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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결정적 전투들] ⑨ 백마고지전투
한국군 단독작전 눈부신 전과 세계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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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기슭의 아군 진지 풍경. 자료사진 |
■ 전투 배경
백마고지 전투가 발생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중반에 접어들어서도 비교적 쉽게 타결될 것으로 예상했던 포로 협상이 그 타결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하게 되자, 공산군이 군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벌인 전투였다. 백마고지 전투가 발생하기 전 쌍방은 모든 전선에 걸쳐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대규모의 전면공세를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는 휴전 회담장에서 서로 유리한 휴전조건을 쟁취하려는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쌍방은 모두 그 결과를 주시하며 군사력 증강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휴전 협상이 결렬되자 공산 측은 휴전협상에서 얻지 못한 것을 전투에서 얻으려는 듯 유엔군이 장악한 전선의 주요 고지들에 대한 공격을 일제히 재개했다. 이때 적은 비교적 전선이 안정된 서부와 동부지역보다는 중부지역의 연천~철원 북방의 역곡천 일대에서 유리한 지형 확보를 위한 일련의 고지쟁탈전을 전개했다. 그 가운데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바로 국군 9사단과 중공군이 395고지 일대를 놓고 혈전을 벌였던 백마고지 전투였다.
그러면 중공군은 왜 백마고지를 노렸을까. 그것은 백마고지가 갖는 전략적 이점 때문이었다. 잘 알다시피 백마고지는 행정구역상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의 야산으로 철원읍 서북방 12㎞ 지점의 효성산(596고지) 남쪽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해발 395m의 고지였다.
하지만 6·25전쟁 전까지 이 일대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1951년 휴전협상이 시작될 때쯤부터 이 일대에서 군사적 접촉이 계속되면서 관심을 모으게 됐다. 즉, 이 지역은 철원~평강~김화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 중 하나인 철원의 서남쪽 견부(肩部)를 구성하는 요충지였다. 따라서 만약 적이 이곳을 점령하면 철원평야가 적의 감제하에 놓이게 될 뿐만 아니라 중부지역에 배치된 아군의 병참선인 3번 도로를 비롯한 많은 보급로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질 당시 국군 9사단은 미 9군단에 배속돼 있었다. 사단장은 춘천대첩, 동락리전투, 신녕전투 후 압록강 초산에 1착으로 도착해 청성 6사단의 신화를 낳게 한 김종오 장군이었다. 그는 1952년 5월 3일부로 9사단의 8대 사단장으로 부임해 백마고지 전투를 통해 다시 한번 국군 역사에 영원히 남길 ‘백마 9사단’의 신화를 남긴 명장 중의 명장이었다.
백마고지 전투 이전 9사단의 상황은 이러했다. 미 9군단 좌익의 9사단은 이 전투가 벌어지기 1년 전인 1951년 10월 17일부터 철원지역의 주저항선에 투입돼 좌로는 백마고지, 우로는 중강리까지 11㎞의 철원평야를 방어하고 있었다. 사단정면의 적은 중공군 38군 예하 114사단의 340연대와 324연대였으며, 중공군 113사단이 좌 인접 미2사단 정면에, 중공군 112사단이 38군 예비로서 수정덕산 부근에 배치돼 있었다. 이들은 왜식장총, 다발총, 기관단총, 중기관총, 무반동총, 박격포 등으로 장비되고 보급ㆍ훈련 등도 양호한 것으로 판단됐다.
사단의 주저항선은 대부분 철원평야를 가로지르는 개활지였으며 다만 좌단의 395고지 부근만 구릉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적이 효성산(619고지)을 비롯한 유리한 고지들을 장악해 사단 방어지역을 감제하고 있었으므로 전반적으로 아군은 방어에 취약했다. 특히 주저항선 5㎞ 전방에 위치한 봉래호는 작전지역의 역곡천을 범람시킬 수 있어 작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사단장 김종오 소장은 9월 22일부로 좌측에 30연대, 우측에 29연대를 배치하고, 28연대를 예비로 확보했다. 또 배속받은 51연대는 대대단위로 운용하면서 주저항선을 방어케 했다. 백마고지 방어를 담당한 30연대는 395고지에 1대대를, 중마산 일대에 2대대, 역곡천 남안에 예비 3대대를 각각 배치했다.
