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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지식인과 저명인사들이 열광하는 예술가들

[클래식에 빠지다] 바그너(Wagner)와 블레이크(Blake)

2023.04.27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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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Mania)’는 특정한 인물이나 요소에 광적으로 집착하거나 몰두 하는 행위자체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런 행위나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을 매니악(maniac)이라고 하며 우리가 어떤 것을 광적으로 좋아하거나 집착할 때 흔히 ‘매니악’하다는 표현을 종종 한다.   

단순히 누군가를 응원하고 좋아하는 팬이 된다는 것을 넘어서서 마니아가 된다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떠한 인물에 대해 마니아가 된다는 것은 그 인물이 갖고 있는 생각과 철학, 행동 등을 선호하며 심하면 자신과 동일시하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니아는 의학적으로 조증(躁症)을 뜻하는 단어로도 쓰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마이너(minor)하며 비주류적인 느낌을 주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을 열광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독특하고 특별하며 일반적 보편성과 차별화되는 뛰어난 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천부적이며 타고난 예술가들은 많지만, 그들의 예술세계가 세기를 뛰어넘어 굳건한 마니아 층으로 형성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저명한 인사들이 대표적인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예술가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많은 지식인과 저명인사들이 열광하는 예술가들 중 한 명이다. 

흔히 바그너 음악의 숭배자들을 바그네리안(wagnerian)이라고 하는데, 그들 중에는 당대 최고음악가들인 말러(G.Mahler)와 슈트라우스(R.Strauss), 리스트(F.Liszt), 그리고 현대에 영화음악가인 존 윌리엄스 등이 있다. 

또한 조지 버나드 쇼와 르누아르,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J.R.R.톨킨, 히틀러, 살바도르 달리, 미야자키 하야오등 유명인사들 역시 바그네리안들로 알려져 있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바그네리안 이면서 블레이크에 심취한 열렬한 블레이크 마니아였으며, 자신의 저서 표지에 블레이크의 그림을 실었다. 

스티브 잡스 또한 블레이크의 추종자로 생각이 막힐 때마다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 

강력한 매니악들을 만들어낸 두 예술가들은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확고한 예술세계를 펼쳤는데 그들의 예술세계를 이루는 공통된 특성들은 무엇일까?

바이로이트축제극장 밖에 서 있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두상. (사진=저작권자(c) 바이로이트/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바이로이트축제극장 밖에 서 있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두상. (사진=저작권자(c) 바이로이트/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숭고함

바그너와 블레이크의 작품 속 숭고함은 그들 작품세계에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미학적으로 숭고는 위대함과 동일시 되며, 물리적, 도덕적, 정신적, 예술적인 면에서 계산할 수 없고 측정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음악에서 숭고미는 레퀴엠을 포함한 미사곡과 종교음악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바로크를 지나 고전시대 베토벤에 이르러서는 교향곡을 포함한 여러 장르의 음악에서 숭고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바그너는 자신의 본류이자 총체적 예술장르인 오페라를 통해 숭고함을 작품 속에 투영하였는데, 그의 음악적 숭고함은 철학적인 바탕에서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바그너는 자신이 존경한 베토벤의 음악을 바탕으로 예술적 이상향을 구현하려고 한 듯 하다. 그는 베토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신의 논문에 이렇게 말하였다.

”베토벤이야말로 가장 깊은 내면으로부터 장엄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최고의 음악가”라고.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나타나는 장엄하면서 영웅적인 멜로디는 베토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and Isolde)>는 바그너 음악의 숭고미가 절정에 다다른 작품으로,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이 지니는 숭고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자기희생적 뉘앙스마저 풍기고 있는 이 작품은 19세기 낭만주의 핵심과도 연결되어있으며 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는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또 다른 오페라인 <탄호이저(Tannhauser)> 역시 숭고미가 잘 드러나는데 특히 3막에 등장하는 <순례자의 합창>은 그러한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유태인에게 비판적인 글을 남긴 바그너이지만 그의 음악적 숭고미가 나치에게 악용되어 가스실로 향하는 유태인들이 들어야 했던 음악이 되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 볼 수 있다. 

블레이크 회화 역시 작품 속 숭고함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 숭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숭고라는 개념과는 상이하다. 

바그너의 숭고함이 베토벤으로부터 출발하였다면, 블레이크의 숭고함은 18세기 영국의 철학가이자 정치가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바그너는 베토벤을 존경하였지만 블레이크는 버크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차이점이 있다. 버크는 숭고의 개념을 미(美)와는 상반되는 속성으로 생각하였는데, 아름다움 속에 포함되었던 숭고를 분리시켰던 것이다.

미(美)가 질서와 조화, 명료함이라면 숭고는 무질서와 부조화, 불명료함으로 보았다. 그 동안 신성한 종교와 장엄함에서 비롯된 숭고함이 18세기에 이르러 거대한 자연에서 느껴지는 공포감과 압도적인 느낌을 모호하게 표현하는 단어로써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질서화될 수 없는 강렬한 개인적 체험과 자기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무섭게 다가오는 불확실한 힘은 근본적으로 초월자와 관계된 것이며 버크는 이를 숭고에 연결시켰고 블레이크는 자신의 작품에 투영하였다. 

블레이크의 작품 <태곳적부터 계신 이(The Ancient of Days)>와 <거대한 붉은 용과 태양을 두른 여인>, <아담의 창조> 그리고 <괴물 리바어던과 싸우는 넬슨> 등은 그가 추구한 숭고함의 특징이 잘 나타난 작품들이다.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돔에 영국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마지막 걸작 <태곳적부터 계신 이(Ancient of Days)>가 투사돼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돔에 영국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마지막 걸작 <태곳적부터 계신 이(Ancient of Days)>가 투사돼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신화와 상상력

신화는 한 문명이나 민족으로부터 전승되어왔으며 주로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 

고대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들이 시대를 거치고 구술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상상력이라는 양념은 스토리를 더욱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었다. 

