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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70년 한국인 의식주 변천사] 연말연시 인사 풍습 끝내 부치지 못한 YS(김영삼 전 대통령) 연하장 4800장. 연말마다 정성 한때 1만 명에 발송, 제작업체 초안 만들고 인쇄 취소.(2015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 주인이 세상을 떠나자 연하장은 끝내 만들어지지 못했고, 4800여 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던 연하장은 업체 컴퓨터에 디자인된 상태로만 남게 됐다는 신문 기사가 구보 씨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지. 어디 대통령을 지내신 분뿐이겠어? 우리 모두는 연말연시가 되면 송년과 새해맞이를 겸해 서로 인사를 전해왔어. 12월 14일 서울 중구 장충동의 한 인쇄소에서 최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 이름으로 보내는 신년 연하장이 제작되고 있다. 당초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될 뻔했지만 김 전 대통령 측근들의 뜻에 따라 제작이 이뤄졌다.(사진=동아DB) 광복 직후엔 지금처럼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카드를 파는 곳이 없었지. 구보 씨가 중학생 때는 직접 카드를 만들어 보냈어. 흰색 도화지를 가위로 쓱쓱 잘라 카드를 만드는 거야. 그다음에 단풍잎이나 참나무 잎을 수산화나트륨 수용액에 넣으면 잎맥만 염색이 돼. 염색된 이파리를 조심조심 핀셋으로 집어내 말린 다음 잘라놓은 도화지에 붙이는 거야. 예쁘게 장식하려는 거였어. 그다음에 근하신년(謹賀新年) 같은 문구를 쓰면 거의 마무리됐지. 이 말은 지금도 쓰이니 다들 알 거야. 대표적인 새해 인사 문구지만 연하장이라는 말과 함께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지. 1950~60년대엔 성탄절 인사보다 새해를 축하하는 인사말 위주였어. 왜냐고? 근하신년 또는 하정(賀正 : 새해를 축하함)이라고 써서 연하장을 보내는 풍속이 일본에서 들어왔기 때문일 거야, 아마. 그러다 1957년 12월 우체국(우정사업본부의 전신)에서 연하우편을 발행하면서부터 한국형 연하장의 시대가 열렸어. 초창기엔 주로 엽서형 연하장이 많았는데 크리스마스카드를 겸해서 보냈어. 나중에 점차 카드형 연하장으로 바뀌면서 연하장과 크리스마스카드가 저절로 다른 용도로 구별됐지. 그래서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서는 크리스마스카드로 송년 인사를 전하고 새해 인사로 연하장을 보내는 관행이 정착됐지. 당시 연하장엔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해, 학, 소나무 그림이 자주 등장했지. 겨울 풍경이나 한국의 전통 풍속이 배경 그림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어. 대개 근하신년 같은 말은 금박으로 인쇄돼 나머지 인사말만 한두 줄 쓰면 연하장이 완성됐지. 1970년대는 송년과 새해 인사를 겸해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대대적으로 확대된 시기야. 초·중·고생들은 조개탄 난로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크리스마스카드를 정성껏 만들었지. 도시 학생들은 카드를 사서 보내기도 했지만 돈이 없던 시골 학생들은 카드를 직접 만들어 보내는 경우가 많았어. 어느 연말쯤 시골 초등학교에 간 적이 있었지. 학생들이 하얀 도화지에 정성껏 그림을 그린 다음,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를 그려 넣고 있더라고. 그때까지 영어를 배우지 않았을 테니 누군가 가져온 샘플카드를 보고 그림 그리듯 알파벳을 그렸던 거야. 어떤 학생이 Merry Christmas와 X-mas라고 쓰인 카드를 (읽지는 못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 아무튼 그 시절엔 손수 카드를 만들고 겉봉투에 우표와 크리스마스실(Christmas Seal)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어. 그런데 요즘은 크리스마스실도 거의 안 붙이는 거 같더라고. 1990년 12월 6일 서울 양천구 목동우체국 풍경. 세밑 해외 우송 연하우편물이 빼곡히 쌓여 있다.(사진=동아DB) 사람 사는 일이 어디 크게 변하겠어? 1980~90년대에도 연하장 보내기는 계속됐지. 서민들은 우체국 연하장을 많이 이용했어. 우체국 연하장은 시중에서 파는 연하장보다 값이 저렴했어. 봉투에 우편요금 표시가 돼 있어 별도로 우표를 붙이지 않고도 보낼 수 있었지. 구보 씨도 그 무렵 우체국 연하장을 많이 이용했는데, 봉투 입구의 접착력이 별로 좋지 않아 침만 발라서는 잘 붙지 않는 거야. 그래서 행여나 봉투가 열릴까 싶어 조심스럽게 풀칠해 우체통에 넣고는 했지. 당시 체신부에서 발행하던 연하엽서엔 정선,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이 자주 등장했어. 기업체 대표나 사회 저명인사들은 아예 자기 이름까지 인쇄해 다량으로 발송하는 사례가 많아서 언론에선 연하장 일괄 발송의 문제점을 꼬집고는 했어. 