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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대통령 “3·1운동 100년, 특권의 정치·경제 불평등 되돌아봐야”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특권의 정치가 이어지고 번영 속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이 또 다른 신분과 차별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 겸허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우리가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억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정신을 되새겨 보기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위원들과 오찬에서 한완상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문 대통령은 우리가 100년 전의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의 뿌리이기 때문이라며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모두 함께 독립을 외치며 이뤄낸 것이다. 성별과 계급,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어 함께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만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문 대통령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초청 오찬사 전문. 올 한 해 우리는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되새기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습니다.100주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각오의 말씀을 해 주신 한완상 위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여러분,기념사업추진위원 여러분, 100년 전, 평범한 사람들이 태극기들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름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자 나섰습니다.왕조의 백성이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정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임시정부가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천명했고, 제3조에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으로 함이라고 명시했습니다.지금 대한민국의 헌법이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100년 전의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모두 함께 독립을 외치며 이뤄낸 것입니다.성별과 계급,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어 함께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만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억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정신을 되새겨 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천명한 민주공화제를 진정으로 구현하고, 일체 평등을 온전히 이루고 있는 것일까요?또 다른 특권의 정치가 이어지고, 번영 속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이 또 다른 신분과 차별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 겸허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한 반성 위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의 길도 명확합니다. 함께 이룬 만큼 함께 잘사는 것이고, 공정과 자유, 평등을 바탕으로 함께 번영하는 것입니다.그것이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기념사업추진위원 여러분,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되새기는데 많은 역할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1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아이디어를 국민 속에서 모아주셨고, 새로운 100년의 청사진을 그려주셨습니다. 쉽게 읽는 독립선언서를 제작하고, 기념 음악을 만들어 남녀노소 누구나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고, 낭독하라 1919! 같은 사업으로 3.1독립운동의 정신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게 했습니다. 얼마 전 발표된 2019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0명 중 84명이 우리 역사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합니다.2016년 조사에 비해 8%가 높아졌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이 자긍심의 바탕입니다.100주년 기념사업 하나하나가 역사적 긍지를 키우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완상 위원장님을 비롯한 아흔여덟 분의 위원 여러분, 서포터즈와 국민참여 기업인·예술인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여러분, 지난 100년, 3.1독립운동의 정신은 항상 우리 곁에 살아있었습니다. 그 정신 속에서 우리는 분단과 전쟁과 가난과 독재를 이겨내고, 당당하고 번영하는 자주독립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100년은 미래세대들이 이끌어 갑니다. 정부는 미래세대들이 3.1독립운동의 유산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당당한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리고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2월 26일, 백범기념관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 함께 잘사는 나라에 대한 책무와 각오를 되새겼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훈격을 높여 새롭게 포상한 데 이어, 역대 최고 수준인 647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했습니다. 여성독립유공자의 발굴에도 힘을 쏟았습니다.2017년까지 여성독립유공자는 299명, 전체 유공자의 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 60명, 올해 113명을 발굴 포상하여 독립운동에 바친 여성들의 희생과 헌신이 정당하게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계봉우 지사와 황운정 지사를 비롯해 해외 독립유공자 다섯 분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신 일도 매우 보람된 일이었습니다.뒤늦게나마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의 복원에도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지난 3월, 중국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를 복원했고,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재개관했습니다.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 기념관 조성과 기념비 건립, 일본 도쿄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의 재개관도 마쳤습니다. 경북 안동의 석주 이상룡 선생 기념관 건립과 임청각 복원도 2025년 완료를 목표로 지자체와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은 2021년 완공될 예정입니다.민주공화국 100년의 역사와 함께, 이념과 세대를 초월한 임시정부의 통합 정신을 기리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여러분,기념사업추진위원 여러분, 100년 전 그날, 우리는 함께하였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고, 함께하였기에 대한민국의 출발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함께 잘사는 나라, 평화의 한반도 또한 함께해야만 이룰 수 있는 우리의 목표입니다.독립유공자 후손들께서도 그 목표에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은 영원히 빛날 것이며, 언제나 우리에게 용기와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9.12.13 청와대
- ‘독립운동가 그리기 대전’…유관순 열사 가장 많이 그렸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인 4월 11일부터 시작한 독립운동가 그리기 대전이 세 달 동안의 경연을 마치고 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시상식을 개최한다.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국가보훈처장상을 포함해 13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이번 대회에는 총 3113명의 학생이 참가해 독립운동가들의 얼을 기리고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부분별 최우수 작품으로는 비봉고등학교 우하은 학생이 그린 밝아오는 아침 민족사학의 거인, 박은식과 장항중학교 장서영 학생의 윤봉길 의사, 그리고 경희초등학교 이주연 학생의 백범 김구가 선정되었다.독립운동가 그리기 대전 본선대회 개회식. (사진=100주년 기념추진위 제공)독립운동가 그리기 대전은 온라인으로 작품을 공모해 155명을 선발 한 후 초·중·고생 대상의 본선대회를 개최해 최종 수상자를 선정했다. 온라인 예선에는 총 3113점이 접수되었는데, 초등부가 2351점으로 가장 많았고 중·고등부는 각각 368점과 394점이었다.이 중 가장 많이 그려진 인물은 유관순 열사(1062점, 34%)였다. 이어 안중근 의사(455점), 김구 선생(445점), 윤봉길 의사(169점), 윤동주 시인 (117점), 안창호 선생(114점) 순이었다. 예선 작품을 살펴보면 유관순 열사 이외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자 안중근이라 불린 만주 독립군 남자현(80점)과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63점),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 김마리아(31점) 등이 학생들의 작품으로 재조명되었다. 또 임시정부 안주인 정정화(19점)와 안중근의 어머니이자 상해재류동포 정부경제후원회 위원 조마리아(17점), 우사 김규식의 아내이자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김순애(11점) 등도 출품되었다. 한편 본선대회는 6월 15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보훈처가 선정한 2019 이달의 독립운동가 13명이 과제로 주어졌는데, 중고등부는 비교적 다양한 인물을 그린 반면 초등부는 세 명 중 한 명 꼴로 백범 김구 선생을 그렸다.2019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유관순(1월), 김마리아(2월), 손병희(3월), 안창호(4월), 김규식·김순애(5월), 한용운(6월), 이동휘(7월), 김구(8월), 지청천(9월), 안중근(10월), 박은식(11월), 윤봉길(12월)이다.부문별 최우수 및 우수 작품. (사진=100주년 기념추진위 제공)최종 수상자는 예심 성적과 상관없이 본선대회에서 제출된 작품 원본으로 평가해 결정했다. 