사단은 적이 백마고지를 탈취해 철원평야를 제압하는 동시에 차기대공세를 위한 발판을 구축하며 철원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을 통제함으로써 중부전선에서 전략적 이점을 확보해 아군을 크게 위협할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방어태세를 강화했다.
이 무렵 전 전선에 걸쳐 적의 공세징후가 있어 정찰과 경계를 강화하던 10월 3일에 중공군 군관 1명이 귀순해, “중공군 114사단이 10월 4일과 6일 사이에 백마고지에 대한 공격을 할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에 사단은 백마고지 방어병력을 2개 대대규모로 증강하고, 사단예비로 하여금 즉각 역습할 수 있도록 하고, 정찰활동을 더욱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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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하반기부터 1953년 7월 휴전 때까지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을 가로지르는 선상에서 주요 고지군을 놓고 끝없는 혈전이 벌어졌다. 백마고지 전투는 이 같은 고지 쟁탈전 시기에 국군이 대승을 거둔 대표적 사례다. 그림은 베티고지전투를 주제로 1980년대에 그려진 호국 기록화(작품 일부)다. |
■ 전투 경과
중공군은 1952년 10월 6일 아침 마침내 공격을 개시했다. 적은 국군 9사단 정면에 포격한 데 이어 봉래호 둑을 파괴해 역곡천을 범람시켰다. 이어 적 114사단이 저녁 7시 15분 30연대가 방어하고 있던 백마고지 일대를 공격했다. 연대는 이날 밤 적과 3차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적을 격퇴했으나 다음날 밤 적이 2개 대대로 백마고지를 공격하자, 30연대는 고지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2시간 후 아군 28연대가 이를 역습으로 탈환했다.
10월 8일 새벽 적은 다시 공격했다. 이날 적은 전날까지의 공격이 여의치 못하자 1개 연대를 추가로 투입했다. 이에 국군 28연대는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짙은 안개로 포병과 항공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아침 8시 10분 어쩔 수 없이 주봉이 적에게 피탈됐다. 사단은 오후 5시 28연대 3대대를 투입해 밤 11시 5분 다시 주봉을 탈환했다.
그러나 5차에 걸친 공방전에서 28연대와 30연대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사단은 적 포로의 진술을 기초로 적의 공격이 당분간 계속되리라 판단하고, 29연대를 백마고지에 투입하기 위해 사단예비로 확보했다. 9일 밤 자정이 지나면서 적의 파상공격으로 고지 주봉과 그 우측 능선 일부를 다시 빼앗겼다. 이에 사단은 날이 밝자 적이 점령한 고지에 1만7700발의 포탄과 항공폭격을 실시한 후 29연대로 하여금 역습하게 해 이를 탈환했다.
적은 10일 새벽 다시 공격함으로써 피아간에는 수류탄 투척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에 국군 29연대 1대대는 일시 9부 능선으로 철수한 후, 2대대의 증원을 받아 다시 정상을 탈환했으나, 10월 11일 밤 고지는 다시 적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12일 아침 30연대가 29연대를 초월 공격해 이를 탈환했으나, 적의 반격을 받고 다시 빼앗겼다. 이에 28연대가 10월 15일까지 밀고 밀리는 육탄전을 벌여 고지를 탈환했다. 뒤이어 29연대가 이 기세를 몰아 395고지 북쪽 낙타능선상의 전초진지를 탈환함으로써 적을 완전히 물리쳤다. 이로써 약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거의 궤멸상태에 이른 중공군 38군은 드디어 전선에서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국군 9사단은 10월 6일부터 중공군 38군의 공격을 받아 연 10여 일간 24회나 주인이 바뀌는 대혈전을 수행한 끝에 마침내 백마고지를 확보하게 됐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38군은 총 9개 연대 중 7개 연대를 투입해 그중 1만여 명의 피해를 입은 반면, 9사단은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3416명의 피해만 입었을 뿐이다.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 이승만 대통령과 백마고지 전투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에서 국군의 전투능력과 투지를 유감없이 발휘한 결전방어의 대표적인 전투로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치열했다. 9사단이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국군은 계속해 철원평야를 아군의 통제하에 둘 수 있었다. 또 중부지역의 작전을 위해 필수적인 주요 도로를 확보함으로써 중부지역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한국군 지휘관의 전투지휘 능력과 한국군 부대의 전투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9사단은 백마고지 전투 중 적시적절한 예비대 투입과 부대교대로 부대원들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목표탈취를 위한 투지를 견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포병 및 항공화력을 지원받았다.