열어보면 대개 이런 내용이었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온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동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무미건조한 내용이었지. 2000년대부터 연하장 쇠퇴몇 번 클릭만으로 인사 전하는 시대 아마도 2000년대부터는 연하장이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이 분명해. 연하장 받아볼 일이 점점 뜸해졌으니까. 우정사업본부 통계를 찾아보니 2006년에 1039만 장이던 발행량이 2008년엔 915만 장, 2009년엔 742만 장으로 줄어들었다는 거야. 앞으로도 발행 수치는 계속해서 감소하겠지.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 편하게 보낼 수 있으니 굳이 우편 연하장을 보낼 필요가 없어진 거지. 몇 번 클릭만으로 보내는 인터넷 카드도 한동안 인기였지. 2006년엔 음성 녹음 연하장이, 2007년엔 시 낭송 연하장이 발매되기도 했어.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이었겠지만 구보 씨가 보기엔 필사적으로 생존하려는 연하장의 마지막 몸부림 같았어.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연하장 풍습도 바꿔놓았는데, 그 도도한 흐름을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오죽했으면 송년 인사는 e-카드가 제격이라는 광고 메시지까지 나왔을까 싶네. 2016년 새해를 앞두고 11월 23일 서울중앙우체국 직원들이 이날부터 판매가 시작된 우체국 연하카드와 연하엽서를 선보이고 있다.(사진=동아DB)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사업본부는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앞두고 행복을 상징하는 전통 문양과 함박 웃는 원숭이 모습을 담은 연하카드와 연하엽서를 어김없이 선보였어. 이메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내던 새해 인사까지는 그래도 좋았어. 그런데 받는 사람은 명시하지 않고 보내는 사람 이름만 있는 스마트 문자나 카톡 메시지는 너무 심한 것 같아. 1980~90년대 사회 저명인사들이 연하장을 일괄 발송하던 행태와 같은 거지. 똑같은 문구로 대량 살포되는 문자메시지는 받는 이의 마음에 어떠한 울림도 주지 못할 거야. 좀 번거롭더라도 받는 분의 이름이라도 써서 보내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지. 정말로 사랑하는 분께는 자필로 꾹꾹 눌러 쓴 연하장을 보내보면 어떨까 싶네. 제발 받는 이의 이름이 없는 단체 문자메시지는 보내지 마시길! * 이 시리즈는 박태원의 세태소설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의 주인공 구보 씨가 당시의 서울 풍경을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살아온 지난 70년의 기억을 톺아본 글이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전 한국PR학회장) [위클리공감] 2015.12.29 위클리공감
- “한국이 지켜낸 평화 정말 대단해요” 평화야말로 민족 간의 갈등과 종교적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수많은 갈등이 있는 환경에서 살며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공모전에 참여했습니다. 피스플래그(Peace Flag) 공모전에서 사진·손수만들기(DIY) 분야에서 1등을 수상한 살람 카팁(이스라엘·여·23) 씨의 수상 소감이다. 피스플래그 공모전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광복 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함께 전 세계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광복·평화·통일 콘텐츠 공모사업이다. 8월 15일부터 10월 11일까지 전 세계인 참여, 당신이 생각하는 평화를 보여주세요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공모전의 공모 분야는 동영상(평화와 관련된 순간을 카메라,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영상으로 촬영하기)과 사진·손수만들기(평화를 표현한 나만의 사진이나 그림 등으로 피스플래그 꾸미기), 캘리그래피(손글씨를 통한 나만의 평화 단어 만들기) 등 세 가지다. 모두가 하나로 되다(All in one)ㅣ 살람 카팁(Salam Khatib), 이스라엘 세계의 국기를 직접 제작하고, 피스클래그를 평화를 상징하는 깃발로 표현 평화 창조(Creating Peace)ㅣ 소냐 그레인저(Shauna Granger), 미국 피스플래그를 소재로 사람들 각자 자신만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영상화 평화는 하나의 행위다(Peace is an action)ㅣ 베르나데타 뒤 차릴리아(Bernadetta Dwi Charylia), 인도네시아 평화는 당신의 심장이 느낄 수 있는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표현 114개국서 1802건 접수수상자들 DMZ 판문점 등 체험 공모전 캠페인 누리집(peaceflag.korea.net)을 통해 114개국에서 1802건이 응모했으며, 나라별로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국, 이집트가 각각 300, 153, 116, 86편을 응모했다. 