심사위원은 고등부의 경우 묘사의 사실성과 표현의 정밀성, 장르와 인물의 분배 등을 고려했고, 중등부는 기법과 스토리텔링이 독창적인 작품들로, 초등부는 상상력과 자신만의 해석이 돋보이는 그림들을 선정했다. 이 결과 비봉고등학교 2학년 우하은 학생이 그린 밝아오는 아침 민족사학의 거인, 박은식이라는 작품은 살아있는 듯한 눈빛과 한 올 한 올 세밀하게 표현된 수염, 태극기와 인물이 겹쳐진 구성이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고등부 최우수 작품에 선정되었다.또 중등부는 팝아트적인 기법과 강렬한 색감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장항중학교 3학년 장서영 학생이 그린 윤봉길 의사가, 초등부는 경희초등학교 2학년 이주연 학생의 백범 김구가 과감한 선 사용과 생동감 넘치는 표정 표현으로 호평을 받으며 각각 최우수 작품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대회는 총 수상자 24명에게 장관상 18매와 위원회 위원장상 3매, 삼성카드사장상 3매 등 총 24매의 상장과 상금을 수여한다. 특히 부문별 최우수에게는 대한항공에서 지원하는 상해 왕복항공권 2매가 부상으로, 수상자 전원에게는 화구세트(교보생명 후원)와 블루캐니언 워터파크 이용권(삼성카드 후원), 위원회가 제작한 100주년 기념우표 등의 선물을 증정한다.독립운동가 그리기 대전 본선대회 현장. (사진=100주년 기념추진위 제공)한편 초등부 장려상 수상자인 반석초등학교 6학년 이채원 학생의 어머니는 김구 선생님 얼굴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배경을 그릴 수가 없었다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깊은 울림을 느꼈다며, 잊지 못할 경험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한완상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모든 청소년들이 이채원 학생처럼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정신을 기억하여 아름답고 지혜로운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번 대회의 감동을 보다 많은 국민들과 나누기 위해 연말까지 의미있는 여러 장소에서 전시를 추진할 계획이다.문의 :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소통홍보과(02-2100-1424) 2019.07.05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 3·1운동 및 임정100주년위, 아시아-태평양 스티비상 대상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백주년 추진위)가 기획한 100주년 기념 홍보탑 이벤트가 2019년 아시아-태평양 스티비상에서 올해의 가장 영예로운 기관상 분야의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라이브이벤트 부문 공기업 이벤트 혁신상과 라이브이벤트 부문 비영리 기구 이벤트 혁신상 부문에서 2개의 금상을, 마케팅 부문 소셜미디어 마케팅 혁신상에 100주년 뮤직비디오 나의 땅이 은상을 받았다.2019 아시아-태평양 스티비상은 아시아·태평양지역 29개국의 조직 및 개인이 비즈니스 분야에서 이룬 혁신 성과를 평가하는데, 비즈니스 분야의 오스카상으로 불린다. 올해에는 총 16개국(900여편)이 출품됐다.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홍보탑 제막식.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백주년 추진위가 기획한 홍보탑 이벤트는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진행된 제막식과 함께 시작됐다. 홍보탑은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모티브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유산을 시각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졌다. 이 이벤트는 홍보탑 제막식을 시작으로 올해 4월말까지 약 5개월동안 소원을 적은 태극볼 넣기와 독립선언서 작성 등 상설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각각 1만 8000여명과 1만 1000여명이 참여했다. 또 3월 1일 삼일절에는 홍보탑을 거점으로 낭독하라 1919, 만세하라 2019 이벤트를 진행해 많은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100주년을 기념하고 참여하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특히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인 4월 11일 전후로 홍보탑 이벤트와 연계해 ㈜KT·국토정보공사(LX)와 함께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5G기술을 활용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체험관을 마련하고 다양한 체험행사를 진행했다.또한 4월 11일 100주년 기념음악노래 3456에 맞춰 율동 버스킹 공연을 진행하는 등 남녀노소 모두에게 높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이밖에도 그래피티 이벤트와 무명여성독립운동가 기념탑 건립을 위한 그림 전시회,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음악 퍼포먼스 공연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편 마케팅 부문 소셜미디어 마케팅 혁신상 은상을 수상한 100주년 뮤직비디오 '나의 땅'은 쇼미더머니 시즌 5 우승자이며 홍보대사인 래퍼 비와이가 참여한 힙합곡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세련된 색감과 영상미로 우리나라 100년에 대한 반추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100년을 향한 민중의 열망을 강렬한 안무로 표현해 국민이 역사의 주인공임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음원과 영상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더 많은 국민과 함께 하기위해 VIBE(네이버뮤직), 멜론, 지니뮤직 등 주요 음원사이트와 유튜브 등에 배포했다.비와이 나의 땅 뮤비 메이킹영상. (출처=백주년 추진위 홈페이지)백주년 추진위는 이번 수상으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추구했던 인류 보편의 가치를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국가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정의·자유·민주·평화·인권·평등·인류애라는 가치를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앞으로도 100주년 기념 축제에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9년 아시아-태평양 스티비상 시상식은 31일 오후 5시 싱가포르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다.문의 :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소통홍보과(02-2100-1422) 2019.05.29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지켜라”…우리가 몰랐던 노력들 올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국호를 가진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에서 출범했다. 그 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항저우, 전장, 창사, 광둥, 류저우, 치장, 충칭 순으로 각처를 옮겨 다니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고 독립운동의 맥을 이어나갔다. 그중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청사(이하 상해임정청사)는 지금까지 가장 잘 보존되고 있고, 한국 관광객이 상하이에 가면 꼭 한번 들리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 100년의 역사를 열었던 상해임시정부의 청사가 보존되기까지에는 숱한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2004년 임정청사가 위치해 있는 상해시 로만구 일대의 재개발 계획은 청사의 보존과 존립에 중대한 고비가 되었던 일이었다. 당시 중국 상해시는 상해엑스포를 앞두고 로만구 일대를 전면 재개발하는 계획을 세웠고, 국제 공개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었다. 민간업자의 재개발사업 대상에 들어가면 임정청사의 존폐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모르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왼쪽)과 신현택 전 문화부 기획관리실장(전 여성부 차관).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의 뿌리인 상해임시정부청사 지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지금까지는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을 듣기 위해, 정책브리핑은 당시 임정청사 보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이 전 장관과 신현택 전 문화부 기획관리실장(전 여성부 차관)을 이 전 장관의 마포구 서교동 사무실에서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지켜라- 당시 상해시의 재개발 계획은 어떻게 알게 되었고, 우리 정부의 대책은 무엇이었나요? 이창동) 2003년 12월 경에 故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상해임시정부청사가 있는 상해시 로만구 일대가 재개발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임시정부청사가 훼손되거나 아예 없어질 위험이 있으니 문화부에서 책임지고 대책을 만들어 보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각 문화부 내에서 대책회의를 가졌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상해임시정부청사 일대가 재개발 되고 임정청사의 보존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알려져서 국내 여론을 자극하게 되면, 양국의 외교 현안이 되고 문제 해결에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화부 내에서도 비공개로 핵심이 되는 분들만 논의에 참여했습니다. 박물관 도서관 담당부서인 문화정책국의 故이성원 국장과 심동섭 도서관박물과 과장, 그리고 문화부의 업무를 총괄하는 신현택 기획관리실장과 함께 논의했습니다. 이창동 장관은 상해임시정부 청사 주변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무조건, 그리고 반드시 임정 청사를 지켜야만 했다고 말했다.