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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년, 새로운 시작

[한국인의 삶을 바꾼 것들 ⑪] 밥상

보릿고개 훌쩍 넘어 웰빙·퓨전 식단으로…

200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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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우리 밥상은 보리밥과 짠지로 대표되는 초라한 것이었다. 그저 '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시절이다. 급격한 경제발전 속도와 함께 우리 밥상은 '보릿고개'를 훌쩍 넘어 혼분식 장려시대, 육류시대를 거쳐 요즘은 '웰빙'과 '퓨전' 식단으로 변했다. 이제는 외식문화가 사회 깊숙이 자리잡으면서 집에서 밥상을 차리지 않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보리개떡에 된장국, 소금에 절인 무짠지, 찐 감자와 옥수수 등. 이나마 먹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었다.
가을 벌판은 해마다 황금색으로 넘실거렸지만 곡식은 어디서건 흔하지 않았다. 저 너른 벌판의 곡식은 어디로 갔느냐…. 해방 직후 전 국민의 70%를 차지했던 농민은 이렇게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광복 직후 절대적으로 부족한 식량 사정은 일제 식민지 말기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고 1960년대 초까지 미국의 식량 원조가 극심한 궁핍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원조식량은 주로 밀과 옥수수였고 이 같은 원조식량은 우리 식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보리밥…”

1950∼60년대를 살았던 국민이라면 한·미 국기를 뒤에 놓고 악수하는 두 손이 그려진 포대자루를 기억할 것이다. 그 포대에 담겼던 밀가루·우유가루·옥수수가루는 죽과 빵과 수제비가 되어 국민의 허기진 배를 채웠다. 당시 구수한 냄새의 옥수수빵과 우유가루죽은 미국의 풍요와 대한민국의 절대빈곤을 상징하면서 그때를 회상하는 상징 코드로 작용하고 있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옹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보리밥…보리밥 먹은 사람 신체 건강해.’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전국의 학교에서 울려퍼진 <혼분식의 노래>의 일부다.

1960년대 초까지 극심했던 식량난은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66)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 그러나 흉작으로 쌀 부족 현상이 계속되자 당시 정부가 내놓은 것이 ‘혼분식 장려정책’이다. 모든 음식점에서는 보리쌀 등 잡곡이나 분식류를 25% 이상 혼합해 팔아야 했고, 학생들은 점심시간마다 도시락에 잡곡이 ‘제대로’ 섞여 있는지 검사받아야 했다.

이런 때 라면의 등장은 국민 식생활에 충격적 변화를 가져왔다. 1963년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해 개발한 ‘삼양라면’이 라면 제품 1호. 처음엔 낯선 맛과 이름 때문에 외면받았으나 혼분식 장려정책과 개당 10원이라는 싼값에 힘입어 대중식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960년대 연간 100만 개 정도였던 소비량은 꾸준히 늘어 현재 약 38억 개, 연 1조400억 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경제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우리나라는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1971년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개발돼 쌀의 자급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한동안 계속된 혼분식 장려정책의 영향으로 라면과 국수·빵이 밥상에 일상적으로 등장하면서 주식인 밥의 비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 해외 교류가 확대되고 국민총생산이 높아지면서 식생활은 점차 서구화하고 풍성해졌다. 육류와 우유, 유지류의 소비 증가가 그것을 보여준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1975년만해도 음식비의 78%를 조리를 위한 재료를 사는 데 썼으나 2000년에는 가공식품과 외식에 63% 이상을 쓴다. 1969년 하루평균 6.6g에 불과했던 육류섭취량도 2001년 91.7g에 달했다.

공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편의식품·가공식품의 발달과 함께 점차 외식문화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급격한 음식문화의 변화는 득과 실을 함께 가져왔다.

싸고 좋은 재료를 골라 정성껏 조리하던 우리 고유의 부엌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도시락도, 상다리가 휘어지던 생일상도 사라졌다. 요즘 간장·된장·고추장·김치 등은 모두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을 사먹는다. 요즘엔 시골에서도 장을 담그지 않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고칼로리·고단백 먹을거리가 식탁을 채우는 등 양적 측면에서는 풍요를 누리게 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만과 당뇨·아토피 질환 등 새로운 문제들이 찾아왔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근에는 ‘웰빙’이라는 이름의 자연식과 전통식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해방 후 음식문화는 채식에서 육식으로, 전통식에서 서양식으로 치닫다 최근 다시 육식에서 채식으로, 서양식에서 전통식으로의 회귀 패턴을 보여준다.

이젠 건강 생각하는 밥상에 관심

편의를 추구하는 서구식 인스턴트 음식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79년 서울 소공동에 롯데리아 1호점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미국식 인스턴트 식문화의 대표주자인 햄버거가 대중화의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당시 햄버거는 개당 450원. 고칼로리의 맛있는 음식을 간단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젊은 층의 관심을 끌었다. 이때부터 청소년의 식생활이 빠르게 서구화·패스트푸드화해 연령별로 입맛의 색깔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거치면서 우리 입맛은 급격히 서구화했고, 덩달아 외식산업 붐이 가속화했다. 커피 전문점이나 돈가스 전문점 등 각종 전문 음식점이 속속 간판을 내걸었고, 피자헛·맥도널드·버거킹 등 해외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가 대거 도입됐다.

오늘날 식문화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퓨전’과 ‘웰빙’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동·서양의 재료와 조리법을 섞어 만드는 ‘퓨전요리’가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웰빙시대’인 2000년대에는 음식을 통해 건강과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 최대 관심사가 됐다. 독창성과 미를 추구하는 고품격 음식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자료 : 코리아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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