이중 분야별 1등 3편, 우수작 67편(동영상 14편, 사진·손수만들기 34편, 캘리그래피 19편)이 선정 됐으며, 우수작 수상자들은 부상으로 K-팝 스타 신곡 CD를 받고, 분야별 1등 수상자들은 해외문화홍보원의 초청을 받아 11월 4일부터 8일까지 한국에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수상자들은 11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수상식에 참석한 데 이어 판문점과 비무장지대(DMZ) 전시관 등 한국이 평화를 지켜낸 현장을 방문하며 공모전의 의미를 되새겼다. 방문기간 중 청와대,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인사동, N서울타워, 동대문 DDP, 롯데월드 등을 돌며 한국의 면면을 둘러볼 기회도 얻었다. 동영상 분야 1등 수상자인 미국의 소냐 그레인저(여·20) 씨와 캘리그래피 분야 1등 수상자인 인도네시아의 베르나데타 뒤 차릴리아(여·29) 씨는 한류를 통해 생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더 커졌다며 한국을 깊이 알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해외문화홍보원은 이번 수상작품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전 세계에 소개하고 12월 7~23일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전시실에서 전시를 진행한다. 또한 초청자들이 평화의 현장을 견학하고 한국을 체험한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내 아리랑 국제방송에서 소개할 계획이다. [위클리공감] 2015.12.15 위클리공감
- [남북탐구생활] 북한의 언어 알아보기 - 의류 편 오늘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하지?오늘 아침에도 이런 고민을 하지는 않으셨나요? 매일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옷장 속 옷들, 북한에서는 이런 의류와 관련된 말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통일부 통일교육원 남북한언어비교사전 바로가기 2015.12.14 통일부
- 통일된 대한민국! 2050년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통일된 대한민국이라면? 통일을 이루지 못한 2050년의 대한민국과 통일된 2050년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다를까요? 통일된 대한민국을 인포그래픽으로 함께 알아봅니다! 2015.12.10 통일부
- [남북탐구생활] 북한의 언어 알아보기 - 엔터테인먼트 편 여러분은 여가에 주로 무얼 하시나요? TV로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다양한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활동을 하는데요. 북한에서는 이런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요? ☞ 통일부 통일교육원 남북한언어비교사전 바로가기 2015.12.08 통일부
- [광복70년 한국인 의식주 변천사] ⑮ 대학입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전후해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꽤나 마음을 졸이고 계시겠지. 대학입시 제도가 시대별로 조금씩 달라졌다 해도 수험생 가족이 마음을 졸이는 건 언제나 변하지 않는 똑같은 현상이야. 온 가족이 대학입시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 건 자식 사랑의 또 다른 증거겠지, 아마도. 광복을 맞은 1945년부터 1953년까지는 대학별로 알아서 시험을 봤어.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대학입시의 시초인 국가연합고사가 1954년에 처음 치러졌어. 책상이 없으니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시험지를 놓고 시험을 보거나, 이마저도 없으면 운동장이나 교실 밖 계단에 줄지어 앉아 시험을 봤어. 하지만 입시생에게 이중으로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이 제도는 중단됐고 1955년부터 다시 본고사를 봤어. 1950~60년대는 대학 신입생 선발권을 놓고 정부와 대학의 줄다리기가 계속됐지. 대학별로 알아서 시험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부정입학 문제가 불거지면 다시 국가고사를 부활하기도 했어. 1962년엔 대학입학 자격고사가 도입됐지만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대학의 자율성 침해 논란이 일자, 1964년엔 대학별 단독고사로 제도가 다시 바뀌었어. 소 한 마리를 팔아야 대학을 졸업한다며 대학을 상아탑이 아닌 우골탑(牛骨塔)으로 부른 것도 이때부터야. 치맛바람이라는 말도 이 무렵 생겨났지. 1969학년도 입시부터는 예비고사 커트라인을 통과한 수험생에게만 본고사를 치를 자격을 주는 예비고사제가 도입됐어. 이때부터 답안지 채점을 사람이 하지 않고 기계가 하기 시작했어. 사실 대학입시가 체계를 잡은 건 1970년대부터야. 