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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코펜하겐에서 북쪽으로 해안을 따라 약 45킬로미터 지점에는 인구 6만3000명의 작은 항구도시가 있다. 이 도시의 영어식 이름은 엘시노어(Elsinore)이고 덴마크 현지 도시명은 Helsingør이다. 발음은 ‘헬싱괴르’나 ‘헬싱외르’가 아니라 ‘헬싱외어’이다. 이곳에서는 바다 건너 멀리 스웨덴의 항구도시 헬싱보리(Helsingborg)가 보인다. 이 두 도시는 외레순(Øresund) 해협을 두고 서로 약 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이곳이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
헬싱외어는 원래 보잘 것 없는 조그만 어촌이었다. 또 바다 건너에 있는 헬싱보리는 원래 덴마크 영토였다. 덴마크의 에릭 왕은 1420년에 헬싱외어와 헬싱보리 양쪽에 요새를 세우고는 1429년부터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외국 선박에 통행세를 징수하기 시작했다. 배들은 통행세를 내기 위해 헬싱외어에 입항했고 이곳에서 항해에 필요한 생필품도 구입했다. 이에 따라 헬싱외어는 교역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세월이 지난 1577년 덴마크 왕 프레데릭 2세는 네덜란드 건축가들을 불러 이 단순한 요새를 웅장한 르네상스 양식의 성으로 개축하고는 크론보르(Kronborg)라고 이름 붙였다. ‘왕관의 성’이란 뜻이다. 이 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배경이 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매년 8월 이 성에서는 셰익스피어 페스티발이 열린다.
한편 주인공 햄릿은 영국 왕자가 아니라 덴마크 왕자이다. 그것은 이 작품의 정식 제목인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극>(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햄릿>은 모두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을 보면, 부왕이 서거하자 숙부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올랐고 어머니는 금방 그와 재혼한다. 햄릿은 탄식하며 그런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깊은 회의에 빠진다. 하루는 아버지가 망령으로 나타나 동생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독살하고 왕위를 빼앗았다고 한다. 이에 햄릿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즉, 그는 이 괴로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맞서 싸워야할지 고민하며 어느 쪽이 더 당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며 답을 얻지 못하다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미친 척 하며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그는 클로디어스의 죄를 폭로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오필리아와 그녀의 아버지 폴로니우스(클로디어스의 고문)까지 희생된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비극적인 최후로 몰고 간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햄릿을 통하여 내적인 혼란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삶과 죽음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을 1858년에 교향시로 만든 음악가가 있다. 다름 아닌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그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새로운 음악 형식을 개척한 장본인이다. 교향시는 단일 악장으로 구성된 관현악 작품으로, 문학적, 철학적 또는 자연적 주제를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교향시 <햄릿>은 14~15분 정도의 길이로, 햄릿의 복잡한 성격과 내적 갈등을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첫 번째는 햄릿을 상징하는 어두운 주제이며, 두 번째는 오필리아를 상징하는 서정적인 주제다. 햄릿의 주제는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되며, 그의 내적 갈등과 복수의 고뇌를 나타낸다. 이 주제는 어둡고 불안정한 선율로 표현되며, 리스트는 이를 통해 햄릿의 심리적 복잡성을 음악적으로 탐구한다. 반면, 오필리아의 주제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연주되며, 그녀의 순수함과 비극적 운명을 상징한다.
단일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극적인 대비와 심리적 깊이를 담아내며, ‘햄릿’이라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음악적으로 절묘하게 표현했다. 특히, 햄릿과 오필리아의 주제가 교차하며 나타나는 부분은 두 인물의 운명이 얽히는 비극적 결말을 예고하는 듯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한편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쓴 것이 1599년과 1602년 사이이니까, 당시 크론보르 성이 완공된 다음이다. 그런데 이 성이 <햄릿>의 무대가 되었다고 해서 실제로 햄릿이 이곳에 살았다는 뜻은 아니다. 또 햄릿이 덴마크 왕자라고 해서 실존인물이었다는 뜻도 아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는 평생토록 덴마크 땅을 밟은 적도 없다. 따지고 보면 햄릿 이야기도 그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원전은 바이킹시대 스칸디나비아에서 전해 내려오던 암렛(Amleth)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덴마크의 서부지방 윌랜(Jylland)이 되는데, 그곳을 다스리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에 대한 암렛의 복수를 그리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새롭게 지어내는 것보다는 이미 있는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데 뛰어났다. <햄릿>도 그런 식으로 창조되었던 것이다. 또한 주인공 이름 Hamlet도 다름 아닌 Amleth의 마지막 철자 h를 앞에 붙여 만든 것이다.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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