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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썰매 삼총사, 평창까지 질주하라

[김한석 기자의 스포츠 공감] ‘평창 드림’ 향해 로이드 코치 유언이 던지는 울림

2016.03.30 김한석

 

지난 3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지난 3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21회 코카-콜라 체육대상'에서 우수지도자상을 대리 수상한 국가대표 봅슬레이팀 이용 감독(왼쪽)과 서영우(오른쪽), 원윤종 선수가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날 우수지도자상은 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한 멜컴 로이드 봅슬레이 대표팀 코치가 수상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목표에 정진하라,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코치님은 언제나 저희 가슴속에 함께 할 것입니다. 평창에서 꼭 금메달 따서 하늘에 계신 코치님께 바치겠습니다.”

세계 봅슬레이를 정복한 원윤종과 서영우가 지난 1월 68세를 일기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고(故) 말콤 고머 로이드 한국 봅슬레이대표팀 주행 코치에게 바친 눈물의 편지였다.

지난 16일 코카콜라체육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이들은 고인에게 주어진 우수지도자상을 대리 수상하면서 이 같은 헌사를 바쳤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파일럿 원윤종 대신 브레이크맨 서영우가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지난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첫 동메달을 땄을 때 너무 잘했다고 칭찬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코치님은 저희에게 훌륭한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익숙지 않은 트랙 때문에 두려움이 많았던 저희에게 항상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애정 어린 조언과 가르침 덕분에 훈련 과정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다.”

영국 출신 로이드 코치는 올림픽에 선수로 4차례 출전했고 캐나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등 5개국 코치로서도 7차례나 참가했던 백전노장. 2014년 한국 선수들을 만나 전 세계 18개 트랙의 특성은 물론 선진 주행기법을 전수하며 단기간에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썰매종목에선 트랙을 정복하는 것이 왕도다. 그만큼 북미, 유럽의 슬라이딩 센터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그의 핀포인트 지도가 태극 썰매의 빠르고도 유려한 질주를 이끌었다.

암 투병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아시아 첫 올림픽 금빛 꿈을 함께 그렸던 그는 월드컵 후반기 시리즈를 앞두고 캐나다 자택에서 별세했다. 원윤종은 충격을 추스른 채 허리 부상까지 당한 후배 서영우를 이끌고 혼신의 질주로 쾌거를 이뤘다.

1월 23일 캐나다 휘슬러 월드컵 5차 대회 남자 봅슬레이 2인승에서 한국 썰매종목 사상 월드컵 첫 금메달을 따냈다. 썰매에 고인을 추모하는 스티커를 붙인 채 가속도를 높였다. 포디엄에서는 ‘고머, 편히 잠드소서. 사랑합니다’라는 애도 메시지를 펼쳐들고 세리머니를 펼쳤다.

시상대에 함께 초대된 미망인은 고인의 유언을 담아 제작한 아주 특별한 메달을 이들 목에 걸어주었다. 메달 한쪽에는 ‘평창 금메달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 다른 쪽에는 ‘로이드 코치가 가르쳐준 것을 잘 새겨 좋은 성적을 거둬 달라’고 적혀 있었고 원윤종은 “어떤 금메달보다 값졌다”며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2월 27일 독일 쾨닉제에서 벌어진 마지막 월드컵 8차 대회에서도 또 금메달을 따내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시즌랭킹 세계 1위에 등극했다. 금 2, 동메달 3개로 독일의 니코 발터-크리스티안 포서(은 1, 동 2)를 여유 있게 2위로 밀어냈다.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6시즌 만에, 월드컵 도전 3시즌 만에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2014 소치 올림픽에서 18위로 한국 봅슬레이 역대 최고 순위를 달린 그들은 2013-14 월드컵 시즌을 25위로 마감한 뒤 다음 시즌 월드컵 랭킹 11위로 올라섰고 다시 한 시즌 만에 정상까지 등정했으니 시즌마다 10계단 이상씩 로킷 상승한 셈이다.

