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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놓치지 말아야 할 한국힙합 앨범

2023.12.19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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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많은 한국힙합 앨범이 발매됐다. 그중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작품을 꼽아봤다.

◆ 이센스(E SENS) <저금통>

이 작품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힙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센스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힙합을 듣고 자란 래퍼다. 

이 시절은 힙합이 팝과 섞이지 않았거나, 팝이 힙합을 어디까지나 ‘보조’하던 시대다. 또한 ‘리리시즘’(가사의 완성도와 예술성을 따지는 행위)이란 개념이 여전히 지배적으로 살아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센스는 <저금통>에서 바로 이 시절의 힙합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멋과 매력을 재현한다. 공격적이고 약간 삐딱한 비트, 기술로 증명하는 래핑이 합쳐진 음악 말이다. 

이센스의 랩은 놀라움을 안겨준다. 자신의 랩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완성도는 더욱 높였다. <저금통>이야말로 이센스 랩의 ‘커리어 하이’다. 이에 관해서는 누구도 별다른 이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자. 

흥미로운 것은 앨범 내내 일관적으로 발견되는 이센스의 ‘태도’다. 이 앨범은 마치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배틀 랩’ 같다. 

갈등을 지향(지양이 아니다)하고 대결적 요소를 내포한 랩의 한 갈래, 다시 말해 경쟁적 면모와 공격적 태도를 드러내며 쾌감을 자아내는 배틀 랩이 <저금통>을 뒤덮고 있다. 

그리고 이 것 역시 힙합이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주었던 감흥이다. <저금통>은 힙합을 오래 전부터 좋아해온 사람이라면 매력을 느낄만한 것으로 가득하다.

이센스가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2017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센스가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2017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빈지노(Beenzino) <NOWITZKI>

이 앨범에 대해서는 발매 당시 ‘난해하다’라는 반응이 있었다. 그럴 수 있다. 일단 앨범의 제목이 왜 특정한 농구선수의 이름인지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또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담은 트랙의 제목이 왜 ‘Crime’인지, ‘Lemon’이라는 트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격언과 그 배경을 알아야 하는지 아닌지 등도 고민거리다. 난해하다거나, 불친절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 작품이라면 작품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빈지노라는 아티스트의 존재가치를 말해준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 앨범을 난해하다거나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듣지 않을 자유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이야말로 빈지노의 ‘오리지널리티’를 재확인시켜준다. 

예를 들어 훌륭한 예술에 대한 갈증을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에 빗대어 풀어낸 ‘Monet’, 기르던 고양이의 이름에 여러 의미를 부여한 ‘Change’ 등은 그가 절대 뻔한 방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래퍼임을 드러낸다. 

빈지노는 빈지노만의 화법을 가지고 있다. 문득 그가 9년 전 쓴 가사가 떠오른다. “잠시 떠들썩한 유행이 되는 것보다 어떤 유의 유형이 되는 게 much important.”

힙합가수인 빈지노가 아시안 뮤직 페스티벌(Asian Music Festival)에서 폭발적인 공연을 펼치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힙합가수인 빈지노가 아시안 뮤직 페스티벌(Asian Music Festival)에서 폭발적인 공연을 펼치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딥플로우(Deepflow), JJK <Occam's Razor>

소위 ‘네오붐뱁’이라고 불리는 최근 몇 년 간의 미국힙합 흐름이 있다. 드럼을 아예 빼고 비트를 만들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90년대에 주를 이뤘던 붐뱁사운드를 새롭게 창조한 스타일을 뜻한다. 

딥플로우는 이 흐름을 누구보다 깊게 주목해온 한국래퍼였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베테랑 래퍼 JJK와 함께 네오붐뱁이 주를 이루는 앨범을 발표했다. <Occam’s Razor>는 네오붐뱁을 밀도 있게 재현하고 재창조한다. 뜻이 통하는 신예들을 앨범에 불러들인 것도 인상적이다.

◆ 스키니브라운(Skinny Brown) <Stargaze>

이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스키니브라운과 간단히 인터뷰를 했다. 스키니브라운은 이 앨범을 설명하기 위해 어릴 적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이름을 꺼냈다. 

“어렸을 때는 릴웨인(Lil Wayne), 위즈칼리파(Wiz Khalifa), 치프키프(Chief Keef)를 가장 좋아했어요. 그리고 지금 즐겨 듣는 음악스타일은 제이팝(J-Pop), 힙합, 보컬로이드 노래, 아이돌 등이에요. 한 가지 음악만 들은 적은 거의 없어요. 늘 극과 극으로 보이는 것들을 좋아해왔습니다.”

스키니브라운은 말을 이었다. “이런 제 성향이 어쩌면 이번 앨범을 설명하기에 알맞을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추구하던 음악 스타일을 말랑하고 감동적인 느낌이라고 표현한다면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도프(Dope)한 스타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트랩, 또 아틀란타 트랩을 즐겨 들어왔어요. 들으면서 이런 음악을 내가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이질감이 적게 만들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 생각으로부터 이번 앨범은 시작되었습니다.”

스키니브라운의 강점이라면, 퍼포먼스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다. ‘흉내낸다’는 느낌보다는 자기 음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또 디테일을 세세하게 고민하고 충분히 연습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그래서 스키니브라운이 미국에서도 주류가 아닌 트랩의 한 하위 카테고리를 재현해도 별다른 위화감이 없다. 충분히 소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던 작품.

◆ 스카이민혁 <해방>

엠넷의 힙합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스카이민혁의 정규앨범이다. 

결론적으로, 2023년 한국힙합 씬의 최대 화제작(?) 중 하나가 됐다. 기대 이상의 완성도로 리스너들의 지지를 얻었고 스카이민혁의 노력과 열정을 모두가 알게 됐다. ‘성장’이 느껴지는 작품.

◆ 호모드러미언스(Homo Drumiens) <Garden of Aden>

딥플로우와 JJK의 합작 <Occam’s Razor>와 마찬가지로 이 앨범은 네오붐뱁의 맥락으로 조명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호모드러미언스는 거의 완전히 신예들이라는 점이다. 

즉 90년대 힙합에 향수가 있는 베테랑 래퍼가 아니라 신예들의 움직임이라는 점이 이 앨범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그러고 보니 그룹이름 호모드러미언스의 뜻은 무엇일까. ‘리듬이 곧 인종이다’, 그리고 ‘인간의 드럼화’.

김봉현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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