제는 초기 불교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속설과는 달리 일부 불교계에서는 수행 정도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승으로 알려진 스님으로부터 사리가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1989년에는 평신도인 85세의 할머니로부터 사리가 77과나 나온 예도 있다.
1994년에는 교통사고로 숨진 75세의 할머니가 경남고성 공설화장터에서 화장을 했는데 불자가 아닌 이 할머니의 몸에서 청색, 황색, 회색, 흑색을 띤 400 여과의 사리가 나오기도 했다(일반 사람들에게도 사리와 유사한 것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사리는 아니라는 설명도 있음).
이와 관련하여 공주 영명사의 정법 스님은 평신도나 일반인에게서 사리가 나오는 것은 전생에 그만큼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하튼 사리가 대중의 관심을 많이 끌게 되자 사리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과학자들은 인체에서 추출한 유기물이나 무기물을 고열로 처리해보면 무언가 단서가 잡힐 것이라며 실험을 역설했다.
반면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사리를 굳이 과학적으로 분석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사리에 대한 분석이 사리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믿음에 손상을 줄 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의 호기심이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일 리 만무이다. 드디어 사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도되었고 인하대의 임형빈 박사가 사리 1과(顆)를 분석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지름 0.5센티미터 정도의 팥알 크기 사리에서 방사성 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리튬(Li)을 비롯하여 티타튬, 나트륨, 크롬, 마그네슘, 탈슘, 인산, 산화알루미늄, 불소, 산화규소 등 12종이 검출되었다.
사리의 성분이 일반적으로 뼈 성분과 비슷했으나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들어있는 것이 큰 특징으로 사리의 굳기 즉 경도는 1만5000파운드의 압력에서 부서져 1만2000천 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특히 결석의 주성분은 칼슘, 망간, 철, 인 등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고열에 불타 없어지며 경도도 사리처럼 높지 않아 사리는 결석이 아니다.’
이종호(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
![]() |
저서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세계를 속인 거짓말>, <영화에서 만난 불가능의 과학>,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다수.
이전다음기사 영역
지금 이 뉴스
-
정책뉴스
지난달 산업·소비·투자 모두 감소…경기회복 흐름은 지속 지난달 국내 생산과 소비, 투자가 지난해 7월 이후 10개월 만에 모두 감소했다. 반도체 생산은 소폭 늘었지만 자동차, 기계장비 생산 감소 등이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2024년 5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달 전산업 생산(계절조정지수·농림어업 제외)은 전월보다 0.7% 감소했다. 지난달 산업활동은 생산 측면에서 공공행정(2.2%)이 증가했으나 광공업(-1.2%), 서비스업(-0.5%) 및 건설업(-4.6%)이 전월 증가 이후 감소하며 전산업 생산이 0.7% 뒷걸음질했다. 지출 측면에서 소매판매(-0.2%)는 비내구재(0.7%) 및 내구재(0.1%) 증가에도 불구하고 준내구재(-2.9%)가 줄어든 영향으로 소폭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운송장비와 기계류 도입 지연 등의 영향으로 전월 대비 위축(-4.1%)되었으며, 건설투자는 전월 상승(+4.2%) 이후 반락(-4.6%)했다. 전산업 생산은 지난해 8월(1.8%), 9월(0.8%) 증가하다 10월(-0.7%) 감소한 이후 11월(0.3%), 12월(0.4%), 올해 1월(0.3%), 2월(1.3%) 4개월 연속 소폭 증가했다. 이어 3월 2.3%로 감소로 전환한 뒤 4월(1.2%)에 다시 증가로 돌아섰지만 한 달 만에 다시 감소로 뒷걸음질했다. 제조업을 포함한 광공업 생산은 전월보다 1.2% 감소했고, 서비스업 생산도 0.5% 줄었다. 제조업 생산은 반도체, 석유정제 등에서 늘었지만 기계장비, 자동차 등에서 줄어 전월대비 1.1% 감소했다. 반도체가 전월보다 1.8%, 석유정제가 3.9%, 통신·방송장비가 9.8% 늘어난 반면, 기계장비가 4.4%, 자동차가 3.1%, 1차금속이 4.6% 감소했다. 