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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은 황제라는데…” 지하철 타는 ‘황제’의 꿈

정재환 방송사회자·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2012.01.18 정재환 방송사회자·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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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꼭 필요하지 않은 날에는 지하철을 탄다. 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승을 위해 꽤 긴 거리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합정에서 2호선을 타고 충정로에서 내려서 5호선으로 갈아탈 때 그 환승로가 꽤 길다. 처음에는 ‘이거 왜 이렇게 길어?’하고 불평도 했었지만 오히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환승로가 고맙다. 

지하철에서는 지하철 운행만 하는 것이 아니고 참으로 많은 일을 한다.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것이 바로 ‘오른쪽 걷기’ 운동인데, 초기에는 습관상 왼쪽으로 걷는 이들과 오른쪽 걷기를 시작하는 이들이 본의 아니게 자주 충돌했지만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다. 평생 왼쪽으로만 걸어 다녀서 될까 했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하철 10대 에티켓이라는 것도 있는데, 10대들이 지켜야 하는 에티켓이 아니고 지하철 승객이라면 누구나가 지켜야 할 10가지 에티켓이다. ① 혼잡시간대 무리한 승차 안 하기, ② 승객이 내린 뒤 승차하기, ③ 휴대전화는 진동모드로, ④ 통화 시는 작은 소리로 하기, ⑤ 뛰거나 큰 소리로 떠들지 않기, ⑥ 신문은 접어서 보고 가지고 내리기, ⑦ 우측보행 지키기, ⑧ 임신부ㆍ어린이 동반자ㆍ장애인에게 자리 양보하기, ⑨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않고 손잡이 잡기, ⑩ 잡상인 물건 안 사기, 부정승차 안하기. 

이 중에서 ⑩번 잡상인 물건 안 사기는 좀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승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하는 선의를 헤아린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 ①번은 지하철의 원활한 운행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꼭 지켜야 할 것이고, ②③④⑤⑥번은 질서 있고 유쾌한 명랑 사회 건설에 필수적인 내용들이며, ⑧번은 언제 어디서나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강자의 의무를 환기시키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⑦번은 이미 앞에서 언급을 했고, 그렇다면 하나에서 열까지 불가능해 보이는 요구는 없지만 ③④번은 왜 그렇게 지켜지지 않는지 불가사의하다. 

현대인들은 개인 정보를 중시한다.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차 번호, 통장 비밀번호 등등 온갖 번호들을 행여나 남이 알세라 조심조심 살아간다. 어쩌다 인터넷에서 개인정보가 누출되는 사고라도 발생하면 항의가 빗발치고 책임자는 사과해야 한다. 그러고는 새 번호로 바꾸느라 한바탕 야단법석을 떤다. 그런데 이런 개인정보가 지하철 안에서만은 예외다. 집 전화번호, 친구 전화번호, 통장 계좌번호는 물론이고, 애 대학 떨어진 것, 붙은 것, 남편이 허구한 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것, 자면서 이 가는 것, 코 고는 것, 방귀 뀌는 것까지 아주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래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므로 차츰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일을 위해 노력하는 지하철이 고맙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뵈는 게 있다. 언제부턴가 서울지하철은 서울메트로가 되었다. 우리말로 ‘서울지하철’이 좋다고 해도 묵묵부답인 게 아무래도 우리말을 모르는 것 같다. 또 하나, 승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문이니 그냥 ‘안전문’이라고 해도 된다고 곰살갑게 설명을 해도 알쏭달쏭한 ‘스크린 도어’를 고집한다. ‘안전문’이란 말은 국립국어원에서 누리꾼들과 함께 생각해 낸 말이므로 이 말에는 우리 모두의 슬기가 담겨있다. 이런 말을 거부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지하철 5호선에는 ‘승객은 황제’라는 문구가 달려 있지만 신하를 자처한 서울메트로가 황제의 간절한 소망을 계속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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