결국 이러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9사단은 철의 삼각지를 지배하기 위한 적의 전략적 기도를 꺾고 끝내 고지를 확보했다. 이 전투로 국군 9사단은 철의 삼각지대의 좌변 일각인 철원지역을 계속 장악하게 됐으며, 중공군 38군은 그들의 23군과 교대한 후 후방으로 물러났다.
한마디로 말해 백마고지 전투는 우리 국군이 단독으로 수행한 6·25 전쟁사에서 몇 안 되는 ‘지상전의 꽃’이라고 부를 만한 매우 값어치 있는 전투였다. 이 전투를 통해 우리 국군의 명예는 크게 올라갔고, 이에 따라 국군 장병들의 사기도 크게 고양됐다. 이 전투는 매일 신문지상에 보도돼 이승만 대통령과 유엔군, 그리고 온 국민의 관심거리가 됐다. 따라서 이 전투는 하나의 작전 차원을 넘어서 빼앗느냐 또는 빼앗기느냐 하는 쌍방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명예를 건 싸움으로 변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 전투에 유례없이 두 차례나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13일 오후 미 8군사령관 밴플리트 대장과 함께 사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귀관들이 막강한 미군 사단들 못지않게 용감하게 승리해 주고, 국위를 선양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용기를 얻어 국정을 보살피고 있다”고 격려했다. 또 이 대통령은 전투가 끝난 직후 부슬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사단을 다시 방문해, “대단히 수고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때 함께 따라 온 밴플리트 장군도 “9사단이 이렇게 잘 싸워줄 줄은 몰랐다”며 “마이 디비전(My Division)”이라고 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방문은 9사단의 장병들에게 절대 져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다지게 했고, 그 결과 9사단은 백마고지 전투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 백마고지 3군신-난공불락 기관총진지 폭파 후 산화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초인의 힘을 발휘하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전투영웅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늘날까지 귀감으로 전해지고 있는 백마고지 3군신(軍神)의 활약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0월 12일, 아군은 빼앗긴 백마고지 정상을 되찾기 위해 공격을 재개했다. 이 임무는 30연대 1대대에 주어졌다. 그러나 공격 중 1대대는 9부능선에 설치된 적 기관총진지에서 뿜어대는 화력에 피해만 입을 뿐 공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적 기관총진지는 아군 공격정면의 길목에 있는 것으로 포병이나 공군 화력으로는 제압할 수 없는 곳에 설치된 난공불락의 진지였다. 이때 부하들의 많은 희생을 보다 못한 1대대 3중대 1소대장 강봉우 소위는 오귀봉 하사와 안영권 하사 등과 함께 수류탄을 뽑아 들고 적진에 뛰어들어 기관총진지를 폭파하고 자신들도 현지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로써 진로를 타개한 1중대 장병들은 일제히 돌격을 실시해 이날 오후 1시20분을 기해 백마고지 정상을 탈환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상의 탈환을 마지막으로 적은 다시 395 상봉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됐고, 이날 수훈을 세운 세 사람은 ‘백마고지 3군신’으로 추앙돼 청사에 길이 남을 호국의 별이 됐다. 또한 내외신의 종군기자들은 이 전투를 ‘백마산의 태극기’라는 표제로 보도해 세계의 주목을 받게 했다.
