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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광복 70년 한국인 의식주 변천사] ⑪ 운동회의 변화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모두가 외쳤던 가을날 함성

2015.09.08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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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전국체육대회를 비롯한 여러 체육 행사가 여기저기서 열리지. 직장이나 단체들도 직원 단합을 위해 체육 행사를 열 것이고, 학교에서도 운동회를 하겠지. 그래서 이번엔 운동회 이야기를 해볼까 싶어. 운동회는 소풍과 더불어 초등학교(옛 소학교, 국민학교) 시절을 대표하는 추억이니 즐겁던 기억의 공간으로 함께 떠나보자고.

개화의 물결이 넘실대던 1896년 5월 2일 조선 수도 한성의 동소문 밖 삼선평(三仙坪 : 지금의 서울 성북구 삼선교 근처) 들녘 공터에서 ‘화류회(花柳會)’라는 이름의 낯선 운동회가 열렸다고 해. 제1회 아테네올림픽(1896년 4월 6일)이 열린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회였다고 하네. 관립 영어학교 학생들은 300보와 600보 달리기, 공 던지기, 대포알 던지기(투포환), 멀리뛰기, 높이뛰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여학생들의 달리기는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는데 말세의 패속(敗俗)이라고 개탄하는 상소문이 빗발쳤대. 1908년엔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운동회 금지령을 발표하면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지됐어.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지금의 40~50대는 운동회 하면 가장 먼저 이 구호가 떠오를 거야. 구보 씨가 일제강점기 소학교 다닐 땐 청군과 백군이 아닌 홍군과 백군의 대결이었어. 일장기의 흰색 바탕과 빨간색 히노마루(日の丸)를 상징했던 거야. 광복 이후부터 청군과 백군의 대결이 됐지.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운동회가 자주 열리진 못했어. 1965년만 해도 서울 시내 160개 초등학교 대부분이 운동회를 안 했어. 표면적으론 2~3부제 수업 때문에 학생들이 한꺼번에 운동장에 모일 수 없다는 이유를 댔지만 실제론 운동회 비용을 걷기 어려워서였어. 당시엔 학부모에게서 운동회 비용을 징수했거든. 시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정부도 그다지 적극적으로 권고하지 않았어.

1975년엔 정부의 ‘서정쇄신(庶政刷新 : 1970년대 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를 일소해 건전한 국민정신을 진작시키려던 정신 개혁 운동)’ 시책에 따라 학부모로부터 찬조금을 걷는 폐단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운동회를 폐지한다고 했지. 하지만 여론 비판에 밀려 상품은 주지 않는 운동회를 하라는 조건을 붙여 1976년에 다시 부활했지. 그러자 “국교 운동회에는 어린이들의 다른 것에 비길 수 없는 즐거움과 부푼 꿈이 있다. 한데 운동회에서의 상품 폐지는 어린이들의 부푼 꿈과 즐거움을 송두리째 앗고 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1976년 9월 11일자 동아일보)며 비판하는 신문 사설이 나오기도 했어.

2013년 5월 1일 서울 강동구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봄 운동회. 가을 대신 봄에 운동회를 열거나 아예 열지 않는 학교가 늘고 있다.(사진=동아DB)
2013년 5월 1일 서울 강동구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봄 운동회. 가을 대신 봄에 운동회를 열거나 아예 열지 않는 학교가 늘고 있다.(사진=동아DB)

기다리고 기다리던 온 마을 잔칫날
즐거운 점심시간 ‘별미 파티’

개인 달리기, 계주, 줄다리기, 박 터뜨리기, 풍선 터뜨리기, 기마전, 기(旗) 뺏기, 투호, 제기차기, 윷놀이, 비사치기(비석치기), 대동놀이, 차전놀이, 텀블링, 곤봉체조가 그 시절 운동회의 주요 종목이지. 신발을 벗고 주먹을 꼭 쥔 채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던 순간을 한번 생각해봐. 어린 꼬마 녀석들의 진지함만큼은 우사인 볼트 이상이었을 거야. 어떤 때는 차전놀이나 부채춤 같은 민속놀이 시범도 있었어. 청백 계주는 가을 운동회의 대미를 장식했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별 대표가 나와 바통을 주고받으며 달리다 떨어뜨리기도 하고 순서도 엎치락뒤치락 바뀌기도 해 어린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한 편의 드라마일 수밖에 없었어.

