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 해발 710m 높이에서 도시를 품에 안 듯 서 있는 브라질 예수상이 6월 7일 깜짝 변신을 했다. 청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것이다. 높이 30m, 양팔 사이 28m, 몸무게 약 635톤의 브라질 예수상이 다른 나라 전통의상을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거대한 예수상은 철릭(조선시대 무관들이 입던 관복)을 걸치고 허리에는 오는 11월 이곳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로고 색상의 화려한 술띠를 둘렀다. 실제 한복은 아니고 브라질 예수상에 빛으로 이뤄진 한복 영상을 투사한 것(프로젝션 매핑)으로 한국과 브라질 양국의 수교 65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행사였다.
청색의 한복 디자인이 낯이 익을 수도 있겠다. 2023년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연인’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 남궁민이 극 중에서 입은 한복이다. 브라질 예수상에 입힌 이 한복을 디자인한 사람은 이진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 교수다. 이 교수는 “청색은 한국의 오방색 중 하나로 봄의 탄생과 생명을 상징하고 브라질 국기에서 녹색과 파랑은 브라질의 산림과 하늘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25년간 무대의상 디자이너로도 활약하며 한복을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더 킹 : 영원의 군주’, ‘연인’을 비롯해 영화 ‘간신’, ‘안시성’ 등의 의상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한국 전통복식을 의미 있게 현대화한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현재 미국 뉴욕한국문화원에서 개인전(6월 25일~8월 17일)을 열고 있다. 뉴욕한국문화원이 45년 만에 단독 신청사인 뉴욕코리아센터를 개관한 것에 맞춘 ‘한국 대표 거장’ 전시회의 일환이다. 전시에서 이 교수는 한국의 색채를 담은 미디어아트와 한복 원단 조각을 손바느질로 이은 입체조각, 무대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총 43점을 선보였다.
브라질 예수상에 푸른 한복을 입히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흥미로운 작업이었을 텐데 현지 반응은 어땠나?
브라질 예수상은 종교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유산이다. 그런 예수상에 한복을 입힌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이질적 배경을 가진 한국과 브라질을 연결하고 풀어내는 부분에 대해 고심했다.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브라질 예수상에 한복을 입힌다는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브라질 국기 색깔인 파랑을 바탕으로 작업해 친숙하면서도 아름다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최근 미국에 새롭게 문을 연 뉴욕코리아센터에서도 전시를 하고 있다.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로 한복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현지에서 그 인기를 실감하나?
뉴욕코리아센터는 K-아트를 알리는 전진기지와 같다. K-문화를 알리는 데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광이었고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 마음 벅찬 순간이 많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한복 작업을 소개하면서도 한국문화에 나만의 미학을 담아 풀어낸 작업들을 선보였다. ‘현존의 경계’를 주제로 우리의 소재를 가지고 변주하고 재해석하면서 현대인의 화두인 ‘경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프닝 리셉션에 외국인 관람객이 많이 참석했는데 한국의 색감이 아름다우면서도 현대적이고 새롭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국의 컬러가 맞냐, 너무 힙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도 궁금해 했다.
영감을 주로 어디서 받나?
주로 한국 전통 민화나 문화유물에서 얻는다. 한국 전통의 어떤 색감들은 굉장히 원색적이고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힘이 있다. 그 안에 현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인들이 한복에 환호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선형이 단순하지만 색깔의 변주가 다양하고 감각적이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기에 색깔로 계절감을 드러낸다. 과감한 색채표현에는 강렬함을 넘어선 우아함이 담겨 있다. 그걸 단순화하고 양식화하기 위해선 높은 미감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곡선과 직선을 통해 단아함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한복은 지금 입어도 과하지 않고 오히려 세련됐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극 의상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극에서 한복의 디테일을 살려내는 것은 더 어려울 것 같다.
극 의상이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보여주기 식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가급적 한복이 지닌 원형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드라마 ‘연인’에서도 17세기 복식을 작업하며 문헌을 많이 참조했다. 선형이 단순하면서도 미학적으로 뛰어난 옛 전통 복식은 들여다볼수록 새롭고 놀랍다.
