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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25)김광석-류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2023.03.20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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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 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 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1994년, 류근 작사, 김광석 작곡·노래)

그가 살아생전 부른 마지막 노래. 그는 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 7시간 후 하늘의 별이 됐다. 1996년 1월 5일 서른두 살 김광석은 탤런트 박상원이 진행하는 HBS(현대방송) ‘겨울나기’에 출연해 하모니카와 기타 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녹화는 8시에 끝났다. 절친 박학기 등과 술을 마신 후 서울 서교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새벽 3시 반 그는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서 전깃줄로 목을 맨 채 아내 서해순에게 발견됐다. 가수 생활 11년 차, 라이브 콘서트만 1000회를 한 ‘영원한 가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가 떠난 지 27년. 이 노래는 불멸이다. 네이버와 유튜브 검색창에 ‘너무’ 두 글자까지만 입력해 넣어도 15글자나 되는 이 노래 제목이 관련 검색어 첫 줄에 바로 뜬다. 

그가 이 노래를 부르는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수는 1960만 회. 그의 라이브 영상 중 압도적이다. 2021년 jtbc ‘싱어게인2’에서 33호 무명가수 김기태(최종 우승자)가 사자가 포효하듯 거친 성대를 긁으며 부르는 동영상은 1850만 회, 김필이 2019년 jtbc ‘비긴어게인3’에서 부르는 동영상 조회 수는 1890만 회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실린 김광석 4집의 리마스터링 음반. ‘일어나’ ‘서른즈음에’ 두 곡만 재킷에 소개돼 있다. 온라인에서 수십만 원에 팔린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실린 김광석 4집의 리마스터링 음반. ‘일어나’ ‘서른즈음에’ 두 곡만 재킷에 소개돼 있다. 온라인에서 수십만 원에 팔린다.

노랫말을 따라가 본다.

실연의 탄식과 각성이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사내는 술잔 앞에 앉아서, 지는 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 이윽고 깨닫는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바람이 불고 비에 젖으면 날 버리고 떠난 그대가 미워진다. 그래,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만나지 말자, 그립던 말들도 다 묻어버리자.

사랑은 숙명적으로 양면이다. 한쪽은 환희이고 한쪽은 고통이다. 아무리 애틋하고 뜨거웠던 사랑도 그 사랑이 진행 중이든 끝났든 고통은 필연적 부산물이다. 이렇게 아픔을 주는데 어떻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노랫말은 반어적 독백을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고통이 있기에 사랑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거라고. 아파야 사랑인 거라고. 지독한 사랑은 너무 아파야 한다고. 가사는 그렇지 않다고 자꾸 말하지만, 아니다. 사실은 나의 이 고통과 상처가 내 사랑의 인증이었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세월이 흘러 내상이 아문 후에야 비로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결국은 나 혼자 하는 것임을, 네가 아닌 나를 사랑하는 짓이었다고 말이다. 정사(情事)는 정사(情死)에 이르지 않는 한, 종말이 눈앞에 보이고 그리 숭고한 것도 아니라고. 그래서 붕괴될 만큼 사랑하지는 마라. 베이지 않을 만큼만 적절하고 현명하게 사랑하라고 말이다.                                                                

긴 세월이 흘렀어도 사람들이, 후배 가수들이 여전히 이 노래를 부르는 건 노랫말의 그 중의적 의미를, 사랑의 불가해성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려서가 아닐까.

이 노래는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인 1994년 발표한 4집 ‘김광석 네 번째’에 실렸다. 한국의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하나이며 그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다. 함께 수록된 ‘서른 즈음에’,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생전에 유명했지만 이 노래는 사후에 사랑받은 노래다.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라는 주술 때문이었을까.

2003년 손예진, 조승우, 조인성 주연의 영화 ‘클래식’(곽재용 감독) OST로, 2006년 이병헌·수애 주연의 ‘그 해 여름’(조근식 감독)에서 가수 김필의 목소리로 불리며 널리 알려졌다.

그럼, 이토록 너무 아픈 사랑은 김광석의 사랑이었을까.  