먼저 현황파악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아직 국제 공개입찰이 공식 발표되기 전이었으나, 개발계획이 확정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상해엑스포와 북경올림픽을 대비해 중국 전역의 현대화와 도시 정비를 진행하고 있었고, 상해 로만구 일대의 재개발 사업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직접 상해로 가서 임정청사와 그 주변을 둘러본 바로도 그 일대가 매우 낙후되어 있어서 재개발이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해시에 그 재개발 자체를 하지 않도록 설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민간업자의 손에 개발권이 들어간다면, 경제성과 수익성을 우선으로 하는 민간의 속성상 최악의 경우 임정청사의 보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고, 설사 보존된다 하더라도 그 주변이 어울리지 않게 호화로운 고층건물이 들어서거나 상업지구가 된다면 지금도 옹색해 보이는 임정청사가 상대적으로 더욱 초라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상해시의 국제 공개입찰에 참여하는 것이었고, 그 개발권을 우리가 따내는 것이었습니다. - 상해시의 로만구 재개발 공개입찰에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이) 상해시의 로만구에서 주관하는 국제입찰이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그리고 중국의 도시재개발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많은 해외업체의 참여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우리 측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먼저 한국토지개발공사와 관광공사가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응찰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발계획안이 채택이 될 수 있도록 내부에서 TF 팀을 만들어 최선의 안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공개입찰을 주관하는 상해시 측에 우리의 입장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신현택) 당시 이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상해임정청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민관에 걸쳐 소수의 관련자들만 함께 했지만,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수단을 동원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중국내에서 진행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중국인사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그 중국 인사를 통해서 장관님의 상해시장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상해 시장이 면담요청을 수락하느냐의 여부가 성패의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면담요청에 대한 답을 쉽게 얻을 수 없었습니다. 상해시로서도 우리 정부의 책임자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을 겁니다. 2004년 2월 23일 장관님이 먼저 건설담당이었던 부시장을 만나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으나, 우리는 계속해서 상해 시장과의 직접 면담을 추진했습니다. 임정청사를 중심으로 한 미래지향적인 역사문화의 공간이) 공개 입찰에 제출할 우리 쪽의 개발 계획을 위해 신도시 개발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과 저명한 건축가로 TF 팀을 구성하여 안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임시정부청사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역사·문화가 숨쉬는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민간기업은 개발이익을 중심으로 한 개발계획을 만들 것이지만, 우리는 공익성을 중심으로 하면서 상해시민에게 문화적 복지를 누릴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계획 그 자체로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고자 한 것이지요. 그런 계기가 아니면 그릴 수 없는 아주 이상적인 도시 개발안이었죠. 지금도 그것이 현실화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 개발계획안에 대한 평가와 함께 중요한 배점이 개발부담금의 액수에 주어졌습니다. 그 일대를 철거하면 그곳에 살던 주민들에게 이주비를 줘야 하기 때문에 가장 높은 개발부담금을 내는 업체가 유리했습니다. 그래서 그 액수를 어느 정도로 해야 우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치열한 눈치싸움과 정보전이 필요했습니다. 임정청사를 지키기 위한 조력자들이) 비공개로 진행된 작업이었지만, 당시 많은 분들이 임정청사를 지키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중국 내에서 다방면으로 노력하신 분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고마웠던 분이 언론인인 추이융위안(崔永元)이란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중국 국민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고 신뢰 받는, 유명한 CCTV 앵커였는데, 임정 청사를 보존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공감하고 몇 번이나 북경에서 상해를 오가며 우리 측 입장을 상해시와 공개입찰 관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작업을 해주셨습니다.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보존하려 했던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적극 도와주웠던 추이융위안 CCTV앵커의 자서전.신) 민간 기업이나 한류스타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장관님이 상해 시장을 만나러 상해를 방문할 때 당시 가수 장나라 씨와 안재욱 씨, 탤런트 유동근 씨 등 중국에서 인기 있었던 한류스타들이 동행했습니다. 그들의 상해 방문은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상해시 관계자들에게 임정청사를 지키기 위한 한국민의 의지와 관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 현대자동차 등 민간기업 회장이 상해를 방문함으로써 은연중에 앞으로의 투자나 교류 등 긍정적인 결과를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상해 시장과의 면담이) 여러 가지 노력 끝에 마침내 상해 시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었습니다. 상해 한정(韓正) 시장을 만난다는 것은 중국측이 우리의 공개입찰 참가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에 중요한 신호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해시장에게 임정청사 보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고 중국측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2004년 5월 28일 상해 시청을 방문해서 한정 상해시장을 만났습니다. 저는 한정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상해임시정부청사의 보존을 위한 우리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관심을 전하고, 임정 청사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역사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곳인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우리 업체가 사업권을 따내면 개발이익보다는 상해 시민을 위한,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지고 현대적인 편익시설이 함께 하는 미래지향적인 공간을 만들 것임을 역설했습니다. 신) 저도 그 자리에 동석했는데, 면담 분위기는 매우 우호적이었습니다. 한정 시장은 상기 지역 재개발 사업은 상해시가 로만구에 위임하였으니, 로만구와 긴밀히 협의하기 바라며, 상해시 관계부서에서도 로만구와 잘 협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로만구청장을 만나서 다시 우리의 계획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했습니다. 그로써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고, 이제 결과는 국제 공개입찰에 달려 있게 되었습니다. - 국제 공개입찰의 심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이) 공개입찰이 있던 당일에 저는 상해 현지로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입찰이 시작됐는데, 현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신 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부정보에 의하면 개발부담금 제안에서는 우리가 1등을 했다는 것입니다. 통상 비용 제안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면 입찰에서 이기게 되니까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그러나 상해에 도착하자, 예상치 못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입찰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상해시에서 로만구 개발계획 자체를 보류시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강력한 경쟁회사는 이런 프로젝트를 여러 번 수주한 경험이 있는 홍콩 건설회사인데, 아마 어느 쪽으로 낙찰이 되더라도 상해시나 중국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신현택 차관이 당시 상해임시정부청사 개발계획의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신) 결과는 아쉽게 됐지만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의지는 충분히 전달된 것이었습니다. 국제 공개입찰을 실시하고서도 그 계획 자체를 전면보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그만큼 중국 정부에서는 이 일을 중대하게 본 것입니다. 중국정부는 11월 21일 동 사업이 어느 기업에 낙찰되든 임정청사 주변 지역개발은 한국 정부의 뜻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주선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해왔습니다. - 당시를 돌아보시면, 어떤 감회가 있으신가요?이) 저는 장관직에서 있으면서 두 번의 큰 국제적인 경쟁을 치렀습니다. 하나는 프라하에서 있었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결정하는 IOC 총회였고, 다른 하나는 바로 상해임정청사 일대의 재개발 국제 공개입찰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은 모두가 우리의 열세를 예상하는 가운데 3표 차이로 아쉽게 실패했지만, 유감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상해 임정 청사 보존을 위한 재개발 국제입찰은 실패하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무조건 해내야만 했고, 반드시 임정 청사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IOC총회는 공개적으로 진행된 데 반해 임정청사 문제는 비공개로 진행되어서 외부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피가 마를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위해 북경과 상해를 다섯 번 오갔고, 모든 과정을 대통령께, 그리고 당시 고건 국무총리에게 보고하면서 진행했습니다. 중국이란 나라의 특수성 때문에 예민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의 몇 개월은 저의 재임기간 중에 한 과업 중에 가장 노심초사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상해임정청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하는가를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정부가 요청했을 때 거부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심지어 중국인들도 자기 일처럼 도와줬습니다. 그런데도 공개적으로 그 고마움을 표시할 수 없어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이창동 장관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냐에 따라 상해임시정부청사의 위상과 의미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신) 그 과정에서 민관이 혼연일체로 협력해 범국가적인 과업으로 진행됐습니다. 