제조업 출하는 반도체(18.8%), 의약품(13.3%) 등에서 늘었으나 자동차(-4.3%), 전자부품(-10.0%) 등에서 줄어 전월 대비 0.8% 감소했다. 제조업 재고는 기계장비(6.5%), 석유정제(7.0%) 등에서 늘었으나 전자부품(-23.3%), 1차금속(-4.5%) 등에서 줄어 전월 대비 0.1% 감소했다. 특히 제조업 재고는 전년 동기 대비 8.4% 줄며 6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9년 11월 이후 14년 6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제조업의 재고/출하 비율(재고율)은 110.9%로 전월대비 0.7%p 증가했다. 소비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도 전월보다 0.2% 감소했다. 소매판매는 지난해 12월(0.5%), 1월(1.0%) 2개월 연속 증가하다 2월 3.2% 감소했지만 3월 1.1% 증가하며 한 달 만에 다시 증가세를 회복했다. 이후 4월(-0.8%) 감소 전환 후 2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계·설비를 사는 설비투자도 전월 대비 4.1%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10월(-1.9%), 11월(-2.0%) 감소세를 보이다가 12월 2.3%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지난 1월에는 다시 5.8% 줄어들었다. 2월에는 9.6% 올랐지만 3월 8개월 만에 최대 하락폭인 6.2% 감소한 이후 지난달 0.3%로 하락폭이 줄었다. 반도체 제조용 기계를 포함한 특수산업용기계 등 기계류(-1.0%)와 자동차 등 운송장비(-12.3%) 투자가 모두 줄었다. 건설기성(불변)은 건축(-5.7%) 및 토목(-1.1%)에서 공사 실적이 모두 줄어 전월대비 4.6% 감소했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 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0.6p 감소했고 앞으로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선행 종합지수 순환변동치도 0.1p 하락했다. 정부는 소상공인 등 내수 취약부문을 집중 지원하면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기 회복에 최우선 역점을 둘 계획이다. 문의: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경제분석과(044-215-2731, 2732, 2735)
-
카드뉴스
축제·물놀이 등 안전사고 이렇게 예방하세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떠나는 피서지.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고 익숙지 않은 곳일수록 사소한 부주의가 사고로 이어지곤 하는데요. 안전수칙 미리 확인하여 보다 안전하고 시원한 여름을 보내세요! ■ 워터 페스티벌 워터 페스티벌에서는 시청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인파가 몰리는 만큼 안전을 위해 관객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① 입 퇴장 시에는 뛰지 말고 천천히 이동하세요. ② 좌석이 지정되지 않거나 서서 공연을 관람하는 경우에는 주변 사람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세요. ③ 공연 관람 중 과도한 움직임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밀치거나 너무 가까이 밀착되면 압사사고의 위험이 있습니다. ④ 공연장 내에서는 공연장 관리자의 지시와 안내에 따라 행동하세요. ⑤ 공연 시작 전 비상구, 대피통로, 소화기 위치 등을 숙지하고 피난 안내에 집중하세요. ⑥ 의료지원 위치, 종합 안내 데스트 위치, 화장실 이용 시 안내문을 꼭 확인하세요. ※ 이외 자세한 내용은 문화체육관광부 공연안전관람객행동요령을 참고해 주세요. ■ 계곡 계곡은 움푹 파인 곳도 많고, 물살도 세기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① 미리 수온을 체크하고 천천히 들어가며, 다이빙 금지 ② 계곡물이 흐리거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가급적 물에 들어가지 않기 ③ 긴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수심과 유속을 확인하기 ④ 국립공원 내 물놀이 가능 지역은 누리집을 통해 확인하며, 불법 출입 시 과태료 부과 ■ 해수욕장 인기 피서지 중 하나인 해수욕장은매년 부주의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① 사전에 기상상황을 파악한 후 방문합니다. ② 해양 환경에 따라 해파리 등 해독성 생물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③ 이상파도를 목격했다면 물에 들어가지 마세요. ④ 간조와 만조 때의 조류 변화 시간을 미리 알아두세요. ⑤ 아이들과 동행 시, 보호자와 함께 물놀이를 해야 합니다. ⑥ 파도에 휩쓸렸다면 몸이 자연히 떠오르도록 몸을 맡기고 숨을 깊이 마신 상태로 참으세요. 올바른 안전수칙 숙지로시원하고 안전하게찬란한 여름휴가의 추억을 남기세요!