예비고사와 본고사가 꽤 오랫동안 자리를 잡았지만 과외가 성행했고 학교교육을 입시 위주로 진행해 많은 문제점을 야기함과 동시에 해가 갈수록 재수생이 늘어나기 시작했지. 문제점이 많이 나타난 거야. 대학입시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갖은 지혜를 짜내고 있는 수험생들. 1970년 11월 20일 서울 창덕여고 고사장.(사진=동아DB) 뭐니 뭐니 해도 1981학년도 입시제도는 입시제도 변경 역사상 가장 황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전두환 정부는 1980년 여름방학 기간에 갑자기 대학입시에서 본고사를 폐지하고 기존 예비고사의 이름을 바꾼 학력고사 성적으로만 대입 전형을 하겠다고 발표한 거야. 대입 시험을 채 6개월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지. 군사독재 정권이었으니까 가능했어. 예비고사는 보통 중상위권 학생들이 거의 합격하는 시험이라 따로 공부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고 모두가 본고사 입시 준비에 전념했는데, 갑자기 학력고사가 모든 걸 결정하는 상황이 된 거야. 결과가 어찌 됐냐고? 1981학년도 입시에서 명문대의 거의 모든 학과가 미달 사태를 겪는 기현상이 벌어졌지. 바뀐 제도에서 안전한 합격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 다들 하향 지원한 탓이지. 16번 바뀐 대학입시 제도대한민국이 기도하고 응원 예를 들어 340점 만점의 시험에서 배짱이 두둑한 100점대 학생들이 5명이나 S대 법대에 합격하는 사건이 벌어졌어. 그 학생들의 면접시험 일화가 신문 가십난을 장식하기도 했어. 관악산에 노루가 뛰논다. 법대 교수. 너는 참아줘를 영어로 말해보라고 하자, 관악 마운틴 노루 점핑. 티처 오브 법대. 유 니드 노 에너지라고 답변했다는 거야.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본고사 세대가 학력고사 세대를 대우해주지 않아 81, 82학번 신입생들은 인정투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막내 녀석한테 들었어. 1992학년도 대학입시에선 후기 학력고사 직전에 시험문제지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져 시험이 취소된 대형 사고도 있었지. 지망 대학 근처에 숙소도 잡고 준비하던 수험생들은 입학시험 자체가 취소됐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 학력고사가 암기 위주의 경쟁 교육을 유발한다는 여론 때문에 1994학년도 입시부터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도입했어. 미국의 대입시험(SAT)을 참고한 거래.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니 수능은 가장 수명이 긴 입시제도인 거지. 그렇지만 사교육을 양산했다는 비판도 많았어. 그 후 각종 전형 방법이 생겨났지. 아무튼 1980~90년대 입시에서는 원서 마감 직전까지 치열하게 펼쳤던 눈치작전에 따라 합격이 좌우되는 사례도 많았어. 온 가족이 동원돼 마치 첩보전쟁을 치르듯 여러 대학의 경쟁률을 확인하고는 했지.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그동안 대학입시 제도가 16번이나 바뀌었다고 하네. 대학별 단독시험(1945~1953), 국가고시 연합고사제(1954), 대학별 단독시험 및 무시험 병행(1955~1961),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제(1962~1963), 대학별 단독시험(1964~1968), 예비고사와 본고사 병행(1969~1980), 예비고사 및 고교 내신 병행(1981), 학력고사 및 고교내신 병행(1982~1985), 학력고사와 고교 내신 및 논술고사 병행(1986~1987), 학력고사 및 고교 내신 병행(1988~1993), 고교 내신과 수능시험 및 대학별 본고사 병행(1994~1996)으로 바뀐 거야. 그 후 수능시험과 학교생활기록부 및 논술, 추천서, 심층면접 병행(20092014)을 거쳐 다양한 전형 방법이 생겨났어. 한마디로 대학 주도냐 국가 주도냐를 놓고, 정부와 대학이 입시제도의 샅바 싸움을 했던 거 같아. 해마다 입시 때만 되면 하늘에서 신들의 전쟁이 벌어질 것 같아. 교회에서, 성당에서, 절에서 수많은 고3 학부모들이 자신이 믿는 신에게 100일 전부터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잖아. 심지어 부적을 가슴에 품고 시험을 보는 학생들도 있다 하더라고.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서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사진=동아DB) 해마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아. 경찰관의 수험생 수송 작전은 매년 등장하는 단골 뉴스이고, 합격 기원 제품은 또 얼마나 많아? 찰싹 붙으라며 엿을 선물하거나 정답을 콕콕 잘 찍으라며 포크를 선물하기도 한다지. 입시란 늘 긴장된 순간이지만 지나고 보면 추억도 많은 것 같아. 구보 씨의 아들은 답안지에 옮겨 적을 때 한 문제씩 밀려 써 30초를 남겨두고 겨우 수정해 등골이 서늘했다고 하더라고. 올해 수험생들 모두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야. * 이 시리즈는 박태원의 세태소설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의 주인공 구보 씨가 당시의 서울 풍경을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살아온 지난 70년의 기억을 톺아본 글이다. 글 · 김병희(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전 한국PR학회장) [위클리공감] 2015.11.18 위클리공감
