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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70주년기념 시리즈 <연합하다>
한미동맹70주년기념 시리즈 <연합하다>
한미동맹70주년기념 시리즈 <연합하다>
한미동맹70주년기념 시리즈 <연합하다>
한미동맹70주년기념 시리즈 <연합하다>
한미동맹70주년기념 시리즈 <연합하다>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시리즈]
한미동맹 70주년, 우리는 함께 해왔고, 함께 하고 있으며, 함께 갈 것입니다.
# 다부동전투
실질적인 최초의 연합작전으로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1950년 7월, 유엔 안보리 결의문 제84호에 따라 연합방위체제의 기틀을 갖추게 된 한미는 1950년 8월, 다부동에서 실질적인 첫 한미연합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미군이 국군의 작전 책임 지역에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긴밀히 협조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낸 것입니다.
# 가장 치열했던 전투
치열했던 전투에 맞서, 격렬히 싸웠습니다. 1950년 8월 초, 적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내려왔습니다. 가용부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5개 사단을 대구 북방지역에 배치하는 등 공세를 펼쳤고, 국군의 방어선은 다부동 일대까지 축소되었습니다.
# 연합하다
유엔군사령관은 적의 공세가 한창이었던 8월 16일, B-29 98대로 융단 폭격을 실시했습니다. 미 제8군은 8월 17일 미 제25사단 제27연대를 다부동으로 투입했고, 8월 19일, 미 제2사단 제23연대가 방어력을 보충해 연합작전을 펼쳤습니다.
# 승리하다
전투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국군 제1사단은 유학산-다부동-가산선에서 다부동으로 집중된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격퇴했고, 미 제8군은 적절한 예비대 투입으로 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서로를 믿다
다부동전투는 6·25전쟁 이후 한미 간의 실질적인 최초의 연합작전으로 양국군의 ‘피보다 진한 신뢰감’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미동맹은 기틀을 다졌습니다.
“연합하다” 한미동맹 70주년, 같이 갑시다 ②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시리즈]
한미동맹 70주년, 우리는 함께 해왔고, 함께 하고 있으며, 함께 갈 것입니다.
# 다부동전투
실질적인 최초의 연합작전으로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1950년 7월, 유엔 안보리 결의문 제84호에 따라 연합방위체제의 기틀을 갖추게 된 한미는 1950년 8월, 다부동에서 실질적인 첫 한미연합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미군이 국군의 작전 책임 지역에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긴밀히 협조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낸 것입니다.
# 가장 치열했던 전투
치열했던 전투에 맞서, 격렬히 싸웠습니다. 1950년 8월 초, 적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내려왔습니다. 가용부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5개 사단을 대구 북방지역에 배치하는 등 공세를 펼쳤고, 국군의 방어선은 다부동 일대까지 축소되었습니다.
# 연합하다
유엔군사령관은 적의 공세가 한창이었던 8월 16일, B-29 98대로 융단 폭격을 실시했습니다. 미 제8군은 8월 17일 미 제25사단 제27연대를 다부동으로 투입했고, 8월 19일, 미 제2사단 제23연대가 방어력을 보충해 연합작전을 펼쳤습니다.
# 승리하다
전투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국군 제1사단은 유학산-다부동-가산선에서 다부동으로 집중된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격퇴했고, 미 제8군은 적절한 예비대 투입으로 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서로를 믿다
다부동전투는 6·25전쟁 이후 한미 간의 실질적인 최초의 연합작전으로 양국군의 ‘피보다 진한 신뢰감’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미동맹은 기틀을 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