백마고지 전투 중 피아간에 엄청난 양의 포탄이 백마고지에 떨어졌다. 중공군이 5만5000발, 아군이 21만9954발의 포탄을 발사함으로써 총 27만4954발이라는 막대한 양의 포격이 이 작은 고지에 집중됐다. 유엔군의 항공기도 754회나 출격해 폭격을 가함으로써 고지 정상에는 풀 한 포기 남지 않았다. 극심한 폭격과 포격으로 고지의 수목이 모두 없어져 하얗게 된 민둥산의 모습이 마치 백마(白馬)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후부터 395고지 일대를 백마고지라 부르고, 이후 9사단을 백마부대라고 부르게 됐다.
■ 김영선 장군이 말하는 백마고지전투-후송 거부한 부상병들 진지에 남아 악전고투
백마고지 전투 당시 9사단 30연대 1대대장으로 전투에 참전했던 김영선(육사 7기ㆍ예비역 중장) 당시 소령은 1970년대 초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 전투 경험담을 상세하게 증언했었다. 김영선 장군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백마고지 전투의 실상을 살펴 본다.
개천절이자 추석이 겹친 10월 3일 나는 대대 지휘소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연대 작전주임으로부터 긴급 연락이 있어 작전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날 6중대 정면으로 귀순한 중공 114사단 340연대 2대대 7중대 소속 군관인 곡중교의 진술 내용을 들었다.
그것은 중공 38군장의 직접 명령에 의해 다음날인 10월 4일에 적이 대대적으로 백마고지를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또 적은 이 공격에 앞서 평강 부근의 봉래호 수문을 열어 백마고지 동남쪽으로 흐르는 역곡천을 범람케 해 고지를 고립시킨 다음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술에 따라 긴급 작전회의가 열렸으며 이에 대한 대책이 숙의됐다. 이 결과 연대장 임익순 대령은 우선 백마고지가 고립될 때에 대비해 일주일 이상을 지탱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하고 보급품이 집적돼야 한다는 판단 아래 3대대를 백마고지로 증원토록 조치했다.
이리하여 3대대는 10중대가 담당했던 정면과 3중대 정면 일부를 담당하고 11중대를 낙타능선으로 추진시켜 전진진지를 확보해 만반의 방어태세를 갖췄고 충분한 보급품이 노무자에 의해 계속 추진됐다.
한편 나는 봉우리를 뺏기면 다른 봉우리를 지킬 수 있도록 각 중대가 봉우리 단위로 사주방어 진지를 편성했다.
둘째로 적의 포격에 대비해 교통호를 한 길 이상의 깊이로 파 엄체호를 보강했다. 진지 전방의 철조망 3선을 7선으로 하며 지뢰를 조밀하게 매설하고 통신 와이어를 교통호 안에 전부 묻었다.
이와 같은 조치가 끝난 다음 나는 전 장병에게 “이제 우리는 죽어도 이 고지에서 죽고 살아도 여기에서 살아야 하다. 우리는 다 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싸워 이기자”라고 일장 훈시를 하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그런데 적의 공격예정일인 10월 4일에 막상 별다른 상황이 없자, 장병들은 다소 맥이 풀리는 듯했다.
10월 6일 오후 7시쯤에 이르러 드디어 적의 공격이 시작됐다. 최초에는 제3대대 정면으로 공세를 집중하더니 밤 8시쯤에는 3중대 정면으로 확대해 갔다. 밤 10시40분쯤에는 적의 포격으로 통신이 두절돼 각 중대의 전황을 파악할 수 없어 직접 각 중대에 나가 보았더니 포격으로 무전기가 파손되거나 안테나가 절단돼 통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2시쯤 적의 세 번째 공격이 시작됐는데 이때 적의 포격이 어찌나 심하던지 교통호가 전부 무너지고 흙먼지로 발목이 묻혔으며 진지 부근에는 피아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부상병들은 한결같이 후송을 거부하고 사력을 다해 끝까지 진지를 고수하는 눈물겨운 정경이 벌어졌다.