- 한눈에 알아보는 남북의 자동차 및 도로 세계적인 자동차 강국 대한민국! 하단내용 참조 집집마다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이지요. 그럼 북한은 어떨까요?인포그래픽으로 남북의 자동차 생산량, 자동차 등록대수, 도로의 총 길이를 비교해보세요! 2015.11.10 통일부
- 피스플래그 국제 공모전 수상자 한국 초청 디지털 피스 플래그 동영상 분야 수상작. 사람들 각자 자신만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피스플래그를 소재로 사용해 영상화.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은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함께 전 세계에서 참여하는 광복, 평화, 통일 콘텐츠 공모사업을 추진해 우수작을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1등작으로 선정된 3명의 수상자들을 한국에 초청해 평화체험을 실시한다. 이번 공모전의 사진 및 손수만들기(DIY) 분야에서 1등을 수상한 이스라엘 출신의 살람 카팁(여·20세)은 평화야말로 민족 간의 갈등과 종교적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수많은 갈등이 있는 환경 속에서 지내오면서 평화에 대한 간절함을 느끼고 평화가 최선이라는 믿음으로 피스플래그 공모전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해외문화홍보원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이번 공모전을 통해 광복이 우리에게 안겨준 평화의 기쁨을 전 세계인과 함께 나누고 세계평화를 향한 대한민국의 의지를 널리 알렸다. 지난 8월15일부터 10월 11일까지 진행된 공모전에는 동영상과 사진·손수만들기(DIY), 캘리그래피 3개 분야에 114개국에서 1802건이 접수됐다. 전체 응모자 중 각 분야별 1등 수상자들은 해외문화홍보원의 초청을 받아 4일부터 8일까지 한국에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방한 기간 중 판문점과 DMZ 전시관 등 한국이 평화를 지켜내고자 했던 생생한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공모전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동영상 분야에서 1등을 자치한 미국의 소냐 그레인저(여·23세) 씨와 캘리그래피 분야에서 1등을 차지한 인도네시아의 베르나데타 뒤 차릴리아(여·29) 씨는 한류를 통해 생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번 공모전을 통해 더 커졌고 한국을 더욱 깊게 알게 되어 매우 기쁘다는 방한 소감을 전했다. 시상식 후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제2차관은 수상자들을 만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해외문화홍보원은 이번 수상작품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할 계획이다. 또한 초청자들이 판문점 등 평화의 현장을 견학하고 한국을 체험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12월 중에 아리랑 국제방송을 통해 방영할 예정이다. 문의 : 해외문화홍보원 해외문화홍보콘텐츠과 044-203-3335 2015.11.05 해외문화홍보원
- [광복70년 한국인 의식주 변천사] ⑭ 결혼 풍속 가을에 접어들면서 청첩장을 많이 받네. 구보 씨가 50, 60대일 땐 주례 부탁을 많이 받았는데, 더 나이 들고부터는 모든 주례를 정중히 사양했지. 최근에 결혼 2주 앞두고 신부 피살 신랑 투신이라는 뉴스를 봤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어. 혼수 등 결혼식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 때문이겠지. 결혼 문화가 많이도 바뀐지라 결혼 풍속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신랑이 사모관대 차림으로 조랑말을 타고 신부 집으로 가서 원삼 입고 족두리 쓴 신부와 차례상 앞에 마주 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게 전통혼례 풍경이었어. 광복 직후엔 대부분이 집에서 전통혼례를 올렸지만, 여유 있는 집에선 김구예식부나 만화당예식부 같은 전문 예식장에서 신식 결혼식을 하기도 했어. 6·25전쟁 직후엔 결혼식 올릴 공간이 마땅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안 할 수도 없어서 대개는 집에서 결혼식을 했지. 서울 관훈동에 있던 종로예식장은 강당에 의자만 배치돼 있었지만 펑 소리 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았어.