문화부를 중심으로 진행했지만 정부와 공기업, 민간기업 등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성공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울러 주중국대사관과 주상하이총영사관도 대중국 교섭 과정에서 다각도로 지원했습니다. 그런 노력이 중국 정부에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해시 일대는 빠르게 현대화되어가고 있지만, 지금까지 상해임시정부청사 주변은 원래의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이) 2004년의 상해시 로만구 일대 재개발의 국제입찰에 참여했던 전 과정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상해임시정부청사가 대한민국 역사와 정통성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중국 정부에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동안 상해임시정부 자체가 정치적인 관점에서 폄하된 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해임시정부(청사)를 경시한다면 중국 정부에서도 경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냐에 따라 상해임시정부청사의 위상과 의미가 달라질 것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과정을 증언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그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임정청사 보존 문제는 이제 국가보훈처 소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가보훈처를 비롯한 정부가, 국민들과 함께 더욱 잘 보존해주길 바랍니다. 2019.05.23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 문 대통령, 카자흐스탄서 열린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식 주관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국외 현지에서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식을 직접 주관했다.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중인 문 대통령은 21일 오후(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수도 누르술탄에서 현지에 안장돼 있던 계봉우·황운정 지사의 유해 봉환식을 주관했다.계봉우 지사는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북간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독립신문에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글을 게재했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후에도 민족교육에 전념해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했다. 이에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국제공항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계봉우·황운정 지사 유해 봉환식에서 황운정 애국지사 유골함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헌정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황운정 지사는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1919년 함경북도 종성과 온성 일대에서 3·1운동에 참가했으며, 이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무장부대의 일원으로 선전공작을 통한 대원 모집과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이에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카자흐스탄 애국지사 유해 봉환 사업은 2017년부터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일환으로 추진됐으며, 이번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계기로 대통령 주관 행사로 치르게 됐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등 청와대 초청행사에서 해외 독립유공자 유해 봉송 의전을 격상하고, 지원도 확대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특히, 이번 봉환식에서는 두 애국지사뿐만 아니라 배우자까지 모두 4위의 유해를 유가족과 함께 대통령 전용기(2호기)로 모셨다.봉환식은 대통령 전용기 앞에서 유해 운구, 국민의례, 헌화, 건국훈장 헌정, 대통령 추모사, 유해 승기 순으로 진행됐다.유해 봉환식은 카자흐스탄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으로 엄숙히 진행됐다.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유가족, 순방단과 카자흐스탄 정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카자흐스탄 군악대의 장송곡에 맞추어 카자흐스탄 군 의장대가 유해를 운구해 우리 군 전통의장대에 인계하면서 시작됐다.문 대통령은 우리 군악대가 아리랑을 연주하는 가운데 계봉우 지사께 건국훈장 독립장을, 황운정 지사께 건국훈장 애족장을 헌정했다.건국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독립유공자 등에게 수여하며, 대한민국장-대통령장-독립장-애국장-애족장 등 5등급으로 되어 있다.문 대통령은 추모사를 통해 네 분을 모시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임무이며, 독립운동을 완성하는 일이라며 정부 출범 직후부터 네 분의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유가족, 카자흐스탄 정부와 협의해 왔고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애국지사를 고국에 모실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등이 21일 오후(현지시간)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국제공항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계봉우·황운정 지사 유해 봉환식에서 두 애국지사와 배우자까지 모두 4위의 유해와 유가족을 태운 대통령 전용기(2호기)의 문이 닫히자 정중히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또한, 문 대통령은 유가족과 고려인 동포들께 자긍심의 뿌리이며, 기댈 수 있는 언덕일 텐데 어려운 결정을 한 유가족에게 위로와 감사를 드리고, 성심성의를 다해 도와준 카자흐스탄 정부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아울러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하신 독립유공자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한국과 카자흐스탄 군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우리 군 의장대가 네 분의 유해를 대통령 전용기로 운구했다. 우리 군악대는 한국 가곡 님이 오시는지를 연주해 이역만리 떠돌다 고국으로 귀향하는 두 애국지사의 넋을 달랬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두 애국지사를 끝까지 잊지 않고 모신다는 정부의 뜻과 의지도 담았다.우리 군은 전통의장대를 비롯해 의장대와 군악대 75명이 현지로 건너가 카자흐스탄 군 의장대와 함께 봉환식에 참가했다.청와대 관계자는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펼치던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이 정착한 소중한 인연이 있는 곳으로, 이번 유해 봉환식을 계기로 신북방정책의 핵심 협력 대상 국가인 카자흐스탄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정부는 국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보답하기 위해 국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의 유해를 봉환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카자흐스탄에 안장된 독립유공자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이국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유공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 위해 지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4월 21일 현재 국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유해는 총 152위다.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사업은 1946년 민간차원에서 추진해오다 1975년부터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시행하고 있다. 두 분의 애국지사를 포함해 지금까지 9개국 총 141위의 독립유공자 유해가 국내로 봉환됐다.한편, 유해는 22일 오전 6시 45분경 국가보훈처장이 영접한 가운데 서울공항에 도착한후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국립묘지에 안장된다.유가족의 의사에 따라 계봉우 지사 부부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황운정 지사 부부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각각 안장된다.계봉우 지사의 손녀인 신 류보피 씨는 조부께서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하셨는데, 마침내 그 꿈이 이뤄지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한국 정부가 이 모든 수고와 비용을 부담해 주어 후손들은 매우 감사하다고 전했다. 2019.04.22 청와대
- 3·1운동 및 임정 100주년…기억과 기념은 계속 된다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다.정부는 참여하여 함께 기억하고 기념하는 100주년이 될 수 있도록 음악, 그림, 참여, 미래기술 등 4개 분야의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그동안 어떤 기념사업이 있었고 또 앞으로 어떤 행사가 계속되는지 알아본다.5월 18일까지 진행하는 독립운동가 그리기대전◆ 음악으로 기념하는 100 지난해 7월 출범한 대통령직속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100주년 행사를 축제처럼 즐기며 함께 기념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이에 힙합 가수 비와이(BewhY, 본명 이병윤)를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파격을 보였고, 비와이가 작사 작곡한 나의 땅이라는 곡을 무료 배포했다. 이 곡은 안중근 의사와 임시정부 태극기, 평화의 소녀상 등 지난 100년 역사에서 기억될만한 상징들을 담은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어 일주일만에 유튜브 100만뷰를 넘어서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비와이 나의 땅 뮤비 메이킹영상 바로가기세 악장의 교향곡과 세 곡의 가창곡이 담긴 앨범 民國은 박용찬 음악감독과 ㈜플럭서스가 기획·참여한 기념음반이다. 수록곡 중 멜로망스가 부른 다시는 갈등을 포용하고 미래 100년을 함께 나아가자는 바람을 남녀관계로 빗댄 팝발라드 곡이며, 소프라노 임선혜의 독립군의 아내는 민주주의를 위해 사라져간 수많은 무명씨를 추모하는 노래다.특히 록그룹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와 김연아가 함께 부른 3456은 3·1 운동과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곡으로, 국민이 지킨 역사를 여실히 담고 있다. ☞ 하현우X김연아 3456 음원 및 메이킹 필름 바로가기위원회가 제작한 기념음악.