7일 오전 6시쯤 적은 드디어 퇴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대대는 적 1000여 명을 사살하고 10명을 포로로 했으며 각종 소총 202정과 다발총 49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고 서전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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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여름방학…다양한 체험활동으로 ‘더’ 신나게! 청소년이 여름방학 동안 다양한 체험활동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국립청소년수련원과 지역 청소년수련시설 등에서 1400여개의 청소년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성가족부는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등 국립청소년수련시설에서 특화된 청소년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청소년 캠프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아울러 지역 청소년시설 내 방과후아카데미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이해 체험활동을 확대하면서 방학 기간 중 돌봄이 필요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학습지원, 급식 등의 돌봄서비스도 지원한다. 2024 국립청소년수련시설 하계캠프 개요 먼저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에서는 청소년 가족이 나무 등반(트리클라이밍), 물 미끄럼틀(워터슬라이드) 등 다양한 레포츠활동을 통해 가족의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어울림(林)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국립청소년바이오생명센터는 식품과학과 의생명과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여름방학 생명과학캠프를 운영한다. 지역 청소년수련시설에서도 지역 간 역사를 주제로 한 역사문화 교류 체험활동, 공동체 생활을 통한 인성함양 사찰 체험(템플스테이), 항공공학 관련 직업체험 활동, 물총 대항전 및 물총 음악 잔치(뮤직 파티) 등 여름방학을 겨냥한 다양한 분야의 청소년활동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한편 이같은 여름방학 청소년활동 프로그램은 청소년활동정보서비스인 ‘이(e)청소년 누리집’과 모바일 앱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지역명(시군구명)+청소년활동 또는 봉사활동’을 검색해도 다양한 정보를 알 수있다. 청소년체험프로그램 참여 사진 (사진=여성가족부 제공)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청소년이 청소년수련원과 지역 청소년수련시설의 다양한 여름방학 프로그램에 참여해 몸과 마음이 한 뼘 더 성장하는 의미 있는 여름방학을 보내길 바란다”고 밝혔다. [붙임] 청소년수련시설 여름방학 프로그램 ☞ e청소년 누리집 https://www.youth.go.kr/youth 문의 :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 청소년활동진흥과(02-2100-6252),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고객소통부(041-620-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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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연꽃, 해바라기 명소 4곳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 드립니다! 여름 여행을 계획 중이신 분 7월에 꽃 구경 떠나고 싶은 분 연꽃과 해바라기 밭을 감상하고 싶은 분 본격적으로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며 무더위에 지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데요. 7월 알록달록 여름 꽃과 함께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전국 꽃구경 명소를 소개해 드립니다. ★추천 코스★ 보은 속리산 연꽃단지, 전주 기지제 수변공원, 경주 바실라 카페, 태백 구와우마을 보은 속리산 연꽃단지 속리산은 수려한 자연 경관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벼슬에 오른 소나무로 유명한 천연기념물 정이품송 맞은편에 넓게 펼쳐진 연꽃 정원이 있는데요. 너른 면적에 색색의 연꽃이 핀 풍경만으로도 아름다운데 연꽃 사이로 걷기 좋게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요. 연꽃 바로 옆에 자리한 벤치와 정자는 연꽃단지에 여유를 더하는데요. 속리산의 짙은 초록과 수천 송이의 연꽃이 어우러진 풍경에 절로 걸음이 느려집니다. 정이품송공원과 솔향공원 등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들도 있으니 7월 꽃구경하러 보은으로 떠나 보세요. ※ 보은 속리산 연꽃단지 - 주소 : 충청남도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6- 문의 : 043-540-4432 (속리산 휴양사업소)- 운영시간 : 연중무휴- 이용요금 : 무료- 주차 : 인근 주차장 이용 전주 기지제 수변공원 기지제 수변공원은 전북 혁신도시가 있는 덕진구 혁신동과 만성동에 걸쳐 조성된 공원입니다. 호수 가운데로는 데크가 조성되어 있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기 좋은데요. 