-
여행
푸른 바다를 다채롭게 즐기는 군산 선유도 여행 푸른 바다를 만끽하는 군산 여행지 이색적인 공간에서 휴식을 즐기는 카페, 무녀2구마을버스 고군산군도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자도 대장봉 전망대 푸른 바다 위를 가로지는, 선유스카이썬라인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선유도 해수욕장 군산 선유도는 무녀도, 장자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 이루어진 고군산군도에 속하는 섬입니다. 이곳은 푸른 바다를 다채롭게 즐길 수 있어 여름 여행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요. 액티비티부터 트레킹까지 군산 선유도 여행으로 가기 좋은 코스를 소개해 드립니다. ★추천 코스★ 카페 무녀2구마을버스 - 장자도 대장봉 전망대 - 선유스카이썬라인 - 선유도 해수욕장 카페 무녀2구마을버스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동길 117- 운영시간 : 월~금요일 09:00~19:30, 토~일요일 09:00~20:00- 이용요금 : 아메리카노 5000원 / 카페라떼 5500원- 문의 : 0507-1339-0617-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무녀2구마을버스는 버스를 테마로 한 이색 카페입니다. 이곳은 선유도로 넘어가기 전에 있는 무녀도에 있어 군산 선유도 여행으로 함께 가기 좋은데요. 미국에서 들여온 스쿨버스 한 대가 전부였지만 현재는 넓은 잔디밭과 2층짜리 건물, 그리고 다양한 버스들이 늘어나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색적인 분위기를 가진 스쿨버스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다양한 공간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요. 특히 버스의 내부에도 테이블을 설치하여 특별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또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버스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푸른 바다를 감상하기에도 좋습니다. 군산 선유도 여행 중 예쁜 사진을 남기고 쉬어가며 푸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이곳에 방문해 보세요. 장자도 대장봉 전망대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대장도리 산1- 운영시간 : 연중무휴- 이용요금 : 무료- 문의 : 063-465-5186 (고군산관광탐방지원센터)- 주차 : 공영 주차장 이용 대장봉 전망대는 선유도를 지나 장자도에 있는 곳으로 군산 선유도 여행으로 함께 가기 좋습니다. 전망대는 왼쪽 구불거리는 등산로와 오른쪽 나무 계단길 총 2개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각각 20분 내외로 오를 수 있는 코스이지만 등산로는 가파른 구간이 있어 초보자라면 나무 계단길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무 계단길은 정상을 걸어 오르는 동안 약 9천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장자 할매바위와 조금씩 펼쳐지는 고군산군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요. 대장봉 전망대에 도착하면 고군산군도와 푸른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요. 바다 위의 크고 작은 섬들, 어촌마을 유람선 등 시야가 탁 트여 있어 한 폭의 그림 같은 경치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여름의 싱그러움과 푸른 바다의 청량함을 한 번에 만끽할 수 있는 이곳에서 트레킹을 즐겨보세요. 선유스카이썬라인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북길 136- 운영시간 :· 월~금요일 09:00~17:20 (휴게 시간 11:30~12:30)· 토~일요일 09:00~17:30 (휴게 시간 없음)* 기상상황에 따라 운영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이용요금 : 만 13세 이상 2만원 / 만 7세~만 12세 1만 6000원* 체중 35kg 이상 125kg 이하, 신장 120cm 이상 200cm 이하 탑승 가능합니다.- 문의 : 063-471-9800- 주차 : 공영 주차장 이용 선유스카이썬라인은 선유도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짚라인 체험 시설입니다. 매표소에서 티켓 발권 후 바로 옆에서 안전장비를 착용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발 지점까지 이동하면 되는데요. 출발 지점에 도착하면 안전요원의 안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짚라인은 망주봉 입구인 솔섬까지 이어져 있는데요. 45m의 높이에서 출발해 바닷바람을 가르며 푸른 바다 위를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도착 지점에는 나무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어 푸른 바다 위를 거닐며 시원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올여름 군산 선유도 여행으로 가볼 만한 이곳에서 짜릿한 액티비티 체험을 즐겨보세요. 선유도 해수욕장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운영시간 : 연중무휴- 이용요금 : 무료- 문의 : 063-465-5186 (고군산군도관광탐방안내소)- 주차 : 공영 주차장 이용 선유도 해수욕장은 유리알처럼 고운 백사장이 10여 리에 걸쳐 펼쳐져 있다고 해서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도 불리는 곳입니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물놀이를 즐기기 좋은 피서지로도 유명한데요. 물놀이가 아니어도 장자도와 선유도 사이 연결된 해상 인도교인 장자교 스카이워크를 거닐며 푸른 바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 다리를 건너면서 유리로 된 바닥 아래로 바다를 볼 수 있어 짜릿한 경험도 즐길 수 있어요. 선유도는 선유낙조라고 하여 어디서든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그중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보는 일몰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인 풍경을 자랑합니다. 청량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까지 두 가지의 황홀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이곳에서 다가오는 여름 군산 선유도 여행을 떠나보세요.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SNS * 위 정보는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사진