◆ 그림으로 기념하는 100지난해 마지막 날과 올해 첫 날 광화문광장 100주년 기념사업 홍보탑 앞에서는 김구 선생의 안경과 손가락을 모티브로 한 백년의 눈빛 그래피티 작업이 진행되었다. 한쪽 면에서는 레오다브(LEODAV) 작가가 김구 선생을, 반대 면은 시민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1층에 옮겨져 전시 중이다. 이어 4월 11일 임정수립 기념일 전후로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청사,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교보빌딩 등에 가로로 긴 띠 형태의 또 다른 100주년 기념 그래피티가 선보였다. 역시 레오다브 작가가 작업한 독립 의열사 연작으로, 임시정부 요인들을 비롯해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 운동가들의 초상이었다. 총 50점의 작품에는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익히 알려진 인물들뿐만 아니라 삼균주의의 창시자인 조소앙, 독립신문 기자로 항일광복 투쟁에 앞장섰던 차리석 등도 포함되었다.레오다브 작가의 독립 의열사 연작. ◆ 참여하여 기념하는 100 문재인 대통령의 참여로 포문을 열었던 낭독하라 1919 캠페인은 지난 2월 18일에 시작되었다. 이 캠페인은 감수를 거쳐 완성한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의 한 구절을 낭독하고 그 영상을 게시하는 방식으로, 문 대통령 이후 이낙연 국무총리와 한완상 위원장 등의 참여가 잇따랐다.또한 문체부와 환경부는 전 직원이, 농식품부는 농업인들의 목소리로, 육군 신흥무관학교팀은 뮤지컬 형태로, 101경비단은 청와대 경내에서, 남수단 한빛부대는 아프리카에서 선언서를 낭독했다. 이밖에도 많은 셀럽들의 참여도 이어졌다. 배우 양동근을 비롯해 여성 래퍼 치타, 영화 <1919 유관순>의 출연 배우들은 물론 배우 이요원, 유지태 등까지 총 450팀, 3000여명이 참여했다.낭독하라 1919에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한편 이보다 앞선 2월 12일부터 진행된 만세하라 2019는 100년 전 선조들의 함성을 기억하며 미래 소망을 담아 만세를 외치는 캠페인으로, 1172팀 3000여명이 참여했다.아기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은 물론 배우 남규리, 임주환, 박하나, 허정태 등이 함께 했고, 이후 청와대 고민정 부대변인의 제안으로 챌린지 형태로 번지면서 법조계와 체육계 인사들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미래기술로 기념하는 100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 100주년 홍보탑에서는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다양한 체험행사가 집중적으로 펼쳐졌다. 1일부터 11일까지는 임시정부 역사체험관이 운영됐다. KT 주관의 이 행사에는 5G 기술을 통해 구현한 만세로봇, 독립선언서 쓰기 로봇, 임정태극기 그림 로봇 등이 시민의 눈길을 끌었다. 또 보훈처는 AR포토존을 운영했고, 국토정보공사(LX)는 20일까지 상해임시정부 VR 체험부스 처음을 기억한다를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세밀하게 구현해 낸 상해 임시정부 청사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100주년 홍보탑에서 진행된 체험행사 및 AR게임 <작전명 : 소원>특히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6월 10일까지 진행하는 <작전명 : 소원>은 AR기술의 활용을 보다 극대화한 체험 행사다. 숨겨진 독립자금을 찾아 임시정부에 전달한다는 가상의 스토리로 임무를 완수하는 참여형 게임으로 덕수궁, 중명전 등 광화문과 서대문 일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얼월드 앱을 다운로드 받아야 임무수행이 가능하며, 게임 진행을 위한 안내지도 등은 서울도시건축박물관에서 무료 배포하고 있다. ☞ 100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역사 체험 게임 작전명 소원◆ 4월 이후 행사 및 연중 인증사업임정수립 기념일인 11일이지난 지금도 광화문의 100주년 홍보탑에서는 3·1 독립선언서 필사 캠페인과 100년의 소원을 담은 태극볼 넣기 행사가 한창이다. 3·1 독립선언서를 옮겨적는 필사 캠페인은 그동안 1만여명이 참여했고, 소망을 적은 글을 태극볼에 넣는 이벤트는 현재 1만 6000여명의 소원을 담아내고 있다. 위원회는 무작위로 1만장 정도의 소원 쪽지를 추려 정리했는데, 57%가 국가 발전과 나라 사랑에 관련된 소망이었고 그 중 남북통일이 30%였다고 한다. 홍보탑 이벤트는 30일까지 이어지며, 참여자에게는 100주년 기념 스티커와 기념 배지, 독립선언서 디자인의 기념노트 등 다양한 선물을 증정한다.서울 광화문광장 홍보탑 앞 이벤트 진행 모습.한편 5월 18일까지는 독립운동가 그리기대전 작품을 공모한다. 기억하고 싶은 의사, 열사 등을 선택해 원하는 방식으로 그린 다음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 이벤트 페이지에 제출하면 된다. 예선 심사 후 오프라인에서 본선을 치르며, 우수작품에는 상장과 상금을 수여한다. ☞ 독립운동가 그리기대전 바로가기위원회는 국민들과 함께 100주년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올 한해 동안 100주년과 관련된 개인 또는 단체들의 활동을 위원회의 인증사업으로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음원 제작, 굿즈 제작, 캠페인이나 문화예술 행사 등 누구나 주제 제한 없이 참여 및 신청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심사를 거쳐 위원회의 우수 인증사업으로 선정되면 인증서와 기념품이 제공되며, 향후 100주년 백서에 국민참여 공식 기념사업으로 수록된다. ☞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http://www.together100.go.kr 2019.04.16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 신한반도체제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계승 류종열 흥사단 이사장대한민국의 헌법전문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탄 이후 식민지 통치에 신음하던 우리 선조들은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했다. 전국 방방곡곡의 남녀노소, 국민 10%이상이 떨쳐 일어났다. 즉 3·1 운동은 대한민국의 뿌리다. 북간도, 용정,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하와이, 필라델피아 등 우리민족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이든 대한독립만세와 민주 공화국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1919년 상해 임시 정부는 민족 내부적 측면에서 볼 때, 자주 독립과 민주 공화국에 대한 3·1 운동 정신의 조직적 결실이다. 4월 10일 각 도의 지역구 의원 29명으로 구성된 임시의정원은 투표를 통해 임시정부의 각료를 선출했다. 그로서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4월 11일 출범하게 됐다. 다른 한편 대외적 측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이 자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것이기도 하다. 4월 10일 임시의정원에서 통과된 임시헌장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다. 그것은 현행 헌법의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원형이다. 도산 안창호는 1920년 1월 임시정부 신년축하회에서 민국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나요? 있습니다. 대한 나라의 과거에는 한 사람의 황제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2천만 국민 모두가 황제입니다. 황제란 무엇입니까? 바로 주권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주권자는 오직 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여러분 모두가 주권자인 것입니다.도산이 정의한 바와 같이, 3·1운동은 조선왕조 518년을 대한민국으로 전환시킨 혁명적인 사건이다. 오늘 우리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제1조 2항을 통해 3·1운동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는 자주, 자율, 정의, 평등, 평화, 인권, 다양성 등으로 상징된다. 그런데 3·1 기미독립선언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평화와 생존이다. 자주권에 기반한 평화로운 생존이 선조들의 열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3·1운동의 핵심가치는 민주주의이다. 즉 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다. 평화로운 생존 가치 계승신한반도체제구성2019년 오늘 평화로운 생존 가치를 계승한다는 것은 분단문제 해결이 우선과제임을 의미한다. 분단은 3.1운동의 평화로운 생존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구조적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4·27남북정상회담은 평화로운 생존가치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4·27판문점선언은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 같은 지향을 담아로 시작한다. 그리고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기로 하였다로 끝맺는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평화이며 그 다음으로 번영과 통일이다. 4·27 판문점 선언은 공동번영, 자주통일,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은 우리민족 내부의 주체적인 문제이자 남북을 범주로 한 목표다.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은 주변 강대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 동북아지역 차원의 구조적인 환경 개선을 고려한 목표다.3·1운동 당시 생존이었던 가치가 번영으로 진화됐으며, 평화로운 공존의 가치가 새롭게 창출됐다. 이를 대내외적으로 확장해 새로운 개념으로 재구성한 것이 바로, 신한반도체제다. 신한반도체제를 구성하는 개념은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다. 3·1운동정신인 평화로운 생존이 4·27 판문점 선언의 평화와 번영, 통일로, 그리고 신한반체제의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계승된 것이다. 신한반도체제는 100년 전 3.1운동이 내부적으로는 봉건질서를 타파하고 대외적으로는 민족자결의 국제질서를 창출한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향후 100년의 세계질서를 우리 민족이 주체가 되어 만들자는 담대한 상상력이다. 이것은 3.1운동의 비폭력 원칙의 계승이자, 평화로운 공존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결의로 보인다. 1945년 해방은 분단으로 인해 불완전한 독립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의 사명은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다. 완전한 독립은 분단의 극복, 바로 통일이다. 대내적으로는 이념의 대립을 넘어 통합을 이루고, 대외적으로는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것이다. 신한반도체제는 남과 북을 넘어, 동북아와 아세안, 유라시아를 포괄하며, 평화를 위해 경제적으로 상호협력해 국경없는 세계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로드맵이다. 