공원에는 억새, 백합 등 다양한 식물이 피어나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특히 7월에는 데크길 양옆으로 연꽃이 피어나 물 위에서 꽃길을 걷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데크길 중간에는 액자 모양의 포토존이 있는데 노을이 지는 시간에 방문하면 액자 안에 노을과 연꽃이 함께 담기는 예쁜 사진을 남기기 좋습니다. 여름 전주 여행 중 7월 꽃구경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은 이곳에 방문해 보세요. ※ 전주 기지제 수변공원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장동 1094- 문의 : 063-282-1330, 5 (전주종합관광 안내소)- 운영시간 : 연중무휴- 이용요금 : 무료- 주차 : 인근 주차장 이용 경주 바실라 카페 경주 바실라 카페는 하동저수지 옆에 자리한 한옥카페입니다. 2017년 제7회 경주시 건축상 동상을 수상한 만큼 멋진 공간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잔잔한 하동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한옥이라 늘 인기가 많지만 특히 7월 꽃구경 핫플이기도 해요. 카페 주변에 조성된 너른 해바라기 밭 덕분에 경주 여름 여행의 필수 코스로 손꼽힙니다. 카페와 하동저수지 사이로 약 천 평에 달하는 해바라기 밭이 펼쳐지는데요. 구역마다 개화시기가 조금씩 달라 6월 말부터 8월까지 쭉 해바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샛노란 야외 테이블과 파라솔, 해바라기 밭 사이의 의자 덕분에 곳곳이 포토존이기도 한데요. 카페 내부의 큼직한 창으로도 저수지와 해바라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 경주에서 해바라기를 마음껏 즐겨 보세요. ※ 경주 바실라 카페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하동못안길 88- 운영시간· (월~금요일) 10:00~20:30 (주문 마감 20:10)· (토~일요일) 09:00~21:30 (주문 마감 21:10)- 이용요금 : 아메리카노 6000원 / 카페라떼 6500원-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반려동물은 목줄 필수 착용 후 야외 좌석에 한해 동반 가능합니다. 태백 구와우마을 구와우마을은 태백의 높은 지대에서 하늘과 맞닿은 해바라기 꽃밭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7월이 되면 100만 송이의 해바라기가 피어나 여름 여행지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예요. 파란 하늘에 걸린 하얀 구름, 그 아래 펼쳐진 해바라기 밭은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데요.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해바라기 밭답게 매년 축제도 열립니다. 올해 제20회 태백 해바라기 축제는 7월 19일부터 8월 15일까지 이어집니다. 끝이 안 보이게 펼쳐진 해바라기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축제 기간에는 숲 해설과 식물 심기 체험, 버스킹 공연, 그림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합니다. 원래는 고랭지 배추밭이었던 만큼 조금은 덜 더운 여름 꽃 구경을 즐길 수 있으니 7월에는 태백으로 떠나보세요. ※ 태백 구와우마을 - 태백 해바라기 축제 : 2024.7.19.(금)~2024.8.15.(목)-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구와우길 38-20- 문의 : 033-553-9707- 운영시간 : 07:00~19:00 (입장 마감 18:00)- 이용요금 : 성인 5000원 / 학생 3000원- 주차 : 자체 주차장 이용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SNS * 위 정보는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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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행안부, 온기나눔 수해복구 봉사활동 참여 행정안전부 직원 및 경찰 직장협의회 직원들이 23일 충남 부여군의 한 오이 농가를 찾아 수해복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행정안전부 직원 및 경찰 직장협의회 직원들이 23일 충남 부여군의 한 오이 농가를 찾아 수해복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행정안전부 직원 및 경찰 직장협의회 직원들이 23일 충남 부여군의 한 오이 농가를 찾아 수해복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보가 23일 충남 부여군의 한 오이 농가를 찾아 행정안전부 직원 및 경찰 직장협의회 직원들과 수해복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보가 23일 충남 부여군의 한 오이 농가를 찾아 행정안전부 직원 및 경찰 직장협의회 직원들과 수해복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보가 23일 충남 부여군의 한 오이 농가를 찾아 행정안전부 직원 및 경찰 직장협의회 직원들과 수해복구 봉사활동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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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말하는 정책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전문심리상담 이용권도 받을 수 있어요! 오늘날의 소통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편리해다. 핸드폰이 없어서 손에 삐삐를 쥐고 소식을 기다리는 시절도 아니고, 목소리를 들으려고 동전을 쥐고 공중전화기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 시대도 아니다.