월드컵 8차대회에서 메달을 딴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이용 총감독(왼쪽부터)과 윤성빈, 원윤종, 서영우.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세계랭킹 2위, 봅슬레이의 원윤종-서영우는 세계랭킹 1위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월드컵 8차대회에서 메달을 딴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이용 총감독(왼쪽부터)과 윤성빈, 원윤종, 서영우.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세계랭킹 2위, 봅슬레이의 원윤종-서영우는 세계랭킹 1위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역시 고인의 추모 스티커를 헬멧에 붙인 윤성빈은 2월 5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벌어진 월드컵 7차 대회 남자 스켈레톤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주 뒤에는 오스트리아 이글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썰매 사상 최고 성적인 은메달을 획득했다.

엎드려 타는 썰매에서 쾌속질주를 이어온 윤성빈은 데뷔 4시즌 만에, 월드컵 두 번째 시즌 만에 첫 우승을 맛봤다. 월드컵 3차 대회부터 6연속 메달 행진(금 1,은 3, 동 1)을 펼치며 월드컵 시즌랭킹 세계 2위까지 도약했다.

윤성빈은 이번까지 7시즌 째 월드컵 시즌랭킹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라트비아의 마르틴스 두쿠르스(금 7, 은 1)를 넘어설 유일한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윤성빈은 그의 올 시즌 전관왕 꿈을 무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마르틴스가 친형 토마스와 함께 지난 시즌까지 3연속 세계 1,2위를 휩쓸며 다진 ‘양강 체제’를 단숨에 허무는 대반란의 주인공이 됐다. 그래서 그의 애칭 ‘아이언맨’은 국제 트랙에서도 유명해졌다.

원윤종 팀과 윤성빈이 쌍두마차로 가슴 벅차게 세계 정상권을 질주한 것은 ‘기적의 핫러닝’이라는 찬사보다는 선수들의 노력과 투자가 뭉쳐져 예상보다 앞당겨진 압축성장으로 본다.

체육교사를 준비하던 원윤종, 육상 단거리 선수 출신 서영우, 그리고 체대 입시에 대비하던 고교생 윤성빈이 숨겨진 운동신경 하나만으로는 이룰 수 없었던 쾌거다.

트랙은 커녕 스타트 시설조차 없던 시절 매일 8끼를 먹어가며 체중을 30kg 이상 늘렸던 것도, 경사진 도로에서 위험천만한 스타트 훈련을 하다 다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도, 국제대회에 나가도 임대 썰매를 손보는데 더 시간을 쏟아야 했던 것도, 모두 투자의 손길을 만나자 급성장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자양분이 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이후 투자 대비 결실을 확실히 맺을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종목이라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6개 기업이 후원자로 나섰다. 그 결과 대표팀이 1년에 넉 달이나 북미와 유럽을 오가며 트랙 적응력은 물론 대회 경험을 충실히 끌어올리는데 든든한 힘이 됐다.

이용 총감독이 이끄는 20여명의 코치진, 의무트레이너, 엔지니어, 비디오분석관 등 다양하게 충원된 지원스태프는 선수들이 인터뷰마다 고마움을 표하는 숨은 영웅들이다. 외국인 지도자 4명은 종목과 대륙별로 나뉘어 선진 노하우를 지도한다.

한국 썰매의 세계 상위권 진입은 예상보다 1년은 앞당겨졌다. 이제부터는 시설과 장비가 더욱 탄탄하게 뒷받침되고 선수들이 꾸준한 성적으로 경쟁력에 확신을 갖게 된다면 평창의 금빛 드림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경기 트랙이 3월 완공돼 오는 10월 정식 개장하게 될 평창 슬라이딩 센터는 세계 19번째 썰매 전용 경기코스로 한국도 홈 트랙 시대를 맞는다.

스켈레톤이 재도입된 2002 올림픽부터 썰매 종목에서 개최국이 금메달 하나 이상은 꼭 가져가는 홈 어드밴티지가 이어지고 있으니 태극전사들은 벌써 훈련에 잠 못 드는 날을 그리고 있다.

