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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으로 본 우리말의 어려움과 즐거움

정재환 방송사회자·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2011.04.19 정재환 방송사회자·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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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환 방송사회자·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아버지는 둘인데 어머니는 하나’를 뜻하는 사자성어는 무엇일까요? 그런 게 있나 하고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진행자의 입에서 답이 나온다. ‘두부한모!’ 당근과 오이가 싸웠는데 오이가 죽어서 땅에 묻혔다. 묘비명에는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답은 ‘오이무침’이다.

최근 모 프로그램에서 나온 웃음 퀴즈다. 거기서 소개된 영어 퀴즈 하나 더 볼까? 만두는 영어로 무엇? 답은 ‘서비스’다. “손님, 군만두는 서비스입니다”. 물이 영어로 ‘셀프’라는 우스개의 후속타인가 보다. 묻는 이도 대답을 못해 쩔쩔매는 이도 모두 즐겁다.

“이 친구 워낙 골초였거든요”라고 한 출연자가 말하자 “골초라니요? 이왕이면 방송용으로 애연가라고 얘기하셔야죠”라고 진행자가 말했다. 골초라는 말을 썼던 출연자는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골초를 애연가로 고쳐 말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골초’라는 말은 비 방송용이고, 따라서 ‘애연가’만이 방송에 적합한 말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골초라는 말이 ‘담배를 심하게 피우는 사람을 농조로 이르는 말’이긴 하지만 방송에서 쓸 수 없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행자의 잘못을 지적할 생각은 없다. 진행자는 골초라는 말을 오해하고 있었지만, 방송에 적합한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구분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과감히 보여 주었다.

“그 때는 정말 분위기가 다운돼 있었는데 아무개 씨는 분위기를 업 시키는 재주가 있어서 금방 기분이 업 될 수 있었어요”. 한 배우가 이렇게 말했지만 자막은 달랐다. “그 때는 정말 분위기가 침체돼 있었는데 아무개 씨는 분위기를 띄우는 재주가 있어서 금방 분위기가 밝아질 수 있었어요”. 아마도 이 방송의 작가 혹은 피디는 ‘다운’과 ‘업’이라는 단어가 바람직한 단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화자가 한 말과는 다르게 ‘다운’은 ‘침체’로, ‘업’은 ‘띄우는’과 ‘밝아질’로 고쳤다.

“뜻밖에 큰 상을 받아서 너무 좋았어요. 너무 기뻤고 너무 행복했어요. 너무 큰 상이라 부담도 되지만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무튼 너무 고마워요”라고 수상자는 말했다. ‘너무’말고 다른 말은 모르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를 너무 좋아하는 수상자의 수상 소감이었다. 이번에도 화면 아래 흐르는 자막은 사뭇 달랐다.

“뜻밖에 큰 상을 받아서 정말 좋았어요. 정말 기뻤고 정말 행복했어요. 정말 큰 상이라 부담도 되지만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무튼 정말 고마워요”.

수상자가 한 말 ‘너무’는 모두 ‘정말’로 바뀌었다. ‘너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사전을 찾아보니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지나친 것’을 의미한단다. 그래서 ‘너무 늦었잖아요’라는 노래 제목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나 그 노래 너무 좋아”라고 하면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너무’는 “너무 뻗은 팔은 어깨로 찢긴다”라는 속담처럼 부정적인 문맥에 써왔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수상자의 ‘너무’는 모두 ‘정말’로 대체되었나 보다. 하지만 ‘너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겨서 너무 좋아”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지만 “이겨서 너무 좋아 죽겠어”처럼 좋아서 죽을 정도라면 ‘부정적 문맥에서’ 라는 기준(?)에도 맞는다. 게다가 수상자의 말에서 “너무 큰 상이라 부담도 되지만”의 ‘너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수정되었다.

어떤 이는 “너무 좋아” 그 자체로 아무 문제가 없다며 ‘정도나 한계를 지나치게’라는 사전적 풀이를 부정문에만 부려 써왔다는 언어 습관을 거부한다. 얼마든지 마음껏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거다. 설령 그렇다 해도 ‘너무’에만 너무 의존하는 것은 왠지 군색하다.

머리가 좀 아픈가? 다시 웃음 퀴즈로 돌아갈까? 사자로 끓인 국은? 동물의 왕국! 패션은 패션인데 우울한 패션은? 시무룩! 그럼, 가장 긴 반찬은? 김! ‘김’이라고? 왜지? ‘길다’의 명사형이니까 ‘김’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길다’의 명사형은 ‘긺’ 아니야? 아,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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