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한반도 끝과 끝에 있는 사람은 물론 해외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니 아무도 소통이 어렵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소통은 어떨까? 우리는 정말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의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눌 사람들은 보이지만, 실제로 마음을 깊게 나누고 고민을 공유할 사람들은 손에 꼽는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 세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내가 가진 고민을 공유해봤자 해결책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혹은 이것을 말해서 상대방에게 또 다른 짐을 지워줄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우리다. 고민과 고독감, 그리고 불안과 바짝 맞닿아 있는 우리는 어쩌면 외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21년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우울증은 1위, 불안증상은 4위로 나타났으며, 우울증을 겪고 있는 국민이 2022년 기준 100만 명을 돌파했다.(출처=보건복지부) 얼마 전까지 교생실습을 하면서 반 아이들과 점심시간마다 상담할 기회가 있었다. 상담이라고 거창하게 부르기보다는 함께 운동장 트랙을 빙글빙글 돌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것에 더 가깝긴 했지만, 청소년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신분은 교생, 나이는 어른이지만 잠깐 있다가 떠날 사람이라는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얼마 전까지 비슷한 학창 시절과 입시 기간을 지나쳐왔던 언니, 누나라는 느낌 때문일까. 첫 주에는 낯설어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에 있던 고민을 마치 걱정 인형에게 털어놓듯 풀어놓기 시작했다. 입시 스트레스는 물론 일상에서의 고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저마다의 크고 작은 우울을 정말 많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야기의 끝자락에는 이런 말이 덧붙었다. 사실 이런 고민이 있어도 어디에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말씀드리기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얼마 지나지 않은 나의 학창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순간이었다. 나 또한 어려운 입시와 짐작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 고민했고,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어서인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등학교 2, 3학년 때는불안감에 잠 못 이루기도 하고,책가방에는 늘 두통약과위장약을 들고 다니며달고 살았던 터라 아이들의 고민을 들으며마음이 많이 아프고안쓰러웠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 학교 내에 Wee 클래스가 있지만, 실제로 마음 상담을 받고 싶어서 먼저 찾아오는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실습하는 동안 지도교사 선생님을 통해 담당 반 아이들은 물론, 전체적인 아이들의 감정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고, 생활지도와 상담 실습 연습을 위해 교내 Wee 클래스의 상담교사 선생님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대학 수업 때 교수님께 지금 아이들은 코로나19를 청소년 시절에 겪었기에 소통의 부재를 여러분들보다 더 크게 느꼈을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는데, 현장 선생님께 듣는 실상은 느낌이 남다르게 다가왔다.내가 예상하고 갔던 것보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훨씬 더 많아서 놀랐다. 아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우울을 축소하려고 들거나 들켜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기에 아픔을 숨기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대화가 부족해진 시대라 그럴까,선생님께서는 마음의 병을 초기에 발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덧붙여주셨다. 자기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몰라서 아예 찾아오지 않는 아이들도 참 많다면서. 7월부터 2024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마침 7월부터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실시된다는 게 떠올랐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란, 우울이나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국민에게 전문적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일대일 대면 심리상담 서비스를 총 8회 제공해주는 서비스인데, 소득수준별로 차이는 있지만 최소 39만 원부터 최대 64만 원 상당의 바우처를 지원 받을 수 있다. 지원내용 및 신청 방법.(출처=보건복지부) 내가 해당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지원 대상인지 알아보는 방법도 간단하다. 