윤성빈이 넘어야할 ‘스켈레톤의 우사인 볼트’ 마르틴스 두쿠르스가 2010, 2014년 올림픽에선 개최국의 언더독들에게 금메달을 내리 내주며 은메달에 그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용 총감독은 선수단과 금의환향하면서 “세계랭킹 1,2위를 해서 평창에 90% 다가갔다면 나머지 10%는 평창 트랙에서 채울 것”이라며 “외국인 선수들은 40번 정도밖에 탈수 없지만 우리는 500번, 많게는 1000번까지도 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후원사인 현대자동차에서 자체 기술로 개발한 첨단 봅슬레이 썰매도 유럽컵에서 1차 실전 테스트를 마쳤고 이제 원윤종이 29일부터 첫 금메달을 따냈던 영광의 땅 휘슬러 트랙에서 평창의 명운을 함께할 썰매의 시험 주행에 나선다.

이제 태극 썰매 삼총사는 스스로를 믿는 전진밖에 남지 않았다. 평창 올림픽까지 2년. 이번 시즌에 세계 정상권에 조기 진입하면서 드러난 단점을 다음 시즌에 집중적으로 보완하고, 올림픽 시즌엔 장점을 더욱 강화하면서 홈 트랙 환경과 최적화된 금메달 전략을 구체화시켜나가는 시나리오를 기대한다.

원윤종 팀은 스타트를, 윤성빈은 주행능력을 각각 보완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윤성빈의 경우 스타트 능력이 세계 최고 레벨에 올라선 게 일단 고무적이다. 평창 트랙이 예전 올림픽 트랙보다 다소 짧기에 스타트가 그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모두 4차례 레이스로 자웅을 가리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스타트 기록을 분석해보면 윤성빈이 2014 올림픽에서 한국 썰매 최고성적인 16위를 기록했을 때 2위 마르틴스 두쿠르스와 평균 스타트 격차는 10분의 1초였다.

하지만 1년 뒤 세계선수권에서 100분의 1초로 줄이더니 올해는 200분의 1초, 즉 0.005초까지 간극을 좁혔다. 올 시즌 마르틴스와 스타트 대결에서 4승1무4패로 호각세를 보였던 윤성빈이기에 주행능력을 강화한다면 다음 시즌엔 1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태극 썰매 삼총사로사는 이제부터 얼마나 자기 확신을 가지고 평창이란 목표를 향해 도전하느냐에 따라 2년 뒤 성패는 가려지게 될 것이다. 남자 스켈레톤 세계 2위까지 올랐다가 올림픽에서 희비가 엇갈린 캐나다의 욘 몽고메리와 일본의 가즈히로 고시의 전례를 보자.

몽고메리는 2008년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월드컵 시즌랭킹 2위에 오른 이후 월드컵 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홈 트랙에 집중한 끝에 2010년 자국 밴쿠버 트랙서 세계최강 두쿠르스를 꺾고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가즈히로는 아시아선수 최초로 1998년 월드컵 시즌랭킹 2위까지 올랐으나 그해 나가노 올림픽에서는 스켈레톤이 없어 목표의식이 떨어졌다. 54년 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돌아오자 2001년 다시 2위까지 힘을 내봤지만 38세의 늦은 나이에 출전한 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8위에 그치고 말았다.

홈 트랙이 아무리 유리하다고 하고, 세계 정상권 도약을 ‘한강의 경제기적’처럼 빨리 앞당겼다는 찬사를 듣고 있는 한국 썰매이지만 앞으로 2년을 냉정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웃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고 로이드 코치가 유언을 그렇게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믿으며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질주하라고. 

김한석

◆ 김한석 스포츠기자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체육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Q 창간멤버로 스포츠저널 데스크를 맡고 있다. 전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이었으며 FIFA-발롱도르 ‘올해의 선수’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제21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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