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철도 아니건만 요즘 전북 정읍 내장산에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다. 전통 모시떡을 만드는 ㈜솔티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모시 재배부터 떡 생산과 체험까지 6차산업의 롤모델로 주목받는 이곳은 마을 공동체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기업의 성장이 마을의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솔티마을의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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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티 김용철 대표. |
㈜솔티 김용철(54) 대표가 떡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40년이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15세 시골 소년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소년의 발길이 닿은 곳은 신도림 골목시장 어느 떡집 앞이었다. 소년은 단칸방에서 지내며 떡집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재료를 씻고 배달을 하며 곁눈질로 떡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예기치 않게 시작한 떡집 일이지만 그 사이 4명의 동생도 형을 찾아와 떡을 배웠다. 10년 후, 오형제는 제각각 소박한 떡집을 차리고 삶을 꾸려갔다.
오형제가 안정을 찾을 무렵, 고향 정읍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형제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아픈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었지만 가까스로 이룬 것을 접기도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오형제는 1년 6개월 만에 모두 고향 솔티마을에 모였다. 막상 고향에 돌아왔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떡에 있는 나눔, 마을과 함께하고 싶어요”
오형제는 전공 분야인 떡 가게를 하며 정읍에 정착했다. 다들 떡에는 자신 있었다. 특히 ‘음식 맛은 재료가 좌우한다’고 생각한 김용철 대표는 정읍의 특산물 모시를 이용한 떡을 만들기로 했다. 정읍시 솔티마을은 내장산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에 깊숙이 둘러싸여 기온차가 큰 탓에 모시가 잘 자랐다. 동네에서는 으레 모싯잎을 이용해 송편을 만들곤 했다.
김용철 대표는 회사 명칭 ‘솔티’를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시골 마을에서 떡을 판매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일찌감치 온라인 시장을 겨냥했다. 오픈마켓을 발판으로 단독 누리집으로 판매 거점을 확장했다. 그의 분석은 옳았다. 싱싱한 원재료를 사용한 덕에 떡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모시를 비롯해 지역 생산물인 복분자, 쑥, 흑미를 활용해 종류도 다양화했다. 하지만 떡이 잘 팔릴수록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외에 고향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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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고 담백한 모시인절미는 솔티의 대표 식품이다. 인절미에 모시 특유의 향이 배어난다. 3월 마지막 주부터 모시인절미는 홈쇼핑을 통해 전국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
“떡에는 나눔이 있어요. 좋은 날 떡을 돌리는 것은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함이죠. 저도 떡이 상징하는 나눔의 의미를 마을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김용철 대표는 솔티마을에서 수확한 모시를 전량 수매하기로 했다. 또 나눔의 방점을 가격에 두었다. 모시를 시장가격보다 더 비싸게 사들인 것. 지난해 모시 시장가격은 1kg당 2000원이었는데 김 대표는 2300원에 사들였다. 1kg당 300원씩의 차익은 마을 기금으로 적립됐다. 이 적립금으로 솔티마을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80세 어르신은 매달 10만 원의 연금을 받게 됐다.
솔티가 모시를 전량 구매하자 200평(661㎡)이던 모시밭은 10년 동안 8000평(2만 6500㎡)으로 늘었다. 작물이 제값을 받자 주민도 신이 났다. 1~2톤에 그치던 수확량도 50톤에 이르렀다. 이제 그만 심으라고 해도 주민들이 앞다퉈 모시를 더 심는 형세다. 모시떡이 유명세를 타면서 2016년 매출액은 4억 1900만 원을 달성했고, 5000여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떡 만들기 체험을 했다. 온라인 수요도 날로 늘었다. 오죽하면 솔티의 배송 물량이 정읍우체국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정도다.
떡 판매량만큼 마을 적립금도 쑥쑥
김용철 대표는 전통 떡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솔티는 전통 떡 30여 종을 출시하고, ‘김치영양찰떡’과 ‘귀리두텁떡’은 특허와 상표등록을 하는 성과를 이뤘다. 전통 떡과 지역 문화를 알리기 위해 2014년 ‘정읍 솔티 모시 달빛잔치’라는 마을 축제도 기획했다. 2015년 행정자치부는 공동체 글로벌 한마당에서 농어촌 부분 어울림상(대상)에 솔티마을을 선정했다. 솔티마을은 지역에서 재배·수확한 모시(1차)로 모시떡 등 전통 떡(2차)을 제조하고, 체험과 마을축제(3차)까지 운영하면서 6차산업의 롤모델이 됐다. 김 대표는 2017년 3월의 6차산업인이라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식품 안전성을 공식 인증하는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HACCP)을 취득하며 홈쇼핑 진출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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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 5~10월 수확이 이뤄진다. 지금은 모시 재배를 위해 토양에 거름을 주고 있다. |
솔티마을의 35가구 중 20가구가 쑥·모시 작목반에 참여하고 있다. 주민이 ‘모시’로 뭉치며 모시 재배는 마을 공동체 사업이 됐다. 솔티마을에서 재배한 모시 전량을 솔티가 구매하면서 모시떡은 마을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떡이 많이 팔릴수록 마을 적립금도 쌓이니 기업의 성장이 마을의 행복으로 돌아왔다. 활기를 잃어가던 마을에 일자리가 생기고 저평가됐던 우리 농산물도 살아났다. 가을 단풍으로 한철 유명했던 솔티마을이 이제 1년 내내 사랑받는 곳으로 바뀐 비결이 여기에 있다.
“당장 저에게 주어지는 이익보다 함께 사는 마을이 여유로워지는 걸 느낄 때 기분이 좋아요. 공동체가 끈끈해질수록 마음도 풍족해지죠. 혼자 잘사는 것보다 같이 잘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