뭐니 뭐니 해도 운동회의 백미는 점심시간이었어. 신나게 뛰다 약간 배가 고플 때쯤이면 박 터뜨리기가 시작돼. 오자미(콩을 넣고 꿰매 공 모양으로 만든 주머니)로 박을 맞춰 터뜨리면 ‘즐거운 점심시간’이나 ‘혼·분식을 합시다’ 같은 쪽지가 나왔어. 어린이들은 운동장을 둘러싼 포플러나무 쪽으로 달려갔지. 그러면 어김없이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어. 노란색 찬합(도시락)을 열면 평소엔 먹기 어려운 맛있는 반찬이 그득했어. 김밥이나 사이다는 특히 별미였지.

운동회 날이면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만국기가 내걸렸고, 하루 종일 요란한 응원가가 흘러나왔어. 엿장수, 풍선 장수, 솜사탕 장수, ‘아이스께끼’ 장수, 각종 뽑기를 파는 장난감 장수 같은 온갖 상인도 모였어. 어린이들은 뭘 먹고 뭘 골라야 할지 어리둥절해졌지. 진행하시는 선생님도 온종일 호루라기를 불면서 분위기를 띄웠으니 모두가 옥시글옥시글 즐거워하는 축제 한마당이었어.

시골 축제였던 운동회 날 주민들이 온 힘을 다해 줄다리기를 하는 광경(1985년).(사진=동아DB)
시골 축제였던 운동회 날 주민들이 온 힘을 다해 줄다리기를 하는 광경(1985년).(사진=동아DB)

그 후 198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는 꾸준히 운동회가 열린 것 같아. 구보 씨도 손자 녀석 운동회에 간혹 갔는데 대개 비슷비슷했어. 그런데 요즘은 운동회를 잘 안 한다고 해. 내용도 많이 달라져 기존의 일부 종목에 새로 추가한 것들이 많아. 색판 뒤집기, 풍선 탑 쌓기, 줄 뺏기, 볼풀 공 넣기, 통 쌓기, 이인삼각 달리기, 굴렁쇠 돌리기, 훌라후프 돌리며 장애물 넘기, 지네발 달리기, 여왕 닭싸움, 캥거루 릴레이, 손님 찾기, 단체 줄넘기, 피구, 축구 같은 다양한 종목이 어우러지는 스테이션식 놀이마당이 됐다는 거야. 기마전이나 차전놀이 같은 전통 종목이 사라졌는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거창한 표현까지 쓸 필요는 없겠지만 많이 아쉽네.

사실 운동회는 학생 가족은 물론 지역민 모두가 기다리던 공동체적 축제라는 성격이 강했어. 교장선생님, 면장, 지서장이 나란히 단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갓 쓴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였으니까. 학교 운동회는 학생들의 애국심을 환기하는 국가적 규율 장치로 활용된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잔치 성격이 강한 집단 기억의 공간이었어.

운동회는 꼴찌들의 잔칫날이기도 했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이날만큼은 기죽지 않고 당당히 단상에 올라 연필 한 ‘다스(12개)’나 공책 한 묶음을 가슴에 안고 내려가는 날이었으니까.

안타까운 건 초등학교 운동회가 점점 줄고 부모들도 딱히 바라지 않는다는 소식이야. 가을 대신에 근로자의 날(5월 1일)이 있는 봄철에 운동회를 여는 곳도 는다며? 학부모 참여를 늘릴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겠지만 가을 운동회의 그 맛은 느끼기 어려울 거야. 안타깝고 아쉽지만 운동회를 없애지는 말고 어떻게든 계속했으면 싶어. 20~30대까지 ‘국영수’로 산다면, 40~50대 이후엔 ‘예체능’으로 사는 거니까. 공부, 중요하지만 정말로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어린이들을 운동회 날만이라도 실컷 놀게 했으면 싶어.

* 이 시리즈는 박태원의 세태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의 주인공 구보 씨가 당시의 서울 풍경을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살아온 지난 70년의 기억을 톺아본 글이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전 한국PR학회장)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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