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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녀’에서 ‘마더하세요’까지

정재환 방송사회자·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2011.08.11 정재환 방송사회자·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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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대는 알쏭달쏭한 말을 참 많이 쓴다. ‘베이글녀’가 그렇고 ‘개드립’이 그렇다. 얼굴은 아기인데 몸매가 풍만한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베이글녀’이고, ‘개드립’은 좋지 않는 애드립, 불필요한 애드립, 잘못된 애드립을 뜻한다. 본디 ‘애드립’은 즉흥적으로 하는 대사나 연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애드립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 ‘개드립’은 그 말 자체로 ‘나쁜 애드립’이라는 의미라서 개드립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얘기하지 않고, 그저 “개드립 치지 마”로 족하다. ‘레알’은 영어 ‘리얼’의 달라진 음으로 ‘정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레알 베이글녀다”, “레알 개드립이다” 등으로 활용한다.

‘버터페이스’라는 말도 있다. 포커페이스하고 비슷하게 생겼다. “쟤도 포커페이스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얼굴이 네모꼴이라는 건가 아니면 만날 도박만 해서 얼굴이 누렇게 떴다는 말일까 궁금했지만, ‘무표정한 얼굴’이라는 영한사전의 설명은 참으로 간단 명쾌했다. 도박을 할 때 어떤 패를 들었는지가 표정에 드러난다면 돈을 딸 확률은 0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버터페이스’는 뭘까? 좀 느끼한 얼굴을 이야기하는 걸까? “그 남자 잘생기기는 했는데 좀 느끼하지 않니?” 이런 식의 대사가 떠오른다. 하지만 ‘버터페이스’의 뜻은 좀 더 심오하다.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고, 학벌도 좋고, 집안도 좋고, 집에 돈도 많은데 그러나(but) 그녀의(her) 얼굴(face)은 정말 아니야! 그러니까 이 말은 아주 은밀한 외모 차별적 용어다. 그것도 여성에만 국한된. 남녀평등의 원칙에 입각한다면 ‘버티스페이스’란 말도 있어야 한다.

성별을 따지지 않는 용어로 ‘버팀페이스’는 어떨까? 힘겹게 버티는 얼굴! 버터페이스까지 떼면 ‘뉴페’가 ‘뉴 페이스’의 준말이라는 것 정도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광클’이라는 말 역시 조금만 추리력을 발휘하면 ‘미치도록 클릭한다’는 뜻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엠’이라면 어떨까?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등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에스엠은 ‘스몰 마인드’의 준말이라니 ‘속 좁은 사람’을 일컫는다. 이쯤 되면 개그맨과 탤런트를 합친 ‘개탤맨’ 같은 말은 구닥다리 냄새마저 난다.

한편, 뜻을 알면 마음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빵셔틀’이란 말은 빵 들고 오락가락하는 아이 즉, 학교에서 힘센 친구들의 강요에 의해 ‘빵 심부름하는 아이’를 뜻한다. ‘빵셔틀’뿐만 아니라 ‘가방셔틀’도 있고, ‘담배셔틀’도 있다니 참으로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들의 신·변종 외래어 애용 못지않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국어 줏대를 잃은 정부다. 얼마 전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한 보건복지부 출산장려운동의 문구는 ‘마더하세요’다. 훈훈한 캠페인이라며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마더’가 좀 거슬린다. ‘마더하세요’라니 왜 우리나라 여자들이 모두 ‘마더’가 되어야 할까? “마음을 더하세요.”라는 말에서 ‘마’와 ‘더’를 따왔다는 친절한 설명도 구차한 변명으로 들린다. “엄마의 마음으로 마음을 더하세요.”에서 ‘엄’과 ‘마’를 따면 ‘엄마하세요’가 된다. 왜 이렇게는 생각하지 않는 걸까?

1980년대 산아제한이 절실했던 시절의 선전문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도 있었다. 항간에서는 ‘애는 일생의 짐’, ‘웬수’, “애 낳아 애먹지 말고 둘이서만 잘 살자”는 말도 유행했었다. 당시 출산장려운동은 한 자녀 가정을 급격히 늘렸고, 오늘날 출산을 장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이런 게 바로 말의 힘인데 이런 말의 힘이 변함없이 작동한다면 ‘마더하세요’는 머지않은 장래에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엄마를 모두 ‘마더’로 바꿀지 모른다. “야, 너네 마더 정말 예쁘시더라.” “너네 마더야 말로 미코 뺨치시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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