우리가 앞장서서 남북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고 평화체제라는 신뢰의 운명공동체를 만들어, 세계평화의 큰 디딤돌을 놓자는 이야기이다. 이는 100년 전 민주공화국건설의 이념적 토대로 삼았던 도산의 대공사상을 연상시킨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대리 겸 내무총장이었다. 도산은 1913년 독립운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흥사단을 설립했다. 도산은 독립운동 세력이 좌우로 분열하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대공사상은 분열된 민족을 통합하기 위한 민족통일독립사상이다. 대공사상은 통일독립을 위해 사보다 공을 앞세운다. 대공사상을 민족통일독립사상이라 정의할 수 있는 이유는 약소국의 자주권을 힘으로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민족평등, 민(民)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정치평등, 경제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경제평등 그리고 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주어야 한다는 교육평등과 같은 민주공화국의 가치와 평화사상을 내용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도산의 대공사상은 독립이념이자 평화사상이며, 민족통합사상이다. 현재 흥사단은 도산의 통일독립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도산 안창호 창작 뮤지컬을 제작 중에 있으며, 전국순회 공연을 할 예정이다. 또한 흥사단은 도산의 통일독립, 민족통합 정신을 계승하고자, 진보, 보수, 중도, 종단으로 구성된 4자 연대 조직,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 의 대표단체를 맡아 국민통합과 민족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은 도산의 통일독립과 민족통합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남북화해협력, 경제 및 평화공동체 건설 그리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방(世界萬邦)에 고(告)하야 인류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此)로써 자손만대(子孫萬代)에 고(誥)하야 민족자존(民族自存)의 정권(正權)을 영유(永有)케 하노라 3·1운동 100년을 맞이하는 우리는 기미독립선언문에 담긴 피눈물을 기억하며,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풀고자 할 때, 실현될 수 있다. 2019년 남북의 지도자가 해결해야 할 민족사적 책무가 바로 그것이다. 2019.04.15 류종열 흥사단 이사장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어 가능했던 일들 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해 공부했다면 익숙할 두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의병과 독립군입니다. 언뜻 보이면 비슷해 보이는 이 두 단어는 어떻게 다를까요?지난 4월 11일, 서울역 광장 카페 자리에서 열린 역사다방에서 그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역사다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토크쇼로, 이날의 역사다방은 임시정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라는 주제로 진행됐습니다. 역사다방이 열린 서울역 광장의 모습.이번 서울 편에는 박광일 역사기행작가, 알파고 시나씨 아시아N 편집장, 조승연의 굿모닝팝스MC 조승연 작가, 손정은 MBC 아나운서가 패널로 참석했는데요. 박광일 작가에 따르면, 의병은 조선을 찾으려는 목적으로 봉기했던 세력이고, 독립군은 공화국을 만드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분들이라고 합니다. 역사다방 서울 편 팸플릿.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박광일 작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조선으로의 회귀가 아닌 민주공화국을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알파고 시나씨 편집장은 임시정부 시기는 국민들이 백성에서 시민으로 변한 시기라고 했고, 조승연 작가는 당시의 강대국인 대영제국, 러시아, 독일 역시 왕국인 상황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체제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27년간 나라를 끌어온 정부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독립국이며, 우리 국민을 자주민 이라고 표현하는 놀라운 진보를 이뤄낸 정부이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꿈은 독립뿐만이 아니라 독립 이후에 새로운 민주공화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운 시작을 과감히 결정한 용기가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역사다방 서울 편에서 강연 중인 박광일 작가. 임시정부, 대한민국 넘어 동아시아 역사로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생각하면 중국 상해(상하이)에 위치한 상해 임시정부를 떠올립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임시정부가 상해 임시정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상해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둘러본 후상해 임시정부가 임시정부의 한 시기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항주 임시정부 기념관에 소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상해 임시정부는 다릅니다. 우리나라 임시정부는 크게 상해 시기, 이동 시기, 중경(충칭) 시기로 나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 국내외 각지에서 모인 인사들과 함께 상해에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고,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상해를 떠나 항주를 거쳐 장사(창사), 광주(광저우), 유주(류저우) 등 여러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펼치다 중경에서 광복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긴긴 임시정부의 여정을 본다면 상해 임시정부가 임시정부 역사의 전부는 아닙니다. 항주(항저우) 임시정부에 걸려있는 김구 선생의 사진과서예 작품. 박광일 작가는 임시정부를 너무 좁게도, 너무 넓게도 보지 말자며 임시정부라고 하면 보통 김구 선생을 생각하는데, 김구 선생이 주석이라는 지휘로 임시정부를 통괄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 이후다. 여기에만 주목을 하게 되면상해 임시정부 시기와 임시정부 이동 시기를 놓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너무 넓게 보면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세력의 전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임시정부는 하나의 정부를 지향하며 모든 독립운동 조직을 이으려 했던 독립운동의 한 조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전부는 아니지만, 임시정부가 있어 가능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중경에서 광복군을 창설해 인정받았고,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외교를 통해카이로 회담에서 독립 확인을 받은 유일한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독립 후에도 중국 남경(난징)에 남아 우리나라 교민들을 위해 주중대사관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붙어 있는 임시정부 표식. 아쉬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독립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은 정부 관계자 자격으로 입국할 수 없었습니다. 미 군정에서 임시정부 관계자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들어오라고 조건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들이 입국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전혀 알 수 없었고, 요인들은 넉 달이 지나서야 국민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박광일 작가는 임시정부가 미완성인 채로 마감하게 되었지만, 이를 위대한 미완성으로 부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박광일 작가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살아 계신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답은 아마 행복해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여길 수 있는 나라가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조승연 작가 또한 독립운동가 분들이 바라는 나라가 여권을 가지고 어느 나라나 갈 수 있는 현재가 아닐까라며 행복하게 잘 살자는 것이 오늘의 가장 큰 교훈이라고 말했습니다. 청중들이 붙인 질문지를 고르고 있는 패널들. 이날 역사다방에서는 강연 후에도 청중들의 의견과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독립운동가후손인 황찬우 학생(12)은 임시정부가 없었다면 일본이 망해도 독립이 될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 인상 깊었고, 아쉬운 부분이 있는 역사이지만 임시정부의 역사를 보면 선조들이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역사다방 서울 편은 임시정부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배우고,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역사를 되돌아보며 우리가 당연하게 살아가는 이 나라가 많은 분들의 피와 땀 위에서 세워진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책기자단|박수현literature1028@gmail.com 생생한 정책현장을 전하는 정책기자단 박수현입니다 :) 2019.04.15 정책기자 박수현
