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길을 걷다가, 겨우내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 작은 꽃망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포근해진 날씨 덕분인지 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봄의 시작은 매해 특별하게 다가온다.
3월의 첫 날, 봄의 시작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어 잊을 수 없는 기념일이 있기 때문이다.
삼일절을 기념해 곳곳에서 삼일절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여기서 말한 기념일은 바로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선조들의 넋이 서린 삼일절이다.
삼일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며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마침 이번 삼일절은 주말이기도 하니, 삼일절의 의미를 더 깊게 느껴보고 싶어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방문해 삼일절 행사를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날이 따뜻해서 잠시 나들이를 하고 오는 기분으로 지하철을 탔다.
독립문역에 내렸더니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3호선을 타고 독립문역에 내렸더니, 손에 태극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3월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어 아이들과 방문한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3월 1일부터 2일까지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 차림,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로 인해 마치 함성이 가득했던 그날로 돌아간 듯 했다.
이들과 함께 나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른 오전에 출발했는데 벌써 형무소 앞은 대기 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태극기를 들고 지나가는 어린이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엄마,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어머니는 "여기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수감 하려고 지었던 감옥이야."라고 찬찬히 설명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은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어렸을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현장 체험 명목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왔었다.
그때는 스산한 분위기에 무섭다는 감정을 느꼈던 기억만 남아, 이번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해설 서비스를 이용해서 찬찬히 둘러보았다.
붉은 벽돌 건물과 쇠창살로 단단히 가로막힌 창이 정렬된 모습에 다 자란 지금도 조금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의 심정을 감히 짐작해보기도 버겁다.
따스한 봄 기운이 느껴지던 오전인데도 어딘지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던 서대문형무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물은 전시관(보안과 청사)이다.
1923년에 지어진 이 건물에는 형무소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상설 전시물들이 마련되어 있다.
탈주를 막기 위해 창문에 단단히 채워놨다던 추와 독립운동가들의 발목에 채웠다던 커다란 족쇄를 보니 마음이 무척 아렸다.
당시 독립운동가에게 채워 놓았다는 족쇄를 보며 마음이 무척 아팠다.
2층의 민족저항실은 3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대한제국 말기의 의병부터 1945년까지 이곳을 거쳤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 민족이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의 역사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어린아이도 어렵지 않게 역사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많은 전시물 중에서도 나는 이곳에 수감 되었던 독립운동가들의 수형기록카드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무려 4800 여 장에 이르는 카드를 보며 먹먹해지는 감정에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이곳을 둘러보며 가장 무섭다고 느꼈던 공간이 지하 조사실이었다.
당시 이곳에서 벌어졌던 고문의 기록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기막힌 곳이었다.
밀랍 인형 등으로 그 당시의 고문과 취조 현장을 고스란히 복원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밀랍 인형 등으로 당시에 벌어졌던 잔혹한 고문들과 취조 현장을 생생하게 복원해 놓은 덕분에 생생한 분노와 슬픔,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성인 한 명의 몸이 들어갈 수는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좁고 어두컴컴한 벽관 고문실은 쳐다보기만 해도 공포가 밀려왔다.
한때 독립운동가들을 수감했다던 옥사는 이제 역사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비교적 따뜻해진 날씨라고 느꼈는데도 옥사로 향하니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너무나 작은 공간에 수감 인원보다 많은 수감자가 들어가 누울 수도 없이 늘 무릎을 꿇고 지냈다는 기록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독방은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하기 위해 창 하나 내지 않아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둑한 공간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옥중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던 우리 선조들의 용기와 희생에 가슴 깊이 존경심이 피어올랐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걸려 있는 거대한 태극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둘러보고 나와 그 옆에 있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대한민국을 수립하는 과정과 임시정부가 활약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삼일절 기념 포토부스에서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
이곳에서는 삼일절을 기념해 '기억해요! 그날의 함성: 대한독립만세!'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독립운동가에게 감사의 무궁화 손편지 쓰기 행사와 광복 80주년 축하 및 감사 편지 영상 이벤트 등 다채로운 행사에 누구나 즐길 수 있을 행사였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참여 방법도 어렵지 않아서인지 여기저기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또한 로비에 커다란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촬영 구역도 마련되어 있어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 의상을 입고 포토부스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 관람객들을 볼 수 있었다.
삼일촬영회 행사에 참여하면 독립운동가 차림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한복을 입고 독립운동가로 변한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태극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가 독립운동가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2층에서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삼일절 기념식 초대장을 만들기 위해 기념 도장을 찍고, 한국광복군 모자를 접어 머리에 쓰고 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직접 한국광복군 모자를 만들고,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한국광복군 모자를 접고 있는 어린이.
부모님과 함께 초대장 도장을 찍고 있는 어린이 관람객.
행사장을 간단히 둘러본 다음, 전시관으로 향했다.
대한독립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전시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마침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2025 상반기 특별전인 '한국광복군 그리고 국군'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여러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대한제국군부터 독립군과 한국광복군,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국군까지 여러 변화 과정을 거쳐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싸운 이들의 기록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바랜 군복을 보며 우리나라를 지켰던 수많은 이들의 희생에 깊이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임시정부와 관련된 자료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던 전시관.
2025년 3월 현재, 한국광복군에 참여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 579명이 모두 서훈을 받았다고 한다.
그중 100여 명은 광복 후 국군에 참여하여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또 다시 싸웠다고 했다.
전시장과 전시물을 찬찬히 둘러보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모든 독립운동가와 국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삼일절이라고 하면 개학부터 떠올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소홀하게 생각하곤 했는데 이번 전시와 행사를 통해 삼일절의 의미를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삼일절은 단순한 독립운동 기념일을 넘어,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려는 정신과 넋을 기리는 날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일절 기념행사를 둘러보며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선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지겠다고 다짐했던 하루였다.
섬세한 시선과 꼼꼼한 서술로 세상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