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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합의 의미와 한일관계 전망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2015.12.31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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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한일 양국이 지난 28일 서울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에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된 지 20여년 만에 해결의 출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법적 해결’ 대신에 ‘정치적 해결’을 택한 결과였다.

물론 위안부 피해자 개인이나 관련 단체는 이후에도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이라는 ‘법적 해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지만, 적어도 정부 간 외교현안으로서의 위안부 협상은 종지부를 찍었다. 양국 모두 어려운 제약 하에서 정치적 용단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발표문에 따르면 우선,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당시 (일본)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이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죄를 담은 이른바 ‘고노 담화’를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한 피해자 지원 계획도 명문화됐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일괄 거출하기로 했다. 과거의 민간모금 위주의 방식이었던 아시아여성기금보다 진전된 내용이다. 양국이 합의한 재단 설립이라는 ‘이행조치’가 향후 대만, 중국, 동남아 등지의 위안부 문제 대응에도 전례로 작용할 가능성도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일본 정부가 합의를 착실하게 이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양국은 이번 합의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에 확인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상호 비난과 비판을 자제하기로 했다. ‘불가역(不可逆)’의 의미는 쌍방적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타결로 위안부 문제가 더 이상 재론되지 않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이 합의 사항을 착실하게 지킨다면 위안부 문제를 외교 현안으로 제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즉, 일본 측이 후속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또 다시 말을 바꾸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려는 장치인 것이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를 고려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본 정부가 위안부 모집과 관련해 군의 관여(위안부 제도의 강제성), 정부의 책임 통감, 내각 총리로서의 사죄와 반성, 정부 예산에 의한 금전적 조치를 약속한 것은 내용 면에서 보면 사실상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이런 성과가 보수색채가 두드러진 아베 정부를 상대로 이뤄졌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번 합의의 배경에는 한일관계의 경색국면을 풀어야 한다는 양국 정상의 일치된 상황인식이 있었다. 살아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일관계 정상화 50주년인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었다. 2016년에 G-7 회의 및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등을 앞두고 일본의 국제적인 역할을 확대하려는 아베 총리로서는 위안부 문제를 정리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최근 안정화된 중일관계와 함께 한일관계가 안정된다면, 아베 내각은 그 동안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었던 ‘아시아 외교’에서도 성과를 평가받을 수 있다. 한미일 공조체제를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의향도 타결의 동력이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인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정책이 탄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일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연내 타결을 강력하게 촉구한 것이 이번 합의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후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9) 전 산케이(産經)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해 한국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고, 헌법재판소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해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 사건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한일관계 개선의 악재로 남아있던 이들 사안이 해소되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일본 내의 분위기는 급반전 보인다.

특히 가토 전 지국장 사건과 관련해 한국 외교부가 법무부 측에 “일본 측의 선처 요청을 참작해 달라”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은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는 한국 정부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단은 양국 지도자의 몫이었다. 외교적 합의에 따른 국내 비판을 각오하고, 중장기적인 국익 극대화의 관점에서 대승적인 타결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해결에는 쉽지 않은 과제가 수반하는 법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해결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할머니들을 상대로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불가피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이들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를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직접 의견을 듣고 설립될 재단의 사업안에 반영해야 한다. 일본 정부 역시 일본 내 보수우익세력을 설득하여 정치권 등에서 이번 합의를 부정하는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번 합의로 양국 간 과거사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발표문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의 불법성 즉 제도적 성 노예, 동원의 강제성, 여성인권 침해, 그리고 위안부 문제의 진상규명, 교육과정에의 반영 등을 둘러싸고 양국 간 입장 차이가 남아 있다. 따라서 향후 학계, 관련 단체 등의 움직임과 연동하여 양국 정부 간에 외교전이 재연될 소지가 있다. 독도 문제나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 역사교과서의 기술 문제 등 갈등 요인도 여전하다.

한일 양국은 상호 소통과 협력이 안 되면 양국 모두 손해를 보는 관계에 있다. 그동안 한일관계에 역사 문제, 특히 위안부 문제가 가시처럼 남아서 현실적인 필요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의 협력은 제약을 받았다. 이번 타결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일시에 급물살을 타기는 어렵겠지만, 우리의 대일 외교에서 ‘분리대응’ 기조를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양국 간의 상호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위안부 관련 합의를 착실하게 이행해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경제 및 안보 등의 분야에서 실질 협력을 확대하여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새해에는 한일 양국이 새로운 관계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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