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엔 신랑은 양복을 입고 신부는 하얀 한복을 입고 머리에 베일을 올려 쓰고 식을 올렸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들어서는 예식장 결혼이 늘었어. 양장이 대중화되면서 신부도 흰 한복 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입장했어. 웨딩드레스는 해가 갈수록 점점 화려해졌지. 당시엔 누구네 결혼식을 한다고 하면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거의 온 동네 잔치나 마찬가지였어. 형편껏 준비해간 축의금을 내면 혼주는 답례품으로 찹쌀떡이나 카스테라(카스텔라)를 줬는데, 그걸 받으려고 온 가족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지. 이후 1973년 6월 1일 정부에서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하자 결혼식도 아주 간소해졌어. 결혼을 앞두고 시댁에 드리는 선물인 예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적인 품목이던 예단 삼총사(반상기, 은수저, 이불) 대신 손거울, 귀이개, 동전 주머니 등으로 구성된 애교 예단.(사진=동아DB) 1980년대 결혼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전통적인 혼례는 거의 자취를 감췄어. 대신 호화판 결혼식이 성행하자 허례허식(虛禮虛飾)이라며 호텔에서의 결혼식을 금지하기도 했어. 1999년 들어 호텔 결혼식장에서의 예식을 금하던 법률이 폐지되자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호텔을 결혼식 장소로 이용하기 시작했어. 이때부터 호화판 결혼식이 강남을 중심으로 열리게 됐던 거 같아. 지나친 혼수 문제로 양가에 갈등이 빚어져 신혼 초에 벌써 결혼이 파탄 났다는 신문 기사가 놀라울 정도로 많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야. 혼수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어. 넓은 의미의 혼수는 신부가 신랑 측 친척에게 준비하는 예단, 신랑 측에서 준비하는 예물일 테고, 신부가 살림살이로 준비하는 것은 좁은 의미의 혼수겠지. 그런데 혼례 문화가 바뀌면서 과거엔 간소했던 예단이나 예물의 양이 늘어나고 질도 고가품 위주로 변화됐지. 광복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는 한복 또는 한복을 만들 수 있는 옷감이 혼수의 전부였어. 그런데 1960~197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양복, 한복, 화장품, 핸드백, 밍크코트, 각종 보석류, 현금 등으로 그 품목이 점차 확대됐어. 2010년대 이후엔 가방 하나에 수백만 원씩 하는 명품 위주로 혼수를 꾸리는 커플도 있다니 이젠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됐을 거야. 과시형보다 실속형 혼수국가에서 미혼 남녀 단체 맞선 추진도 통계청은 2000년대 이후의 결혼인구 중 90% 이상이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지. 2000년대 이후 봇물처럼 등장한 웨딩 컨설팅 회사는 결혼 문화를 근본부터 바꿔버렸어. 이제 예비부부들은 웨딩 컨설팅 회사의 예식 전문가(웨딩 매니저, 웨딩 플래너, 웨딩 디렉터, 웨딩 컨설턴트)에게 의뢰해 결혼식 준비의 모든 걸 맡기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 일부 업체는 주례, 축가, 사회를 패키지로 만들어 판매한다고 해. 자신들의 결혼 준비를 모두 대행업체에 맡긴다고? 다들 바쁘게 사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좀 거시기하네. 비용도 너무 많이 드는 거 같아. 식장 대관료나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에 들어가는 비용에도 너무 거품이 꼈어. 전통혼례 모습.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혼례식을 신부 집에서 치렀다.(사진=동아DB) 그렇지만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최근엔 결혼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해 반갑네. 과시형 혼수보다 실속형 혼수를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이 늘고, 복잡한 결혼식보다 자신의 개성을 살려 새로운 형태의 예식을 치르는 거지. 결혼사진 촬영부터 예식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셀프 웨딩도 늘었다고 해. 예식장은 공공기관을 빌리고 사진도 재능기부를 받아 촬영하는 친환경 결혼식도 있어.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커플링으로 예물을 간소화하는 커플들도 적지 않아. 사치스럽고 천편일률적인 결혼식을 거부하고 개성을 살리는 결혼식을 하는 거 같아. 최근엔 가까운 지인만 초대해 신랑 신부가 원하는 대로 결혼식을 기획하는 하우스 웨딩도 는다고 해. 스타들도 작고 은밀하게 스스로(Small, Secret, Self) 준비하는 3S 웨딩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결혼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 얼마 전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4명이 이렇게 답했다더군. 