- 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에 간 이유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중국 상해에서 유학 중이던 사촌 동생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혼자 떠나는 첫 해외여행, 잔뜩 기대에 부풀어 상해에서 가볼만한 곳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예원, 동방명주, 신천지 등 목록을정리하던 중 상해 임시정부가 보였다.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 맞다 임시정부가 상해에 있었지. 꼭 가봐야겠단마음에 이곳 목록을 추가해 넣었다. 상해에 도착해 예약한 숙소에서 꽤 가까운 듯해임시정부부터들러보기로 했다. 지도를 켜고 상해 임시정부를 목적지로 찍은 후 투어버스에 탑승했다. 버스에서 하차한 뒤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지도상으로는 여기가 임시정부 앞인데 주거지역인 듯 머리 위로는 온갖 빨래 종류만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그렇다할 표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혼자 떠난 첫 해외여행 때 만났던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다시 한 번 자세히 보니 골목길 안쪽으로 뭔가 익숙한 글자가 있는 것 같아 그쪽으로 가봤다. 마치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작고 낯선 집 외벽에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란 한글이 적혀있었다. 단어를 보자마자 갑작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실내로 들어가는 순간 끝내 눈물은 흘러내렸다. 아무리 임시정부였지만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곳에 숨죽이고 모여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생각했을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의도치 않았지만 상해 임시정부 방문은 과거 역사 속 한 장면을 생생하게 경험한 것처럼 가슴 속에 큰 울림을 줬다. 1919년 4월, 신채호, 여운형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3.1운동 정신을 계승해 민족의 독립의지를 담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올해는 임정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첫 해외여행에서의 그 울림이 여전히 마음속에 뜨겁게 남아있어서일까, 임정 100주년이란 의미가 더욱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 현장.지난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민참여형 축제가 마련됐다고 해가족들 손을 잡고 직접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행사는 여의도공원 문화의 마당 광장에서 개최됐는데 광복군이 C-47 수송기를 타고 국내로 들어왔던 역사적 장소라고 한다. 독립유공자 및 유족들, 정부 주요 인사, 그리고 시민들이 참석한 이번 기념식은 독립의 횃불 점화로 시작해 임시헌장 선포문 낭독, 기념사, 기념공연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이끌 나라 라는 표어 아래 시작된 기념식.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의 횃불 점화로 기념식이 시작됐다. 독립의 횃불 릴레이 현장.(출처=국가보훈처)지난 3월 1일,3.1절 기념식에 점화됐던 독립의 횃불이 42일간 전국 곳곳의 주요 지역을 거쳐 이날 완주식을 통해 그 여정을 마무리하며 기념식의 포문을 연 것이다.이어서 깜짝 퍼포먼스가 있었다. 당시 의복을 입은 민초들이 여기저기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기념식 현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날의 함성, 그날의 열망이 행사장 곳곳에 생생하게 전해지는 듯했다. 마치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의 현장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기분이 들만큼 이 퍼포먼스는 기념식에 참여한 사람들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같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만세를 외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뜨겁게 흐르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내는 이들도 보였다. 뒤이어 애국가 제창과 국민의례가 끝나고 광복회장의 대한민국 임시헌장 선포문 낭독과 임시정부 현장탐방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의 조문 낭독이 이어졌다.만세 퍼포먼스 후 애국가를 부르는 참가자들의 모습. 이번 100주년 기념식은 국민참여형 축제로 준비된 만큼 다양한 볼거리들도 눈에 띄었다. 먼저 배우 강하늘이 이야기꾼으로 등장해 임정의 꿈을 테마로 임시정부의 역사를 시민들에게 감성적으로 전달해 줬다. 또 강하늘, 고은성, 온유 등이 출연하는 신흥무관학교 뮤지컬 팀이 총 4편의 기념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국민의 나라 대한민국이란 주제 하에 하현우의 100주년 기념노래, 국립합창단의 100주년 기념 창작곡 희 합창 등의 공연도 진행됐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공원 문화의 마당에서 열린 제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서 C-47 수송기를 활용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기념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선현들의 염원과 희생 위에 서 있다.임시정부 지도자들의 시대를 앞선 민주의식과 투철한 애국애민의 실천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지난 100년, 우리의 역사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고난을 딛고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로 발전했으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는 더 좋은 조국을 만들기 위해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낙연 총리의 기념사처럼 지금의 대한민국은 100년 전 임시정부의 뿌리 위에 서 있다.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라고 말했듯 국민들은 임시정부의 역사를 기억하고 선현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살피며 우리가 한 걸음 더 내디딜 차례다.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선각자들이 목숨 걸고 내렸던 그 뿌리로부터 이제 어떤 꽃을 피워낼지는, 100년 후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한아름 hanrg2@naver.com 2019.04.15 정책기자 한아름
- 상해에서 중경까지…사진으로 보는 100년 전 그 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정책기자단'과 '100주년 서포터즈'가 지난 3월, 중국 내 임시정부 청사 및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했습니다. 100년 전 상해에서 시작해 27년간 이어진 독립을 향한 여정, 100주년이 된 지금의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해보세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상해에서 중경까지, 사진으로 보는 100년 전 그 길상해 - 상해 임시정부청사는 1919년 임시정부가 조직된 후 1926년 7월부터 1932년까지 7년간 사용한 청사다. 상해는 1910년대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조계지의 특징 덕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가흥 - 윤봉길 의사 투탄의거 후 일제의 검거를 피해 가흥으로 피신한 김구가 피난처로 이용했던 곳이다.항주 - 항주 임시정부청사 기념관은 당시 거주했던 공간의 복원실과 세 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다.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1층에는 객청(客廳)과 주방이 있고 2층에는 크로 작은 침실들이 있다. 큰 침실은 당시 서재로 쓰이기도 했다.기강 - 기강은 중일전쟁 당시 수도였던 중경시의 시할구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인 중경에 가기 전, 1939년 5월부터 1940년 9월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당시의 청사는 허물고 남아있지 않지만, 기강박물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요인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중경 - 중경 임시정부청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경에서 사용했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청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투탄 의거 이후 상해를 떠나 항주, 기흥,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을 거쳐 중경에 도착했다. 2019.04.12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 일제 감옥 탈출 도운 ‘석호필’ 박사 올해는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되는 해다. 4월 11일이 바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00주년이라니 왠지 기억에 남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독립운동의 현장에 다녀왔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제암리다.제암리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3.1독립운동의 현장이다. 이곳에는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이 있다. 입구에는 외국인 모습의 특이한 동상과 자전거가 있다. 제암리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해외에 알린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Frank William Schofield, 한국명 석호필) 박사다.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 세균학을 전공하고, 1916년 선교사로 한국에 와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 강의를 맡게 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마침 오늘 4월 12일은 스코필드 박사가 타계한 날이기도 하다. 제암리와 외국인 스코필드 박사와는 무슨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1919년 4월 15일. 당시 제암리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이 시키는 대로 교회에 모였다. 제암리가 3.1운동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이를 알아챈 일본군이 주민들을 교회에 가둔 후 23명을 불태워 죽였다. 이것이 제암리 학살 사건의 간략한 기록이다.경기도 화성 제암리에는 3.1운동 순국기념관이 있다. 입구에는 외국인 모습의 특이한 동상과 자전거가 있다. 제암리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해외에 알린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Frank William Schofield, 한국명 석호필) 박사다. 제암리 만행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는 1919년 4월 18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원역까지 열차를 타고 와서 경계가 삼엄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자전거를 이용해 제암리 현장까지 달려왔다. 수원에서 화성 제암리까지는 차를 타고 가도 30분 이상 걸리는데, 자전거를 타고 얼마나 황급하게 달려왔을까? 더구나 스코필드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제암리 현장에 도착한 스코필드는 처참한 제암리 현장을 목격했고,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마을 주민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고 돌아온 스코필드는 제암리 현장의 사진과 기록을 국외로 보내 일본의 비인도적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3.1운동 초기의 몇 안 되는 사진들은 대부분 스코필드박사가 찍은 것이라고 한다. 