한복의 경우 고증도 중요하겠다. 어떤 방식으로 맞춰가고 있나?
무대미술 분야에서 27년 동안 일하며 동서양의 다양한 복식을 다뤄봤다. 그중에서도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견줄 수 없다. 때문에 선조가 일궈놓은 형태들을 그대로 취하려 노력하고 있다. 드라마 ‘연인’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특히 고증에 입각해 작업했다. 다른 드라마는 의상이 도드라져 보였을 수 있으나 ‘연인’은 철저히 고증에 의존해 원형 그대로에 가까웠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많은 외국인으로부터 한복의 매력에 매료됐다는 메시지가 왔다. 한복의 원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벌의 극 의상이 탄생하기까지 과정도 궁금하다.
의상 작업은 극 기반으로 창작이 이뤄지기에 극적 리얼리티를 살리는 점이 주효하다. 그중 사극은 고증이 필수다. 문헌이나 전문 서적, 출토 복식을 기반으로 철저히 연구해 극의 방향에 맞춰 의상을 디자인한다. 또한 캐릭터 분석도 중요하다. 의상은 캐릭터를 창조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영화 ‘간신’의 경우 연산군의 욕망을 붉은색으로 표현했다. 극 전반에 붉은색을 두고 캐릭터에서 오는 극성의 질감을 찾아내 디자인했다. 소재와 디자인이 정해지면 배우와의 매칭을 살피고 작업에 들어간다.
우리 전통 의상을 대중매체를 통해 요즘 세대에 전하는 데 대한 자부심도 크겠다.
최근 들어 한복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전통이라는 게 담론으로 빠지면 구닥다리가 될 수 있지만 전통의 깊이를 이해하고 현대와 결합시켰을 때 하나의 문화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나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해 한복을 알리고 있다. 우리 전통의 유·무형적 유산들을 하나씩 소개할 때 한국문화를 세계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 각국에서 전시 요청이 쏟아진다고 들었다.
올해 하반기에 영국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 제안을 받았고 미국과 중동지역 국가에서도 전시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 중동국가에서 전시나 협업 제안이 자주 온다.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수준이라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때다. 코앞에 둔 행사가 8월 9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복진흥센터에서 진행하는 ‘한복 상점’의 패션쇼 예술감독이다. 이번 패션쇼의 핵심은 한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디지털아트와 융합을 통해 관객에게 더욱 다채롭고 새로운 시·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다. 한복과 디지털기술의 융합은 단순한 옷을 넘어 새로운 융·복합 K-문화를 제시한다. 이번 패션쇼가 한국 문화의 지속가능성과 창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서경리 기자
박스기사
뉴욕코리아센터
뉴욕 한복판에 ‘한류 전진기지’ 문 열었다
미국 뉴욕 한복판 맨해튼 32번가에 ‘한류 전진기지’인 뉴욕코리아센터가 입성했다.
6월 27일 정식 개원한 뉴욕코리아센터는 한국문화원과 한국관광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 세종학당 등 한국문화를 알리는 기관이 총집결했다. 특히 뉴욕한국문화원은 개원 45년 만에 확장·이전한 것으로 한류 문화 확산의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안에 한국콘텐츠진흥원도 입주할 계획이다.
연면적 3383㎡, 지하 2층~지상 7층 규모의 건물은 190석 규모의 공연장과 전시장, 정원, 도서실, 요리강습실 등을 갖추고 있다. 한류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K-컬처, 관광 등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시범운영 기간에 8000여 명의 방문객이 찾았다.
뉴욕한국문화원은 개원 기념으로 전 세계에서 응모받은 한글 문구를 이용해 뉴욕코리아센터 내에 한글 벽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진행된다.
뉴욕코리아센터 개원식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뉴욕링컨센터 조다나 리 공연 프로그래밍 부예술감독,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제작자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와 린다 조 의상디자이너 등 현지 주요 문화예술기관 인사 15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