요즘 대학생들을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뜻에서 3포 세대라고 한다지만, 왜들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지 걱정스러울 뿐이야. 10월 18일 정부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비혼(非婚)과 만혼(晩婚) 경향을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어. 그래서 결혼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한 대책으로 미혼 남녀에게 단체 맞선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는 거야. 어쩌다 국가에서 개인의 결혼을 걱정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는지 몰라. 우리 조상들은 관혼상제(冠婚喪祭) 중에서 결혼을 가장 중요한 대사(大事)로 생각했지.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정신적 결합이라는 결혼의 순수성도 많이 희석됐어. 결혼식을 준비하며 본인들이나 부모들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것 같아 구보 씨는 안타까울 뿐이야. 결혼 준비가 아닌 결혼식 준비에 모든 것을 쏟는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 설계는 뒷전으로 밀려나버렸어. 이젠 결혼식 준비보다 결혼생활 준비를 제대로 했으면 싶어. * 이 시리즈는 박태원의 세태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의 주인공 구보 씨가 당시의 서울 풍경을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살아온 지난 70년의 기억을 톺아본 글이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전 한국PR학회장) [위클리공감] 2015.11.04 위클리공감
- [남북탐구생활] 북한의 언어 알아보기 - 컴퓨터 용품 편 북한은 우리처럼 가정마다 컴퓨터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IT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교육 및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컴퓨터 기기 및 용품과 관련된 북한의 언어들을 카드뉴스로 알아봅니다! ☞ 통일부 통일교육원 남북한언어비교사전 바로가기 2015.10.26 통일부
- [남북탐구생활] 북한의 언어 알아보기 - 주거·생활 편 따뜻하고 안락한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아무리 바깥 생활이 즐거워도 집보다 더안락한 공간이 있을까요? 오늘은 바로 이 집 과 생활 에 관련된북한의 언어들을 알아보도록 해요! ☞ 통일부 통일교육원 남북한언어비교사전 바로가기 2015.10.19
- [광복70년 한국인 의식주 변천사] ⑬ 우리말 한글날을 맞이해 우리말의 변천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된 2016학년도 어른이평가시험이란 걸 봤는데, 신조어 몇 개까지 알고 있니?라고 질문하며 26개의 낯선 단어를 나열했더라고. 복세편살, 별다줄, 핑프, 더럽, 세젤, 연서복, 걸크러쉬 등등. 구보 씨는 딱 하나밖에 못 맞혔으니 어른이(어린이와 통하는 어른)가 되긴 어렵겠네. 어른이평가시험 문제와 정답.(사진=네이버) 돌이켜보면 우리말은 정말 많이 변했어. 그래도 어른이 시험문제는 어려워도 너무 어려워. 정답지를 보니 복세편살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연서복은 연애에 서툰 복학생의 줄임말이라네. 이게 우리말인지, 외국 말인지, 무슨 암호인지 알 수가 없어. 요즘 세대의 언어나 화법은 우리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어. 신조어가 너무 많이 생겨 아름다운 한글의 파괴 정도가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시대별 유행어의 변화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야. 광복 직후부터 1950년대 말까지는 38따라지, 골로 간다, 빽, 급행료, 국물, 낙하산부대 같은 말이, 1960년대엔 사쿠라, 낮엔 야당 밤엔 여당, 자의반 타의반 같은 말이 회자됐어. 1970년대엔 뺑뺑이 세대, 치맛바람, 애나 봐라 같은 말이, 1980년대엔 큰손, 심증은 가나 물증은 없다 같은 말이 유행했고, 1990년대엔 신토불이, 신세대, 쉰세대 같은 말이 눈길을 끌었어. 2000년대 이후엔 인터넷의 발달로 수많은 유행어가 생겨났지만 반짝 인기를 끌다 사라져갔지.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낼(내일), 설(서울) 같은 타이핑하기 편한 축약형 신조어도 많이 나왔어. 메신저를 보낼 때 썼던 방가방가 정도는 귀여운 맛이 있었어. 구보 씨도 손녀한테 배워 셀카(셀프카메라), 멘붕(멘탈 붕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미존(미친 존재감) 정도는 알고 있었어. 