이런 신화의 영향력은 건축과 문학, 음악과 회화 등 예술 전반적인 부분으로 파전되었고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신화의 스토리는 여러 작곡가와 작가들에게 예술적 소재가 되었는데, 특히 바그너와 블레이크에게는 신화적 상상력이 그들 예술세계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먼저 바그너의 오페라들은 신화적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 신화의 기원이 민족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민족주의’ 오페라라고 부르고 있는데, 동시대의 베르디의 민족주의 오페라와는 차이점이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가 휴머니즘적이며 우리주변의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면 바그너는 비범한 인간 또는 신을 주인공으로 드라마와 극의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와 <로엔그린(Lohengrin)>은 게르만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그너 자신이 스토리에 영감을 받아 직접 각본을 쓰고 작곡을 한 작품이다. 

그 중 니벨룽겐의 반지는 바그너의 최대 역작으로 사흘간 총 18시간 동안 연주되며 대본집필에서 완성까지 무려 26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라인강 아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황금 반지를 차지하려는 난장이와 하늘의 거인, 신들이 서로 투쟁한다는 줄거리의 이 오페라는 1부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2부 <발퀴레(Die Walkure)>, 3부 <지크프리트(Siegfried)>, 4부 <신들의 황혼(Gotterdammerung)>으로 이루어져 있다. 

니벨룽겐의 반지는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신화적 서사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후 영화와 에니메이션등으로 제작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블레이크 역시 신화적 주제가 특유의 상상력을 통해 작품에 잘 드러나고 있다. 4살 때부터 환영을 봤다고 알려진 블레이크는 자신의 작품들은 영적인 힘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세밀한 관찰로부터 얻어진 그림보다 직관적인 상상력에 의한 표현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으며 자신이 받은 영감을 작품에 투영하였다. 

그는 이성 보다는 상상력이 인간의 다른 여러 능력을 통합하여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것 이라 생각하였으며, 이런 그의 생각은 작품 <뉴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의 상상력과 신화와의 융합에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학이 자리잡고 있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를 “인류를 구원하는 존재가 아닌, 우주를 창조해낸 도덕과 도그마를 초월한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그의 독특한 종교관은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롭고 독특한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앞서 언급한 대표작 <태곳적부터 계신 이>를 포함하여 <욥에게 역병을 들이붓는 사탄(Satan Smiting Job with Sore Boils)>, <네브카드네자르(Nebuchadnezzar)>, 그리스 신화의 여신인 <헤카테(Hecate)>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그의 독창적인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들로써 다소 곧은 느낌의 직선적 선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묘사를 하고 있다. 

◆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고전주의가 가진 규율과 법칙, 관습적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와 인간의 존엄성, 독창성을 중시하고 있다. 즉 낭만주의의 본질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그 자유는 저항을 통해 얻어진다고 볼 수 있다. 

바그너와 블레이크는 각각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말할 수 있다. 바그너는 초기 낭만파 음악을 발전시켰으며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그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염세적이며 종교적 신비주의와 탐미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그의 작품은 19세기 말 낭만주의 부흥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오페라작곡을 공부한 청년 바그너는 극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제정적 문제로 고생하던 23세에 파리에 3년간 머물며 여러 문인과 음악가, 화가들을 만나면서 낭만주의 사조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후 그의 낭만주의는 “숙명적인 원죄와 인간의 구원”을 주제로 사고를 넓혀 나아갔으며 음악을 철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독일 낭만주의 정신을 구현하였다. 

블레이크 역시 18세기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동시대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신고전주의와는 다르게 내면과 무의식의 표현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상징적이고 비유적이며, 예언적 계시를 나타내는 특징이 있다. 블레이크는 미켈란젤로를 숭배했지만 그의 손을 거친 그림은 대부분 몽환적 판타지로 변하였으며, 르네상스 이후 공인된 전통적 규범을 따랐던 대부분의 화가들과 달리 그것을 의식적으로 포기한 최초의 화가라고도 볼 수 있다. 

음악을 물질세계에 얽매이지 않은 최고의 예술로 생각(쇼펜하우어의 생각이 기도했다)한 바그너와 이성과 규범으로부터 탈피하여 내면을 바라본 블레이크의 작품들은 “억압으로부터 자유”라는 낭만주의 본질에 충실한 예술세계를 구현하였다. 

◆ 통찰

바그너와 블레이크는 문학과 음악, 시와 회화에 뛰어난 다재 다능한 예술가였다. 

바그너는 예술이 인간 전체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각각의 예술분야가 개별적으로 인간 전체를 표현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즉 음악과 미술·문학·연극·조형예술 등이 서로 어우러져 인간 전체를 표현하는 ‘종합예술론’을 펼친 것이다. 

블레이크는 타고난 문학적 감성으로 시집을 출판하였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을 시로 표현하였고, 글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은 삽화로 그려 넣어 독창적이면서도 통합적 예술세계를 보여주었다. 

당대 자신의 예술세계를 추앙 받았던 바그너와 사후100년동안 잊혀져 있다가 이후 그 가치를 인정받은 블레이크는 그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융 복합적 사고를 지향하였으며 지금도 해석되고 연구하는 강력한 마니아 층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그너와 블레이크가 지금도 강력한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그들 예술세계가 통찰력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 음반추천

바그너의 서곡 모음집은 카라얀(H.Karajan)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반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명반이라 생각한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카라얀을 비롯하여 카일베르트(Joseph Keilberth)의 바이로이트 실황과 솔티(G.Solti)와 빈 필하모닉, 현대의 틸레만(Christian Thielemann)을 추천하겠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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