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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한국인 의식주 변천사] ⑭ 결혼 풍속

동네 잔치에서 개성 만점 작은 결혼식으로

풍경은 변했어도 사랑은 영원하리라

2015.11.04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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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접어들면서 청첩장을 많이 받네. 구보 씨가 50, 60대일 땐 주례 부탁을 많이 받았는데, 더 나이 들고부터는 모든 주례를 정중히 사양했지. 최근에 ‘결혼 2주 앞두고 신부 피살 신랑 투신’이라는 뉴스를 봤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어. 혼수 등 결혼식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 때문이겠지. 결혼 문화가 많이도 바뀐지라 결혼 풍속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신랑이 사모관대 차림으로 조랑말을 타고 신부 집으로 가서 원삼 입고 족두리 쓴 신부와 차례상 앞에 마주 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게 전통혼례 풍경이었어. 광복 직후엔 대부분이 집에서 전통혼례를 올렸지만, 여유 있는 집에선 ‘김구예식부’나 ‘만화당예식부’ 같은 전문 예식장에서 신식 결혼식을 하기도 했어.

6·25전쟁 직후엔 결혼식 올릴 공간이 마땅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안 할 수도 없어서 대개는 집에서 결혼식을 했지. 서울 관훈동에 있던 ‘종로예식장’은 강당에 의자만 배치돼 있었지만 ‘펑’ 소리 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았어.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엔 신랑은 양복을 입고 신부는 하얀 한복을 입고 머리에 베일을 올려 쓰고 식을 올렸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들어서는 예식장 결혼이 늘었어. 양장이 대중화되면서 신부도 흰 한복 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입장했어. 웨딩드레스는 해가 갈수록 점점 화려해졌지. 당시엔 누구네 결혼식을 한다고 하면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거의 온 동네 잔치나 마찬가지였어. 형편껏 준비해간 축의금을 내면 혼주는 답례품으로 찹쌀떡이나 ‘카스테라(카스텔라)’를 줬는데, 그걸 받으려고 온 가족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지. 이후 1973년 6월 1일 정부에서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하자 결혼식도 아주 간소해졌어.

결혼을 앞두고 시댁에 드리는 선물인 예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적인 품목이던 ‘예단 삼총사(반상기, 은수저, 이불)’ 대신 손거울, 귀이개, 동전 주머니 등으로 구성된 ‘애교 예단’.(사진=동아DB)
결혼을 앞두고 시댁에 드리는 선물인 예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적인 품목이던 ‘예단 삼총사(반상기, 은수저, 이불)’ 대신 손거울, 귀이개, 동전 주머니 등으로 구성된 ‘애교 예단’.(사진=동아DB)

1980년대 결혼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전통적인 혼례는 거의 자취를 감췄어. 대신 호화판 결혼식이 성행하자 허례허식(虛禮虛飾)이라며 호텔에서의 결혼식을 금지하기도 했어. 1999년 들어 호텔 결혼식장에서의 예식을 금하던 법률이 폐지되자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호텔을 결혼식 장소로 이용하기 시작했어.

이때부터 호화판 결혼식이 강남을 중심으로 열리게 됐던 거 같아. 지나친 혼수 문제로 양가에 갈등이 빚어져 신혼 초에 벌써 결혼이 파탄 났다는 신문 기사가 놀라울 정도로 많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야.

혼수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어. 넓은 의미의 혼수는 신부가 신랑 측 친척에게 준비하는 예단, 신랑 측에서 준비하는 예물일 테고, 신부가 살림살이로 준비하는 것은 좁은 의미의 혼수겠지. 그런데 혼례 문화가 바뀌면서 과거엔 간소했던 예단이나 예물의 양이 늘어나고 질도 고가품 위주로 변화됐지.

광복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는 한복 또는 한복을 만들 수 있는 옷감이 혼수의 전부였어. 그런데 1960~197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양복, 한복, 화장품, 핸드백, 밍크코트, 각종 보석류, 현금 등으로 그 품목이 점차 확대됐어. 2010년대 이후엔 가방 하나에 수백만 원씩 하는 명품 위주로 혼수를 꾸리는 커플도 있다니 이젠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됐을 거야.

과시형보다 실속형 혼수
국가에서 미혼 남녀 단체 맞선 추진도

통계청은 2000년대 이후의 결혼인구 중 90% 이상이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지. 2000년대 이후 봇물처럼 등장한 웨딩 컨설팅 회사는 결혼 문화를 근본부터 바꿔버렸어. 이제 예비부부들은 웨딩 컨설팅 회사의 예식 전문가(웨딩 매니저, 웨딩 플래너, 웨딩 디렉터, 웨딩 컨설턴트)에게 의뢰해 결혼식 준비의 모든 걸 맡기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

일부 업체는 ‘주례, 축가, 사회’를 패키지로 만들어 판매한다고 해. 자신들의 결혼 준비를 모두 대행업체에 맡긴다고? 다들 바쁘게 사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좀 거시기하네. 비용도 너무 많이 드는 거 같아. 식장 대관료나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에 들어가는 비용에도 너무 거품이 꼈어.

전통혼례 모습.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혼례식을 신부 집에서 치렀다.(사진=동아DB)
전통혼례 모습.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혼례식을 신부 집에서 치렀다.(사진=동아DB)

그렇지만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최근엔 결혼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해 반갑네. 과시형 혼수보다 실속형 혼수를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이 늘고, 복잡한 결혼식보다 자신의 개성을 살려 새로운 형태의 예식을 치르는 거지. 결혼사진 촬영부터 예식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셀프 웨딩’도 늘었다고 해.

예식장은 공공기관을 빌리고 사진도 재능기부를 받아 촬영하는 ‘친환경 결혼식’도 있어.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커플링으로 예물을 간소화하는 커플들도 적지 않아. 사치스럽고 천편일률적인 결혼식을 거부하고 개성을 살리는 결혼식을 하는 거 같아.

최근엔 가까운 지인만 초대해 신랑 신부가 원하는 대로 결혼식을 기획하는 ‘하우스 웨딩’도 는다고 해. 스타들도 작고 은밀하게 스스로(Small, Secret, Self) 준비하는 ‘3S 웨딩’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결혼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 얼마 전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4명이 이렇게 답했다더군. 요즘 대학생들을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뜻에서 ‘3포 세대’라고 한다지만, 왜들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지 걱정스러울 뿐이야. 10월 18일 정부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비혼(非婚)과 만혼(晩婚) 경향을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어.

그래서 결혼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한 대책으로 미혼 남녀에게 단체 맞선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는 거야. 어쩌다 국가에서 개인의 결혼을 걱정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는지 몰라.

우리 조상들은 관혼상제(冠婚喪祭) 중에서 결혼을 가장 중요한 대사(大事)로 생각했지.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정신적 결합이라는 결혼의 순수성도 많이 희석됐어. 결혼식을 준비하며 본인들이나 부모들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것 같아 구보 씨는 안타까울 뿐이야.

결혼 준비가 아닌 결혼식 준비에 모든 것을 쏟는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 설계는 뒷전으로 밀려나버렸어. 이젠 결혼식 준비보다 결혼생활 준비를 제대로 했으면 싶어.

* 이 시리즈는 박태원의 세태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의 주인공 구보 씨가 당시의 서울 풍경을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살아온 지난 70년의 기억을 톺아본 글이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전 한국PR학회장)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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