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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 한국 여자 컬링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2012.03.30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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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 취재 섭외 차 최민석 대표팀 코치에게 전화를 했을 때 최 코치는 단단히 주위를 줬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오라”는 것이었다. 정말이었다. 대표팀 선수들이 훈련에 한창이던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빙상장은 무척 추웠다. 겨울 종목이 추운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경기장이라면 얼음은 차갑되 그 위로는 적당한 온도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대표 훈련장이라는 태릉조차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최 코치는 “2시간 이상 계속 훈련하면 동상 위험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오전 훈련이 끝난 뒤 점심시간이 됐다. 명색이 국가대표였지만 당시 컬링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이 꽉 차는 바람에 인근 모텔에서 머물며 훈련장을 오가고 있었다. 점심 식사는 인근 분식집에서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다. 식당이 따로 없어 라커룸 위에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뒤엔 한 쪽에 자리 잡은 쪽방에서 차가운 몸을 녹였다. 여러모로 열악한 현실이었다. 

바로 그 선수들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2개월 여 후 세계선수권대회 4강의 쾌거를 이룬 것은. 당시에는 이 선수들이 이 같은 ‘대형 사고’를 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3월 하순 김지선, 신미성, 이현정, 이슬비, 김은지(이상 경기도 체육회) 등 5명의 여자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은 4강 신화를 쓰며 세계 컬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세계랭킹은 12위였다. 캐나다 레스브리지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 출전한 팀도 12개였다. 지난해 성적대로라면 한국은 하위권에 머무는 게 당연해 보였다. 실제로 대회 첫 경기였던 체코와의 경기에서 3-6으로 패하며 암운이 감돌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였던 스웨덴전에서 9-8로 대역전승하며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팀, 스웨덴은 세계랭킹 1위 팀이다. 그런 팀을 상대로 9엔드까지 뒤지다가 10엔드에 대역전승을 거뒀다. 이후엔 거칠게 없었다. 컬링 종주국 스코틀랜드, 밴쿠버 올림픽 동메달 팀 중국, 미국 등이 모두 한국 돌풍의 희생양이 됐다. 플레이오프에서 이겼던 개최국 캐나다를 이튿날 3, 4위전에서 만나 패해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현지에서 한국은 ‘도깨비 팀’으로 불렸다. 

이번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긴 했지만 한국 컬링은 조용한 가운데 장족의 발전을 이루고 있긴 했다. 1990년대 말에 처음 연맹이 생겼으니 한국 컬링은 채 20년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국은 2007년 중국 창춘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모두 금메달을 땄다. 세계 랭킹에서도 여자는 12위, 남자는 13위까지 올랐다.

강릉 2009 강릉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컬링선수 신미성 이슬비 이현정. (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강릉 2009 강릉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컬링선수 신미성 이슬비 이현정. (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같은 성과는 컬링이 한국 사람의 성향과 딱 맞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컬링은 시트라고 불리는 길이 42.07m, 너비 4.27m의 직사각형 얼음 링크 안에서 둥글고 납작한 스톤을 미끄러뜨려 하우스라는 반지름 1.83m의 표적 안에 넣어 득점을 하는 경기다. 한 팀이 4명으로 구성되며 스톤을 하우스라는 표적 안에 넣어 득점을 한다. 10엔드로 치러지며 각 엔드마다 선수당 2개씩 총 16개의 스톤을 번갈아 던진다. 하우스 안에 들어간 스톤 중 하우스의 중심인 티(tee)에 근접한 스톤이 1점을 얻는다. 예를 들어 붉은색 스톤 4개가 하우스에 들어가 있더라도 노란색 스톤 1개가 티에 가장 가깝다면 노란색 팀이 1점을 얻는다.

힘보다는 정교함이 더 중요하다. 스톤을 하우스 안에 집어넣는 것은 골프의 거리 감각과 비슷한 점이 있다. 또한 하우스 안에 들어있는 상대 팀의 스톤을 쳐내는 것은 당구와 유사하다. 번갈아 가면서 스톤을 던지고 쳐내는 과정에서는 바둑과 같은 치열한 머리싸움이 필요하다. 컬링이 ‘빙판 위의 체스’라는 불리는 이유다. 골프와 당구, 바둑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 일가견이 있는 종목들이다. 짧은 시간 내에 세계 정상권을 위협하는 수준이 된 것은 이런 이유다.  

하지만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들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 있는 컬링 전용 경기장은 태릉과 경북 의성 등 딱 2개다. 시트는 태릉 2개, 의성 4개 등 단 6개뿐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조차 학생 선수들, 시도단체 선수들과 경기장을 나눠 쓰고 있다. 이러다보니 컬링 경기 결과는 좌우할 수 있는 얼음의 질도 엉망이다. 한 관계자는 “캐나다 등 외국의 컬링장의 얼음이 고속도로라면, 태릉의 얼음은 비포장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

시설이 없으니 컬링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좀처럼 접하기가 쉽지 않다. 컬링은 30분 정도만 배우면 누구나 경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경기다. 그렇지만 지난해 말 현재 대한컬링경기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총 671명에 불과하다. 남녀는 물론 초중고 선수까지 모두 합친 숫자다. 동호인을 합쳐도 1000명 내외다. 경기장이나 연습장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에 비해 세계선수권에서 한국과 동메달을 다퉜던 캐나다는 선수만 100만 명, 동호인까지 합치면 200만 명에 이른다. 컬링 경기장은 곳곳에 마련돼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컬링을 즐긴다.

컬링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전략 종목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유일한 구기 종목이다. 또 다른 구기 종목인 아이스하키는 세계적인 수준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데다 출전을 할 수 있을지 자체가 미지수다. 이에 비해 컬링은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드러났든 경쟁력이 충분하다. 최 코치는 “평창올림픽까지 6년밖에 남지 않았다. 경기장이 안 된다면 최소한 연습장이라도 빨리 생겨야 한다. 자칫하면 평창에서 우리가 외국 손님들의 들러리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세상에 공짜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 이헌재는?

이헌재(37)는 현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 태극전사들의 몸과 관련된 기획으로 제38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야구와 골프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스포츠의 재미와 감동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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