정신의료기관, 정신건강복지센터, 대학교 상담센터 등에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물론 해당한다. 지원 대상자에는 어떤 사람들이 해당할까?(출처=보건복지부) 그밖에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중고등학교 내의 Wee 센터 등에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 국가건강검진 중 정신건강검사에서 중간 정도 이상의 우울 증상이 확인된 자, 동네의원 마음건강돌봄 연계 시범사업을 통해 의뢰된 자 등 전문가로부터 심리상담이 필요하다는 의뢰서를 발급 받은 사람이면 누구든 전문심리상담 이용권을 받을 수 있으니, 상담에 대해 더 이상 어렵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성인은 물론 학생들까지 부담 없이 마음 건강을 돌보고 가벼워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가보니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과 관련된 안내문을 볼 수 있었다. 해당 서비스를 신청하고 싶은 사람들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해서 신청할 수 있고, 10월 중에는 복지로 누리집을 통해 온라인 신청도 가능해질 예정이라고 한다. 심리상담 서비스를 신청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각 기관에서 발급한 증빙서류를 우선 준비해야 하는데, 지원 대상자마다 증빙서류가 다르니 자신이 포함된 대상자격을 꼭 확인해봐야 한다. 지원 대상자 별로 증빙서류가 다르기 때문에 대상자격을 꼭 확인하고 알맞게 서류를 준비해가야 한다. (출처=보건복지부) 2024년도의 경우는 하반기 신규 사업이기 때문에 신청이 1회만 가능하다. 2025년 이후 계획은 차후에 안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상담기관이 멀거나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주저할 필요도 없다. 바우처 결정 통지를 받으면 주소지에 상관없이 이용이 편리한 서비스 제공기관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택 근처든, 회사 근처든, 학교 근처든 이용자가 편한 상담기관을 지정할 수 있다. 서비스 지원 가격 정보.(출처=보건복지부) 1회 당 최소 50분 이상을 제공받을 수 있는 바우처가 신청 10일 이내에 발급되는데, 국민행복카드 또는 사회서비스 전용카드에 심리상담 서비스를 이용하고 결제할 수 있도록 정부지원금이 충전된다. 다만 바우처 사용기간은 바우처 생성일로부터 120일이라고 하니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현재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등록되어 있는 443개소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 전국 서비스 제공기관 명단은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포털(https://www.socialservice.or.kr:444/)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울,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병원과 전문가를 찾아가자.(출처=보건복지부) 피곤하거나 무리하면 감기가 찾아오고 몸 이곳저곳이 아픈 것처럼, 마음 역시 우리의 일부이기에 피곤하거나 무리하면 당연히 아플 수밖에 없다. 병원에 가서 감기약을 먹고 하루 꼬박 푹 쉬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힘차게 돌아갈 수 있는 몸이 되는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도 병원에 가서 진찰받고 적절하게 치료하고 나면 일상으로 밝게 돌아갈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쉬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마음스스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 뿐, 숨기거나 불길하게 느낄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보면 좋겠다. 감기약이 먹기 싫다고 오래 버티면 몸만 힘들고 괴로운 것처럼, 마음 역시 마찬가지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 만큼, 내가 먼저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도 어루만져 줄 수가 없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과 함께이제 내 마음 건강도 돌보자! 정책기자단|한지민hanrosa2@naver.com 섬세한 시선과 꼼꼼한 서술로 세상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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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
폭염 대비 국민행동요령 숙지하고 안전한 여름 보내요! 24일(수) 많은 지역에 폭염경보 및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입니다. 폭염 행동요령을 숙지하여 안전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폭염 대비 행동요령 Ⅴ무더위 기상상황을 수시로 확인 Ⅴ물 많이 마시기 Ⅴ오후 2시~오후 5시에는 야외활동 및 작업 자제 Ⅴ실내외 온도차를 5℃ 내외로 유지하여 냉방병 예방 Ⅴ무더위쉼터 등 시원한 장소 이용 Ⅴ축사, 비닐하우스 등은 환기 또는 물을 뿌려 온도 낮추기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해 주세요. 폭염은 피하고 안전은 챙겨서 올여름도 시원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