산업부, 한미 공급망 산업대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더 헤이 아담스호텔에서 열린 ‘한미 공급망 산업대화’에서 지나 러몬도(Gina Raimondo) 미국 상무부 장관과 악수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더 헤이 아담스호텔에서 열린 ‘한미 공급망 산업대화’에 참석, 분과별 논의성과를 점검하고 있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더 헤이 아담스호텔에서 열린 ‘한미 공급망 산업대화’에 참석, 분과별 논의성과를 점검하고 있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더 헤이 아담스호텔에서 열린 ‘한미 공급망 산업대화’에 참석, 분과별 논의성과를 점검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온통청년’에서 온라인으로 취업 상담 받았어요! 진로 고민은 청년들에게 있어 가장 큰 걱정거리이자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현재 4학년 진학을 앞두고 휴학을 한 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진로 선택 및 취업과 관련된 정보를 찾고 있다. 특히 취업 준비에 있어서 정부 및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는 사업들이 정말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떤 사업의 지원 대상자에 해당되는지 잘 모르다 보니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기가 어려웠다. 온통청년 누리집 메인 화면.(출처=온통청년 누리집) 진로 및 취업 고민을 이어가며 여러 정보를 찾던 와중, 온통청년(https://www.youthcenter.go.kr/main.do)이라는 청년정책 정보 포털에서 여러 유형의 청년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 정보를 전달하고 상담 및 고용지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온통청년은 청년의 미래를 응원하기 위해 제작된 청년만을 위한 누리집이다. 청년상담실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 온통청년에 접속한 청년들은 상담을 통해 진로부터 취업까지 다양한 취업 고민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으며, 개인별 맞춤 정보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온통청년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청년들이 부담 없이 청년 상담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카카오톡 상담, 심층 상담, 전화 상담, 게시판 상담 등 다양한 상담 유형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통청년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상담 유형.(출처=온통청년 누리집) 온통청년의 네 가지 상담 유형은 모두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및 유선환경에서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카카오톡 상담과 게시판 상담은 온라인에서 글을 통해 상담을 진행하고, 전화 상담은 상담사와 전화로 대화를 통해 상담을 진행하며, 심층 상담은 카카오톡으로 온라인 상담 및 화상 상담의 방식으로 상담을 진행한다. 온통청년 상담을 이용하는 청년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상담 방식을 직접 결정하고, 양질의 상담을 제공받을 수 있다. 온통청년 카카오톡 채널 화면. 최근 진로 선택 및 직무 설정, 취업 준비에 있어서 받을 수 있는 정책적 도움이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온통청년의 카카오톡 상담을 이용해 취업 정책 관련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상담을 시작하는 방법도 매우 간단했는데, 카카오톡 채널 온통청년에 들어가 문의 유형을 선택하고 나면 바로 상담사와 매칭이 되어 상담을 시작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청년의 상황 및 거주 지역에 따라 맞춤 정보를 제공해주는 온통청년 상담 서비스. 나는 여러 정책 중 일자리 정책과 관련한 내용을 상담했다. 상담사는 나의 거주 지역과 현재 상황에 대해 질문하고 그에 맞는 여러 정책을 안내해줬다. 특히, 내가 거주하고 있는 의정부시에서 1:1 취업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과, 해당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더불어 더 자세한 진로 및 취업 상담이 필요하면 심층 상담 신청으로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상담받을 수 있다는 안내도 해줬다. 심층 상담 예약도 상세히 안내해주는 온통청년 상담 서비스. 상담을 받고 나니 비로소 내가 지원받을 수 있는사업들을 더 많이 알게 되어 매우 뜻깊었다. 추후에 진로 및 취업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심층 상담까지 연계해줘 조만간 진로 및 직무 선택 관련 상담을 받아보고자 한다. 사회에 나가기 전 막막한 감정이 들거나 진로 및 취업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청년들이 온통청년의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양은빈 bin2bin249@khu.ac.kr
-
영상
지금도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공의 여러분 돌아와 주십시오. 지금도 국민들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온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we_need_U #의료개혁 본 영상은 의료진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전공의의 복귀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환자분들의 언론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픽션으로 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