그런데 #G(시아버지), 윰차(유모차), 헬조선(지옥 같은 조선),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심쿵(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좋음), 핵꿀잼(정말 재미있다), 핵노잼(No+잼, 정말 재미없다), 핵인정(격하게 인정한다), ㅇㅈ(인정), ㅁㅈ(맞아) 같은 말은 통 알 수가 없어. 채팅 발달로 축약어 유행우리말 왜곡 안타까워 2011년 8월 국립국어원이 복수표준어로 인정한 짜장면.(사진=동아DB) 사실 언어의 변화는 그만큼 빠른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말해주지. 언론과 방송에선 1990년대 말부터 제목과 자막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축약어를 썼어. 그와 동시에 인터넷 채팅이 발달하면서 축약어가 대폭 늘기 시작했어. 방송이나 온라인상에서도 이런 세태를 반영해 서로 다른 세대들이 즐겨 쓰는 단어의 뜻을 맞혀보는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어. 방송의 알랑가몰라 코너나 인터넷의 그말모지?(mozi.it/word) 같은 누리집이 아마 대표적일 거야. 구보 씨도 손녀가 안 알랴(안 알려)줬으면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 거야. 복수 표준어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도 중요한 변화야. 그동안 한 가지 뜻을 지닌 다양한 표현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면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며 단수 표준어만 인정했다는 건 다 알 거야. 그러다 2011년 8월 31일 국립국어원이 자장면만 표준어로 삼는다는 원칙을 바꿔 짜장면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다고 밝혔어. 1986년 외래어 표기법 고시 이후 25년 만에 바뀐 거지. 인터넷상에서 짬뽕은 표준어로 인정되는데 왜 짜장면은 안 되냐는 질타가 이어졌고 온라인 청원방까지 생겨 국립국어원이 현실을 반영한 거지. 그때 짜장면처럼 현실에서 많이 쓴다는 이유로 간지럽히다(간질이다), 허접쓰레기(허섭스레기), 맨날(만날), 복숭아뼈(복사뼈), 묫자리(묏자리), 먹거리(먹을거리) 같은 말이 복수 표준어로 인정됐어. 지난 7월 8일엔 국립국어원에서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우리말샘)으로 표준어로 통합한다고 발표했어. 개방형이란 국민들이 생각했을 때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종합적으로 판단해 사전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야. 국립국어원은 몸매가 착하다, 가격이 착하다, 니가, 이쁘다 등의 말을 표준어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어. 그러자 몸매가 착하다, 가격이 착하다를 표준어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싸고 대논쟁이 벌어졌어. 하지만 언어의 사회성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한 조치라고 생각해. 우리말샘은 다변화된 사회에서 표준어 외에도 다양한 실생활 언어 정보가 반영돼 제작된다고 하니 꽤 기다려지네. 부부간 호칭어도 여보자기오빠 순으로 바뀌었대. 국립국어원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이런 분석이 나왔어. 광복 직후부터 1950년대 말까지는 아내가 남편을 영감이나 양반이라 불렀고, 남편은 아내를 임자나 마누라라고 했어. 근데 1960년대 들어서는 여보, 1970년대 이후엔 자기, 지금은 오빠라는 식으로 변했으니 오빠 다음엔 뭐라고 바뀔까? 직장에서도 호칭은 변해왔어. 광복 직후엔 이사 직급을 취체역(取締役)이라고 했어. 대표이사는 대표취체역이었지. 지금은 부장, 차장, 과장 같은 직급의 호칭을 버리고 님으로 통일하거나, 님이라는 전형적 호칭 외에 리더, 프로, 파트너, 매니저 같은 영어식 호칭을 도입한 기업들이 는다고 해. 조직문화의 창의성을 강조한다며 사내의 직급 호칭을 과감히 버리고 호칭 민주화를 시작한 거지. 이런 변화는 바람직한 거 같아. 아무튼 신조어를 많이 아는 게 젊은이와 소통하는 지름길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말의 왜곡이 너무 심해 안타까울 뿐이야.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뜻이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 서로 통하지 못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 신조어 때문에 되레 문자의 뜻을 알기 어렵고 너무 왜곡되니 지나친 신조어 만들기는 삼갔으면 해. 구보 씨도 젊은이들 투로 말해볼게. 한글아, 스릉흔드(사랑한다를 이 꽉 물고 발음한 것). * 이 시리즈는 박태원의 세태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의 주인공 구보 씨가 당시의 서울 풍경을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살아온 지난 70년의 기억을 톺아본 글이다. 글 · 김병희(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전 한국PR학회장) [위클리공감] 2015.10.13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