아니다. 노랫말을 쓴 이는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류근 시인이다. 군 복무 시절 고무신을 바꿔 신었다는 연인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며 쓴 가사라고 한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던 류근은 제대 후 집안이 망해서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복학할 등록금이 없었다. 한 후배가 용돈벌이 삼아 노랫말을 써보라고 했다. 그는 하루 만에 29곡의 가사를 썼다. 운동권 가수 윤선애의 앨범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음반사가 망해서 빛을 보지 못했다.

1년 뒤 김광석한테 연락이 왔다. 자신이 작곡한 노래에 ‘너무 아픈 사랑은…’ 가사를 입히고 싶다고 했다. 이 명곡은 그렇게 탄생했다. 작사가와 작곡가로 인연을 맺은 류근과 김광석은 홍익대 근처 김광석의 작업실에서 5집 앨범 작업을 같이 했지만 앨범은 끝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김광석이 세상을 버리지 않았다면 류근은 시인이 아닌 대중가요 작사가의 길을 갔을지도 모를 터이니 세상만사는 우연의 연속인 것이다.

류근 시인. 잘생겼다. 궁핍했던 무명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너무 아픈 사랑은…’을 작사했다. (출처=류근 페이스북)
류근 시인. 잘생겼다. 궁핍했던 무명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너무 아픈 사랑은…’을 작사했다. (출처=류근 페이스북)

언론 인터뷰에서 류근은 이렇게 말했다.

“군 복무 시절 사귀던 연인을 선배한테 빼앗겼다. 당시 7사단 5연대 최전방에 있었는데, 아침마다 실탄 갖고 GP에 오르며 ‘오늘은 반드시 죽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내려올 때 노을 보며 하루만 더 견뎌보자고 한 게 한 달 동안 반복됐다. 죽음과 맞바꿀 만한 상처를 겪었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 신화와 함께 시적인 제목의 이 노래가 사랑을 받으며 시쳇말로 류근도 떴다. 김광석과 이 노래는 류근의 꼬리표가 됐다. 이 노래 하나의 가사 저작권료로만 매달 100만 원 안팎 나온다고 한다. 류근은 “김광석이 죽어서까지 꼬깃꼬깃 술값을 보태준다”고 말했다.

김광석보다 두 살 어린 류근은 한 편의 작품도 발표하지 않은 채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궁상과 청승과 자조의 세월을 술로 지새운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다 지인과 국내 최초의 휴대폰 벨소리(컬러링) 사업을 해 큰돈을 벌고는 등단 18년 만인 2010년 문제적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을, 2016년 두 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을 냈다.

그는 자칭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시바’와 ‘조낸’이란 비속어 종결어미와 함께 페이스북에서도 일약 스타가 됐다. KBS TV ‘역사저널 그날’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면서는 대중적 인물이 됐다. ‘류근 장르’라고 이름 붙여진 풍자, 야유, 독설, 냉소, 위트, 무대책 낭만과 알콜의 힘으로 꾸준히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B급 정서의 ‘문제적’ 인물이다.

소설가 고 이외수는 류근의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2013년) 책 표지에 이외수다운 헌사를 써주었다.

“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아 있었다니. 나 언제든 그를 만나 무박삼일 술을 마시며 먹을 치고 시를 읊고, 세상을 향해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

‘너무 아픈…’은 김광석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묻혔을지도 모르지만, 그 한쪽 어깨를 지탱한 노래의 힘은 지극히 ‘류근스러운’ 감성이다. 그래서 불멸의 이 곡은 두 사람의 노래다.

이 노랫말은 시로 발표된 적은 없다. 류근의 첫 번째 시집 ‘상처적 체질’에 마치 이 노래를 소환한 듯한 ‘너무 아픈 사랑’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긴 하다. 그 시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이제 믿기로 했어요//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다만 사랑만이 제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사랑에 어찌 앞뒤로 집을 지을 세간이 있겠느냐//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결별의 은유로 유행가 가사나 단속 스티커처럼 붙여오면서/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그 유행가 가사,/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그렇다. 너무 아픈 사랑도, 너무 가벼운 사랑도 아니다. 제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 사랑이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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