그가 찍은 사진 필름은 상해 밀사 정환범(鄭桓範)을 통해 상해 임시정부에도 전해져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에도 일부가 실리고, 3·1운동 영문 화보집 한국독립운동(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에도 실렸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입구에 스코필드 동상과 자전거 조형물을 세워둔 이유를 알 수 있었다.스코필드 박사는 처참한 제암리 현장을 목격했고,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마을 주민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고 돌아온 스코필드는 제암리 현장의 사진과 기록을 국외로 보내 일본의 비인도적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스코필드 박사가 목숨을 걸고 목격하고 작성했던 제암리의 대학살(The Massacre of Chai-Amm-Ni)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중국 상해에서발행되던 영자신문 상하이 가제트(The Shanghai Gazette)에도 실렸다.제암리 학살 뿐만이 아니다. 그는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이 3.1운동을 일으켰을 때거사가 일어나기 직전 만세운동에 대해 미리 알았던유일한 외국인이었다. 거사 하루 전날인 2월 28일 저녁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던 이갑성(李甲成)은 스코필드를 찾아와 독립선언문을 보여주며,독립선언문의 사본을 영어로 번역해 최대한 빨리 미국 백악관에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또 오후에파고다공원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가 있을 예정이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외국인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큰 기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스코필드는 기꺼이 사진기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 만세시위현장의 사진을 찍어 3.1운동의 실상을 해외에 알렸다. 그리고 일제의 비인도적 한국인 탄압에 맞서 일본 고관들을 찾아가 항의하고, 언론에 투고하여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이유다.스코필드 박사는 외국인 최초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4월 12일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81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한국을 생각했다.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4월 12일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81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는 외국인 최초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임시정부 수립일을며칠 앞두고 스코필드 박사 묘소를 찾았다. 그의 묘비에는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주시오. 내가 도와주던 소년 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맡아주세요! 라는 마지막 유언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까지 한국의 불쌍한 소년 소녀들을 생각한 것이다. 스코필드 박사의 묘지 앞에서많은 생각이 들었다.스코필드 박사의 묘지 앞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면서 일제의 탄압에 맞서 싸운 우리 민족을 목숨을 걸고 도왔던 스코필드 박사는 대한민국 은인이다. 그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편안히 잠들어 있다.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돈다.Remember the Koreans who led the 1919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청년들이여! 1919년 3.1운동을 이끈 한국인들을 기억하라!) 정책기자단|이재형rotcblue@naver.com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는 발전이 없다! 2019.04.12 정책기자 이재형
-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멀리서 웃고 계실외증조할아버지께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사실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렇지만, 전 할아버지에 대해 많이 들어와서 그럴까요? 결코낯설지가 않네요. 할아버지께서는 교회서 독립운동 관련등사를 하다 걸려, 일본 경찰을 피해 가끔씩 몰래 집에 오셨다죠. 이후 10년 만에 만신창이 몸으로 집으로 온 후곧 돌아가셨고, 아들인 외할아버지가 어린 가장으로 힘겹게 살아온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당시 전 어떻게 그런 희생이 가능했을까, 또 그 일생을 바친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궁금했었습니다. 과연 저였다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여러 태극기들이 전시된 광복 70주년 기념광장은 효창공원 내에2015년 조성됐다.할아버지, 올해로 우리나라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어요.10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할아버지 심정으로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한국에 있는 임시정부 장소를 다녀보려고 해요. 이 편지를 끝맺을 즈음, 전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선은 할아버지께서 지켜준 이 나라, 자랑스럽게 전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오르네요. 효창공원. 독립운동에 앞장 선선열들의 묘역. 먼저 집 근처에 있는 효창공원과 백범기념관을 찾았어요. 이곳은 지난 해 8월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한 곳이에요. 원래 효창원은 조선 왕가(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 등)의 묘가 있던 곳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공원으로 된 비운의 사적지이지요. 지금은 의열사와 삼의사 묘역, 임정 요인 묘역, 김구 선생 묘역, 백범기념관 등이 있어요.광복 50주년에 효창공원 근처에 세워진 이봉창 의사의 동상.일단 효창공원하면 다섯 독립운동가들 이름을 딴 무궁화가 떠오르는데요. 단지 이름만 붙인 게아니라 각각 의미를 갖고 있어요. 김구 무궁화는 마곡사(충남 공주, 독립운동 당시 승려 생활을 했던 곳)에서, 윤봉길 무궁화는 윤봉길 생가 터(충남 예산)에서, 안중근 무궁화는 명동성당(서울, 안중근 의사가 다녔던 성당)에서, 이봉창 무궁화는 숙명여대(서울, 모교 부지가 있던 곳)에서, 백정기 무궁화는 백정기의사기념관(전북 정읍)에서 가져왔다고 해요.다섯 독립운동가의의미를 담은 무궁화. 안경 모양의 김구 선생 무궁화, 시계 모양의 윤봉길 의사 무궁화등을 만날 수 있다.이 무궁화는 후계목(아들, 딸 나무)으로 길러져 전국으로 전파한다고 하니, 의미가 남다르지요. 할아버지와 저는 같은 시간을 보낼 순없었지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를 바라보는 이 마음은 같지 않을까요?푸르른 계절, 하지만 아직 망울조차 맺지 못한 무궁화를 보며 나무 안에 숨겨진 커다란 힘이 있다는 걸 믿어요. 굳건하게 피어오를 무궁화를 품은 나무, 어쩐지 우리 국민들이 가진 열정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임정 요인 묘역.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을 모신 곳. 삼의사 묘역.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쭉 뻗은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면 묘역이 나와요. 임정 요인 묘역에 도착하니 까치 한마리가 천천히 둘레를 걷고 있었습니다. 날지 않고 묘소를 가만히 바라보던 까치의 몸짓이 왜 유독 슬퍼보였을까요? 저도 잠시 묘역에 서서곰곰이 생각해보다 내려왔어요.버스 정류장, 도로 등 일상에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흔적을 느낄 수 있다.의열사를 지나면 마주하는 백범김구기념관은 임정로에 위치해 있어요. 임정로를 듣자 혹시나 싶었는데, 제 느낌이 맞았더라고요. 단어 그대로 임시정부의 길이란 뜻으로 2010년 도로명칭이 바뀌었다고 해요. 또 제가 내린 버스 정류소에는 이봉창 활동 터 라는 이름이 새롭게 붙어 있었어요. 서울시는 올해 3·1운동 및 임정 수립100주년을 맞아 일상에서 독립운동을 기념하고자 14개의 버스정류소에독립운동가 이름을 넣었다고 해요. 앞으로 버스를 탈 적마다 한 번씩 떠올릴 수 있어 왠지 더뭉클합니다.숭고함이라는 꽃말을 지닌 목련이 둘러싸인 백범김구기념관.할아버지, 지금 할아버지께도 들리나요? 저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밝아 저도 모르게 빙긋 미소가 지어졌어요.봄이 오는 공원 곳곳에는 민들레가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언제 밟힐지 모르고, 여럿이있어야 노란 빛으로 눈에 띄는 꽃이지요. 계절이 흐르면 그나마 존재조차 모르게지고 말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소소한 꽃들이 모인 덕분에 사람들은 공원의 봄을 만끽하고 있어요. 작은 흔적들이 만들어 준큰 힘. 저는 기억할게요.이제는 서울역사를 지나면서 강우규 의사의 정신을 기억하자. 걸음을 돌려예전에 남대문역이었다는 서울역으로 왔어요. 지금은 문화역으로 바뀌어 전시와 공연으로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숙연한 마음도 드는 장소지요. 바로 강우규 의사가 66세 때 사이토를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던 곳이라 그럴까요. 연령과 세대를 초월해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에 힘쓴 국민들의 심정을 생각해보니 더욱 먹먹해집니다. 의열사 안에 모셔진 이동녕, 김구, 차리석, 조성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일곱 분의 영정. 자주 가던 곳이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던 건, 이런 마음을 갖고 다녔기 때문일까요? 전같은 시대를 살진 못했지만, 할아버지와 같은 많은 분들 덕분에 제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껴요.비록 할아버지의 간절한 삶이 커다란 흔적을 남기진 않았다 해도, 전 충분히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이름 모를 독립 운동가들이 곳곳에 계셨음에 지금 우리가 자유 안에서 숨 쉴 수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요.이제 편지는 끝맺지만, 알려주신 그 뜻대로 더 앞을 향해 나가겠습니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찍은 기념사진 속, 저는 그분들과 함께였습니다.제가 찾은 할아버지 깊은 마음, 맞는지요?미미한 민들레였을지도 모르나, 그 홀씨처럼 나라의 소중함을 퍼뜨려주신 할아버지 삶을 되새겨 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자랑스럽다는 말, 그 한마디로 감사한 마음을 전할게요. 언제든 이곳에 오면 할아버지 생각이 나겠지요. 값진 희생을 주신만큼 더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2019년 4월 11일할아버지께 감사함을 담아 증손녀윤경 올림 정책기자단|김윤경otterkim@gmail.com 네게 비춘 빛,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도록. 2019.04.11 정책기자 김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