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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남북 문화 차이 좁히고 싶어요”

탈북 청년 적응기 그린 웹툰 ‘로동심문’ 작가 최성국 씨

2016.10.28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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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등불 이혜미 : 주말에 뭐하세요? 밥먹을 시간 있어요?
용철 씨 : 예, 있고말고요. 문자를 먼저 해줘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마음의 등불 이혜미 : 헐ㅋㅋ 말씀이 거창하시네요.ㅋㅋㅋㅋ 저번에 고생하시고 고마워서 제가 밥 사는 거예요.
용철 씨 : 심장이 뜨거우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디요. 우리는 목숨 걸고 사랑합니다.

웹툰 ‘로동심문’의 한 장면. 탈북 청년 용철 씨는 밥을 사겠다는 거래처 직원 혜미 씨의 문자메시지에 심장이 터질 듯하다. 이미 혜미 씨를 향한 그의 마음엔 사랑의 등불이 밝았다. 북한에서는 연인 사이가 아니면 여성이 남성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게다가 먹을 것이 귀하기 때문에 정말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면 밥을 사주기도 어렵다. 밥 한 끼 먹자는 혜미 씨의 단순한 제안에 용철 씨가 착각의 늪에 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상황. 용철 씨는 애가 타는데 만화를 보는 이들에게선 웃음이 터진다.

탈북 청년의 남한 적응기를 그린 ‘로동심문’의 이야기는 만화를 그린 최성국(36) 씨의 경험담이다. 2011년 탈북한 최씨는 이제는 많이 적응했지만 당시엔 온통 세상이 요지경이었다고 말한다.

웹툰 작가 최성국 씨는 “만화를 통해 남북한 문화 차이를 이해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웹툰 작가 최성국 씨는 “만화를 통해 남북한 문화 차이를 이해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외화벌이 일등공신에서 범죄자로 추락 후 탈북
충성심 없는 한국 만화 처음엔 이해 못 해

“북한에서 남녀 사이에 친구가 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죠. ‘고맙다’, ‘미안하다’ 뭐 이런 말도 사람이 너무 가벼워 보인다고 잘안 하거든요. 처음엔 만화를 보고도 깜짝 놀랐어요. 교육적 내용도 하나 없고, 충성심이나 간첩 잡는 얘기도 없고요. ‘개그콘서트’를 보면서도 방청객들이 웃는 게 다 짠건 줄 알았어요. 내가 볼 땐 하나도 안웃긴데. 이게 행복한 척 외국에 선전하려고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5월부터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한 만화는 회당 조회 수가 4만 명을 넘었다. 모든 댓글을 다 읽는다는 최 씨는 댓글엔 온통 칭찬뿐이라며 흐뭇해했다. 서로 다른 남북 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같은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목표에도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이다.

“남북의 문화 차이가 너무 크니 북한 문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전부터 반드시 그 간극을 줄이는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죠. 만화는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입니다. 북한에 대해 몰랐거나 오해했던 부분을 알게 됐다는 댓글을 보면 감사합니다.”

최 씨는 북한에선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에서 8년간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나라의 외화벌이 일등공신이던 회사에서는 연말에 냉장고와 텔레비전을 선물로 주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이 최고의 직장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공동 작업을 하는 외국인 직원들의 지갑 속에 100달러짜리 지폐가 수북이 들어 있는 걸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는 “북한에선 300달러면 결혼식도 치를 수 있는데 그들은 같은 일을 하고도 훨씬 많은 돈을 받고 있단 걸 알게 된 뒤 ‘자본주의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고 생각했다”고말했다.

이후 최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에서 들여온 컴퓨터를 조립해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컴퓨터 안에는 한국 영화며 드라마가 엄청나게 들어 있었다. 한번은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CD를 만들어주니 집안사람들이 무척 좋아했다. 이때부터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CD로 만들어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 200만 원을 김정일에게 바쳐 북한 청년 최고의 상인 ‘김일성청년영예상’도 받았다. 2007년 <조선대백과사전>에는 그의 이름이 실렸다.

기쁨은 잠시. 최 씨는 2006년 한국 영화 유포죄로 체포돼 평양에서 추방됐다. 그나마 앞선 공적이 고려된 처사였다. 그러나 추방 이후에도 이중 삼중으로 감시는 계속됐다. 북한 땅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그때였다.

탈북민 성공하기까지 전 여정 그릴 것
“3년 이상 버티면 탈북민도 뭐든 해낼 수 있어”

그는 한국에 온 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2년간 일했다. 그러나 주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거나 강의를 다니며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했다. 소일거리로 만화 제작을 하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만화잡지 회사에 입사한 건 올해 1월이었다. 만화를 그릴 수있을 만큼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의미다. 그는 “지금 몸담은 꼬레아우라의 박창재 대표께서 후원해주지 않았으면 만화를 그릴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제는 여성들과도 친구로 지낼 수 있냐”는 질문에 최 씨는 “당연하다”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만화가 재미있는지 주변의 반응을 물어보기도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도 감이 온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 문화에 적응을 끝냈지만 탈북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곳에 오니 자유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몸으로 느낄 수 있더군요. 자유민주주의가 쉽게 이뤄졌다고 생각해선 안 돼요. 사람들에게 그걸 설명해주려고 하면 ‘그래서 네가 탈북민 소리를 듣는 거야’라는 식으로 말해요. 제가 하는 말이나 만화가 정치적으로 비춰질까봐 걱정이죠.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탈북민들을 바라봐주면 좋겠어요.”

현재 ‘로동심문’에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처음 와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는 내용이 연재되고 있다. 최 씨가 밝힌 다음 소재는 하나원. 앞으로는 탈북민들의 구인 과정, 직장을 잃고 상처받는 모습, 결혼을 하고 성공하기까지의 여정을 모두 담을 생각이다. 만화의 모든 내용은 최씨의 이야기이자 3만 탈북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한에 온 뒤 7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어요. 이곳에 와 무척이나 바쁘게 살았습니다. 이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풍족해졌죠. 이제 막 북한을 떠나온 분들도 큰 결심을 품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한 3년쯤 되면 그 마음이 조금씩 약해져요. 하지만 끝까지 열심히 하다 보면 반드시 열매를 맺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탈북민도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뭐가 되든 하나는 걸린다니까요!”

최 씨의 꿈은 계속해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매체는 만화가 아닌 영화가 될수도 있고, 주제는 북한만이 아닌 세상만사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 그가 ‘탈북민 출신의 웹툰 작가’가 아닌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 명의 자연인이자 예술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로동심문 웹툰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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